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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24일 (일)

"ICMART에서도 동양의학의 매력을 느낄 수 있기를"

"ICMART에서도 동양의학의 매력을 느낄 수 있기를"

일본의 동양의학을 그대로 보고 오다
제74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 참가 후기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장동엽입니다. 올해 1월 대한한의학회 미래인재상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그 특전으로 제74회 일본동양의학회 학술총회(第74回 日本東洋医学会 学術総会)에 대한한의학회 대표단으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일본동양의학회는 많은 분들이 잘 아시다시피, 일본의 동양의학 전문의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일본의 가장 큰 동양의학 관련 학회입니다. 이번 학술대회가 74회째를 맞이할 만큼 오랜 전통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학회에 참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일본 동양의학의 현황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일본 동양의학은 한국 한의사들에게도 점차 익숙해지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과도한 기대감이나 지나친 비판이 공존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 역시 일본 동양의학에 대해 간접적으로만 들어왔을 뿐, 직접 경험해본 적이 없어 그 강점과 약점을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따라서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하여 다양한 발표를 듣고, 학회 관계자들과 교류하며 일본 동양의학의 현황을 직접 파악하고자 하였습니다.

 

학술대회에 참가하며 느낀 바를 한의신문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물론 이 내용들은 제 주관적인 견해이며, 짧은 학술대회 기간 동안 얻은 소견이라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널리 양해해주시길 바라며, 다양한 의견을 나눠주신다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기초의학보다는 임상의학에 중점을 둔 학술대회

 

학회를 들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동물실험이나 세포실험에 대한 발표가 많이 없네?'였습니다. 계속 발표를 듣다 보니, 많은 발표들이 약물의 기전(mechanism)보다는 어떤 질환에 어떤 약물이 가장 효과적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일본 의사들과 대화를 나눴을 때에도, '어떤 식으로 진단하느냐'보다는 '어떤 약이 가장 효과가 좋냐'는 질문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경향은 일본에서 동양의학이 임상의 한 분과로 자리 잡고 있고, 학회도 임상의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많은 일본 의사들은 한의학 이론의 타당성이나 개념의 실체보다는, 한약을 포함한 한의학적 치료법의 임상 효과에 더 관심을 두는 듯했습니다.

 

물론, 약물 기전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일본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몇몇 발표나 유인물들은 약물 성분과 그 성분들이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설명함으로써, 현대의학 패러다임에 익숙한 일본 의사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쯔무라의 갈근탕에 대한 자료의 일부. 약물이 대사되는 과정을 설명하여 현대의학에 익숙한 의사들이 약물에 대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쯔무라의 갈근탕에 대한 자료의 일부. 약물이 대사되는 과정을 설명하여 현대의학에 익숙한 의사들이 약물에 대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과학화, 표준화된 모습을 보이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동양의학에 대한 수요도 공존

 

저에게 일본 동양의학하면 서양의학적 질환명, 분자생물학적 한약 기전 설명, 표준화된 한약 생산 등이 떠오릅니다. 이번 학회에서도 이런 인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동양의학적 개념들은 진단명(양명병, 혈허증 등)에서 드러나지만, 그 자체가 중요하기보다는 일종의 증후군처럼 다뤄지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양진한치'적 접근이 두드러졌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동양의학스러운' 발표와 논의도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특별 세션 중 하나는 '유교적 인체관'을 주제로 삼고, 일본의 불교, 유교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인체관에 미친 영향을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심포지움은 '혈(血)'의 개념을 논의하기 위해 사물탕을 중심으로 반나절 가량 진행되기도 했는데, 전통 개념을 논의하면서 동시에 현상이나 서양의학 개념으로 설명,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표준화된 한약 사용을 넘어, 개별 한의사의 가감을 반영할 수 있는 탕약 조제기를 판매하는 것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의학적 개념이 현 시대에 과연 필요한가', ‘한의학의 표준화는 어느 수준까지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논의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때 일본 동양의학이 자주 사례로 언급됩니다. 그런데 일본 동양의학계에서는 오히려 '한의학적 개념이나 방법을 잘 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분위기도 느낄 수 있어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미소요산에 대해서 설명하는 쯔무라의 자료 중 일부. 처방에 대한 해설에서 동양의학적 개념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미소요산에 대해서 설명하는 쯔무라의 자료 중 일부. 처방에 대한 해설에서 동양의학적 개념들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일본의 한약은 표준화 수준이 높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직접 가감하고 전탕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수요 역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일본의 한약은 표준화 수준이 높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들이 직접 가감하고 전탕할 수 있는 시스템에 대한 수요 역시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기업이 학술적 발전에 기여하는 선순환 구조

