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 남동우 경희대학교한방병원 침구과 교수(대한한의학회 국제교류이사)가 런던 세계침구학회연합회(WFAS) 국제학술대회에 참석 후 귀국하는 대한항공 KE908편 기내에서 응급상황을 맞닥뜨렸다. 남 교수는 의료 장비가 없는 기내라는 제한된 환경에서도 한의학적 응급조치 능력을 발휘해 환자의 상태를 안정시켰다. 본란에서는 남 교수로부터 당시의 기내 상황, 한의학적 처치, 대처방법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 주>
Q. 기내에서 접한 상황은?
A. 이륙 후 기내식 서비스가 끝나고 전체적으로 조명을 낮춰 대부분 승객들이 잠들거나 영화 등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저도 잠시 잠들어 있었는데 승무원들이 제 뒤쪽으로 모여들어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 기내에 탑승하고 있는 의사를 찾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외국인 정신과 의사가 먼저 손을 들고 자원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듣고 있으니, 본인은 정신과 의사라서 정확하지는 않다고 이야기하길래, 그럼 제가 한번 봐도 되겠냐고 물어보고 환자 상태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응급 상황일 수 있는 뇌졸중, 심장마비, 저혈당 관련 증상 등이 없음을 확인하였으며, 호흡곤란, 어지럼증, 식은땀, 손발이 차고, 맥을 짚어보니 빈맥이 있었습니다.
Q. 환자에게 제공한 한의학적 처치는?
A. 일반적인 조치부터 했습니다.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하여 눕히고, 벨트 등을 느슨하게 풀어서 편안하게 해드리고 무릎 밑에 베개를 여러 개 바쳐 다리를 높이 들도록 했습니다. 따뜻한 꿀물 한 잔 드리도록 하여 속도 편안하게 하고 불안감을 진정시켜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맥을 확인해가면서 합곡과 곡지 혈을 계속 주물러주면서 자극해드렸습니다. 두 혈자리는 기가 울체되었을 때 풀어주고 기혈 순환을 개선시켜주는데 좋은 혈이라, 급체, 흉민, 급성 통증, 및 구급 상황에도 활용되는 혈이기도 하고 당장 침이나 치료 도구가 없을 때 쉽게 자극할 수 있는 부위이기도 하여 선택했습니다.
자극을 하니 점점 맥도 안정되고 손발도 다시 따뜻해지면서 환자분도 편안해진다고 하셔서 조금 더 지압을 해드렸습니다.
Q. 한의학이 응급상황에서 갖는 강점은?
A. 아무래도 일단 응급 이송 등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한지 이학적 검진 및 상세한 문진 등을 통해 한의사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감별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응급 이송 등이 필요한 경우에도 적절한 조치를 하면서 필요하다면 심폐소생술 등도 시행하여 회복 가능성을 높이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위중한 상태가 아닌 경우에도 일반적 조치 사항 및 구급혈 등을 활용하여 특별한 장비 없이도 증상 경감 등에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 등이 강점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Q. 일반인도 혈자리 지압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지?
A. 합곡, 태충, 족삼리 같은 경우 급체, 가슴 답답함, 소화불량, 급성 통증, 급성 손발저림, 등은 물론 사지에 힘이 빠지면서 쓰러진 환자 등에게도 구급 혈로도 사용되는 다빈도 혈자리입니다. 응급 시에 적절한 치료를 받기까지 별다른 도구 없이도 증상 경감 등 도움을 줄 수 있는 혈자리로 일반인들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지압 부위라고 생각됩니다.
Q. 승무원이 준비할 수 있는 대처 방법을 조언한다면?
A. 이미 대한항공에는 유사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처하는 프로토콜이 잘 짜여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기내에 비치된 구급약 및 응급 장비 목록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전속 의료진과 실시간 통화를 통해서도 조치 사항에 대해서 의논하는 모습 등도 확인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감사의 편지 보내주시는 부분까지 시스템이 구성되어 있는 부분을 보고 우리나라 항공 서비스의 높은 수준에 다시 한번 감탄하였습니다.
응급 상황 시 즉각적인 회항 등이 필요한 뇌졸중, 심장마비, 저혈당 쇼크, 출산 등등에 대한 기본적인 감별 방법까지 숙지하고 계신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Q. 대한항공으로부터 감사 메시지를 받으셨는데, 소감은?
A. 사실 이렇게까지 대단한 일은 아니었는데, 기사로 나가면서 일이 좀 커진 것 같아서 좀 당황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생명이 오가는 정도의 응급 상황도 아니었고, 의료행위를 했다기보다는 일반적인 조치를 해드리고 조그마한 친절을 베풀었을 뿐인데 조금은 부끄럽습니다. 병원에서는 훨씬 더 중하고 급한 환자들도 많이 보니까요.
아무튼 출장 다녀오는 길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과정에서 다양한 분야에 친구들이 있다 보니 우연히 그 내용이 기사로까지 나가게 되었네요. 그래도 출장길에 좋은 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기분은 좋습니다.
Q. 한의신문 독자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어떠한 상황이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주변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대단한 지식이나 뛰어난 의술보다도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큰 것이 아닐지 생각됩니다. 젊은 날, 처음 한의사가 되었을 때의 그 순수한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주변에 저희가 도움 드리고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