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 중심으로 맥진·취상·오행 연결…날씨·기후까지 치료 맥락에 포함
[한의신문] 몸과 마음을 서로 다른 영역으로 구분하지 않고, 환자가 호소하는 느낌을 매개로 신체적 통증과 정서적 변화를 함께 살피는 ‘마음침’의 임상 실천이 인류학적 현장연구를 통해 분석됐다. 맥진과 취상(取象), 음양·오행·육기, 사암침 오수혈을 활용해 몸과 마음은 물론 날씨와 기후까지 하나의 관계망으로 파악하는 동아시아의학의 ‘연결된 몸’을 실제 진료현장에서 추적한 연구다.
신재하 경희대 한의대 기후-몸연구소 연구원이 수행, ‘동아시아의학 아날로지즘의 실천-마음침 현장의 존재 이해를 통한 몸-마음-세계의 연결’이라는 제하의 연구논문이 지난달 경희대 대학원 한의학과 석사학위 논문에 인준(주심 김종우, 부심 김태우·채윤병)됐다.
이번 연구는 동아시아의학의 몸을 생의학적 해부학의 언어로 환원하기보다 실제 임상에서 기(氣)·경락·음양·오행·육기가 어떻게 인식되고 치료로 이어지는지를 살폈다. 이를 위해 신 연구원은 지난해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약 1년간 서울 H한의원의 마음침 치료 현장을 중심으로 △마음침 워크숍 △경북 산불재난 의료봉사 △은둔·고립청년 관련 강연 △유럽 의사 대상 온라인 워크숍 등을 참여·관찰했다.
‘마음침(Mind Acupuncture)’은 사암침법을 기반으로 동서양 심리학을 재해석한 경락 기반 심리치료다. 경락시스템의 불균형을 조절해 정신·신체 증상을 함께 다루며, 몸과 마음을 별개의 대상으로 두지 않고 음양·오행·육기의 관계망 안에서 파악하는 것이 특징이다.
◎ 통증도 마음처럼 묻는다…‘느낌’ 따라 주목하는 마음침
진료현장에서 이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것은 ‘지금은 어떻게 느껴지세요?’라는 질문이었다. 마음침의 대상은 불안·우울 등 정서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았다. 실제 현장에서는 눈떨림 환자의 우울감, 생리통 환자의 불안, 발목 통증 환자가 사고 당시 느낀 놀람 등 신체증상과 정서가 맞물린 사례가 관찰됐다.
특히 답답함·결림·저림·억울함 등의 ‘느낌’은 몸과 마음 어느 한쪽으로 분류되지 않았다. 환자가 호소하는 감각을 출발점으로 맥을 짚고 침을 놓은 뒤 다시 느낌과 맥의 변화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목·허리의 긴장과 손목·발목·무릎 통증, 두통·어지럼증·이명 등도 개별 부위의 문제로만 한정하지 않고 서로의 연관성을 살폈다.
신 연구원은 “마음침은 마음만 치료하는 것이 아닌 신체적 통증 역시도 마음을 대하는 방식 그대로 다뤄졌다”면서 “하나의 氣가 몸-마음 두 개의 스크린을 오가며 뜰 수 있는 것으로, ‘느낌’을 기가 표현되는 최초의 순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임상의 특징”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현장에서는 매 순간 변화하는 氣를 고정된 상태로 보지 않고 그 흐름을 읽어내고자 동아시아의학이 발전시켜 온 주요 진단법인 맥진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자침에 따른 변화를 계속 확인할 수 있었다. △빠르면서 고른 맥→폐정격 고려 △자침 후 맥 변화 관찰→다른 침 처방탐색 △새 처방 후 맥 변화→치료 방향 확정 등 ‘맥진-자침-재확인’의 반복이다. 맥은 고정된 진단값이 아니라 치료에 반응하며 변화하는 몸의 상태로 읽는 방식이다.
◎ ‘락스물’이 ‘맑은 생수’로…환자의 감각을 이미지로 포착
특히 맥진과 함께 현장에서 氣의 정황을 알아내기 위한 주요한 방법으로 ‘취상’을 통해 더욱 구체화됐다. 취상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과 신체감각을 색깔·모양·온도·촉감·무게 등으로 떠올리게 하는 방식으로, 연구에선 △감정을 감각정보로 전환하는 ‘기화취상(氣化取象)’ △이를 구체적인 사물·현상에 빗대는 ‘형화취상(Metaphor-transformation)’이 활용됐다.
대표적으로 복통·설사·두통을 호소한 70대 여성의 임상례를 살펴보면 의료진이 여동생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각을 묻자 환자는 상대를 ‘공룡’에, 자신을 향한 위협을 ‘날카로운 이빨’에 빗댔다. 몸에 남은 느낌은 ‘색이 없는 진한 락스물’이라고 표현했다.
