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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용어 통일·표준화 위해 DB구축 필수[한의신문=민보영 기자] 지난 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남북 전통의학 비교 용어집 편찬 방법과 방향' 국회토론회에서 도원영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남북전문용어집 편찬을 위한 데이터베이스(DB)구축의 실제’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남북 전문용어의 통합 DB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DB 구축 과정 과정상의 시행착오와 개선방안에 대해 제언했다. 도 교수는 “전문용어 DB는 정책 수립, 통계 산출, 운영 결과 평가 등의 주요 지표이며 후속 세대 양성에 필요한 교육 자원이기도 하다”며 “디지털 구축 시스템을 통한 효율성과 일관성을 확보하고, 표준 데이터 구축 방법을 적용해 향후 전문용어 통일과 표준화로 가기 위해서라도 남북 전문용어의 통합 DB 구축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도 교수는 이어 준비, DB 구축, 용어 비교, 편집제작 및 출간 등 남북 내과 분야의 의료용어집 발간 단계와 남북 전문용어의 통합 DB 구축을 위한 쟁점을 소개했다. 쟁점으로는 신뢰할 만한 자료의 수집 및 가공, DB 구조 설계, 구축 방법론, 용어집 편찬 지침, 디지털 편찬 시스템과 구조 등이 제시됐다. 먼저 신뢰할 만한 자료의 수집, 가공을 위해 남한에서 △의학용어집 6판 △KCD8 △EDI 등을, 북한에서 △영조일 의학대사전 △림상의전 등의 자원을 수집해 오류를 제거하고 헤더 정보를 입력한 후 비교 가능한 형태로 가공했다. DB 구조 설계를 위해서는 학술적·실용적 활용도를 고려한 항목을 개발한 뒤 분류체계를 설정해 전문가 검토로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거쳤다. 구축 방법으로는 샘플 DB를 작성·평가하고, DB 입력 지침을 작성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렇게 편찬한 용어집은 사전 편찬, 어휘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위해 표제항별로 조직화된 틀에서 편집·수정·저장 기능을 하도록 설계된 프로그램에서 구현됐다. 이 프로그램에는 입력, 검색, 출력, 관리, 도구 모음 등의 기능이 있으며 편집 이력을 확인하고 실시간 공동 작업을 할 수 있어 작업 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도 교수는 “지침을 완전히 숙지하지 못해 작업 결과를 지속적으로 수정하는 경우가 있었으며, 작업자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이 남은 점은 과제”라며 “평가 후 편찬 지침을 확정하고, 편찬 이력 관리나 수정 요청사항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등 작업자 사이의 소통 창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우리동네 복지 한방’ 사업, 지역주민들에 높은 호응홍천군은 지난 2월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주민생활현장의 공공서비스 확대’ 선도사업으로 공모를 통해 선정된 ‘복지+한방으로 찾아가는 우리동네 돌봄사업’이 지역주민의 높은 호응 속에서 성공적으로 추진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가칭 ‘우리동네 복지 한방!’ 사업은 홍천군한의사회와 지난 3월 협약을 통해 진행하는 공동사업으로, 행정안전부로부터 홍천군이 선도지원사업으로 선정돼 지원받은 국비 5000만원 및 군비를 포함해 총 1억4800만원을 투입하는 사업이다. ‘우리동네 복지 한방’은 홍천군이 고령화되면서 한의진료를 받고 싶어도 거동 불편과 고가의 치료비, 홍천읍 중심권역에 집중적으로 위치한 한의원으로 인해 한의진료의 사각지대에 놓인 대상자를 발굴해 한의진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민·관이 협력해 주민생활에 불편한 공공서비스를 발굴 확대하여 복지체감도를 높이고 더불어 사는 살기 좋은 홍천으로 만들고자 추진되고 있다. 특히 홍천군은 물론 강원도에서 최초로 시행되는 한의방문진료 사업은 우울증, 치매, 정신질환, 자살, 만성통증 등 한의진료가 필요한 위기상황에 있으면서도 거동 불편으로 인해 한의진료를 받을 수 없는 고위험군 재가대상자를 발굴, 주 1회 6개월간 총 25회에 걸쳐 한의사들이 각 읍면의 가정을 직접 방문하는 시범사업이다. 현재 각 읍면별 2가구씩 총 20가구를 선정해 주 1회 관내 9개 한의원 한의사가 직접 가정방문을 통해 진료를 제공하고 있어 대상자들로부터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읍면 맞춤형복지팀에서는 현재까지 그동안 만성질환 및 통증 등으로 한의진료가 필요하지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했던 총 32명의 복지사각지대 대상자를 발굴해 맞춤형 복지서비스와 함께 한의진료서비스를 연계 제공하고 있다. 이밖에 읍면별로 2020년 1월1일 이후 출산한 산모 102명에게 한의건강상담과 첩약 지원 서비스를 연계 제공함으로써 산모에 대한 지역사회의 지지와 산모의 건강 향상, 자존감, 소속감 증대를 통한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인구소멸 예방에도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이와 관련 허필홍 홍천군수는 “홍천군에서 선도사업으로 신규로 추진하고 있는 우리동네 복지 한방 돌봄사업은 그동안 면지역의 취약한 한의의료서비스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좋은 선례를 만들고 있다”며 “거동불편 가구에는 직접 찾아가는 방문진료서비스를 제공해 적극적인 복지서비스에 대한 주민 만족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허 군수는 이어 “읍면 맞춤형 복지와 연계한 민·관 협력 확대로 한의돌봄서비스의 체계 구축을 통해 초고령사회로 인한 인구소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선도적인 맞춤형 공공서비스 연계 강화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의 변천<2>한창호 교수 동국대학교 한의과대학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는 1979년 5월25일 경제기획원 고시 제30호로 개정 고시되고, 1979년 1월1일부터 시행됐다. 이때 ‘한의사의 기본분류 사용을 위한 분류’는 별책으로 발행된다. ‘1979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한의)’는 ‘1972년 한국질병상해사인분류’ 중 ‘기본분류 사용을 위한 한의분류’에 있던 ‘노인성 질환(900-909)과 기타 원인불명(910-913) 질환 분류를 삭제하고, 이를 각 질병별 분류에 포함시켰으며, 국소성 질환을 분리해 7장 안이비인후질환(551-672)과 8장 외과질환에서 골절질환(751-759)과 옹저질환(760-790)으로 분류했다. ○ 한국질병·사인분류(한의) 작성 본 분류는 12개 질병군을 설정하고, 이를 792개 항목으로 소분류(숫자 3자리)했으며, 이를 다시 1535개 항목으로 세분류(숫자 4자리)했다. 분류표의 괄호 안에는 질병명 중 한자로 표기할 수 있는 경우에는 삽입했다. 하지만 이 분류표는 상당히 불완전한 것이었다. 한의항목번호의 4단위 숫자는 그저 일련으로 표시한 것이었고, 3단위 숫자에 연결된 양방분류번호 즉, 기본분류(KCD, 혹은 ICD) 코드가 없는 것도 있었다. 이는 한의질병명과 양의질병명의 개념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또한 목록에 콜론(:)이나 세미콜론(;)이 붙어있는 것도 있는데, 이는 분류용어가 불완전한 용어이거나 주어진 항목에 합당한 용어를 만들기 위하여 하나 또는 기타 짧은 수식어를 가지는 것이다. 