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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중 교수의 한의학 재해석 - 001[PDFVIEW1]_userpdf/2004_12_20.pdf[/PDFVIEW1] -
이광현 한의사의 지구촌 한의학 여행 - 001[PDFVIEW1]_userpdf/2009_04_24.pdf[/PDFVIEW1]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307)1968년 11월에 있었던 현대의료기구 사용 관련 좌담회 “문명의 이기를 양의사만이 사용하고 한의사는 사용치 못한다는 만인평등의 원칙을 무시하는 헌법에 위배되는 입법이 성립될 수 없다” [한의신문] 1968년 11월15일자 『한의사협보』(후의 『한의신문』)에는 ‘現代醫療器具 使用을 말함’(부제: 漢醫學 發展에 必需不可缺. 法的 根據 없이 取締당할 수 없다)이란 제목의 座談會를 녹취한 기사가 보인다. 좌담회는 11월11일 6시 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개최되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한의사 이주연 선생이 의료기기 사용 관련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을 기회로 모여서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이주연 원장은 보건소의 단속으로 입건되었지만 무죄 판결로 끝나게 되었다. 참석자는 최장복, 이영찬, 한희석, 임종국, 이기순, 이종형, 이학준, 임홍근, 김정수, 한요욱, 이주연, 유영수, 이준필, 유민섭, 이형찬, 배원식 등이었다. 사회는 당시 대한한의사협회 회장 裵元植 先生이었다. 아래에 이들 인사들이 발언한 내용들을 인물별로 요약 정리한다. ○배원식: 신의료 사용 관련 법정에서 갑자한의원 이주연 선생이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은 것을 계기로 이에 대한 여러분들의 고견을 듣고자 한다. ○이주연: 9월1일에 보건소에서 와서 진찰기, 혈압기 사용은 위법이라고 고발하였다. 상식적으로 위법이 될 것이 없는 것이기에 고발에 응했다. 법의 조처를 기다렸는데 무죄판결을 받게 되었다. ○이기순: 문명의 이기를 양의사만이 사용하고 한의사는 사용치 못한다는 만인평등의 원칙을 무시하는 헌법에 위배되는 입법이 성립될 수 없다. 의료법의 개정을 전제로 보사부와 한의사협회가 법리적 해석절충이 선행되어 한다.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써야 하는 근거는 ①경희대 한의과에서 양방진단학을 필수과목으로 하고 있음 ②국민보건에 피해가 없도록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③문명의 이기가 양방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 등이다. ○임종국: 국민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한의사가 한방식의 정확한 진료를 위해서 사용되어야 하고 斯學의 발전을 위해서 크게 장려가 되어야 함에도 일부 몰지각한 보건소 직원으로부터 고발되어온 일은 전국적으로 비일비재하다. 이주연 원장이 무죄를 받은 것은 한의사가 의료기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법적인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이학준: 발전을 위해서 최선의 방법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신의료기기는 문명의 이기이기에 사용하는 것이 위법조치되어서는 안된다. ○김정수: 동원 한의사로 활동하였을 때는 양방의료 행위를 강요당하다시피 되어 그 덕에 의료기기 사용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 한의과대학에서 정규 과목으로 의료기기를 교육하고 있어서 문제가 없을 것이다. ○윤민섭: 협회 대표단을 구성해서 보사부 당국자와 강력 절충하자. ○한요욱: 좋은 기회로 생각하고 회원에게는 물론 일반인들에게 널리 선전계몽하도록 하자. 의료단속반에 대해서는 의료법을 잘 안 다음에 取締에 임하도록 건의하자. ○최장복: 쇄국주의 정책을 쓰던 옛 역사가 생각난다. 한의사를 상투를 틀고 바지저고리를 입으라고 하는 식이나 다를 바가 없다. ○이종형: 한의학의 특징을 살려서 이해할 수 있는 병명을 알기 위해서도 의료기기를 사용해야 된다. 허증이 무엇인지 모르는 환자에게 현대적인 이해를 주기 위해서 청진기가 필요하고 혈압기가 필요하다. ○임홍근: 청진기는 한의학에서 시작되어 발달된 것이다. 문진이라는 고대 진찰법이 있고 죽통을 사용했다는 문헌논증이 있는데 이것을 현대화한 것이 청진기가 아닌가. 발달된 이기를 사용해서 문제화될 것은 없다. 문화와 수반해서 진전되는 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김남일 교수·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
백유상, 정혁상근현대 한의학 속의 해부학(Ⅲ) 해방 이후 교육을 중심으로 해방직후 1940년대 후반 동양대학관 설립때부터 해부학 본격적으로 교육돼 1949년 동양대학관의 교육과정을 보면 이미 屍體解剖實習 및 組織實習, 病理解剖 細菌實習 등 시행 해방 이후 한의계는 한의사 제도 제정과 고등 교육기관 설립이 한의학 발전의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라 판단하고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1945년에 건립된 경기도의생회(회장 김동훈)를 기반으로 광복 직후 조선의사회(회장 박호풍)를 결성하고 1946년에 식민지의 유산인 限地限年制의 철폐와 ‘의생’이라는 기존의 명칭을 ‘한의사’로 개정해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1950년 보건부는 한의사를 의미하는 의생은 보건부 장관이 정한 범위에서만 진료가 가능하고, 기존에 활동하던 한지의사, 의생, 한지의생에게는 면허를 부여하되 신규 면허는 불허된다고 하여 새로운 한의사의 배출을 법률적으로 차단하려 하였으나 이후 제헌국회가 끝나고 제2대 국회에서 국민의료법을 통화시키는 과정에서 논란 끝에 한의사가 포함된 국민의료법이 통과되어 한의사를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한의학 발전의 계기를 맞게 되었다. 