환자혁명을 실천한 사상의학자 이제마와 정신분석학자 쟈크 라캉의 고찰

기사입력 2018.05.0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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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의학에서 부러운 두 의학자가 있다면 오스트리아의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와 프랑스의 자크 라캉(Jacques Lacan,1901~1981)이다.

    이제마(1837~1899)가 1894년부터 쓰기 시작한 <동의수세보원>이 그의 사후 1년 뒤인 1901년에 제자들에 의해 간행되었다면, 20세기 첫해인 1900년 1월6일 빈에서는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출간되었다. 초판 600부 가운데 처음 2년 동안 288부 밖에 팔리지 않았고, 6년 동안 팔린 부수가 351부에 불과했다고 한다.

    완고했던 빈 의학계가 일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프로이트는 의학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받고 있다.

    프로이드는 이드, 자아, 초자아로, 라캉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라는 3자구조로 정신 구조를 연구하였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을 승계한 라캉의 분석이론은 그가 죽기 직전에 설립한 ‘프로이드 원인학교’를 통해 프랑스의 정신분석가들이 임상에 사용하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들은 지금도 프로이트 사유의 혁신자인 라캉을 주체, 욕망, 무의식의 정치를 현실화 할 수 있는 선생이라고 칭하고 있다.

    의학에서 제시하는 인간이해의 결과들을 철학이 수용하고 사회정치에 그 영향력이 발휘되는 유럽의 지적 풍토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상업의학인 미국의학을 빼어 닮은 한국의 서양의학은 전통의학 가치의 사회적 활용을 늘 방해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인간의 몸을 전체로 보지 않고 세분화하여 테크노롤지나 약물에만 의존하는 풍토 때문에 현대의학이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은 미국에서 더 자주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제약회사가 주도하는 과학에 끌려 다니는 현실에서 기업주도의 산업화가 의료를 지배하는 곳에 환자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환자 중심의 의학이 절실해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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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이제마의 체질의학과 라캉의 언어와 욕망과 주체에 대한 분석태도를 비교 고찰하였다.

    이제마와 라캉은 그 시대 새로운 의학자 중의 한사람이 아니라 인간과 환자를 보는 세계관의 변화를 촉구하는 혁명가였다.

    혁명이란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체제를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의학자가 실천한 환자혁명의 내용을 비교하고 공통점을 발견하는 것은 한의학이 세계의학에 기여하는 기반을 다지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대학시절 여러 한의서에서 배웠던 칠정내상, 사려상비, 선치기심의 인간정신에 관한 한의학의 심신일체적 치료체계는 가슴을 뛰게 했다.

    한의사는 心醫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서양의학이 서둘러 전일적 생명관을 도입하는 실정에 비하여, 한의학 전체의 기반을 이루는 정신신경분야를 포함하는 철학 심리학 뇌과학의 융합교육이 충분히 시행되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의사는 누구나 心身醫學 전문의이기 때문이다.

    라캉은 1930년대의 정신병 치료에서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환자 개인의 인성을 배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 당시 의사들은 환자를 정신적 장애를 가진 기계적 인물로 파악했기 때문이다.
    편집증 환자는 편집증 환자일 뿐 가족관계, 정서적 기질, 야망, 의도와 지적능력 등을 갖춘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라캉은 자신의 박사논문에서 정신병을 논의할 때 복잡한 인간적 차원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894년 사상의학을 창제한 이제마는 이미 인성을 체질에 따라 의다지소, 예다인소, 지다의소, 인다예소로 분류하여 특성에 따라 질병을 진단하고 처방하였다.
    이처럼 환자의 개체성 인간성의 개별 특징을 간파해야 한다는 것은 당시 의학에서는 혁명이었다.
    라캉과 이제마 모두 환자를 증상이나 질병이 발현하는 대상으로 보는 체제를 버리고자 한 것이다.
    이제마는 환자를 차별화된 인성을 가진 개별적 존재로, 라캉은 특히 타자의 영향으로부터 자유해야 하는 주체로 존중받기를 원했다.

    주체란 인간존엄의 또 다른 표현이다.

    철학자 페터 비에리는 <삶의 격>에서 어떤 능력이 인간을 물체 같은 대상이나 단순한 육체가 아닌, 주체가 되는지 설명한다.
    인간은 스스로 경험을 함으로써 자신이 인간임을 실감한다. 내면의 시각과 내면의 세계를 지닌 육체적 존재로, 신체적 감각과 느낌이 생명의 감시장치 역할을 한다.