편찬에는 당시 경희대 한의과대학장이었던 김정제 학장이 책임을 맡았고, 기초와 임상을 망라해 42명의 교수진이 작성에 참여했다. ○ 한의분류체계 변화 : 대분류 변경 1979년 한의분류는 이전 1972년 한의분류가 동의보감의 내용을 근거로 분류체계와 질병 용어를 사용했던 것에서 큰 틀을 변경했다. 한의항목에는 한·양방을 구분하지 않고 한의용어와 의학용어를 구분 없이 나열해 목록을 작성하고 기본분류 코드를 연계했다. 1972년 동의보감 목차방식에서 대분류 장을 2장 간계질환, 3장 심계질환, 4장 비계질환, 5장 폐계질환, 6장 신계질환, 7장 안이비인후질환, 8장 외과질환, 9장 신경정신질환, 10장 운동기질환으로 분류체계를 변경했다. 물론 이때까지도 한의항목의 숫자는 의미를 가지지 않고, 기본분류 항목부호를 연계하기 위한 일련번호의 의미만 있었다. ○ 한의분류체계 변화 : 중분류 변경 간계질환은 간질환(140-169), 담계질환(170-180), 영양대사 및 면역장애(181-184), 혈액 및 조혈계질환(185-207)으로 중분류했고, 심계질환은 맥관계질환(221-231), 중풍질환(232-235), 심장질환(236-266)으로 중분류했으며, 비계질환은 식도의 질환(271-279), 위·십이지장질환(280-293), 소장·대장질환(294-320), 췌장질환(321-327), 복막질환(328-330), 기타복부질환(331-377), 소화기계의 적취 및 신생물(378-389)로 중분류했고, 폐계질환은 폐상증(401-402), 폐병증(403-450)으로 중분류했으며, 신계질환은 비뇨질환(451-485), 생식질환(486-522), 요의 질환(523-529), 신관계질환(530-550)으로 중분류했다. 안이비인후질환은 이질환(551-559), 비질환(560-563), 인후질환(564-586), 성음언어질환(587-588), 구강질환(589-607), 순질환(608-623), 설질환(624-652), 안질환(653-659), 안통안혼안화질환(660-672)으로 중분류했고, 외과질환은 골절질환(751-759), 옹저질환(760-790)으로 중분류했다. 신경정신질환은 칠정상(801-808), 심신증(809-829), 전광증(830-836)으로 중분류했고, 운동기질환은 중분류 없이 35개의 소분류를 했으며, 부인질환은 월경병(900-909), 성기병(910-920), 임신병(921-929), 출산병(930-934), 산후병(935-938)으로 중분류했고, 소아질환은 초생아질환(950-971), 영유아질환(972-995)로 중분류했다. ○ 한의항목 용어 변경 : 의학용어의 도입 및 혼용 1979년 한의분류에서도 1장 감염병 및 기생충 질환은 기본분류와 동일하게 항목부호가 배정됐다. 다만 1972년 전염병이 1979년에는 감염병으로 용어를 바꾸었다. 한의항목의 표제어(혹은 선도어) 표기 방식도 크게 바뀌었다. 예를 들면 1972년 한의분류에서는 000 곽란, 001 온역, 002 장역, 003 역질, 004 적리 이었던 것이 1979년 한의분류에서는 001 콜레라(호질), 002 장티푸스 및 파라티푸스(온역), 003 기타 살모넬라 감염(역질), 004 세균성 이질(적리) 등으로 한의병명에서 기본분류 용어로 변경했다. 한의항목 중 중분류 전체가 기본분류의 항목이름을 따라간 항목들도 있다. 예를 들면 간계질환의 영양대사 및 면역장애(181-184) 항목이나 혈액 및 조혈계 질환(185-207) 항목 등의 용어는 기본분류와 동일하다. 다만 1장을 제외하고는 한의항목 번호와 기본분류 항목의 번호가 같아질 수 없어서 기본분류항목부호의 번호를 일대일 연계했다. 구안와사는 1972년 분류에서는 ‘전신성질환-풍병류-142구안와사-350’이었는데, 1979년 분류에서는 ‘심계질환-중풍질환-235중풍후유증-235.3구안와사-438’과 ‘운동기질환-851구안와사(중풍구안와사 제외)-351’로 2가지로 분류된다. 하지만 이때의 한의분류에서 중복은 용어의 중복이지 개념의 중복은 아니므로 개념 중심으로 포함과 제외관계를 따져서 기본분류의 코드와 연계했다. ○ 1979 한의분류의 한계 : 중복 코드의 문제 폐계질환 434 홍역-484.0, 435 백일해-484.3, 436 야토병-484.4, 437 탄저병-484.5 등은 감염병 및 기생충병 055 홍역-055, 033 백일해-033, 021 야토병-021, 022 탄저-022와 중복돼 있을 뿐만 아니라 기본분류 연계코드도 적절하지 않다. 심계질환-심장질환 259 삼초열증 아래 상초열, 중초열, 하초열을 나열하고, 신계질환-신관계질환-535 삼초열(하초)를 둔 것은 명백하게 중복이다. 비계질환-기타복부질환 331 심복통 아래 음심복통, 식심복통을 나열하고, 332 위완통 아래 식적위완통, 담음위완통, 어혈위완통을 나열하고, 334 복통아래 식적복통, 어혈복통, 담음복통 등을 나열했는데 이는 동의어 혹은 포함으로 처리했어야 한다. 그러나 용어의 중복이라도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심계질환-심장질환-255 심통아래 세분류로 냉심통, 열심통, 거래심통이 있는데, 비계질환-기타복부질환-331 심복통에도 냉심복통, 열심복통, 거래심복통이 있다. 용어 입장에서는 다소 중복으로 보이지만, 중분류에서 가슴쪽의 병변과 배쪽의 병변으로 구분되는 질병상태이므로 이는 중복으로 볼 필요는 없으며, 환자상태를 국제분류에 적절하게 연계하기 위해 불가피해 보인다. ○ 1979년 한의분류의 한계 : 표준분류로서 조건 1979년 한의분류가 독립된 하나의 분류체계로 발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현실적으로 한의사들이 한의와 양의의 질병 및 진단 개념을 혼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한의분류를 만들고 국제 분류에 연계하기 위한 목적이 분명하다면 오히려 1972년 한의분류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인다. 다만 목적이 한의분류를 독립적으로 구성하기보다는 한의사들이 이해하고 있는 개념의 환자상태를 국제분류에 부합하게 코드를 부여하기 위한 연계표 역할을 하도록 작성했다는 기준으로 본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시로서는 활용목적에 맞게 최선을 다한 것이라 평가한다. 현실적으로는 1979년 한의분류는 활동도를 크게 높였을 것이다. 한의사들이 ICD-9 기반의 KCD 코드를 부여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므로, 교과서에 나오고 한의 임상에서 다빈도로 대면하게 되는 환자들의 한의용어와 의학용어가 함께 모아진 목록과 연계표는 매우 유용한 것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다음에는 1994년 한의분류 2차 개정에 관해서 알아본다. -
한의사협회 정책사업국 특성화 실습 후기임완현 학생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석사 4학년 코로나-19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를 의미하는‘숨 쉬는 것처럼’ 이라는 관용 어구는 답답하고 꽉 끼는 마스크 속에서 의식적으로 들숨, 날숨을 반복하고 있는 요즘에는 본래의 그 의미를 잃었고 수 천 년을 이어온 La bise, Le bisou (유럽과 중남미에서 하는 서로의 볼을 맞대는 인사법), 악수, 포옹 등의 인사법은 한때 코로나-19 전파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하며 설 자리를 잃었다. 나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원래라면 뉴욕 맨해튼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야하는 시기에 이곳 대한한의사협회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본래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이하, 한의전) 본과 4학년 과정 중에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약 6주~8주간 국내외의 기관을 선정해 한의학의 세계화와 저변확대를 위해 다양한 체험을 하는 ‘특성화 실습’ 이라는 과정이 있다. “협회가 얼마나 치열하게 일하는지 알지 못해” 많은 학생들이 해당 실습을 그간의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스스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향후 있을 한의사 국가고시 준비 전 마지막 휴식처로 삼는다. 