한의계에서는 해방이 되던 1945년에 이미 동양의학전문학교와 부속병원 기성회 조직 구성에 착수하였고, 그 결과 1946년에 미군정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동양의학전문학교가 최초의 한의학 고등교육기관으로 설립되었다. 조선의사회는 다음 단계인 대학 설립을 추진키로 하고 미군정청에 재단인가를 신청하여 1947년에 설립 인가를 얻었고, 동양대학관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이듬해 인문학과와 동양의학과의 2개 학과로 구성된 4년제의 을종대학으로 동양대학관(학관장 박호풍)을 설립하였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피난지인 부산 동대신동에 천막교사를 세워 강의를 시작하였고 같은 해 행림학원 이사회를 구성하여 문교부로부터 행림학원 인가를 받았다. 행림학원 이사회는 동양대학관을 서울한의과대학으로 개편키로 하고 문교부 장관에게 인가를 신청하였으며, 1953년에 4년제 정규대학으로 설립허가를 받았다. 이후 1955년에 동양의약대학으로 명칭을 바꾸고 1957년에는 부속한의원의 개설 인가를 얻었다. 1959년 말부터 학교 재단이 표류를 거듭하는 상황에서 1961년 516군사정변이 발생하고 군사정권은 대학시설 기준령을 새로 만들어 시행하여 동양의약대학의 설립이 취소되었다가 1963년 개정된 의료법에 따라 다시 부활하게 된다. 이후 동양의약대학은 경희대학교 운영재단인 고황재단에 합병되고 1965년에 문교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얻어 경희대학교 의과대학 한의학과로 다시 발족하게 된다. 이러한 한의계의 고등 교육기관 설립 과정에서 해부학이 교육되었는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49년 동양대학관의 교육과정을 보면 이미 屍體解剖實習 및 組織實習, 病理解剖 및 細菌實習이 시행되었다. 1953년 서울 한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을 보면, 1학년에 解剖, 本草, 中國語, 生理, 軍事學, 漢文, 哲學, 法通, 國語, 英語, 文化史, 心理, 物理, 數學, 生物, 化學 등이 강의 되어 그 가운데 해부학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955년도의 동양의약대학의 교육과정을 보면, 2학년 과정에서 漢總1, 漢總2, 內科1, 內科2, 診斷, 本草, 漢原, 經穴, 病理, 解剖, 細菌, 有機化學, 衛生, 英語, 漢文 등의 강의되어 역시 해부학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동양의약대학이 경희대학교에 합병된 1965년 전후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본과 1학년 과정에서 체육, 의학사, 해부학 및 실습, 조직학 및 실습, 생리학, 경혈학, 약리학, 원강1(내경), 원강2(중경), 양방생리, 생화학, 유기화학 등이 강의되어 여전히 해부학이 중요 과목으로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과대학의 한의학과에서 벗어나 한의과대학으로 독립되는 1970년대 이후에도 본과 1학년 과정에서 교련, 의학영어, 원전, 양방생리학 및 실습, 해부학 및 실습, 조직학 및 실습, 양방생리학 및 실습, 생화학 및 실습 등이 강의 되어 해부학이 교육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종합해 보면 해방 이후 한의계에서 고등교육기관 설립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과정에서 초기인 해방 직후 1940년대 후반에 동양대학관이 설립된 때부터 이미 해부학이 본격적으로 교육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이는 해부학이 한의학 발전에 매우 필수적이 학문 분야라는 공통적인 인식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는 인체 구조에 대한 기본적이 지식이 의학 분야에서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당연한 사실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시켜주는 역사적 근거라고 할 수 있다. -
백유상, 정혁상근현대 한의학 속의 해부학(Ⅱ) - 연구 및 저서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한의계 지속적으로 전문학술지 발간, 해부학 내용 많이 포함돼 1923년부터 간행된 ‘東西醫學硏究會月報’, 전통적인 경락도나 장부도 게재, 서양의학의 근육계통이나 신경계통에 대한 강좌 확인돼 대한제국 시기를 지나 일제강점기 동안 한의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전문 학술지를 발간하고 학술 저서들을 간행하였는데 그 가운데 해부학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당시의 한의계가 적극적으로 해부학을 수용하고 한의학과 접목시키려 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1913년에 朝鮮漢方醫師會가 설립되면서 최초의 학술전문지인 漢方醫藥界를 창간하였고, 1915년 全鮮醫會이 결성된 이후 이듬해 東醫寶鑑을 발간하였다가 東西醫學報로 이름을 바꾸어 월간으로 간행되었으며 1918년에 다시 조병근이 朝鮮醫學界로 속간하였다. 漢方醫藥界 중에 연재된 洪鍾哲의 ‘生理衛生의 略說’에서 골의 속, 관절, 골의 생리, 골의 성분, 골의 작용, 골육, 근육의 종류, 골격과 근육의 발달 등의 소제목으로 뼈의 해부 및 생리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東醫報鑑에 李完珪가 쓴 溫古知新이라는 글에서는 현미경, X-ray, 뇌의 작용, 해부학, 우두 등의 새로운 지식을 익혀 東醫學을 발전시키자고 주장하였고, 같은 호에 실린 洪鍾哲의 生理說에서는 고금동서를 모은 의학계의 성립을 주장하면서 漢方醫藥界에 쓴 자신의 글과 유사하게 해부학 내용을 담고 있다. 東西醫學報와 朝鮮醫學界에 실린 ‘장부론’이라는 글에서는 唐宗海의 中西匯通醫經精義의 내용을 설명하면서 黃帝內經의 장부론에 서양 해부학의 지식을 연결시키고 있다. 