진료는 이 이미지를 다시 묻고, 변화를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침 치료와 정심주 호흡 등을 거치자 △진한 락스물→맑은 생수 △살아 움직이는 공룡→박물관에 전시된 박제 공룡 △날카로운 이빨→낡고 뭉툭한 이빨로 이미지가 바뀌었으며, 환자는 복부 불편감 완화와 두통이 소실됐음을 밝혔다.
연구에선 의료진이 환자가 제시한 이미지에 별도의 의미를 해석해 붙이지 않는 점에도 주목했다. ‘공룡은 무엇을 상징하는가’를 분석하기보다 치료 전후 이미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이다. 신 연구원은 이를 “두통, 복통, 조현병 등 진단명만으로 담기 어려운 환자 고유의 감각을 치료 과정에 끌어들이는 실천”이라고 해석했다.
◎ 오행은 ‘대상’이 아닌 ‘움직임’…관계로 세계를 다시 읽다
마음침에서 오행은 고정된 사물을 분류하는 기호가 아닌 氣의 움직임과 관계를 표현하는 체계로 나타났다. 예컨대 목(木)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씨앗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움직임을 통해 아침·봄·성장 등 같은 방향성을 가진 존재를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관계는 사암침 오수혈(五輸穴)을 통해 치료로 이어졌다. 마음침에서는 몸의 상태를 습도·온도·압력의 세 축과 태음-양명·소음-태양·궐음-소양의 육기로 파악하고, 맥상과 환자의 느낌에 따라 오수혈을 선택·조절했다. 몸을 고정된 물질의 집합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관계로 보고 침 치료를 그 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으로 이해한 것이다.
AI 생성이미지
◎ 날씨→맥→처방…기후를 몸의 변화로 읽는 마음침
동아시아의학은 동일한 원인이 동일한 결과를 낳는 단선적 인과론보다 몸과 환경의 복합적인 상호작용과 그 맥락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몸에 대한 이해는 진료실을 넘어 환자를 둘러싼 환경으로까지 확장된다. 현장에서는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면 굳어서 삐기 쉽다”는 설명과 함께 그날의 기온과 습도 변화도 환자의 맥과 증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인식됐다.
관찰된 진료 양상은 △비·추위→맥이 가라앉고 느려지는 경향 △환절기→맥의 긴장 증가 △갑작스러운 추위→화혈(火穴) 활용 증가 △습한 날→사법(瀉法)·금혈(金穴) 활용 △장마철→습(濕)·열(熱)을 함께 고려한 치료 등이었다. 다만 날씨만으로 처방을 정하지 않고 환자마다 맥을 다시 짚어 반응을 확인했다.
현장의 한의사는 “기온이 뚝 떨어질 때 반응들이 그러하다”고 설명했다. 즉 절대적인 기온 자체보다 날씨의 변화에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읽는 방식이다. 생활환경도 진료의 고려 요소였다. 외부활동이 많은 환자에게서는 습(濕)을, 주방에서 일하는 환자에게서는 화(火)·토(土)와의 연관성을 살피는 등 직업과 생활공간, 몸의 관계까지 함께 고려했다.
◎ 산불은 ‘밖’에서 끝나지 않았다…공포와 통증으로 이어진 재난
몸과 외부환경의 연결은 기후재난 현장에서도 확인됐다. 신 연구원은 지난해 경북 산불 이재민 대상 마음침 의료봉사에 참여한 경험을 소개하며 “기후재난 현장은 기후위기가 더 이상 기후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다양한 존재의 삶과 몸을 직접 위협하는 문제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의학의 아날로지즘(Analogism) 존재론이 인간과 자연, 몸과 세계를 관계적으로 사유하는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것.
당시 현장에선 △대피 당시 긴장·공포와 요통을 함께 호소한 이재민 △공포에 대한 치료 이후 통증 완화를 호소한 사례 △기본순환침과 정서적 접근 이후 신체·정서적 편안함을 표현한 사례 등이 관찰됐다. 연구는 이를 재난이라는 외부 사건과 정서적 충격·신체적 통증을 분리하지 않고, 연결된 관계속에서 다루는 마음침의 특징으로 분석했다.
신 연구원은 마음침이라는 구체적인 임상현장을 통해 동아시아의학이 △몸-마음 △인간-자연 △몸-세계의 경계를 어떻게 넘나드는지를 보여줬다는 데 의미를 뒀다. 인류학적 현장연구는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다 넓은 사회와 세계관을 이해하는 방법론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신 연구원은 “마음침을 시작으로 다양한 현장에서 아날로지즘을 예시할 수 있기를,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학의 존재론을 통해 복수의 존재론 논의가 더욱 구체화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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