학교의 커리큘럼을 명분삼아 타국에서 보내는 긴 여름휴가와 다양한 문화생활을 꿈꾸는 시기라 본 실습을 위해 1학년 때부터 계획을 세우고 저축을 하는 동기들도 더러 있을 정도로 그 의미가 우리 한의전 학생들에게는 결코 작지가 않다. 물론, 수 천 년을 매일 해온 인사도 못하게 되는 마당에 그깟 휴가 인 듯 아닌듯한 해외 실습이 날아가 버린 것이 대수는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명이 넘는 감염자, 5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범세계적 대유행(pandemic) 상황에서 당당하게 투정 부릴 만한 일 또한 아닐 것이다. 아무튼 지금, 나는 대한한의사협회 정책사업국 여러 직원들 사이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고 아이러니 하게도 전 세계적 재앙이자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백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본 실습이 원래는 체험, 견학, 참관이 주를 이루는 과정이다 보니, 그리고 아무래도 평생 한번 해볼까 말까한 6주간의 맨해튼 생활대신 와있는 자리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생겨서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협회에 들어섰다. 하지만 내 기대가 당혹감과 부담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이제와 말하자면, 편할 것이라는 기대는 협회에 와보기 전까지 협회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다들 얼마나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협회에 일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따라온 것이기도 했다. 첫날, 우리를 안내해 주신 정책팀장님, 정책연구원장님은 한눈에 보기에도 각종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어 보였고 내 주변자리 직원 분들과 채 인사도 한번 나누기 전에 우리가 맡아서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그 일이 업무 보조, 문서 정리 등이 아닌 무려 코로나-19 백서의 초안을 만드는 일이라고 하셨다. 백서 제작, 감염병 대처의 중요한 길라잡이 기대 코로나-19 백서라니! 반년이 넘게 계속되면서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는, 전 세계의 경제, 문화, 생활 전반을 쥐고 흔든 그 코로나-19? 사안의 과중함도 과중함이지만 백서라는 형식의 문서를 제작해본 경험은 당연히 전무했고, 어떤 종류의 백서든지 한번 읽어 본 적도 없다. 더군다나 코로나-19 에 대한 지식의 깊이 역시 깊지 않다보니 걱정이 됐다. 작성해야하는 항목은 또 어찌나 많은지, 대주제, 중주제, 소주제에 따른 세부항목이 60가지도 넘었다. 정말 막막하고 부담 됐지만, 한편으로는 코로나-19 백서 작성이 한의계의 참여를 알림과 동시에 향후 감염병 대처에 있어서도 길라잡이가 되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중요성을 인지하자 오히려 부담감은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바뀌었다. 이왕 이렇게 예상을 웃도는 중요한 일을 맡은 거, 시간만 의미 없이 보내지 말고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일이었지만 담당자 분을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참고할 만한 기존의 백서들을 보여주시고 양식과 자료도 제공해주시면서 진행 방향을 잘 설명해 주셨고, 추후에 전문가들이 붙어서 충분한 수정과 재검토가 이루어 질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라고 격려해 주셔서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진행 할 수 있었다. 다양한 배려와 도움으로 다행히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실습의 마지막 날, 기존에 계획했던 세부항목들을 모두 정리·작성할 수 있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의견을 내어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기도 하고 기존의 항목을 변경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책임감을 가지고서 주도적으로 업무를 진행한 결과 나와 함께 업무를 맡은 동기 한명을 포함해 둘이서 3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코로나-19 백서 초안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비록 아직 손댈 곳이 더 많은 미완의 초안일 뿐이지만 코로나-19 감염증 이라는 전 세계적인 재앙 현장에서 미래의 의료인으로서, 나도 작지만 의미 있는 일에 힘을 보탰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전염병 사태서 배제되고 있는 한의 현실에 분노 백서 작업을 하면서 한의계가 국가 전염병 사태에 있어 법리적 근거 없이 부당하게 참여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에 함께 분노 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한의사 선배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의지를 드러내고 자발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그러한 사실들을 토대로 협회가 다양한 기관에 한의계 참여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의학은 우리나라가 법적으로 인정한 의학이다. 의학이라 함은 환자의 건강, 더 나아가 사회의 건강과 안녕에 이바지 할 수 있어야한다. 반대로, 환자의 건강과 사회의 안녕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한의학이 아닌 그 무엇이라도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코로나-19 감염이라는 사태의 시급성을 고려했을 때,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서 주장하는 한의계의 참여를 단순히 밥그릇 싸움으로 격하하고 그 순수성을 훼손하여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저 맨해튼에서 평화로운 휴가만을 꿈꿔 왔던 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의계가 국민 건강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노력과 투쟁을 하고 있는지 일깨워주고 귀한 기회를 주신 협회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