또한 서양의학을 소개하는 강좌로서 해부학, 생리학 등의 기초의학부터 진단학, 약물학, 전염병학, 외과학 등 임상과목 등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解剖生理學에서는 골학, 근육학, 내장학, 순환계, 신경계, 조직 등의 차례로 서론과 각론을 설명하고 있다. 이후 1917년 설립된 東西醫學硏究會(회장 김성기)는 1923년부터 東西醫學硏究會月報를 발간하였고, 1935년에는 東洋醫藥을 간행하였다가 1939년 東洋醫藥協會(이사장 김명여)가 설립된 이후 복간된다. 東西醫學硏究會는 1920년대의 대표적 한의학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후 1930년대에 朝鮮日報를 통하여 전개된 장기무, 이을호, 조헌영 등의 한의학부흥에 대한 논쟁에서 다루어졌던 동서의학의 보완적 발전에 대한 한의계의 의견들을 東洋醫藥 속에 수렴하여 수록하였다. 1923년부터 간행된 東西醫學硏究會月報에서는 잡지의 맨 앞장에 전통적인 경락도나 장부도를 게재하고 있으며, 서양의학의 근육계통이나 신경계통에 대한 강좌를 싣고 있다. 제3호에서 閔哲鎬가 쓴 ‘骨學의 槪要’는 의사로서 해부학을 알아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하고, 骨의 주성분, 骨의 조직, 연골 등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저서로는 洪鍾哲이 지은 것으로 의생들을 교육하기 위하여 1922년에 출간된 經絡學總論, 1924년에 南采祐가 지은 靑囊訣, 같은 해 都鎭羽가 국한문 혼용으로 지은 東西醫學要義, 1928년에 朴容南이 지은 家庭救急方, 1935년에 成周鳳이 지은 漢方醫學講習書 등이 있고,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가 의생시험을 위한 교재로 1917년과 1918년에 각각 발간한 醫方綱要 및 朝鮮衛生要義 등이 있었다. 洪鍾哲의 經絡學總論은 한의학이 서양의학을 수용한 초기에 만들어진 신교재로서 경혈학과 해부학를 결합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12경락의 순행과 유주, 그리고 관련된 생리 기능들을 기술하면서 「人體形」에서는 서양 해부 지식을 반영하여 解剖臟器圖를 싣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南采祐의 靑囊訣에서는 한의학 내용 이외에 서양의학, 약물학 및 해부학 등의 내용과 각종 서식과 규칙 등을 수록하여 1920년대 당시의 동서의학 절충의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 1924년에 東西醫學硏究會에서 교육용으로 발간한 교재인 東西醫學要義(都鎭羽 저)는 의생지망생들을 대상으로 서양의학을 학습시키고자 만든 책이다. 총 4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편 동서생리개론의 제1장 생리해부도설(서양의학)에서는 뼈, 근육, 피부 등 신체 각부의 명칭, 기능, 작용 등 해부학 지식과 소화기, 호흡기, 순환기, 비뇨기 신경계의 생리작용 등 해부생리학을 기술하고 있고, 제2장 전신구조와 작용각론(동양의학)에서는 東醫寶鑑을 중심으로 한의학적 구조론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교재인 醫方綱要, 朝鮮衛生要義 등에 비하여 동서의학의 비중을 동등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비록 醫方綱要에서 해부 및 생리, 약물학, 진료술, 전염병학 등을 다루었고 朝鮮衛生要義에서는 위생학, 보건과 방역 등을 다루기는 하였으나, 이는 일제의 한의학 억압 정책에 따라 서양의학이 한의학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
論으로 풀어보는 한국 한의학 (41)權採의 鄕藥論 權採(1399~1438)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서 조선 전기 유학자 權近(1352~1409)의 조카이다. 1417년(태종 17)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해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는 1433년 유효통, 노중례, 박윤덕 등과 함께 『鄕藥集成方』을 편찬, 간행하면서 아래와 같은 서문을 적고 있다. 이 서문에는 그의 직함을 ‘通政大夫 成均館大司成 直 修文殿 知製敎 權採’라 적고 있다. “……무릇 백리마다 풍속이 같지 않고 천리마다 바람이 같지 아니하니, 포목의 생겨남도 각각 마땅한 바가 있어서 사람의 먹고 마심과 좋아하고 하고자 하는 바 또한 익숙한 것이 있다. 이에 옛 성인들이 온갖 약초의 맛을 보시고 사방의 성질에 따라 치료하신 것이다. 오직 우리나라는 하늘이 한 구역을 만들어주어 동쪽 땅에 웅거하였으니, 산과 바다에 보배로운 것들을 부여받았고 초목 약재들이 생산되어서 무릇 가히 백성의 생명을 기르고 백성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모두 갖추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예로부터 의학이 소홀히 여기어져 폐절되어 약물 채취에 때를 무시하였고 가까운 것을 소홀히 여기고 먼 곳에서 구하여 사람이 병이 들면 반드시 중국의 구하기 어려운 약들을 찾으니 이것은 어찌 칠년된 병에 삼년된 쑥을 찾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에 약을 얻을 수가 없어서 질병을 이미 어떻게 할 수 없게 된 것이라. 오직 민간에 사는 노인이 능히 한 개의 약초로 한 질병을 치료하지만 그 효과가 매우 신묘한 것이 어찌 땅의 성질과 잘 맞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약과 병이 잘 맞아 떨어져 그러한 것이다. 무릇 천리를 멀다 아니하고 무명지를 펼 것을 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나라를 벗어나지 않고서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자에 있어서랴. 사람이 알지 못함을 근심으로 여길 따름이다. …(중략)…그러나 方書 가운데 중국에서 나온 것은 여전히 적고 약물 이름 가운데 중국과 다른 것이 자못 많은 까닭에 그 의술을 업으로 삼는 자는 갖추지 못한 것을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삼가 오직 우리 주상전하께서 특별히 이에 마음을 두셔서 가려뽑은 의관들에게 명령하여 매번 사신을 쫓아 북경에 가게 하셔서 널리 방서를 구하게 하셨고 또한 이를 바탕을 거듭 태의원에 나아가셔서 약물 이름의 잘못된 점을 고찰하여 바로잡을 것을 주청하셨다. …(중략)… 다시 나 權採에게 서문을 쓰도록 명하셨으니,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임금의 도는 仁보다 큰 것이 없는데, 仁道는 지극히 커서 또한 거의 여러 가지이다. 