 

쯔무라, 크라시에 등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일본 한약 제약사들은 동양의학 활용 증진을 위해 다방면으로 적극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활동은 의사와 환자 대상 교육이었습니다. 동양의학에 익숙하지 않은 의사들을 위해 자사 약물 홍보자료를 적극 배포할 뿐 아니라, 환자들의 한약 이해를 돕는 자료집까지 제작, 배포한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교육자료 상당 부분이 한약 부작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약 복용 시 발생 가능한 부작용, 투여 시 주의해야 할 대상 등을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알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한약에 대한 부정적 여론 때문인지 부작용을 쉬쉬하거나 명현으로 단정 짓는 등 다소 방어적인 경향이 있었는데, 이들 기업은 위험성을 명확히 다루면서 의사들이 한약을 만병통치약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환기시킨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회사들은 한약 사용 증진뿐 아니라 학술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발표자들이 한방제약회사 도움으로 연구를 수행했음을 밝혔고, 이번 학회에서는 런천 세션(Luncheon session, 청중들이 도시락을 먹으며 참여하는 세션으로, 주로 스폰서 기업에서 도시락을 제공하고 그들이 기획한 강의를 듣게 함)도 마련해 많은 참여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쯔무라는 한의학과 직접 관련 없는 기초과학 학술대회까지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2019년 참여했던 국제시스템생물학회(The 20th International Conference on Systems Biology, ICSB2019)에서도 일반 기업 중 최상위 스폰서로 참여해 기초과학 학술활동을 후원하고, 한약 관련 연구자들에게 발표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업들의 학술 지원 문화는 단순한 선의라기보다는, 학술활동 지원을 통해 결국 자사 이익이 증대될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렇게 얻어진 이익을 다시 학술 지원에 재투자해 온 오랜 역사 덕분이라고 봅니다. 한국 한의학계에서는 아직 이 정도 수준의 스폰서십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쯔무라를 비롯한 일본의 한방제약회사들이 기업공개를 할 만큼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기에 이런 스폰서십이 가능한 측면도 있습니다. 어쨌든 일본 한방제약회사의 스폰서십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글로벌 바이오 기업 못지않은 그들의 학술 지원 문화가 무척 부러웠습니다.

 

쯔무라의 홍보 부스. 다양한 자료들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습니다.
쯔무라의 홍보 부스. 다양한 자료들을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습니다.

 

활발한 학술대회 및 사교 활동이 돋보이는 학회

 

제가 아직 학자로서 경력이 짧아 많은 학술대회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이번 일본동양의학회는 학술대회는 행사 그 자체로써 여러모로 독특하고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우선 학술대회의 규모가 매우 컸습니다. 동시에 최대 12개 세션이 진행되는데, 제가 그동안 참석했던 국제학회 중에서도 이 정도로 많은 세션을 동시에 운영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많은 세션을 동시에 진행하려면 더 많은 회의장 대여는 물론, 그만큼의 좌장과 연자 섭외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션 규모도 수백 명이 참여하는 대형 세션부터 60명 정도의 소규모 세션까지 다양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들이 좌장과 연자로 참여한다는 사실 자체가 학회가 얼마나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학회의 친목 활동들이 매우 특이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학회 첫날 밤 열린 전야제에서는 학회 원로 멤버와 함께 사진을 찍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마치 아이돌을 만난 듯 수줍게 원로 멤버에게 인사하고 차례로 사진을 찍는데, 그 광경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둘째 날 갈라 디너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모두 함께 학회 단체곡을 합창했습니다. '전혀 낫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도 초진 때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남들은 대학에 남았는데 나는 개업해버렸다' 등 노래 가사가 무척 명랑했는데, 이런 노래를 함께 부를 수 있는 단체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멋져 보였습니다.