“흥 넘치고 다재다능한 한의사, 여기 모여라!”[편집자주] 한의학을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윤소영 원장(부천미소재활요양병원)이 발벗고 나섰다. 한의사들의 특별한 취미활동을 직접 체험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닥터조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윤 원장과 ‘닥터조이’의 매력을 하나부터 열까지 낱낱이 파헤쳐보기로 했다. Q. ‘닥터조이’에 관한 소개 부탁드린다. 대중들이 한의사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듯하다. 그 관념을 깨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한의사는 생각보다 Young하고 고리타분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해 대중들과 소통하고자 한다. 특히 한의학적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려는 형태에서 탈피해 경쟁력있는 컨텐츠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Q. ‘닥터조이’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주변을 둘러보면 소위 ‘한의사’라는 일반적인 통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계신 흥부자 원장님들이 많다. 이런 분들을 소개해드려 대중들이 한의원을 방문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변화시키고 싶다. 요즘은 의료계 혹은 전문직 종사자 가운데 유튜브를 활용하시는 분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대부분이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형태로 컨텐츠를 발행하고 있는데 이런 틀에서 벗어났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의사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될 거 같아 참여하게 됐다. ‘닥터조이’는 한 명의 스타를 만들어 내려고 기획된 것이 아닌 한의학 이외의 다양한 분야의 취미를 즐기는 원장님들과 그 취미를 함께 체험하며, 그들의 스토리를 재미있게 풀어나가는 컨텐츠다. Q. 영상 티져에 Wannabe 아나운서로 소개된 까닭은?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중들에게 한의학을 알리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던 중 ‘한의사가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건강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심지어 20살이 되던 해에는 아나운서 시험을 치렀던 경험도 있다. 그래서 Wannabe 아나운서라고 소개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스토리텔링과 목소리가 가진 힘을 믿는다. 모든 순간의 사건들을 겪어내는 과정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며, 그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고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전달해내는 현명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람도 그 호칭에 담겨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책이나 영화를 읽고 리뷰하는 개인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과 생각을 함께 공유하고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Q. ‘닥터조이’에서 윤 원장님의 역할은? 허당미 넘치는 ‘똑순이’ 역할을 생각하고 있었다. 우선 내가 ‘닥터조이’에서 밝은 캐릭터를 담당하고자 했는데 팀원들과 첫 만남에서 ‘밝은 이미지는 여기서 명함도 못 내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에너지와 유머감각이 넘치시더라. 엄격, 근엄, 진지 소위 요즘 말로 ‘엄근진’한 늙은 막내 역할을 맡게 될 것 같다. 벌써부터 슬픈 제 미래가 그려지는 것 같아 웃프다. Q. <No컨셉, No대본, No연출> 시무 3조가 독특하다 사람들은 자유로움을 추구할 때, 크리에이티브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한의사’라고 하면 고집스런 완벽주의와 같은 성향들을 떠올리게 된다. 컨셉, 대본, 연출 등 설정이 있으면 분명 일처럼 꾸역꾸역 해내는 우리 한의사 특유의 성향이 발휘될 것 같고, 시청자들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무 3조를 만들게 됐다. ‘닥터조이’에 출연하시는 원장님들은 각자의 매력이 있고, 또 기본적으로 시끌벅적해 오디오가 쉬질 않는다. 그만큼 시청자분들이 보기에 지루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Q. 출연진 중에 유튜브에 가장 적합한 인물은 누구인가? ‘닥터조이’ 부위원장을 맡고 계신 이승환 원장님께 한 표를 드린다. 폴 댄스 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원장님께서 쏘시던 그 뇌쇄적인 눈빛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아직 첫 번째 편만 촬영을 마쳤기에 모든 멤버의 숨겨진 매력을 전부 확인하진 못했다. 기대해주길 바란다. ‘닥터조이’는 앞서 소개해드린 이승환 원장님과, 컨텐츠 제작에 일가견이 있는 전상호 원장님, 서울지부 학술이사를 맡고 계신 닥터조이 브레인 안보은 원장님, 출연진 구성과 기획을 맡으신 권오빈 중앙회 홍보이사님과 명예멤버 김계진 홍보이사님 그리고 팀에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된 나까지 총 6명이 팀을 맡고 있다. Q. ‘닥터조이’에 기대하는 역할은? 대중들에게 한의사의 이미지가 보다 친숙하게 느껴지길 바라며, ‘한의사들 참 밝고 유쾌하더라’ 하고 기억됐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 이런 활동이 나에게 한 줄기 빛이 됐으면 한다. Q. 남기고 싶은 말은? 모든 분들이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바를 모두 충족시키지 못할 수 있겠지만 미숙하기에 앞으로 더 발전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한의계의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열정을 갖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시면 좋겠다. -
한의사 변태우 “일본 모슬포비행장 군사 기밀 제공”의생면허 6920번, 한지의업면허 879, 본관은 원주. 변태우(邊太祐,1899.8.5.~1965.2.7)는 선친 변양근의 둘째 아들로 제주도 제주시 대정읍 하모리 933번지에서 태어났다. 변태우는 1922년 장한규의 둘째 딸과 결혼하고 1923년에 의생(醫生) 시험에 합격한 뒤 모슬포에 보창의원을 개업하여 의료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한의사로서의 기록은 의외로 1923년대 신문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회장에 최치경, 부회장에 장한규를 선임” - 매일신보 1923년 12월7일자 “去月 1日 하오 3시에 제주도 성내 장한규氏弟에서 최치경, 장한규, 변태우 3氏의 발기로 <제주의생회>를 조직하얏는데 그 임원은 如左. : 회장 최치경, 총무 장한규, 간사 김홍기, 변태우 외 二人 (제주).” - 동아일보 1923년 12월5일자에 여기 나온 이들이 제주의생회(濟州醫生會, 한의사회 전신)를 설립했다고 보도됐으며, 이상에서 보면 최치경, 장한규, 김홍기, 변태우 등이 <제주의생회>의 창립 발기인, 즉 창립 회원들이다. 일제강점기 탄압의 대상으로 몰려 지독한 고문당해 1938년 가을 변태우는 제주도 제주읍 삼도리로 거처를 옮겼다. 거기서 천주교 신도가 되어 제주성당(남문통 소재)에 교적을 두었는데 1937년 한지의사(=지역 의사) 시험에 합격한 뒤로, 천주교 모슬포 지역 회장직을 역임하며 지냈다. 