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데헌을 통해 다시 보는 한의학의 整體觀

기사입력 2025.09.1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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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데헌>처럼 한의학의 ‘진정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곧 우리만의 경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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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상열 원장(화성시 귤림당한의원)

    전 제주한의약연구원 초대원장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전 세계적 신드롬이 좀처럼 식을 줄을 모른다. 흐름을 보건대 한 편의 영화에 국한된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한류의 도도한 흐름은 음악이나 영상을 넘어 음식과 뷰티 그리고 한국어에 이르기까지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트럼프와 대치하던 일론 머스크가 SNS에 올린 표현이 ‘나는 깨어있다’는 한글 문구였다. 우리가 영어나 한문 표현을 통해 말의 권위를 싣듯이, 반대로 서구에서 한국어를 섞어 힘을 빌리는 행위가 노래가사를 넘어 일상생활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모든 것이 세계인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다소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에겐 그런 자격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국민은 각자의 분야에서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치열하게 살아왔다. 아이돌 문화만 해도 다른 나라 젊은이들은 적응하기 힘든 고된 연습과 노력의 시간들이 있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이룬 현재 우리의 성공 사례들은 모두 이런 노력에서 얻어진 결실이다.


    강인한 DNA, 우리 힘의 근원으로 작용


    단지 우리의 성실과 근면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더 근원적인 연원이 있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56개 민족이 통합된 중국에 우리 민족만 흡수되지 않은 게 신기하지 않은가. 옛부터 주변 강대국들과 대치하면서 작은나라로서는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어쩌면 이런 과정에서 우리의 DNA에는 강인함이 새겨졌고 현재 우리의 힘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식민지배와 전쟁 등 굴곡진 역사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체득된 힘과 지혜로 우리는 단숨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고 이제는 첨단기술과 문화 분야까지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그냥 평범히 살아왔던 모습들이 알고 보면 큰 걸음과 도약의 시간이었고 이제 그동안 농축되었던 씨앗들이 글로벌 플랫폼의 기회를 타고 하나하나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객관화 해보면 이제 우리는 자신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케데헌>은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우리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하였다. 매기 강 감독은 의도적으로 작품 속에 구석구석 한국다움을 녹여 넣었다고 설명한다. 영국 BBC 분석에 따르면 <케데헌>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이 진정성(authenticity)이었다. 서구의 시각에 맞춰 짜깁기 하지 않고 냅킨 위에 젓가락 올려놓는 것까지 우리의 일상 그대로의 모습으로 어필한 것이다.


    <케데헌>의 이러한 성공은 우리 한의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의학은 서구 의료 체계와 다른 고유의 정체성 때문에 늘 한계로 느끼며 다소간 패배의식에 젖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케데헌>처럼 한의학의 ‘진정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곧 우리만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분을 치료하려면 전체를 봐야 한다”


    한의계도 양방과의 의료 이원화로 원천적인 갈등과 경쟁의 구도 속에서 살아남았다. 일본 한의학이 일찌감치 제도권에서 배제된 반면, 우리는 해방 이후 2차례나 폐기 법안이 상정되었으나 살아남았고 그 후 의료보험 적용 등 제도적으로 꾸준히 국가 의료체계에 편입, 강화되었다.


    한의학 치료 형태 또한 과거의 전통방식만 따른 게 아니라 당대의 조류를 흡수하며 부단히 발전해 왔다. 지금의 침, 부항, 탕약 등 그 세부적 형태가 모두 옛날과는 달리 현대 문물을 적용한 것이다. 내용적으로도 의료장비 이용이나 추나, 약침의 시술 등으로 꾸준히 확장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거져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많은 한의사들의 노력과 집념의 결과들이다.


    특히 중의학과도 차별되는 약침 시술은 짧은 역사임에도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약침은 한약의 침습적 주사방식으로 현대적 응용을 극대화한 형태이다. 그 효과도 직접적이며 소화기를 거치지 않기에 더욱 효율적이다. 요즘은 피부 미용으로 확장하는 등 약침의 가능성은 무궁하다.