    그리고 한 차원 위에 감정은 욕구와 밀접하게 관계하며, 소망하는 것이 감정을 통해 표출된다.
    소망은 상상이 되어 구체화되면, 기억과 희망으로 세상에 대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세계관을 형성한다.
    이때 한 인간은 주체적인 인간이 된다고 설명한다. 건강인이든 병자든 주체로서의 인간은 단순히 이용당하는 존재가 되길 누구도 원치 않는다.

    이제마와 라캉, 두 의학자를 이어주는 연결점은 인간을 충동과 욕망의 축으로 이해한 것이다.

    라캉이 주체의 충동은 본능적 이드와 관련되며, 주체의 욕망은 타자의 상징에 종속된 욕망이라 했다.

    즉 인간은 태어나면서 이미 존재해 있던 자연과 언어라는 상징의 세계에 속하게 되고, 그러니 욕망이란 다름 아닌 상징계에서 영향 받은 타자의 욕망인 것이다.

    이러한 라캉의 충동과 욕망을 육체와 정신의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이제마의 희노애락의 성정으로 대입하면 사상체질의 성정과 연결된다.
    육체적 충동인 怒는 소양인, 육체적 욕망인 喜는 태음인, 정신적 충동인 樂은 소음인, 정신적 욕망인 哀는 태양인과 상응된다.

    그러나 희노애락의 생리적 감정은 자연 환경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겪는 모순과 제약으로 인해 비박탐나(鄙薄貪懦,무례하고 천박하고 탐욕스럽고 나태함)의 심욕인 병리적 감정이 되어 체질에 따라 심신의 불균형을 초래하며 완고하게 자신의 특성으로 발휘된다. 사상체질의 성정이 완고하게 유지되는 메커니즘을 라캉은 억압과 부정과 배제 속에서 나타나는 강박증과 히스테리의 예로 설명하였다.

    강박증은 욕망을 유지하기 위한 상이한 방법으로,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욕망하는 것으로 인해 결국 그의 욕망은 처음부터 만족될 수 없도록 설정된다.
    그리고 히스테리는 욕망을 불만족한 상태로 유지시키려는 시도로, 충족되지 않는 욕망을 도리어 요구하는 욕망이 된다.

    이는 비박탐나의 욕망과 신경증에 빠진 환자가 좀처럼 자신의 병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체질적 기질적 인성적 원인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라캉은 자신의 분석치료 목적은 타자의 욕망에 종속된 주체에서 더 이상 타자에게 종속되지 않은 충동의 주체가 되는 것이라 했다.
    자기 자신의 고유의 인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사상의학에서 仁義禮智라는 건강에 이른 상태이며 체질이 갖는 최적의 균형을 의미한다.

    정리하면 이제마는 그의 철학적 저서 ‘격치고’의 ‘독행편’에서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의예지의 착한 인성과 비박탐나의 나쁜 사욕이 있다하여, 사람을 알게 하는 知人論을 제시하고, 인간 내면세계의 마음구조를 의학에 적용하는 혁명을 시도하였다.

    라캉은 구조주의 철학자이며,구조주의는 전통 철학의 존재론을 대체하는 관계결정론이다.

    언어학을 예로 들어 구조주의를 설명하면, 언어가 독립된 개별요소로 이해되지 않고 전체 체계 안에서 자리하는 위치에 따라 결정되는 것처럼 환자를 분석하는 데에도 적용하였다.
    마치 장부편차의 위치에 따라 체질이 나누어지는 사상의학의 장부상호관계적 결정론과 유사하다.

    이처럼 사상의학의 체계를 구조주의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발전된 뇌과학과 유전학을 모르던 1세기 전, 인간과 환자를 이해하는 이제마와 라캉의 통찰은 놀라운 것이다.

    라캉은 자신의 환자들이 지닌 성향을 존중했으며, 치료해야 한다거나 정상화해야 한다는 이상에 쫓기지도 않았다.

    마치 증상과 질병에만 치우쳐 내면적 환경을 무시하는 대증요법을 거부한 것이다.

    정신분석 치료의 목표가 환자의 사회생활 또는 개인적인 자기 성취가 아니라, 환자로 하여금 자신의 욕망의 기본좌표와 곤경을 대면하도록 하는 것이라는 철학치료적 입장을 주장하였다.

    이제마도 질병 치료를 위해 체질과 심욕의 상관관계를 파악하여 자신의 심성도 가꿀 것을 요구한 것은 심신의학의 본질을 천명한 것이다.
    시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 20세기 초 인간과 환자에 대한 뛰어난 통찰을 통해 두 의학자는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

    “환자혁명은 결국 환자 스스로의 인식혁명과 의사의 치료혁명이 동시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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