이때 천주교 선교사로 온 제주성당 소속 손 신부(孫 신부:본명 도슨 패트릭 Dawson, Patrick)와 일본군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는데 훗날 이것이 큰 문제가 됐다. 그날 대화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모슬포 비행장 넓이 약 20만 평, 남경 함락 당시 하루 두 차례씩 한 번에 20기 정도가 바다 건너 폭격을 하기 위해 왕복 비행을 함. 현재는 비행숫자가 많이 줄었고, 군인의 수도 많이 줄어서 그리 숫자가 많지 않음.’ 얼핏 보면 크게 문제가 안 될지 모를 이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한 인물을 탄압의 대상으로 몰아넣어 지독한 고문을 가하게 만들었다. 제주도 천주교 신자들의 항일 활동은 세 명의 천주교 신부가 주도하고 있었다. 손 신부, 서 신부(徐 신부:Sweeney, Augustine), 그리고 나 신부(羅 신부:Ryan, Thomas.D.) 이들은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할 경우, 동양에서 천주교의 포교는 불가능해지고 서양인은 동양 각처에서 쫓겨나게 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때 모슬포 군용 비행장의 모습과 내용이 외국 잡지에 사진과 함께 게재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일본 군부에서는 군사기밀이 누설되었다며 야단법석을 떨었고 기밀을 누설한 사람을 색출하는 데 혈안이 됐다. 일본 군부는 먼저 서양 사람과, 조선인들을 의심했다. 당연히 모슬포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우선으로 검속을 당했다. 1940년 일제는 제주도를 군사 기지로 만드는 계획을 수립했다. 그렇게 삶의 터전에서 죽음의 땅으로 변한 아픔의 장소가 제주에는 참 많다. 제주도민을 강제로 동원해 알뜨르비행장 건설 대표적으로 알뜨르 비행장이 그것이다. 일제가 제주도에서 중일전쟁과 남경지역 폭격을 준비하며 1930년대 중반까지 제주도 도민을 강제 동원해 군용 비행장을 건설했고, 1940년대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탄약고, 연료고 등 중요 군사 시설을 감추기 위한 동굴 진지를 구축했다. 그것이 ‘셋알오름일제’와 서귀포시에 있는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 진지’이다 이러한 군사 기지화, 전초 기지화 작업을 하며 제주도도내 반일세력(항일세력)을 색출 및 제거하기 시작했다. 일제는 우선 적성국인 아일랜드 선교사들과 그들이 소속된 천주교회의 신도 조직을 탄압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군사기밀을 누설했다고 해서 모슬포 공의로 종사 중이던 변태우는 1941년 10월경 일경에 체포됐다. 군기보호법 위반 징역, 1993년 광복절에 건국포장 추서 일제 당국은 외국인 신부 3명과 평소 반일 감정이 있는 신도 35명을 구인해 심한 고문을 가했다. 결국, 외국인 신부 3명과 한국인 신도 10명이 기소됐고 그중 1명은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순국했다. 변태우는 1942년 10월 24일 광주지방법원에서 국방보안법 및 군기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조국이 광복되면서 변태우는 전라남도 광산군(光山郡) 대촌리의 보건소장으로 발령받아 생활 근거지를 광주로 옮겼다. 1948년 광주 시내에 <월산의원>을 개업 운영하던 중 고문의 여독과 옥중 생활 후유증으로 2년 만에 광주 자택에서 별세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3년 광복절에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 정상규 작가는 지난 6년간 역사에 가려지고 숨겨진 위인들을 발굴하여 다양한 역사 콘텐츠로 알려왔다. 최근까지 514명의 독립운동가 후손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들의 보건 및 복지문제를 도왔으며, 오랜 시간 미 서훈(나라를 위하여 세운 공로의 등급에 따라 훈장을 받지 못한)된 유공자를 돕는 일을 맡아왔다.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
이제마 선생이 최린에게 준 ‘향부자팔물탕’ 처방전유준상 교수 (상지대학교 한의과대학 사상체질의학교실) 민족대표 33인중 한 사람이며 천도교도로 활동했던 최린(崔麟·1878~1958·사진). 그는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친일행위를 일삼았다. 최린은 1878년 1월25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이제마 선생과 같은 고향출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마 선생이 1837년생이니, 41세정도의 터울이 있는 셈이다. 본란에서는 최린의 자서전 기록과 그가 이제마 선생에게 받았다는 처방전의 내용을 자세히 검토해 보고자 한다. 현재 대한한의학회지 1971년 통권 31호 4페이지에 실린 내용(주동림 선생(한의사)이 제공한 여암문집 최린선생자서전 부분에서 발췌)은 이렇다. “1903년 계묘년 봄 26세 때 함흥군 영천면 치촌(峙村)에 사는 친구 한석교(韓錫敎) 집에 가서 동무 이제마 선생의 동의수세보원과 기타 한방의학을 연구하였다. 이는 내가 21세 때 신병으로 신음 고통하다가 동무선생의 진단과 처방으로 살아난 일이 있었는데 그 후에 나는 선생 문하에 종종 출입하면서 선생의 사랑과 지도를 받은 관계로 선생의 저작인 사상방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처방과 훈화를 즉석에서 선생이 친히 써 주셔 최린이 21세라고 하면 1898년(이제마 62세)에는 고원군수에서 물러나 함흥으로 돌아가서 한의원을 경영하다가 1900년(이제마 64세)에 별세했다. 그렇다면, 이제마 선생이 사망하기 2~3년 전에 최린을 만나서 진료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선생이 나를 보시고 진찰하실 때 먼저 맥박(脈搏)을 보시고 다음엔 수족(手足)과 피부(皮膚)를 만져 보신 후 종이와 붓을 주시면서 월도천심처(月到天心處), 풍래수면시(風來水面時)라고 쓰라 하시기에 그대로 썼더니 다시 말씀하시기를 그 아래 구(句)를 마저 써보라고 함으로 일반청의미(一般淸意味), 료득소인지(聊得小人知)라고 계속하여 썼더니 그 글씨를 자세히 보신 후에 다시 사랑 앞뜰로 데리고 나가서 5,6간 거리에 놓여 있는 화목장작을 가지고 오라 하기에 그 말씀대로 세 번 왕래하면서 그 장작개비를 운반하였다. 그것은 아마도 나의 신체동작(身體動作)을 검찰하신 듯하다. 이상과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시험하신 후에야 비로소 소음인(少陰人)으로 판정하시고 다음과 같이 처방과 훈화를 즉석에서 선생이 친히 쓰시어 나에게 주시었다.” 이 글을 통해서 이제마 선생이 맥을 이용해 체질을 판단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맥에 대해서는 ‘동의수세보원 사상인변증론’에서 태음인 맥은 ‘장이긴(長而緊)’하다 하였고, 소음인 맥은 ‘완이약(緩而弱)’이라 하였다. 사상초본권에서 소양인은 삭맥(數脈)이라 하였다. 또 수족과 피부를 만져 보았다는 것을 통해서 피부 상태도 체질판정에 이용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마찬가지로 ‘사상인변증론’에 태음인은 기육이 견실(堅實), 소음인은 기육이 부연(浮軟)하다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직접 피부를 누르거나 집어서 들어 올려 보는 등의 피부진단을 해 보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동무 이제마 선생이 쓴 ‘향부자팔물탕’ 처방 이에 대해서 현재 사상체질 진단시 맥진기의 맥파형을 연구하기도 하고, 피부진찰기를 이용해서 연구하기도 한다. 또한 기거동작을 보기 위해서 화목장작을 세 번 왕복해서 운반하도록 하였고, 아마도 행동거지, 땀의 상태를 관찰할 수 있었으리라 추측이 된다. 