지금 우리 주상전하께서 큰 덕으로 지극한 정치를 일으켜 자신의 자리에서 政事를 발하셔서 온전히 이 도의 큰 것을 몸으로 실천하셨고, 醫藥과 같은 濟民의 일에도 이와 같이 매진하시니, 가히 어진 정치의 本末이 크거나 미세한 것이 모두 다 발휘되어 남음이 없음을 봄이라. 또한 옛 임금들이 혹 몸소 스스로 약물을 제조하거나 혹 수염을 깍아서 약물에 섞어 한 사람에게 혜택이 배풀어진 경우가 후세에 여전히 칭송되고 있지만, 어찌 醫書를 편수하여 方論을 널리 보여서 만백성들에게 혜택을 주고 만세에 혜택을 베푸는 것만 같겠는가. 그 베푸는 규모가 매우 큼이라.…(하략)” 『鄕藥集成方』을 간행하면서 쓴 서문을 통해 權採는 중국의학의 영향력을 벗어나 독립적 의학의 체계를 지향하기 위해 이 책이 만들어졌다고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반도 지역에 맞는 독자적 의학이론의 개발, 한국인에 맞는 약재의 발굴, 동아시아 의학의 통일적 발전을 위한 노력 등을 같이 고려하여, 인본주의를 지향하는 유교 국가로서 면모를 만들어내는데에 鄕藥論이 중요한 이론적 배경이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 권채의 서문이 나오는 ‘향약집성방’ 고판본. -
김태우 교수과학은 ‘한의학’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선생도 학생으로부터 배우고 부모도 자식으로부터 배우듯, 일방적인 가르침과 배움의 관계는 없다. 하물며 각각의 문화가 역사 속에서 담금질 해온 지식의 체계 사이에, 상호 주고받을 배움의 내용이 없을 수 없다. 하지만, 서구적인 것과 비서구적인 것의 상하관계를 강요하는 근대 이후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과학과 한의학 사이에는, “한의학은 과학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한 방향의 질문만 강조되어 왔다. 융합이 화두인 시대를 맞이하여, 이제 “과학은 한의학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볼 때가 되었다. 본 발표는 한의학이 과학으로부터 배울게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본 발표가 의문시하는 것은, 왜 과학과 한의학은 쌍방향의 배움의 관계를 설정하지 못하였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의문 위에서 과학이 한의학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하여 논해보고자 한다. 한의학은 질병의 물질적 토대에 집착이 없다 인류학은 문화들간에 서로 배울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을 전제로 한 학문이다. 바로 인류학이 견지하고 있는 비교문화의 관점이다. 예를 들면,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인류학적 현지연구의 결과물들은, 지금 우리의 문화를 조망할 수 있는 비교문화의 관점을 제공한다. 내부에 매몰되어 있어서 고찰의 거리가 주어지지 않는 우리 문화를 비춰보기 위해 인류학적 보고서[ethnography]들을 거울로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거울에 의해 너무나 당연시되어 있는 관념과 행위들에 대한 낯설게 보기가 가능해 진다. 예를 들면, 화폐 경제의 출현이 물물교환의 불편함에서 비롯되었다는, 당연시되는 관념은 근대 경제학의 상상력 속에서만 존재했을 뿐 인류학적 근거가 없다는 것을,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는 밝히고 있다(『부채 그 첫 5,000년: 인류학자가 다시 쓴 경제의 역사』). 본 발표는 당대 인류학의 비평방식의 하나인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를 통해서 과학, 특히, 생의과학(biomedical science)을 비춰보고자 하는 시도이다. 필자가 2007년부터 진행해 오고 있는 한의학에 대한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바탕으로, 당연시되어 있는 생의과학이라는 지식체계의 몸과 질병에 대한 관점을 비춰보고자 한다. 비교연구의 관점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필자는 서양의학 현장에서도, 또한 인류학적 현지조사를 진행하였다. 한의학이라는 거울을 통한 비춰보기를 통해서 목도하게 되는 것은 생의과학에 내재해 있는 ‘과학주의(scientism)’이다. 생의과학을 비춰보기 위해서 한의학과 생의과학의 진단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서양의학 진단은 장기의 병변을 시각화하는 CT, MRI, PET 등의 영상의학 검사와, 인체내 생화학 물질을 수치화하여 보여주는 생화학 검사가 주를 이룬다. 반면 한의학은 망문문절(望聞問切)의 사진(四診)을 통해 형, 색, 음성, 맥 등을 진단의 대상으로 한다. 서양의학은 물질적인 토대를 가진 인체의 부분을 주로 들여다보는 반면, 한의학은 환자의 몸이 드러내는 질병현상을 주시하는 경향이 있다. 서양의학과는 대조적으로 한의학은 질병의 물질적 토대에 대한 집착이 없다. 지금 생의과학의 근간이 되는 근대서양의학은 확실성에 대한 요구가 어느 시대보다도 팽배해 있던 19세기, 과학주의 시대에 탄생하였다. 그 시대는 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는 보다 고정된 원인에 대한 집착이 어느 시대보다 강력한 시대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발전한 근대서양의학은 근간이 확실한, 그리고 통제 가능한, 병인(病因)에 집착하는 의학이다. 그래서 통제 가능한 신체의 물질적 일부에 대한 대상화를 고집한다. 