 

데이터과학적 연구의 부족함은 다소 아쉬워

 

다만 일본 동양의학이 좀 더 발전하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바로 데이터과학이나 인공지능을 동양의학과 융합하는 연구였습니다. 한국에서는 한의학을 데이터과학 관점에서 연구하거나, IT와 접목해 새로운 한의진단 및 치료기술을 개발하려는 시도들이 활발합니다. 이는 한국 한의학뿐 아니라 세계 의학계의 공통된 흐름이기도 합니다.

 

일본 동양의학계 또한 이 점에 공감하는 듯 보였고,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인공지능과 동양의학을 융합하는 주제로 심포지움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일본 내 관련 연구 발표는 전무했고, 중국의 '인공지능+중의학' 현황을 공유하거나 동양의학과 무관한 일본 웨어러블 전문가가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데이터과학으로 한의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일본의 관련 연구자들과 교류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일본 동양의학 전문가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점들

 

대한한의학회 대표단으로 참석하면서 일본동양의학회 핵심 멤버들과 교류할 기회를 얻었고, 이 자리에서 그들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일본 사회의 주요 문제 중 하나가 post-COVID-19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언론에서도 자주 다뤄질 만큼 환자들의 불편이 큰 듯했습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도 관련 세션이 많았고, 참석 인원이 너무 많아 앉을 자리가 부족할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도 post-COVID-19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일본과 심각성에 대한 인식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원료의약품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해 동양의학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일본동양의학회는 보장성 강화 대책을 논의하는 세션을 따로 마련하는 등 보장성 제고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최근 한국 한의학계의 여러 논쟁이 함께 떠올라 더욱 인상 깊었습니다.

 

ICMART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를

 

이번 학술대회에서 대한한의학회는 ICMART(International Council of Medical Acupuncture and Related Techniques) 홍보 부스를 운영했습니다. ICMART는 전 세계 침구 연구 동향 파악과 교류를 위해 1983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설립된 학회로, 유럽의 침구 치료 관련 임상의 및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9월 ICMART가 동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제주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부스에서는 책갈피, 수첩, 팜플랫 등 기념품을 준비해 참가자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물론 홍보에 나선 대한한의학회 관계자들이 열심히 홍보활동을 하신 것도 있지만,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부스에 관심을 먼저 가져주셔서 기념품이 빠르게 동이 났습니다. 젊은 참가자들의 관심이 특히 높았던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사를 나눴던 일본동양의학회 인사들 역시 ICMART에서 다시 만나자고 먼저 제안할 만큼 ICMART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습니다.

 

ICMART 홍보 활동이 성황리에 이루어졌습니다. 왼쪽부터 이번 한일교류 세션의 발표자이신 유준상 교수님, 저, 대한한의학회 최도영 회장님, 김재은 이사님.
ICMART 홍보 활동이 성황리에 이루어졌습니다. 왼쪽부터 이번 한일교류 세션의 발표자이신 유준상 교수님, 저, 대한한의학회 최도영 회장님, 김재은 이사님.

 

마무리하며

 

이렇게 뜻깊은 학회에 참석하고 일본동양의학회 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대한한의학회 관계자분들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학회 내내 한일 교류를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시는 모습에서, 이 같은 교류가 이어지기까지 들어간 수많은 노력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ICMART에는 전 세계의 동양의학 전문가가 함께할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일본동양의학회에서 경험한 즐거운 교류를 ICMART에서도 더 많은 분들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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