또 한 가지는 최린이 쓴 글의 필체를 보고 판단한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현재 필체로 체질을 판단하는 것은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이 되지만, 아직까지 논문형태의 연구는 없는 상황이다. 아래에 향부자팔물탕 처방과 훈화(訓話)가 나온다. 香附子八物湯: 香附子/白何首烏(或以人蔘代之)/白朮/白芍藥/當歸/川芎/陳皮/灸甘草 各一錢/或 官桂 一錢 加入/入薑三棗二(生薑三片 大棗二枚)/禁忌 喜樂之心 猪麵生冷/所喜 雉鷄狗肉 蜜糖甘熟之物/世間可喜者 心中所欲之事也 順/理而所欲則其事美也 不得順理/則其事不美 無論順理 與/不順理 過欲則成病也/成事雖則可喜 敗事終 或不喜/屢喜而屢不喜 陽氣爲喜心之所耗也/申言之曰 天下事 不如意者/十常八九 世間何事 能使此人/每日喜 欲使此心 每日喜 故不得/其喜 自然窮愁而不樂成/病也 是故雖目前 十全必成/之事 視之恒若不成則 五臟不傷而事亦易成/事有成不成而每每欲成 所/以浪喜也 爲喜心所傷 必戒/喜心...右東武親書 傳全者也. 금기할 것 희락지심과 돼지고기, 밀가루(메밀), 생냉한 것(날 것). 즐겨할 것 꿩고기, 닭고기, 개고기, 꿀(밀당), 단 음식, 익힌 것. 世間可喜者 心中所欲之事也(세상에 기뻐할 만한 것은 마음에 하고 싶은 일을 품고 있는 것이니라). 順理而所欲 則其事美也 不得順理 則其事不美(순리대로 하고자 하면 그 일이 아름다우나, 순리를 얻지 못하면 그 일이 아름답지 못하다). 無論順理 與不順理 過欲則成病也(순리와 순리 아닌 것을 막론하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병이 되는 것이다). 成事雖則可喜 敗事終或不喜 屢喜而屢不喜 陽氣爲喜心之所耗也(일을 이룬다면 비록 기뻐할 만하지만, 일을 실패하면 마침내 늘 기뻐하지 못하니, 자주 기뻐하거나 자주 기뻐하지 못하면, 양기가 기쁜 마음으로 인해 소모되느니라). 申言之曰 天下事 不如意者 十常八九(명백히 밝혀 말하자면, 이 세상의 일은 뜻과 같이 되지 않는 것이 10중 8-9인데), 世間何事 能使此人 每日喜 欲使此心 每日喜 故不得其喜 自然窮愁而不樂 成病也(세상에 어떤 일이 이 사람으로 하여금 매일 기쁘게 할 수 있으며, 이 마음으로 하여금 매일 기쁘게 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기쁨을 얻지 못하면, 저절로 뜻이 빈궁해지고 슬퍼지며 즐겁지 않아 병이 생긴다). 관형찰색, 피부, 행동거지 등을 이용해 체질 진단 是故雖目前 十全必成之事 視之恒若不成則 五臟不傷而事亦易成.(이 때문에 비록 눈앞에 열 가지가 전부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더라도, 보기를 늘 이루지 못할 것 같이 하면, 오장이 손상되지 않고 일도 이루기 쉬운 것이니라). 事有成不成 而每每欲成 所以浪喜也. 爲喜心所傷 必戒喜心(일에는 이루고 이루지 못할 것이 있는데, 언제나 이루고자 하므로 쓸데없이 기뻐하는 것이다. 기뻐하는 마음에 손상되는 것이니, 반드시 기뻐하는 마음을 경계할 것이니라). 右東武親書 傳全者也(우측은 동무가 친히 쓰신 것이다. 온전한 글을 전한다). 그리고 나서 최린이 자신의 소감을 적어 놓았다. “이상의 처방과 훈화는 동무선생께서 나에게 친히 주신 바인데, 선생께서 나의 위인(爲人)과 성격(性格)을 거울과 같이 들여다보시고 나의 수양(修養)과 장래 사업(事業)을 위하여 주신 계명(戒銘)이었다. 그 후 나는 선생의 이 처방에 의하여 불치의 병이 완치되었다. 그 정중한 교훈(敎訓)으로서 얻은 바가 참으로 적지 아니하였다. 그런데 동무선생 문하에 출입하는 인사(人士)가 적지 아니하였으나 이와 같은 교훈을 주신 일은 별로 없다고 한다. 동무(東武)는 선생의 도호(道號)이었다.” 위의 글을 통해서 소음인의 경우 희락지심(喜樂之心)을 경계하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 이제마 선생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썼는지를 좀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이를 통해서, 현대의 우리는 사상체질진단을 할 때 환자의 관형찰색(觀形察色), 맥진(脈診), 피부진찰, 행동거지(기거동작) 등을 이용해서 체질을 진단할 수 있다는 힌트를 얻을 수 있고, 또한 처방시에 음식의 즐겨 먹을 것, 피할 것과 성정(性情)의 관리에 대해서 환자에게 안내를 해 줄 수 있을 것이라 보인다.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432)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1998년 2월 16일 『세계의학저널』이 창간된다. 이 저널의 창간호는 모두 22쪽으로 신문 저널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회장은 김여찬, 부회장 강순수, 유승원, 염동완, 발행인 김종원, 사장 및 편집인 정원조 등이 맡았다. 첫면이 각종 의료기기 회사들의 선전문이 이미지와 함께 게재되어 있는 것은 ‘세계의학저널’이라는 제목으로서의 잡지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이다. 1997년 12월부터 시작된 IMF 외환위기로 인하여 암울했던 1998년 2월은 매우 어수선한 시기였음에도 “수동적이기 보다는 능동적 자기변화를 통해 전인류의 건강을 담보하는 새로운 제3의 세계의학 창출을 위해 전문성을 가진 언론으로 도전하고 승부를 걸고자”(이상 본지 회장 김여찬의 창간사) 창간한 것이다. 본지의 부회장으로서 한의사 시인인 유승원 선생은 ‘건강한 해돋이’라는 제목의 축시를 통해 『세계의학저널』 창간을 축하하였고, 본지 감사인 채수양 원장은 창간 휘호로서 “道不遠人(도가 사람을 멀리함이 아니요, 사람이 도를 멀리함이니 정도를 좆아 대인이 되라는 뜻)”를 써서 올렸다. 권두언은 원광대 한의대 강순수 교수(본지 수석부회장)의 「한의학,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우리 한의학인은 지금까지의 마음가짐과 발상을 과감히 바꾸어 실천해 가지 않으면 안될 때이다. 이제 세계의학저널은 이러한 시점에 우뚝 서서 한의학이 현재와 미래의 이정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창간 축하메시지는 서관석 대한한의사협회장, 박상동 대한한방병원협회장, 안영기 前 한의사협회장, 강신효 한의사협회 감사, 장영희 한의사협회 이사, 박희수 경락진단학회장, 손숙영 한의자연요법학회장, 유한길 추나학회 부회장, 정규일 前 한의사협회 홍보이사, 강용현 대한한약협회장, 최준섭 한국한약도매협회장, 윤영진 경동약령시협회장, 신태호 대한침구사협회장, 임연학 한국생약협회장, 오금진 제화당무역대표, 최용두 고려한약유통공사 대표 등이 게재하였다. 본지의 사장 겸 편집이사인 정원조 선생은 ‘정원조칼럼’이라는 코너를 개설해서 한의학의 세계의학으로서 거듭나게 하기 위한 방안들을 정리하여 계몽의 길에 나섰다. 그는 「민족의학, 세계의학」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한의학이 “민족, 전통의학으로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전세계 인류의 질병퇴치와 건강추구를 위해 과감히 세계의학으로 변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계의학저널』에서 밝히고 있는 기사의 방향은 ◇ 전통의학 및 대체의학, 자연의학 등에 관한 탐구기사, ◇ 신기술, 신학술에 관한 다양한 정보수집, ◇ 동서의학의 결합 및 협진 모델 연구, ◇ 임상정보 및 학술논문 발굴, ◇ 현안에 관한 집중분석기사 제공, ◇ 한의원과 한의인들의 탐방기사, ◇ 다양한 제언과 칼럼, ◇ 관 및 유관단체 소식 전달, ◇ 다양하고 유용한 정보 등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해외에서 본 저널의 창간을 축하는 축하문이 도착했다. 中國 靑島市 第八 人民病院 孫沃安 병원장, 上海 中醫學附屬 龍華醫院 崔之浸 부원장, 臺灣 융합의학연구소 소장 鍾傑 교수, 日本 양도락연구소 越智信之 부소장, 日本 예방치료의학연구소 西園寺法源 교수, 독일 대체의학연구소 소장 Hubertus M. Schwiezer, 헝가리 국립자연치료의학연구소 소장 Dr. Jozef Tamasi. 크로아티아 세계 자연치료의학연맹 사무국장 Judita Rej, 美國 北美 전승종합 한방병원 송경식 병원장. 본 창간호에서는 논의의 시작을 열기 위해 ‘긴급진단’이라는 코너에서 전문의 제도에 대해서 찬반양측의 입장과 보건복지부의 입장 등을 다루고 있다. 아울러 치과전문의, 의과전문의 등 他山之石으로 삼을만한 예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