근대서양의학은 과학기술과 결합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통제 가능한 물질적 토대의 대상화에 대한 집착은 변한 바가 없다. CT, MRI 등을 통해 절개 없이 인체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DNA같은 미세생체물질까지를 연구의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여전히 통제 가능한 물질적 대상에 집착한다. 이러한 경향은 완벽한 인과에 대한 집착에 근간을 두고 있다. 분명한 물질적 토대에 인(因)을 두고 질병현상[果]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생의과학은 불분명한 인과 지닌 질병에 취약 이러한 생의과학의 관점은 불분명한 인과를 가진 질병현상에는 취약함을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한다. 통증 치료에 서양의학이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 이 때문이다. 통증의 원인이 불분명하고, 물질적 토대가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확실한 물질적 근거를 확보하려는 관점은 만성병에 대한 대처에서도 드러난다. 지금의 생의과학은, 예를 들면, 당뇨병을 위해 혈중 글루코스를, 고지혈증을 위해 혈중 콜레스테롤을, 그리고 알츠하이머의 경우 베타-아밀로이드를 그 물질적 근간으로 해서 병인을 설명하고 그에 따른 처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원인 물질들은 한의학의 관점에서는 이미 음양의 균형이 깨진 상태에서 우리 몸이 만들어 내는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당뇨, 고지혈증 같은 만성병은 하루아침에 발병하지 않는다. 균형이 깨진 상태가 지속되면서 그 결과로서, 과도한 글루코스, 콜레스테롤이 혈중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생의과학의 물질적 토대에 대한 집착은 그래서 만성병들의 근본 원인에 대한 직시(直視)를 막고 있다. 물론 과도한 혈중 글루코스에 대한 관리를 통해 당뇨 합병증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 치유는 불가능하다. 통제 가능한 물질적 토대에 대한 생의과학의 집착이, 통제가 용이하지 않은 질병 현상(예를 들면, 만성병의 근본 원인)에 대해서는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설픈 융합은 절충이고 단순 연결일 뿐 생의과학이 한 단계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물질적토대를 확보하여 완벽한 인과 구도를 설정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완벽한 인과를 방해하는 여러 변수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다른 과학 분야에서는, 특히 카오스 이론이나 시스템 바이올로지에서는, 이러한 변수들을 포함하려는 경향이 분명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과학의 경향과 비교할 때, 생의과학에는 완벽한 인과에 집착하는 ‘과학주의’의 관성이 여전하다는 인상이다. 이러한 집착으로부터 ‘이탈’할 때 생의과학의 탈-과학주의(포스트사이언티즘 post-scientism)가 열릴 것이고, 그것은 생의과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의미할 것이다. 융합의 시대에 왜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차이를 강조하는가하는 의문을 가지시는 청중들이 계실 것이다. 그것은 진정한 융합을 위해서는 차이에 대한 직시(直視)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차이에 대한 충분한 고찰 없이 진행된 어설픈 융합은, 융합이 아니라 절충이고 단순 연결일 뿐이다. 서양의학과의 어설픈 연결 속에서 그 의학 전통의 장점을 잃고 서양의학의 논리 속에 종속된 세계의 많은 전통의학들이 그 예들이다. 둘이 만나서 더 고무적인 새로운 길을 추구하는 것이 융합이라고 알고 있다. 융합을 위해서는 쌍방의 차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그 차이로부터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자세를 통해서 생의과학도, 한의학도 한 걸음 더 나아간 지식과 실천의 체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글은 ‘인류학적 한의학 읽기와 포스트사이언티즘’이라는 제목으로 김태우 교수가 카이스트에서 특강한 내용을 요약정리한 글입니다.> -
정선용 교수‘세월호 침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빈발 한의학적 치료로 심신 긴장 완화 및 정서 안정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큰 사건, 예를 들면 전쟁, 사고, 자연재해, 고문 등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하면서 공포감을 느낀 후, 지속적으로 그러한 공포감을 재경험을 하여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질환을 말한다. 재경험은 일반적으로 사소한 관련 자극에도 그때의 영상이나 소리로 해석하여 공포감을 재경험하는 경우도 있고, 악몽을 통해 재경험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이러한 재경험과 관련되어 각종 생리적 반응, 예를 들면 땀이 많이 나고, 심장이 빨리 뛰고, 온몸이 굳어져 버리는 듯한 느낌들을 겪는다. 이러한 경험이 생명의 위협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러한 자극을 회피하려고 하거나, 앞으로 자신은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거라고 느끼게 된다. 심지어 그러한 자극이 없을 때조차 너무나 긴장이 심하여 집중하기 어렵고, 주위를 지나치게 경계하고, 놀랄만한 일이 아닌데도 깜짝 놀라는 등의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증상들이 한달 이상 지속되면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못하게 될 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진단을 내린다. 