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여의도책방-12

기사입력 2020.12.24 14:44

SNS 공유하기

fa tw
  • ba
  • ka ks url
    “우리네 인생에도 12월이 오리라”

    20200423155940_417fdc8843f24540daa01251d43e840e_b3j9.jpg


    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세밑(the end of the year)’의 무드란 응당 불콰해진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크리스마스 전후와 뒤섞여 어느 가게를 들르든지 볼륨을 달리한 캐롤이 끊이지 않아야 하는 법인데, 2020년은 끝까지 이렇게 찜찜하게 끝날 모양이다. 비대면, 언택트 그리고 뉴노멀.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온갖 학술대회와 신간 도서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포스트 코로나를 논하기에는 너무 이른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물론 미리미리 준비하는 미덕은 무조건 옳은 일이지만 닥터 파우치(Dr. Anthony Fauci)가 경고했듯이 백신을 맞더라도 2021년 연말까지는 마스크를 써야할 지도 모를 일이고 일일 확진자수 그래프는 아직도 정점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지속적이고 가파른 그래서 상당히 불안한 우상향이다. 

    당분간 이 모드가 지속될 것은 자명해 보이고 감염병 전문가들은 계절성 요인으로 인한 3차 팬데믹을 우리도 예외없이 맞이한 것이니 모두가 힘들겠지만 그래도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만이 최선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제 몇 달만 지나면 우린 1년째 마스크를 쓴 채로 살고있으니 코로나 예방하느라 경미한 호흡곤란과 잦은 피부트러블 그리고 홧병 발병 일보직전에 도달해 버린 셈이다.  


    故 임 교수가 출간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L.jpg

    2년 전 12월의 마지막 날, 습관적으로 보는 저녁뉴스에서 서울시내 대학병원의 한 임상교수가 환자에게 살해를 당했다는 속보를 접했다. 정신과 전문의로 20여년간 우울증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는 진지한 표정의 얼굴 사진 위로 그의 이름 석자가 무겁게 자막을 채우고 있었다. 가끔, 아주 가끔 예상치 못한 환자들 때문에 심한 당혹감을 느끼는 일이 발생하기는 해도 환자가 의사를 살해했다는 뉴스를 접할 때면 일상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환자를 맞이해야 하는 이 평범한 진료실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 곳인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해진다. 2019년의 봄이 한참 무르익을 때까지도 이상하게 위 사건이 잊혀지지 않았던 나는 YES24에 해당 교수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혹시 우울증 관련해서든 뭐든 이 분이 쓴 책이 있지는 않을까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2016년 5월 출간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라는 단행본을 발견할 수 있었고 바로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2012년 6월 어느 날 일정이 겹쳐서 3시간 밖에 잠을 청하지 못한 채 새벽 골프 시간을 맞추느라 일찍 집을 나서서 골프까지는 무사히 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려는 순간 마치 누가 허리를 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조금 쉬면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물리치료를 받고 약을 먹었지만, 도무지 효과가 없었다. 단 10분을 앉아 있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점차 심해져 갔다. 신경 차단 주사를 맞아도 효과가 없었다. MRI 사진을 본 의사들마다 수술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척추를 전공한 신경외과 의사이자 나의 친한 친구는 바로 수술을 하라고 했고, 또 다른 전문의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수 있는 정도이니 조금만 버텨 보라고 했다. // 이런 경우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의견을 제시한 사람의 말을 따르게 되어 있다. 이미 출국 날짜까지 정하고 비행기표도 사놓은 상태였던 나는 수술로 인해 그토록 기다렸던 해외 연수 일정이 지연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수술을 하지 않고 버텨 보기로 결정했다. ‘오늘 자고 나면 내일은 통증이 덜하겠지’하는 기대를 안고 오지 않는 잠을 힘들게 청했지만 깨고 나면 통증은 변함없이 나를 찾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데도 불구하고 통증은 더 심해져 갔다. 때때로 마치 발가락 사이를 도끼로 내리찍어 발이 쪼개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거나 고기 불판 위에 발을 올려놓은 것처럼 발바닥이 뜨거워져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경험을 계속하게 되었다. 어떤 날은 두꺼운 얼음 위에 맨발로 서 있는 것처럼 다리가 시리기도 했다. 진통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 주, 두 주가 지나감에 따라 내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점차 사그라들었고 나는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 연수하러 온 미국 대학측에 양해를 구하고 출근하는 날을 최소한으로 줄인 다음 치료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해 보았다. 심지어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국 내 한의원을 찾아가 침을 맞기도 했다.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사고에 근거해 의학적 판단을 내리는 훈련을 받아왔고 내가 가르치는 의과 대학생과 전공의들에게도 늘 이러한 면을 강조해 왔던 내가 장모님이 보내 주신 한약을 먹고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는다는 것은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방 치료뿐 아니라 카이로프랙틱 치료, 운동 치료, 가바펜틴(Gabapentin)을 비롯한 처방약의 복용 등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함께 시도했다. 의과대학 시절 열렬한 유물론자이자 무신론자였던 내가 샌디에이고의 한인 성당에 나가 세례를 받고 열심히 기도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내게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수술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와 달리 나는 수술 후 두 달이 지나 가족들이 기다리는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도 그리고 또 다른 6개월이 지나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상황은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수술 후에도 계속되는 증상에 새롭게 나타난 증상까지 결부되자, 나는 절망하게 되었다. 모두들 이제 허리는 어떠냐고 물어보는데 3년이 되어 가는데도 계속 아프고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전보다 더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하기가 싫었다. // 수술과 약물, 각종 비수술적 치료, 물리 치료, 필라테스, 퍼스널 트레이닝, 기도, 명상 심지어는 침과 한약까지…  통증에 좋다는 온갖 방법을 다 사용했는데도 기대만큼의 효과가 드러나지 않자, 나 역시 끝없이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 닥친 것인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왜 이 병이 낫지 않을까? 왜 내게 이런 병이 찾아왔을까, 대체 왜? 왜? 왜?


