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복합적 프로그래머로서의 허준 모습 다시 보기”
김남일 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최근 대학원 수업에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만들었다. 정확하게는 질문을 던질 것을 요구하고, 내가 대답하는 수업을 해보았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질문을 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따라 대답하는 Chat GPT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 같은 느낌이 이어졌다. 정해진 수업시간에 요약된 질문과 명확한 대답과 추가된 보충 질문에 대해 답변을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문제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듯한 느낌이 계속 이어졌다.
대학원생들에게 납득할 만한 논리를 제시하기 위해 나는 오랜 기간 한의학계의 현장에서 연마하면서 습득한 경험과 책, 각종 미디어에서 수집해 온 정보들을 하나로 녹여서 설득력 있는 논리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귀가하면서 나는 학창시절부터 읽어온 허준의 『동의보감』이야말로 AI와 맥락적으로 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다. 허준 선생은 문제를 절차적으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해결하고 추상화하는 컴퓨팅 사고력을 지닌 진정한 프로그래머가 아닌가 상상해보았다.
인간의 몸에 대한 이해와 생리적 과정, 병리적 변화, 자연과의 관계, 유형적 인식 등 인체와 관련된 각종 인문학적 지식이 융합적으로 표출되고 있는 『동의보감』은 문제해결형 프로젝트를 실행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콘텐츠 소스이다.
오랜 기간 정답만 찾는 교육과 훈련에 길들여져 생존해온 한국의 엘리트 집단에 속하는 우리들은 한의학과 AI의 융합을 통해 데이터를 읽는 힘을 길러나가야 할 것이다. AI의 데이터를 읽는 힘은 잘 구성된 알고리즘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바로 제대로된 알고리즘을 구현한 천재의 독창적 창조물이다.
학창시절 본과 4학년 때 임상특강에 강사로 오신 『동의보감』 전문가 김정제 교수님(1916〜1988)께서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 탕액편, 침구편으로 이어진 다섯 개의 편을 각각 생리학, 해부학, 병리학, 본초학, 방제학, 침구학 등으로 연결지워 설명하시면서 “한의학의 모든 지식의 융합적 실체”라고 『동의보감』을 찬양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동의보감』의 융합적 모습은 허준의 융합정신의 소산이며, 이것은 현대 AI가 지향하는 컴퓨팅 사고와 통한다.
허준은 한의학뿐 아니라 역사학, 철학, 천문학, 지리학, 문학, 서지학, 과학, 환경학, 사회학 등 각종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춘 ‘융합형 지식인’이었다. 이러한 지식의 중심에는 상상력과 통찰력에 근거한 실행력이 작동하고 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동의보감』은 원의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유명 의서들의 내용을 자신의 견해에 따라 조합하고 있다. 이것은 알고리즘을 활용한 데이터 트렌드에 부합하는 결과를 생성해내는 AI의 본질과 통한다. 패턴에 따라 최적화된 결과를 제시하는 AI의 구성의 미학 정신이 흐르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실용적 지식과의 융합을 추구해온 과거의 한의학의 선구자들의 노력은 허준의 『동의보감』 구성의 과정적 정신에 이미 녹아져 있다. 너무 오랜 동안 멀리서만 찾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가까이에 있는 『동의보감』을 경시해온 것이 아닌가 반성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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