이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30%정도는 중등도 이상의 증상이 지속되거나 악화되게 된다. 신체적으로 본다면 팔다리가 잘려나가는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되고, 그중에서 환각통이 지속되는 상태까지 가는 분들이 30%정도라고 생각하면 비슷할 것으로 생각된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외상 후에 생기기 때문에 외상에 대해서 어느 정도 대비가 된 사회에서는 질환의 발생이 적어져야 정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참사 등을 겪은 우리 사회에서 다시 한번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큰 사건은 그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사고 당사자뿐 아니라 이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목격한 우리 국민 모두에게 외상이 될 수밖에 없다. 눈 앞에 있던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나만 살아남아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 나도 언제든지 저런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두려움, 이러한 모든 것들이 개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무기력감을 느끼게 된다. 본인이 어떻게 해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기 때문에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치료를 위해서는 일단 본인이 안전한 상황에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정서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충분한 지지 후 그러한 상황이 생긴 것도, 그러한 상황에서 주위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것도 다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는 인식이 생기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외상을 재경험하고 과각성된 상태에서 일어나는 각종 신체 반응을 적절히 제어하기 위한 약물 복용이 필요하고, 스스로 조절하기 위한 각종 이완법을 교육받는 것이 좋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약물적 치료로는 선택적 세로토닌 흡수억제제(SSRI)가 우선적으로 고려되고, 한의학적 치료로는 계지가용골모려탕 등 심신의 긴장을 완화시켜줄 수 있는 한약물을 응용한다. 또 침 치료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을 치료하기도 하는데, 2013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침 치료가 가지는 효과’에 대해 기존 연구들을 종합 분석한 논문에 따르면 침 치료의 효과가 인지행동치료(CBT)나 SSRI 복용과 비슷한 효과를 가지며, 부작용이 경미하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관리에 비교적 안전한 대안적 치료로 제시된 바 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큰 사건이 반복될 때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은 다시금 과긴장과 재경험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또다시 장시간의 노력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가 사는 현 사회가 안전하다는 인식을 국민 개개인에게 심어줄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겠다. -
선재광 회장“한의학은 자연치유력과 항상성 이용하는 근본 치료법” 지속적인 혈압약 복용, 이대로 문제없나? - 完 불과 수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혈압이 생기면 평생 혈압약을 복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 다른 방법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런 가운데 지속적으로 고혈압약의 부작용 및 한의학적 치료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알려왔던 선재광 회장(한방고혈압연구회)은 고혈압을 치료하려면 혈압약을 끊어야 하고, 혈압약의 부작용으로 2차 질병이 다양하게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주고 있는 것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특히 선 회장은 고혈압 등 각종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한의학과 서양의학에 대한 차이점을 제시하며, 병의 증상을 통해 병의 원인을 찾는 한의학이 전 세계적으로 각광받을 의학이고, 특히 만성질환은 한의학적인 치료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실증의학인 서양의학은 몸과 마음을 따로 생각하고, 병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의료의 보편성을 중요시하는 한편 획일적인 병의 진단법과 치료법을 확립해 수치가 가능한 지표를 중시하고, 외부에서 인위적인 방법을 동원해 치료한다. 