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시민사회, 공소제한 범위 축소·중과실 기준 재정비 제안
[한의신문]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해 내년 5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개정된 ‘의료분쟁조정법’은 필수의료 활성화를 위한 대안으로 마련됐으나 사망·중상해 등 중대한 의료사고에서도 손해배상금이 지급되면 공소 제기가 제한돼 피해자의 절차적 권리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형사면책 범위를 좌우하는 ‘고위험 필수의료행위’를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중대한 과실’을 12개 유형으로 한정·열거한 데 대해서도 위헌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소희 의원(국민의힘)과 대한변호사협회(회장 김정욱)는 10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 환자 목소리는 충분했습니까’를 주제로 국회토론회를 공동개최하고, 내년 5월 시행을 앞둔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의 쟁점과 보완 과제를 논의했다.
이소희 의원은 개회사에서 “‘의료분쟁조정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의료현장의 어려움과 의료인의 형사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데에 공감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의료사고 피해 환자와 가족의 목소리도 반영됐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인의 안정적인 진료환경과 환자의 권리 보호는 서로 대립하는 가치가 아니라 균형을 이뤄야 할 가치”라며 “개정된 제도를 시행할 정부도 의료인의 부담 완화와 환자의 권리 보호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의료분쟁 현황, 개정 ‘의료분쟁조정법’의 의미와 과제(이정민 대한변호사협회 의료인권소위 부위원장) △‘의료분쟁조정법’의 위헌성 논란과 개선방안(박천우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개정 ‘의료분쟁조정법’ 하위법령에 반영해야 할 환자 권리 보호 방안(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등을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 “사망·중상해까지 공소제한 안 돼”…‘의료분쟁조정법’ 재설계 제안
이정민 부위원장은 형사특례 범위를 축소하고, 의료사고 피해자의 권리구제 장치를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의료분쟁조정법’을 어느 한쪽 편향이 아닌 의료인의 안정적 진료환경과 피해자의 신속·공정한 구제를 함께 보장하는 방향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등 형사특례 적용범위를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에 직접 규정 △포괄적 적용 우려가 있는 ‘중증’ 요건 삭제 △환자 사망·중대한 신체손상 발생 시 공소제한 특례 적용 제외 △‘중대한 과실’ 판단에서 결과 중심 규정 삭제 등을 제안했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 개편도 주문했다. △‘중대한 과실’ 여부 심의대상 제외 △의사·치과의사·한의사 위원 삭제 △소비자·비영리민간단체 추천위원 5명→10명 확대 △피해자·유족의 의견진술·자료제출·결과통지권 보장 등을 통해 법률전문가와 시민 중심의 ‘시민참여형 준사법위원회’로 재설계하자는 것이다.
개정안에서 폐지된 손해배상금 대불제도의 원상회복도 촉구했다. 이 부위원장은 “의료인의 형사적 부담을 완화하는 경우 이에 상응하는 피해자 보호장치 역시 함께 강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 “의료사고 형사특례, 효과 검증 후 존속 결정해야”
박천우 위원은 의료사고 형사특례의 정책효과를 일정 기간 검증한 뒤 존속 여부를 결정하는 ‘사후입법영향평가 연계형 일몰제’를 ‘의료분쟁조정법’에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박 위원은 “형사특례를 주면 정말 의료진이 필수의료로 복귀하고 필수의료 회복이라는 입법목적이 달성되는지 검증해야 한다”며 “효과가 확인되지 않는다면 피해자의 재판절차진술권·평등권을 제한하는 특례를 존속시킬 정당성도 상실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공소제기를 제한하는 개정법 제56조(고위험 필수의료행위에 대한 특례)를 △독립적 사후입법영향평가와 연계한 한시조항으로 전환 △일정 기간 후 정책효과·필요성 재검증 △국회 재승인이 없을 경우 자동 실효하는 방식으로 재개정할 것을 제안했다.
유사 입법례로는 특례에 존속기한과 평가절차를 둔 강원·전북특별법을 제시했다. 특히 오는 10월 시행되는 전북특별법은 지방의료원의 필수의료 재원 확보를 위한 기부금품 모집 특례에도 3년의 존속기한을 두고, 평가를 거쳐 연장·폐지를 결정하도록 했다.