    특히 독성 성분을 다루는 봉독, 사독 등 독 기반 약침은 전문성이 두드러진다. 식약공용 약재가 무분별히 난립하는 상황에서 독을 다루는 전문가로서의 위상에 걸맞기도 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약침 시술 시 양방의 국소적 접근 방법을 쫒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방식의 정체관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케데헌>에 나오는 한의사가 설명하듯 ‘부분을 치료하려면 전체를 봐야 한다’는 整體觀적 관점이다.


    주사 형태의 약침이라고 해서 한의학 원칙에 예외일 수 없다. 약침이 양방 주사 치료와 비슷한데다 해부학을 기반으로 치료 포인트를 삼는 경우가 많다 보니 자연히 국소적 부위의 대증치료에 보다 집중하게 한다. 특히 최근 한의계가 초음파 장비를 사용하게 됨으로써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는 듯하다. 양방 주사제를 대체하는 용도 쯤으로 국한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약침 시술시 어느 곳에 얼마나 인젝해야 하는지에만 관심사이고, 평소 가지고 있는 증상이나 질환, 질병의 기간, 환자 나이 등 전신 상태는 고려사항이 아닌 게 되어버린다. 


    만약 국소 부위의 일시적 효능만을 쫒는다면 양방의 리도카인과 스테로이드를 따라갈 약재가 없을 것이다. 감초주사니 태반주사니 천연물을 약재로 쓰는 것은 양방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을 한의학적 해석으로 전신에 걸쳐 쓰는 것은 우리에게만 주어진 권한이다. 우리의 장점이 과연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체관은 실제 치료 효과에 있어서 더 우수한 결과로 이어지는 요인이다. 필자의 5만건의 임상사례 경험상 사독약침의 효능도 정체관적으로 접근할 때 빛을 발했다.


    예컨대 사독약침의 대표적인 주치증으로 痺證이 있다. 痺證은 통증만이 아니라 관절불리, 근력저하, 감각이상을 동반하는 근골격계 증상이다. 그리고 이 비증은 素問의 痺論편에 의하면 오장으로 침범하면 불면, 소변빈삭 등의 합병증이 생기게 된다. 실제로 임상에서 노인들의 근골격계 통증에는 대부분 감각이상이나 근력저하를 동반하거니와 이런저런 내과적 증상들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 증상들을 종합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사독의 주요 효능인 것이다. 필자의 경우 사독약침 시술시 만성 요통 환자의 경우, 통증 부위에만 시술하지 않고 통합적인 관점으로 평소의 불면과 소변빈삭도 고려하여 선혈하고 전체적으로 치료한다. 시술 용량이나 선혈도 전신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런 전체적 치료를 통해 주소증도 근본적으로 치료되고 다양한 동반 증상들도 개선되어 몸이 전반적으로 건강하게 된다. 


    정체적 관점은 우리만의 배타적인 권한


    결과적으로 환자들은 만족도가 높아지면서 고가의 치료비에도 수용적이며 줄곧 중장기적인 재진으로도 이어진다. 간혹 정형외과처럼 아픈 데만 치료해 줄 것을 요청하는 환자도 있지만 대개는 전체가 호전되는 과정에서 근본적인 치료가 이루어지므로 이러한 정체관적 치료방법에 대한 신뢰감을 더 갖게 된다.


    사독약침으로 한의원의 높은 평판과 적지 않은 매출을 이끌어내는 필자의 비결은 바로 정체관적 관점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우리 중 일부는 정체관이 과거의 고루한 관념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점이 한의학의 차별성이자 주목하는 이유이다. 


    제도적으로도 정체적 관점은 우리에만 주어진 배타적인 권한이다. 한가지 약침으로 근골격계와 내상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다. 치료면에서도 환자들에게 만족도가 높다. 이런 효용감이 양방의 지속적인 폄훼 속에서도 살아남은 실체적 이유이다.


    최근 <케데헌>에 힘입어 한의원에 찾는 외국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아마도 부분에 대한 정교한 치료보다 한의학의 ‘전체를 보는 치료’를 원해서 일 것이다. 


    바야흐로 글로벌 시대, 세계인으로부터 한국 문화 전반이 각광받는 이 즈음 정체관적 관점과 치료방식이야말로 한의학의 빛을 발하게 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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