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의 패러다임 전환·방문진료 중심 보건체계 재설계 한목소리
[한의신문] 농촌 주민 80%가 근골격계 질환을 경험하고, 섬 주민들은 처방약에 의존한 채 생업을 이어가는 현실이 드러난 가운데 지역의료 붕괴를 ‘지역시장 축소의 결과’로 바라봐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방문진료 확대와 공중보건의 제도 재설계, ‘의료취약지 지원 특별법’ 제정이 제시됐다.
국회 입법조사처(처장 이관후)와 엄태영·윤준병·김윤·김선민 의원은 ‘도서·산간 및 비수도권·비도시 지역 주민의 건강과 의료, 또 다시 외면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고, 농어촌 의료 실태를 공유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엄태영 의원(국민의힘)은 인사말에서 “아직도 응급 상황에서 골든타임조차 보장받기 힘든 지역이 존재해 공보의를 방문진료사업에 투입하는 ‘농어촌의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며 “의료는 국민의 기본권인 만큼 전 지역에서 안정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선 △비수도권 비도시 지역 보건의료의 정치, 경제, 사회 구조(김창엽 시민건강연구소 이사장) △농촌 의료취약지역 주민들의 의료공백과 고통(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장) △도서지역 주민들의 의료이용 현황과 개선방안(강제윤 한국 섬 연구소장)을 주제로 발표가 진행됐다.
■ “비수도권 의료 붕괴는 의사 부족 아닌 ‘시장 축소’의 결과”
김창엽 이사장은 비수도권·비도시 지역의 의료 공백 문제를 시장 중심 의료체계와 지역 불평등 구조의 결과로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 의료체계는 건강보험 때문에 공공서비스처럼 보이지만 실제 병·의원의 대부분은 민간이 설립·운영하는 경제 주체인 만큼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지역 의료 붕괴는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국 단일 건강보험체계와 중앙정부 중심 보건의료 거버넌스가 지역 의료 문제를 지방정부의 책임 의제로 만들지 못해 △지역 책임성 약화 △비수도권 소수지역 우선순위 배제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했다.
김 이사장은 “현재 한국 사회는 자본축적 위기와 기후위기, 지정학적 위기, 인구위기가 중첩된 ‘다중위기(Poly-crisis) 상황’”이라며 “향후에는 돌봄, 건강, 복지, 공동체성, 지속가능성 등이 새로운 사회체계의 핵심 가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농촌 주민 10명 중 8명 근골격계 질환…여성농업인 심화
이수미 소장은 농촌지역 주민들이 초고령화와 기후위기까지 중첩된 환경 속에서 심각한 만성질환에 노출되고 있는 만큼 국가 차원의 필수 보건의료 과제로 접근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농업인의 높은 근골격계 질환 유병률 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했다. 발표에 따르면 농업인 10명 중 8명이 근골격계 질환을 경험했으며, 특히 여성 농업인의 경우 남성보다 주요 근골격계 질환 유병률과 통증 수준이 더욱 높게 나타났다.
여성 농업인의 통증 정도(VAS)는 △50대 4.17 △60대 4.3 △70대 4.85 △80대 5.29로 연령 증가에 따라 악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노동 특성상 위험 부위 역시 △허리(90.2%) △무릎(88%) △손가락·손목(78.2%) △어깨(61.2%) 순으로 조사됐다.
또한 폭염 심화에 따른 온열질환 증가 문제도 심각했다. ’24년 농업 분야 온열질환자는 671명으로 전년대비 33.4% 증가했으며, 발생 장소의 78.7%가 논밭으로 조사되는 등 기후위기가 건강위험으로 직결되고 있다.
이 소장 역시 “의료 공백·인프라 불균형이 지방소멸을 가속화한다”면서 지역의사제와 관련해선 지속가능성을 위한 지역 정주여건 확보, 농촌 왕진버스 사업에 대해선 안정적 재정 및 지역 연계 강화를 병행할 것을 제시했다.
이 소장은 “농촌 보건의료는 단순 복지가 아닌 국가 책임 영역”이라며 △필수의료서비스 공급 강화 △의료사각지대 해소 △생애주기별 의료 접근성 확대 △공공의료 및 사회적경제조직 확대를 통해 농촌 주민의 삶의 질과 지역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것을 강조했다.
■ “유인도 61.95% 의료시설 전무”…섬 주민들 ‘통증 참으며 생업’
섬 지역 의료 문제를 의사 부족이 아닌 정주여건과 국가 재정 우선순위의 문제로 접근할 것을 제시한 강제윤 소장은 “섬 어르신들은 경제적 강박 속에서 처방약에 의존해 통증을 참고 어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공보의 또한 초임 인력이라 임상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 유인도의 61.95%에는 의료시설이 전무한 상태이며 △악천후·야간 운항 제한 등 닥터헬기 운용의 한계 △육지 병원 이동을 위한 행정선·해경선의 장시간 소요 문제 △병원선 이용의 어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특히 인천 옹진군 소야도 사례에 따르면 보건진료소에는 공중보건의조차 배치되지 않아 간호사 출신 보건진료소장이 주민 건강을 책임지고 있으며, 노인 인구가 대부분인 섬 지역 특성상 각종 만성질환 관리 수요가 높아 사실상 한 곳에서 24시간 대응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그는 “(양방)의료계는 정작 섬·오지 근무는 기피하면서도 의사 증원에는 반대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방문진료 확대 △응급의료체계 구축 △원격의료 기반 건강관리시스템 도입 △여객선 공영제 등 정주여건 개선 △응급의료 시스템 구축 △방문진료 강화 △공공 해상교통 강를 중심으로 국가 예산 방향이 설계될 것을 주문했다.
■ “섬·농촌 의료, 현행 법체계 한계”…‘의료취약지 특별법’ 제안
정백근 경상대 의대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한 패널토론에서 의료취약지 지원을 위한 별도 법체계와 지방정부 책임 강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김슬기 인천시 공공보건의료지원단 팀장은 “포괄2차 종합병원 지원사업이나 병상수급계획처럼 진료권 중심으로 설계된 정책은 섬·농촌 지역의 의료시설 확충과 기능 강화를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며 “지방정부 내부에서도 취약지역 의료접근성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의료취약지는 시장 논리만으로 유지될 수 없는 영역인 만큼 지방정부 차원의 책무성과 재정 투입 체계를 보다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명석 전남 신안대우병원장은 “의사 인력의 절대적 부족과 농어촌 인구 감소로 인해 병원 매출 자체도 급감하면서 도서·산간 의료기관의 지속가능성이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며 ‘인구감소지역법’, 농어촌복지법’, ‘농어촌의료법’ 등을 아우르는 독립법인 ‘의료취약지 지원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한승아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은 “현재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은 일반건강검진과 차별성이 부족하고, 농약중독이나 정신건강 문제 등 농촌 현장의 특수성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개인 맞춤형 상담과 사후 연계 시스템도 미흡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정부 측에선 조직 개편과 지역 중심 전달체계 개편 방향을 설명했다. 임은정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장은 “취약지 의료접근성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도 핵심 정책과제로 인식하고 있다”며 “지역 보건의료 전담부서 신설 등 조직 개편과 더불어 농어촌 의료취약지의 근간인 보건소·보건지소·보건진료소 체계를 지역 중심으로 재편하는 방안도 함께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한진옥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취약지 의료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존 공중보건의사 제도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며 “의과 공보의뿐 아니라 다양한 의료인력을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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