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암 환자의 의학 외적인 돌봄과 실무

기사입력 2025.06.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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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학 웰빙 & 웰다잉 37
    돌봄과 실무의 구체적인 행동들이
    과연 맞는 방향이었는가? 확인하고 싶던 마음 간절

    김은혜 교수님(최종).jpeg


    김은혜 가천대 한의과대학 조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교수의 글을 소개한다.


    지난 달,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인력 표준교육을 받기 위해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에 다녀왔다. 이 교육은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 의료기관 개설을 위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법정 필수교육이며, 해당 기관의 개설이 가능한 의료인에게 기본 자격 요건으로 부과된다. 


    법적으로 한의사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 의료기관을 개설 가능한 의료인에도 불구하고(한의사 전문의에 한함), 나는 이 교육을 최초로 신청했던 날로부터 약 2년이 흘러서야 마침내 실제로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한의’라는 선택지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진료실에서 한의사라는 직종으로 다양한 증상군의 환자를 마주하다 보면, 법적으로 허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고,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이 꽤나 많다는 걸 종종 체감하곤 한다. 


    이러한 현상들이 무엇부터 잘못되었으며, 누가 이렇게 내버려 두었나 등의 따위를 이제 와서 운운하기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요즘의 시기는 이례적으로 한의계 내부의 실무적 의견이 이전보다는 잘 합치되고 있으며, 지금은 지향점이 같은 의료인들이 합심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서, 앞서 언급했듯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 의료기관을 법적으로 한의사가 개설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약 2년 전에는 필수 법정 교육을 신청하는 화면에 ‘한의’라는 단어는 선택지의 그 어디에도 없었다. 


    교육을 듣기 위해서는 ‘일반의-의사’로 등록해야만 했다. 이론교육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니 어찌어찌 들었다만, 토론 중심의 대면 교육으로 진행되는 실무교육은 현실적으로 어찌어찌하기가 어려웠다. 


    ‘일반의-의사’로 신청한 30대 여성의 면허번호가 ‘2’로 시작하는 다섯 자리 숫자라면, 내가 그 당시의 실무자였어도 등록 허가를 선뜻 내주지 않았을 것 같다. ‘이미 대기자도 많고 교육이 급한 사람이 차고 넘치는데’. 참고로 직전의 문장은 관련 사업에 종사하고 계시는 어떤 분의 말을 그대로 빌린 것이다. 


    당시에 실무교육의 거듭된 비선정으로 하소연하는 나에게 해주셨던 답이었다. 관련 내부인으로부터 그런 말을 듣자 참 간만에 억울한 감정이 올라왔던 것 같다. ‘왜 우리는 대기자에도 속하지 않고, 교육이 급한 사람에도 속하지 않는가’. ‘왜 우리는 우리에게 개설 권한이 있는 의료기관에 대해, 정작 교육 이수의 기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가.’

     

    김은혜 교수님9.jpg


    2년이 흐른 현재 ‘한의’라는 선택지 생겨나


    다행인 건 2년이 흐른 지금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한의’라는 단어의 선택지가 생겼다는 점이다. 이 또한 누군가께서 보이지 않는 분투를 통해 만들어 낸 한 칸이라고 생각한다. 


    한의계의 지난 모든 판도를 바꿨던 지금까지의 변화는, 결국 누군가의 한 칸에서 시작되었음을 익히 들었기에 분투하신 그 분께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 한 칸이 실제로 나의 앞선 억울함의 8할을 해소해 주기도 했다.


    2년을 기다린 교육이었다. 꽉 막히는 아침 출근길, 송도에서 구로까지 이동하는 그 시간조차 괜히 설렜다. ‘말기 암 환자와 그 보호자의 관리’라는 분야에서 정부가 공인한 표준적인 내용을 듣는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오갔다. ‘소모적인 일이라는 이미지가 있는 분야인데, 실제로 전업으로 종사하고 계신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실까? 본인의 생각을 떠나서 그런 이미지가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실까?’라는 학생 같은 궁금증부터 시작해서, ‘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기관에 계시는 분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의미일까?’라는 철학적인 질문까지. 


    그리고 그 중에 내가 가장 확인받고 싶었던 부분은 이것이었다. 내가 지난 시간 동안 어깨 너머로, 때로는 싹싹 빌다시피 하며 의과·한의과 교수님들과 의료진으로부터 배워온 ‘말기 암 환자의 의학 외적인 돌봄과 실무들’-그 구체적인 행동들이 과연 맞는 방향이었는가를 정말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널찍한 교육실에 들어서니 약 서른 명 남짓의 수강생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 중 ‘의사 직종’에 속하는 수강생은 4명뿐이었고, 당연하게 느껴진 게 슬프게도, 한의사는 나 혼자였다. 모든 수강생들은 8명씩 4개의 조에 나뉘어 배정되었고, 의사 직종에 속하는 사람들은 각 조에 1명씩 배정되었다. 명찰을 받아 들고 내가 속한 조 테이블에 가서 자리에 앉자, 이미 대부분이 조원들이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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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한의사 선생님이시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자, 이미 서로 안면을 튼 듯한 몇몇 분들이 나와 내 명찰을 보았고, 그 중 한 분이 인사를 받아주심과 동시에 하나의 질문을 건넸다.


    “오! 안녕하세요? 오! 한의사 선생님이시다! 우와! 한의사분들은 말기 암 환자분들이 아프다고 하시면 침 놔주시는 거예요? 마약 못 쓰시지 않으세요?”


     

    이 말이, ‘한의사’라는 태그를 달고, 억울함과 설렘이 뒤섞인 감정을 품은 채, 내 면허로 개설할 수 있는 의료기관의 필수교육을 겨우겨우 승인받아 들으러 간 전문의인 내가 들은, 첫 인사였다(호스피스·완화의료 전문인력 표준교육-실무교육에 대한 후기는 총 3편에 걸쳐서 연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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