    임 교수는 2012년 6월 갑자기 발병한 요통으로 2016년 5월 이 책을 낼 때까지 엄청난 고생을 하던 상태였다. 2018년 12월 끔찍한 일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어쩌면 그의 만성 요통은 그대로였을지 모른다. 칼을 들고 쫓아오는 조현병 환자로부터 간호사를 피신시킨 이후에야 필사적으로 그 장소를 벗어나야 했다면 전력질주를 하기에 허리나 다리의 통증 혹은 이상감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을까라고 상상하니 갑자기 마음이 먹먹해졌다. 


    자신의 낫지 않는 통증으로 자살까지 생각하는 환자들…의료인의 의무는?

    수술에도, 한방 치료에도, 그 이외의 온갖 치료에도 별 호전이 없었다는 환자들을 진료실에서 숱하게 많이 만나왔다. 이미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그들은 그리고 보호자들은 초진 때부터 혹은 치료 개시 이후 호전의 기색이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 확신이 드는 순간부터 불신의 기색을 드러내며 노골적으로 나의 실력을 의심하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척추수술 실패증후군(FBSS; Failed Back Surgery Syndrome)은 나의 연구테마 중 하나이며 치료 성공 케이스들의 논문을 제시하면서까지 환자와의 타협점을 조정, 재조정 해가며 끈질기게 치료를 이어가곤 했었다. 물론 호전의 예도 많았고 실패의 예는 여지없이 나의 자존감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의 신경외과 전문의들도 실패한 케이스인데 일개 한의사인 나 따위가 뭘 어떻게 바꿀 수 있었겠냐는 자조섞인 위로로 그 순간을 잊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서도 그 까다로운 환자들의 스타일을 탓하는 경우도 적잖았다. ‘저렇게 예민하니 수술도 부작용이 난 게지. 그렇다고 저렇게까지 아플까.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뭐가 저리 변덕스러울까’ 등등. 잘 나으면 내 덕이고 경과가 나쁘면 환자 탓이기도 했다. 

    124451_72417_538.jpg

    그러다 임 교수님의 책에서 몇 개월째 통증이 지속되자 자살을 시도하려 했었다는 대목과 수술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여전했을 때의 환자들이 가질 수 있는 우울감에 대한 기록과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숱한 노력들을 읽으며 날마다 만나는 모든 특히 수년 전 시작된 여러 부위의 반복되는 통증과 저림으로 내 진료실을 방문 중인 다양한 환자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원래 아픈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오래된 연인들의 심드렁한 그것처럼 이젠 어떤 호소를 해도 그냥저냥 지금 이 순간의 불편함만 살짝 해소시켜주고 환자들을 그저 불평불만 없이 진료실을 나설 수 있도록 기분만 좀 맞춰줄 수 있다면 난 그럭저럭 잘 해내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전공인 ‘재활(再活; 다시 살려내기)’의 근본적인 의무를 너무 오래 잊고 있었다는 자각에 이르자 갑자기 몹시도 부끄러워졌다.  


