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133)

기사입력 2018.03.3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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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腫氣治療方法을 후세에 전해주다”
    安瑋의 治腫秘方論


    kni-web[한의신문] 安瑋(1491~1563)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서 1521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이후에 예문관 검열이 됐다.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1542년 충주목사로 좌천된 후 근검절약하며 기근으로 어려워진 농촌 사회의 안정을 위해 구황에 힘써 실적을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능력이 인정되어 1554년 청홍도관찰사, 1555년 병조참의로 내직으로 들어왔고 이어서 승정원에서 국왕의 측근이 되었다. 1558년에는 전라도관찰사로 민정을 잘 주관하였다.

    1559년에 安瑋는 任彦國의 『治腫秘方』을 금산군수인 金億祥에게 부탁하여 간행한다. 전라도관찰사 시기에 그가 행했던 하나의 미담이라 할 것이다. 아래에 安瑋의 서문을 소개한다.

    “모든 병 가운데 오직 종양을 치료하기 어려운 것이니, 사람에게 이 병이 생겼다면 면하는 것만 해도 요행이다. 任彦國이 세세토록 井邑에 살았는데, 天性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다.

    그의 어머니가 종양을 앓아서 어떤 약을 써도 효과가 없었을 때 요행히도 靈隱寺에서 한 늙은 승려를 만나 鍼法을 전수받아 어머니를 치료해내었다.

    그 이후로 스스로 그 교묘한 이치를 얻어서 병을 만나서 치료하면 곧바로 효과가 나지 않음이 없었는데, 종양을 치료한 것에 그칠 따름이 아니었다.

    일찍이 이웃 동네에 갔을 때 한 사람이 죽어서 장차 염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마침내 침을 놓으니 잠시 후에 다시 소생하였다. 사람들이 이것을 기이하게 여겼고, 조정에서 이것을 듣고 역마로 서울에 불러들였다.

    관리들이 숙식을 제공해서 수년 동안 머물면서 온전하게 치료해낸 사람들이 거의 만여 사람들이나 되었다. 임금께서 특별히 의복을 내리셨고, 禮賓寺主簿로 승진시키셨다.

    [caption id="attachment_393672" align="alignleft" width="207"]김두종의 한국의학사에 나오는 임언국에 대한 내용. 김두종의 한국의학사에 나오는 임언국에 대한 내용.[/caption]

    임금님의 관심이 바야흐로 커지는 가운데 불행하게 죽게 되었다. 애석하도다. 병을 아직 발생하기 이전에 살펴보고 이미 죽은 후에 회생시키는 것이니, 비록 편작이라 이르더라도 세상에 그 교묘한 이치를 전하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올해 봄에 순무하면서 정읍을 지날 때 남겨진 처방들을 구하여 얻었는데, 이에 치종법을 지은 것이었다. 사람들이 비록 없어졌다고 하지만 이 처방들이 한번 나오게 된다면 세상에서 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또한 가히 처방을 바탕으로 그 묘한 방법을 구하게 될 것이다.

    다만 모든 병들을 치료하는 방법은 기재하지 않은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마침내 금산군수 김억상에게 부탁하여 인쇄하여 널리 전하게 하고자 하였다. 사람마다 요절하는 것을 면하여 함께 오래 사는 영역에 올라갈 수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1559년 1월 하순. 嘉善大夫 全羅道觀察使兼兵馬水軍節度使 安瑋가 서문을 쓴다.” (필자의 번역)

    여기에서 소개된 任彦國은 한국의 外科學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은 醫人이다. 任彦國은 전라도 정읍사람으로 治腫術에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정에서 그를 불러들여 백성들을 치료하게 한 것이다.

    『治腫秘方』에는 火丁, 石丁, 水丁, 麻丁, 縷丁 등 五丁 및 背腫 등 종기들을 증상, 치법, 약물 등과 함께 설명하고 있고, 鹽湯沉引法, 鹽湯沐浴法 등 종기 치료에 사용하는 특수 요법도 기록해 놓고 있다.

    여기에서 사용된 치료방법들은 침구에 의한 종양의 절개술에 그친 이전의 방법을 뛰어넘어 현대의 외과술에 필적할 과감한 수술요법으로 볼 수 있다.

    安瑋의 노력으로 任彦國의 종기치료 방법이 후대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정읍에서 활동한 임언국의 경험처방을 금산에까지 가서 이억상에게 간청하여 책으로 엮어 간행하게 하였던 것이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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