홍삼 영양보조제가 녹내장 환자의 안구건조 증상에 효과적인가?[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KMCRIC)의 ‘근거중심한의약 데이터베이스’ 논문 중 주목할 만한 임상논문을 소개한다. 최은지원장 송도 자윤한의원 ◇KMCRIC 제목 한국 홍상 영양보조제가 녹내장 환자의 안구건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됨을 확인 ◇서지사항 Bae HW, Kim JH, Kim S, Kim M, Lee N, Hong S, Seong GJ, Kim CY. Effect of Korean Red Ginseng supplementation on dry eye syndrome in glaucoma patients - A randomized,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study. J Ginseng Res. 2015 Jan;39(1):7-13. doi: 10.1016/j.jgr.2014.07.002. Epub 2014 Jul 23. ◇연구설계 randomized, double-blind, placebo-controlled study ◇연구목적 한국 홍삼이 항녹내장 점안약을 사용하는 녹내장 환자의 안구건조증에 효과가 있는지 평가 ◇질환 및 연구대상 20세~75세 사이의 녹내장 환자 중 travoprost 성분의 점안약(방수의 포도막-공막 유출을 증가시켜 안압을 하강시키는 약)을 사용하고 있는 49명(시험군 24명, 대조군 25명) ◇시험군중재 한국 홍삼 분말 0.5g이 들어있는 캡슐을 2개씩 하루 세 번(3g/일), 8주간 복용 ◇대조군중재 홍삼캡슐과 동일한 모양의 플라시보 캡슐을 2개씩 하루 세 번, 8주간 복용 ◇평가지표 1. 객관적 평가지표: 눈물막 안정성을 측정하는 눈물막 파괴 시간 검사(TBUT, tear film break-up time), 안구 표면 상태(fluorescein ocular surface staining), 결막 충혈, 눈물 분비량(쉬머 I 테스트), 마이봄샘 기능부전에 대한 검사를 시험약/플라시보약 복용 전과 복용 8주 후에 시행 2. 주관적 평가지표: 방문 시마다 안구건조증에 대한 설문지(OSDI, ocular surface disease index) 시행 ◇주요결과 1. 객관적 평가지표 1) 대조군의 경우 복용 전후에 유의한 차이를 보인 지표는 없었다. 2) 시험군의 경우, 복용 전에 비해 복용 8주 후에 평균 TBUT 점수(range from 4.21±1.53 to 6.63±1.64, p<0.01), 결막 충혈도(range from 1.02±0.60 to 0.63±0.45, p=0.01), 마이봄샘 기능부전도(range from 1.58±0.97 to 1.04±0.55, p=0.04)가 유의하게 개선됐다. 3) 시험군과 대조군의 복용 전후 변화도를 비교 시, TBUT 점수의 변화가 시험군에서 유의하게 더 크게 나타났다(p<0.01). 2. 주관적 평가지표 8주간의 복용 전후의 OSDI 설문지 점수 비교 시, 시험군에서 증상이 개선됨(from 36.22±17.90 to 27.77±21.68, p=0.01). 이러한 시험군의 변화는 대조군의 변화와 유의한 차이를 보였다(p=0.04). ◇저자결론 8주간 매일 홍삼 분말 3g을 복용한 시험군은 플라시보약을 복용한 대조군에 비해 눈물막 안정성(TBUT)과 주관적 안구건조 증상이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개선되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효과는 한국 홍삼의 항염증 효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자세한 기전을 밝히기 위한 후속 연구가 필요하나, 항녹내장 약물을 점안하는 녹내장 환자의 안구건조 증상에 한국 홍삼을 영양보조제로 사용하는 것은 임상적인 가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KMCRIC 비평 녹내장 환자의 점안약 중 prostaglandin 제제는 방수의 포도막-공막 유출을 증가시키는 약으로, 안압하강 효과가 타제제에 비해 좋기 때문에 녹내장 진단 시 일차적으로 많이 쓰인다. 논문에서 시험대상자 선정 시 고려했던 travoprost라는 약물도 이 제제에 속한다. 하지만 점안약의 부작용으로 결막 충혈, 작열감 등 안구건조 증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점안약에는 일반적으로 보존제 성분(benzoalkonium chloride)이 들어있는데 이 성분은 용량 의존적인 안구 표면에 대한 독성을 가지고 있으며 장기간 사용 시 안구 표면의 염증 및 눈물 증발량을 증가시킨다 [1,2]. 본 논문의 저자도 언급했듯이, 인삼 추출물과 Ginsenoside 성분의 항염증 효과는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는데, 본 연구는 한국 홍삼의 항염증 효과가 안구 표면 염증 및 안구건조 증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가설을 세우고 시행된 연구다. 결과적으로 홍삼을 복용한 군에서 눈물막 안정성(TBUT), 안구 증상으로 인한 불편감(OSDI 점수)이 대조군에 비해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으므로 가설이 어느 정도 입증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의 설계에 대한 비평을 하자면 RCT 논문으로 무작위화와 맹검을 어떻게 진행하였는지 비교적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으며 안구건조증으로 인한 다른 치료를 받은 환자는 제외하고, 모든 시험대상자에게 동일한 인공눈물을 제공하여 안구건조증에 대한 외부요인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다만 저자가 언급했듯이 효과의 지속기간에 대한 정보가 없는 점이 아쉽다. 이번 논문의 주제가 안구건조증이다 보니, 예전에 제가 안구건조증에 대한 침 치료와 인공눈물의 효과를 비교한 논문에 대해 KMCRIC 비평을 작성했던 적이 있다. 안구건조증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함께 읽어 보시면 좋겠다(http://www.kmcric.com/_fhnqyj). 그 논문에서 침 치료가 인공눈물 사용에 비해 눈물막 안정성(TBUT)이 높게 나타났었는데, 항후 안구건조증에 대해 침 치료와 홍삼을 함께 연구하는 것도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고문헌 [1] Baudouin C, Labbe A, Liang H, Pauly A, Brignole-Baudouin F. Preservatives in eyedrops: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Prog Retin Eye Res. 2010 Jul;29(4):312-34. doi: 10.1016/j.preteyeres.2010.03.001. https://pubmed.ncbi.nlm.nih.gov/20302969/ [2] Baudouin C, Pisella PJ, Fillacier K, Goldschild M, Becquet F, De Saint Jean M, Bechetoille A. Ocular surface inflammatory changes induced by topical antiglaucoma drugs: human and animal studies. Ophthalmology. 1999 Mar;106(3):556-63. https://pubmed.ncbi.nlm.nih.gov/20302969/ ◇KMCRIC 링크 https://www.kmcric.com/database/ebm_result_detail?cat=RCT&access=R201501046 -