    환자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의료인의 역할 ‘다짐’  

    2020년 9월 25일, 사망 2년만에 임 교수 관련된 뉴스가 하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를 구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구조 행위를 확인하기 어렵다’며 복지부 의사상자 심의위원회가 2019년 4월 26일과 6월 25일 열린 회의에서 임 교수에 대한 의사자 지위를 불인정하기로 결정해 논란이 있었는데 유족측의 소송 끝에 행정 법원의 최종 결정으로 의사자로 선정되었다는 뉴스였다. 승소 법률에 따라 예우 및 보상금 지급이 결정되었으니 늦었지만 정말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12월 13일은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1월 20일 이후 신규 확진자가 역대 최다인 1030명으로 기록된 날이었다. 일요일 오전 연합뉴스(채널 23)로 코로나 뉴스를 보면서도 하단 자막의 한 줄짜리 단신들을 훑어보는 습관 덕에 내 눈이 딱 포착했던 기사 제목은 ‘약침으로 말기암 치료한다고 진료비 가로챈 한의사 실형’이었다. 해당 기사를 찾아보니 검증받지 않은 치료법을 허락받지 않은 시술법으로 과장광고하여 환자와 보호자들을 유인했고 절박한 상황에 놓인 환자들을 상대로 속임수를 썼고 고액의 치료비를 받아냈으며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오랜 기간 피해자들과 원만한 화해에 이르지도 못했다는 판사의 질타가 있었음을 간략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이 기사에 단 한 마디도 쉽사리 덧붙일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프로포폴 사망 환자 바다에 유기한 의사 징역 4년(2017년 12월 20일)’, ‘수면 내시경을 받은 40대 여성 환자를 45분간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의사 입건(2018년 4월 25일)’, ‘어깨 환자에 장침 찔러 폐 뚫은 한의사 벌금 500만원(2020년 12월 12일)’ 등의 뉴스를 접한 일반인들의 분노를 누그러뜨릴 만한 합리적인 변명을 동료 의료인이라는 이유로 감히 그리고 과연 보탤 수 있을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며 12월 11일부터 단식 중이신 의원 한 분이 요통과 발바닥 통증으로 내원하셨다(이 글이 게재된 날에는 의원님의 단식이 종료되었기를 바라며…). 지난 4·15 이후 초선으로 의정활동을 시작하신, 지역에서 비정규직, 장애인, 여성, 청소년, 노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시민단체 활동을 오랜 기간 해 오셨던 분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가족들의 모든 건강 관련 조언과 실질적 치료를 해 주신 고마운 한의사 선생님이 계셨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오랜 기간 가족주치의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분이셨는데 도시를 떠나 시골로, 그 이후에는 시골을 떠나 섬으로 한의원을 옮기시는 바람에 더 이상 기댈 한의사 선생님이 없어서 고민이라며 지역에 추천할 만한 한의사가 있는지도 물어보셨다. 의원님이 들려주신 그 주치의 한의사 선생님과의 아름답고 따뜻한 에피소드들은 올 한해 접한 한의사 관련 온갖 나쁜 뉴스들로 심난했었던 나를 위로해주기 충분했다.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의 사진과 경구를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했던 2020년이었다(www.nanum.com). 지난 1년간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에 실린 12개의 글을 읽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며 힘든 순간마다 큰 위로와 응원이 되었던 박노해 시인의 몇 개의 글귀를 공유하고자 한다. 

     

    ‘선하고 강인하게 의롭고 위엄있게’, ‘신뢰의 기반은 진정한 자기 실력, 결과에 대한 책임’, ‘생각이 깊고 마음이 곧고 사랑이 강한 그대의 어깨 위에 늘 무지개 뜨기를’,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 해도 내일은 해가 뜬다. 세계는 다시 새로워진다’

    4fb5adc865edfb4913517076f0aaa2a3.png

    backward top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