반면 증실의학인 한의학은 몸과 마음을 하나로 생각하고, 개인의 증상을 중시하며, 오랜 경험과 다양한 임상을 통해 유효한 치료법만을 모아서 의료체계를 확립하는 한편 인체가 가진 다양성과 개성을 중요시해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스스로 치유되게 함을 위주로 하고 있으며, 객관적인 수치보다는 각 사람의 기능과 체질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선 회장은 “서양의학이 병을 중시한다면, 한의학은 환자를 중시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한의학에서의 치료는 증상을 통한 원인을 제거하고 인체 자연치유력과 항상성을 이용하는 근본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선 회장은 서양의학은 실체를 관찰해 병의 원인을 찾는 의학이며, 한의학은 병의 증상을 통해 병의 원인을 찾는 의학이라고 설명한다. “서양의학은 병의 객관적인 원인을 찾으려고 하며, 병이 난 부위에 관심을 갖고 진단·치료하기 때문에 ‘국소주의’·‘실증주의’라고 한다. 하지만 실증주의는 매우 분석적이고 객관적인 것 같지만 실증주의에 기초해 국소 부위를 매우 분석적이고 객관적으로 진단·치료하는 방법은 개개인의 특성과 증상에 대한 대처가 불가능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 실증주의 연구방법론은 뉴턴이나 데카르트적 패러다임에서 나왔지만, 주관이 배제된 객관적으로 실제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사고는 이미 구태의연한 사고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사라졌으며, 유일하게 서양의학에서만 활용되고 있다. 서양의학은 예전의 ‘감염성시대’에는 통할 수 있으나 근래의 ‘만성병시대’에는 서양의학의 사고로는 근치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의학은 질병의 원인이 나타내고 있는 총체적인 반응인 증상을 통해 병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며, 이를 ‘증실주의’라고 한다. 증실주의는 주관의 판단, 즉 자연의 변화와 환자의 증상을 중요시하여 증을 파악한 후 그것에 대한 객관성을 입증해 나가는 방법으로 질환에 접근한다. 이러한 증실주의 연구방법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닐스 보아의 양자 이론,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등과 같은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 회장은 “서양의학은 병원체나 유전자가 질병 발생의 원인이며, 우리 신체는 복잡한 기계와 비슷하다고 본다”며 “하지만 인체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각 개인마다 다르고 생명은 변화가 심하여 미래 예측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과학적·국소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한계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선 회장은 “과학이란 절대적 진리가 아니고 조건부의 가설인 만큼 이제는 과학적 의술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야 하며, 생명체(환자)를 단순한 기계가 아닌 외부 환경과 심리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복잡한 유기체적·총체적·기능적 시스템으로 인식해야 한다”며 “과학이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과학 만능주의적인 사고가 팽배하지만 과학 만능주의는 인체나 자연이 가진 자연 치유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과학이 해결해주지 못할 경우 치료를 빨리 포기하거나 약물 남용의 늪으로 빠뜨릴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선 회장은 “근래는 더욱 의술과 과학이 결합하여 의술과 과학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생겨났지만, (이러한)과학적 의술에 대한 환상에서 빨리 깨어나서 본인의 질병은 본인이 노력해서 치유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며 “자연에서 지혜를 배워 자연치유력을 회복시켜 치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선재광 회장은 고혈압의 원인을 경락·장부의 부조화와 생활습관의 부절제로 인하여 생기는 것으로 파악, 고혈압 증상을 가진 환자 5000여 명을 대상으로 8여년간 ‘내경경락진단기(IEMD)’를 통해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고혈압을 1형에서 4형까지 4가지로 분류해 임상에 적용하고 있다. ‘1형 고혈압’은 심장의 기능이 저하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혈압이 상승하는 경우이며, ‘2형 고혈압’은 신장의 기능이 저하되고, 육체적인 과로로 혈압이 상승하는 경우다. 또 ‘3형 고혈압’은 비위의 기능이 저하되고, 음식의 부절제로 혈압이 상승한 경우고, ‘4형 고혈압’은 노화로 기혈이 부족해져서 혈압이 상승하는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선 회장이 임상에서 활용하는 고혈압의 한의학적 치료는 환자 자신이 스스로 치유되도록 자연치유능력과 면역력을 도와주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선 회장은 “인체는 부분이 아닌 전체로서 이해해야 하고, 고혈압도 부분이 아닌 전체의 질병으로 접근해야 하는 만큼 몸이 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인체가 위기를 느끼면 자율신경에 의해 자동적으로 혈당과 혈압을 올리고 혈관을 수축해서 인체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려는 즉 항상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반응일 수 있으므로 생활습관을 우선적으로 개선하고 한의 치료로 근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선 회장은 이어 “서양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도 ‘우리 몸에 내재된 자연 치유력이 병을 