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신문=강현구 기자] 개인정보의 처리와 보호에 관한 사안을 독립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합의제 중앙행정기관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위원장 고학수·이하 개인정보위)가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가명정보 활용사례 성과 발표회’에서 가명의 건보 데이터와 병원 진료 데이터 결합을 통해 한의 비급여진료가 척추질환자의 수술률을 낮췄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성과 발표회는 ‘가명정보 제도’ 도입 5년차를 맞아 의료, 복지,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가명정보 활용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연구 현장의 데이터 활용 장애에 대한 개선방안을 모색코자 마련된 것으로, 보건복지부·통계청 등 정부부처 관계자들을 비롯해 학계, 산업계, 가명정보 결합·데이터 전문기관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가명정보 제도’는 지난 ‘20년 8월 ‘데이터 3법’ 개정을 통해 ‘개인정보보호법’과 ‘신용정보법’에 도입된 제도로, △공공 목적의 기록 보전 △과학적 연구 △통계 작성을 위해 정보주체의 동의 없이 가명 처리한 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정한 것이다.
특히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클라우드 기술을 활용한 과학적 연구 등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 확보가 개인정보보호법상의 사전동의 규제로 인해 어려운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개인정보위는 CT(컴퓨터단층촬영)나 X-ray 이미지·영상 같은 ‘비정형 데이터’ 가명처리 가이드라인을 내놓는 등 민감정보로 꼽히는 개인 의료 데이터의 산업용 활용을 촉진하는 데에 앞장서 오고 있다.
최장혁 개인정보위 부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디지털 심화 시대에 국가경쟁력의 핵심은 데이터 활용 능력에 있다”며 “데이터 결합을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9월 열린 ‘2023 가명정보 활용 우수사례·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의 발표 장면
특히 이날 발표회에서는 지난해 개최된 ‘2023 가명정보 활용 우수사례·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우수사례 부문 대상(보건복지부 장관상)을 수상한 부천자생한방병원의 ‘한방병원에 내원한 척추질환 환자의 한방의료 이용에 따른 차이 분석’ 연구가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이번 연구는 요추추간판탈출증 초진 환자의 진료 및 처방정보(부천·대전·해운대 자생한방병원)와 요추추간판탈출증 환자 진료내역(심평원)을 심평원을 통해 결합·분석한 것이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지난 ‘17년 건강보험통계연보의 ‘한방 다빈도 상병 급여현황’에서 1·3·9·18위 모두 △등 통증 △요추 및 골반 △목 부위 관절 및 인대의 탈구·염좌 △기타 추간판장애 등의 척추 관련 질환인 것으로 집계되면서 우리나라 척추질환 환자들의 한의의료기관 이용 빈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한의학 분야 빅데이터 연구에서 건보 청구자료의 한의의료 이용 데이터는 급여 치료(침 치료, 부항, 뜸 등)에 국한돼 있어 비급여 치료(한약, 약침 등)가 상당수인 한의 치료 현황 분석에 제한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에 이윤재 부천자생한방병원 척추관절센터 연구원장 연구팀은 같은 EMR(전자의무기록 시스템)을 활용하는 ‘15년부터 ‘21년까지 강남·대전·부천·해운대 자생한방병원의 처방·진료기록(통증평가, MRI 검사, 한약·약침치료 정보)을 선행 수집하고, 심의를 거쳐 가명 처리했으며, 심평원에 해당 자료의 조건에 맞는 가명 데이터를 청구한 뒤 데이터의 결합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자생한방병원 내원 환자의 기타 추간판 장애 초진 일자가 포함된 연도를 기준으로 △한약 30일 이상 처방군-30일 미만 처방군 △약침 6회 이상 처방군-6회 미만 처방군을 대상 그룹으로 정의해 분석을 실시했다.
조사 결과 30일 이상 한약을 복용한 환자는 30일 미만으로 복용한 환자에 비해 요추 수술 위험률이 0.64배 감소했으며, 6회 이상 약침치료를 받은 요추추간판탈출증 환자는 6회 미만 약침치료를 받은 환자에 비해 요추 수술 위험률이 대조군보다 0.61배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진은 “한약과 약침 치료 실험군과 대조군의 허리 수술 발생 위험을 비교한 결과 장기간 추적 관찰에서 유의미한 수술률 감소 효과를 확인했다”면서 “건보 청구 자료만으로 비급여치료의 효과를 확인할 순 없었으나 병원 진료 데이터 결합을 통해 요추추간판탈출증 환자가 한약 또는 약침 치료를 받을 경우 불필요한 수술을 낮추는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행된 ‘가명정보 활용 연구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진행된 패널 토론에서 A연구자는 “통신사 등 대량의 데이터를 보유한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데이터 획득이 어렵고, 과도한 가명처리로 데이터 품질이 저하되어 연구에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데이터 공급·수요기관·관계부처가 함께 참여하는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B연구자는 “중앙부처와 공공기관 등에서 가명정보 제도에 대한 이해도가 낮고, 기관 내부에 가명정보를 제공하는 절차 등도 마련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데이터를 받는 것이 너무 어렵다”면서 “공공기관 평가에 데이터 제공 실적을 포함하는 방안이 실효적인 대책이 될 수 있는 만큼 지난해 7월 발표한 ‘가명정보 활용 확대방안’의 과제들이 속도감 있게 추진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개인정보위는 “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와 논의해 공공기관의 데이터 제공 유인체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신속히 추진하고, 행정·공공기관 데이터 담당자들의 가명정보 제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올해 관련 교육과정을 신설해 운영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와 함께 개인정보위는 ‘제4기 가명정보 결합 선도사례에 대한 수요 조사 계획 가이드’ 발표를 통해 올해는 특히 △3대 개혁(노동·교육·연금) 등 정부가 추진 중인 주요 국정과제와 관련된 연구과제 △사회·경제적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새싹 연구자 등을 중점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