박 위원은 “농지·환경·조세특례도 실제 효과를 평가해 연장하거나 폐지한다”며 “사망사고까지 포함하는 형사특례를 아무런 사후평가 없이 영구화할 합리적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 “위험도 수가로 의료기관 책임보험료 지원해야”
안기종 대표는 의료기관에 지급되는 ‘위험도 상대가치 수가’를 활용해 국가가 책임보험료를 대신 지급하고, 의료사고 환자의 실질적 배상을 강화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책임보험·책임공제 의무가입을 전제로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심의 신청권 △조정성립 시 반의사불벌 특례 △형의 임의적 감면 △손해배상 조건 공소제한 특례 등 환자 권리보호 장치의 구체화를 주문했다.
2023년 민간보험사 2곳에 가입한 전체 의료기관의 의료배상책임보험료는 약 408억3700만원인 반면 건강보험에서 지급된 위험도 상대가치 수가는 약 2조7297억7300만원으로 추정됐다. 보험·공제료가 위험도 보상재원의 약 1.5%에 그친 셈이다.
안 대표는 “위험도 상대가치 수가를 행위수가에 포함해 지급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해당 재정으로 의료기관의 책임보험료를 대신 지급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형사특례는 필수의료 위한 공익적 결단”…환자단체 “권리보호가 먼저”
박호균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이 좌장을 맡은 패널토론에선 형사특례를 둘러싸고 정부와 환자·소비자단체가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 정부는 필수의료 인력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조한 반면 시민사회는 환자의 증거접근권·입증책임·재판절차진술권 등 권리보호가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기민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은 “피해자의 증거접근권과 입증책임은 그대로 둔 채 의료인에게만 형사특례를 부여하는 것은 제도적 균형을 잃은 것”이라며 △입증책임 전환 △사망·중상해 공소제한 제외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법률 직접 규정 △중과실 12개 열거방식→예시규정·일반조항 병행 △심의·수사 병행 등을 요구했다.
송 위원장은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더라도 배상금을 받으면 형사절차가 차단되거나, 처벌을 원하면 배상을 포기해야 하는 불합리한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며 대불제도 유지와 국가 또는 독립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의료사고배상기금 설치를 제안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도 “의료사고 구제의 본질은 의료인 보호가 아닌 환자 안전과 진실 규명”이라며 손해배상 조건부 공소제한 특례 삭제 또는 사망·중상해 제외를 촉구했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에는 환자·소비자 및 법률·윤리·환자안전 전문가를 균형 배치하고, 피해자의 자료열람·의견진술·추가감정 신청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부는 형사특례의 공익적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현두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는 환자를 살리기 위한 헌신인데 사고 발생 시 국가가 형사처벌까지 한다면 젊은 의사들의 기피는 심화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필수의료의 심각한 위기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다만 중과실 기준의 보완 가능성은 열어뒀다. 신 과장은 “의료인에게 특권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공익적 결단”이라며 “제도를 시행하면서 중과실 부분 등 부족한 점은 지속적으로 개정·보완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참석 요청에도 불구하고,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는 참석하지 않았다.
많이 본 뉴스
- 1 한국한의약진흥원 통폐합, 한의약 '육성'인가 '고사'인가?
- 2 한의사의 PDRN약침 사용…“문제 없다”
- 3 “한국형 일차의료라더니 한의는 없다”…청와대 앞서 복지부 사업 규탄
- 4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 시행령 개정안, 국무회의 의결
- 5 ‘예방접종관리법안’ 추진…한의사, ‘이상반응 감시체계 주체’로 명시
- 6 우울증 '웃는 표정 감소'…뇌회로 및 후성유전체 연관성 확인
- 7 日 일왕가의 절망 치유한 19세기 漢方醫, 현대 통합의료에 질문을 던지다
- 8 한의학 전문 AI ‘한의비서’ 서비스 시작
- 9 ‘장애인 건강권 1차 계획’…장애인 주치의, 다학제 통합관리 체계로 전환
- 10 초음파 약침·재생 스킨부스터까지…학부생도 최신 트렌드 교육시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