낫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라고 이야기했듯이,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인 자연치유능력과 면역력은 특수 최첨단 방어시스템으로 각종 병원균과 질병에서 우리 몸을 지켜준다”며 “고혈압뿐 아니라 암, 당뇨, 고지혈증, 동맥경화 등도 먼저 생활습관을 잘 관리하고 휴식하면서 자연치유능력과 면역력을 도와주는 한의학적 치료를 병행해 나간다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의 급증으로 이에 대한 시급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가운데 전문가들은 적은 비용으로도 큰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한의학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정부 당국은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만성질환 및 예방의학에 강점을 가지고 있는 한의학을 적극 육성, 국민들의 건강 증진은 물론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선재광 회장도 “만성질환의 증가로 국민건강도 위협받고 있고, 나라의 경제도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는 만큼 만성질환 치료에 한의 치료를 적극 도입해 줄 것을 간곡히 당부한다”며 “고혈압, 당뇨, 암 등의 한의 치료와 연구에 관심있는 회원들은 매달 마지막 주 화요일에 개최되는 ‘한방고혈압연구회’ 정기 모임에 참여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리=강환웅 기자 -
醫史學으로 읽는 近現代 韓醫學 (282)1979년 청구한의학연구회에서 간행한 『靑丘漢方』 제4호를 보니 1979년 5월31일 청구한의학연구회(회장 許仁茂)에서는 『靑丘漢方』 제4호를 간행한다. 청구한의학연구회는 허만회 박사(제원한의원 원장)에 따르면 1970년 화요한의학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다가 청구한의학연구회라고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화요한의학회는 허만회 박사의 선친인 허연 선생이 중심이 되어 재경충남한의사회를 모태로 하여 결성된 한의학 학술단체였다. 이 학회는 지금도 체형사상의학회라는 이름으로 학회명을 바꾸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 현재 상반기 4개월, 하반기 4개월 등 1년에 8개월간 학회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청구한방』 제4호에 따르면, 1979년 청구한의학연구회의 임원진은 회장 許仁茂, 부회장 徐冠錫·彭載元, 감사 姜錫春, 운영위원장 鄭東翰, 총무 李弼雲이었다. 이 학술지를 열면 본 학회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사진이 여러장 눈에 띤다. 그 가운데 1976년 11월1일자로 찍은 ‘台北中醫師會火曜會親善訪問記念’이라고 박혀 있는 사진이 눈에 띤다. 이어서 제4호 발행에 찬조와 협조하여 주신 분들 29명의 성명, 한의원명, 주소, 전화번호 순서로 한쪽에 걸쳐 기록하고 있다. 아마 대체로 본 회의 회원명부와 일치할 것이다. 다음으로 청구한의학연구회 회장 허인무 회장의 ‘卷頭辭’, 서관석 부회장의 ‘卷頭言’, 任學萬 고문의 ‘卷頭辭’, 정동한 운영위원장의 ‘卷頭辭’가 앞 부분을 장식한다. 이후로 학술논문이 이어진다. 蔡仁植 교수의 ‘肝硬化證의 臨床的 考察’에서는 간경화증을 한의학에서 蠱脹, 單腹蠱脹, 鼓脹 혹은 蜘蛛蠱, 單鼓, 肝脹, 膨脹(口苦), 靑水(肝水) 등으로 칭한다고 정의하고, 그 병리, 증상, 진단, 치료 등을 정리하고 있다. 허인무 회장은 ‘靈龜法飛騰鍼圖(奇經八脈)’이라는 제목으로 영구팔법을 그림으로 도시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몇 개의 예를 제시하기도 하였다. 許燕 선생은 ‘한의약의 예방의학적 가치와 실제임상방의 효과적 치료’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한의약의 의의와 원리, 한약재의 예방적 가치, 실제임상방의 효과적 활용을 위한 방안, 실제경험방 등을 소개하였다. 朴寅商 교수는 ‘四象辨論’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사상체질의 감별법을 정리하고 있다. 성심한의원의 金己培 선생은 ‘太極鍼法’이라는 제목으로 李炳幸 선생이 연구하여 창안한 太極鍼法을 정리하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태극침법의 개발정의, 사상인의 장부관계, 사상인의 鍼穴定位, 시술방법, 해독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동제한의원의 徐冠錫 선생의 肋膜炎을 비롯한 5개 질환의 ‘임상경험방’, 성동구한의사회 金長烈 회장의 ‘傷寒論 三陽證에 活用된 藥物의 氣味에 關한 文獻的 考察’, 보성한의원 金雨植 선생의 ‘牛黃淸心元의 文獻的 考察’, 성가한의원 韓相虎 선생의 ‘폐결핵(노채)의 한방적 개요’는 폐결핵을 원인, 증상, 경과와 死症, 진단, 치료법, 처방, 灸治療穴의 순서로 정리한 논문이다. 맹화섭 선생은 ‘高血壓과 淸暈化痰湯의 活用’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고혈압에 대해 한의학적 정의를 한 후, 청훈화담탕과 유사 처방들과 方解를 곁들여 설명하고 있다. 국일한의원의 李重珪 선생은 ‘癌腫治療의 硏究’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자궁암, 설암, 喉癌, 식도암, 頸癌, 장암, 직장암, 腎癌, 방광암, 음경암, 鼻癌, 癌, 치은암, 피부암, 췌장암 등의 원인, 증상, 치법을 정리하고 있다. 태수당한의원의 李文性 선생은 노년기 중풍을 비롯한 7개의 ‘臨床經驗方’을 소개하였고, 인성한의원의 安基範 선생도 4개의 경험방을 소개하였다. 영천한의원의 崔鍾植 선생은 ‘정신적 타격으로 인한 신경쇠약증’에 활용되는 침구혈자리를 정리하였다. 중앙한의원의 沈大庚 선생은 ‘內外痔疾에 對한 小考’에서 치질을 종류별로 그림과 사진을 곁들여 가면서 설명하고 있다. <- 1979년 청구한의학연구회에서 간행한 ‘청구한방’ 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