우리의 한의학 ⑤ 코로나바이러스 예방 치료하는 비방 있는데요?공공기관에 근무하고 있다 보니 가끔 비방(祕方), 비법(秘法)이 있다고 전화나 장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 또 청와대, 정부 부처, 방송사 등에서 먼저 접수받은 후 한의학 분야이므로 이첩되는 경우도 있다. 단조롭고 계획된 일만하는 직장 생활에서 예상치 못한 이런 연락이 지적 호기심과 탐구의 즐거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내용의 대부분은 비방이고, 나머지가 침술, 진단, 기타 득도(得道)한 비법들이다. 비방은 약물이므로 확인할 점이 명확하여 해결이 간단하지만, 비법은 분야가 다양하고 대면 상담해야하며 평가 과정에 많은 지식과 생각을 요구한다. 상담의 원칙은 의뢰인의 배경과 직업(의료인인지 아닌지가 중요, 잘못하면 불법의료 행위에 가담할 수 있다), 의뢰한 이유, 비방과 비법의 형성 과정과 내용, 제시할 수 있는 증거 자료, 의뢰인이 기관에 제공(공개여부, 연구자금 등)할 수 있는 범위를 문의하고 답변을 드린다. 직업을 살펴보면, 일부 한의약계 종사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한의약과 관련 없는 분들이다. 비방과 비법을 보유하고 있을 만한 직종은 아니지만, 기관에 연락 온 이상 상담은 한다. 의뢰 내용은 어떤 통증 혹은 어떤 피부병도 다 치료되는 놀라운 약초를 본인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워서 널리 알리고 싶다고 전화주신 분, 국가와 민족, 어려운 경제를 살리고자 비방을 제품화하겠다고 편지 주신 분, 본인이 터득한 비법을 한의계에 홍보해달라는 분 등이 있다. 또한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난치병이라고 돌려보낸 환자를 여러 명 고쳤다고 자랑하시는 어르신, 본인 스스로 득도한 진단법, 침술법 등을 기관에서 증명을 해 달라 요청하는 분, 만주에서 독립 운동하셨던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비방을 기관에서 알아서 해달라는 분, 가지고 있는 비방을 연구하여 같이 사업하자는 분 등 여러 사례가 있다. 의뢰인들은 비법과 비방에 절대적 확신 갖고 있어 처음에는 이런 상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없어 내심 불안하였다. 그동안 비방 비법에 대한 무수한 전설을 들었고, 현재도 보고 듣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의 옥석을 가리는 조사 분석 평가하는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해결하는 지침도 없어 해결하기란 난망(難望)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학생시절 당대 최고의 절대 고수들로부터 비방 비법 교육과 훈련 경험이 있어 낯설지 않는 영역이었다. 또 입사 후에 천연물신약 개발, 제약관리, 임상시험, 연구윤리 등 관련된 교육을 통해 얻어진 지식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의뢰인들은 본인이 통찰한 비법과 비방에 대해서 절대적 확신과 희망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세상에 매우 중요한 것들은 모두 어렵고 희귀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직해야하고 냉철하고 엄격한 이성적 정신으로, 과학적 논리로 대응해야한다. 결코 쉬운 개념들이 아니다. 만약 감정적으로 움직이거나 혹해버리면 해결책은 없고 의뢰인에게 영혼까지 종속된다. 비방, 비법의 ‘증거’를 내놓고 ‘증명’해야 한다 그 분들이 갑자기 깨달았든, 고생 고생하여 알아냈든, 밝혀낸 진리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해가 서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도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한다. 이 세상에 기적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상호간의 종결 접점은 비방, 비법의 ‘증거’를 내놓고 ‘증명’해야 한다. 비방과 비법의 과학화·상품화는 신념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판단의 유일한 도구는 증거에 대한 관찰력과 과학적 사고뿐이다. 개인적인 득도·통찰·신념이 아무 이해 관계없는 제3자에게까지 검증될 수 있어야한다. 즉 의뢰인에게도 구현되고 효능이 있으면, 동시에 다른 이가 하여도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재현되어야 한다. 대부분 비법들은 평가가 가능하지만, 일부는 처음부터 증명이 불가능하거나 과학적인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는 회의적인 내용들도 있다. 무수한 일화를 듣는 중에, 간혹 관찰자를 곧 바로 신자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본인의 천부적인 카리스마 기질과 타고난 언변력, 인간관계의 절대 기준인 지긋한 연세와 사회적 권위, 거부할 수없는 한의서 위력의 근거,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성현 존함의 거명, 확인할 수 없는 불명확한 숫자(수십 년, 몇 천 명 등) 등을 내세우며 관찰자의 정신세계로 들어온다. 그러면 학생 때 도사들로 부터 터득한 공력과 입사 후 받은 교육력을 합쳐 힘겹게 겨우 버틴다. 면담은 1시간 이상하였는데, 내 공책에는 1∼2줄 밖에 적을 게 없다. 대부분 근거의 양과 질이 빈약하고, 있다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의료 가치나 경제 효용이 있다고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비방이 공개되었으면, 비방의 가치가 없는 것” 비방 의뢰에 대한 상담은 아주 간단하다. 먼저 비방의 치료 질병명 때문에 상담이 끝난다. 비방 치료 질병이 두통, 요통, 나쁜 피(瘀血), 부종, 담(痰), 암, 당뇨, 고혈압, 피부병, 빈혈 등으로, 연구자에게는 막연하고 모호하여 의미 없는 질병들이다. 즉 효능은 강력하게 이야기하는데 관련 질병에 대한 지식은 부실하다. 이런 질병들의 정의나 원인, 분류, 기전들은 아주 복잡 다양하고 이해도 쉽지 않다. 그런데 아무 상관없이 효과를 보았다는 논리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 또 효험을 본 대상이 대부분 동네 분, 친지, 동료들이다. 의뢰자와 우호적인 분들에 대한 효능 결과 또한 신뢰할 수 없는 결과이다. 또 치료하였다는 인원수와 투여 기간, 투여량이 불명확하다. 만약 이 단계를 넘어서 약간의 증거가 있고 의뢰자가 비방의 상품화를 원한다면 “비방을 구성하는 약초를 알려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의뢰인들의 100%가 알려 줄 수 없다고 대답한다. 어떤 분은 약초를 알아볼 수 없게, 잘게 잘라서 혹은 가루로 하여 택배로 보내 왔는데, 어떤 방법으로도 약초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비방을 사전에 알려주어야만 이미 누군가 비방과 같은 약초로 논문이나 특허를 발표했는지 조사할 수 있다. 이미 연구되어 비방이 공개되었으면, 이제 비방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런 확인 작업이 필수적인데 알려주질 않으니 다음 단계를 나갈 수 없다. 비방 상담은 싱겁고 무미건조한 과정이지만, 비법은 설렘이 있는 지적 여행이었다. 최근 같이 근무하는 연구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예방 치료하는 비방가지고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 이런 건 어떻게 처리하면 됩니까?” (본 글은 저자의 소속기관이나 한의신문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