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대에 안부를 묻다-41

기사입력 2025.04.2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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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의대생의 봉사활동, 멈췄던 시간을 다시 채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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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원 (우석대학교 한의학과 본과 4학년)


    코로나19로 멈췄던 시간이 서서히 흐르기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닫혀 있던 봉사활동의 문도 열리기 시작했다. 팬데믹 시기에는 나 역시 예과생으로서 여러 활동이 제한되었던 기억이 있다. 감염병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의료봉사 자체가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고, 기관에서 학생들을 받아주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엔데믹 이후 다시 의료봉사를 나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렘과 감사함이 함께했다.

     

    올해 초, KOMIV(Korean Medicine International Volunteers) 단체의 일원으로 필리핀 카비테 주 테르나테 지역에서 진행된 한의학 의료봉사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이 지역은 의료 인프라가 매우 열악한 곳으로, 기본적인 감염 관리조차 어려운 환경이었다. 봉사 기간 동안 나는 현지 간호사들이 예진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침, 부항, 약침 등의 시술을 맡았다. 뇌졸중 후유증, 당뇨발, 혈전증 등 다양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준비한 치료 수단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던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특히 당뇨발이 심한 환자를 치료할 때, 현장에서 가진 장비나 약재의 범위 안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치료 후 통증이 줄어들었다며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하던 환자의 반응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번 봉사를 준비하며, 우리는 봉사단 내부적으로 여러 차례 사전 스터디를 진행했다. 기본적인 근육학 복습부터 시작해서, 질환별 진단 및 치료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학습했고, 팀원들끼리 서로 실습을 해보기도 했다. 특히 추나요법과 약침 실습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는데, 대한표준원외탕전의 협조로 약침에 대한 실습 기회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던 점이 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준비 덕분에 현장에서 보다 자신감 있게 진료에 임할 수 있었다.

     

    현지 주민들 중 일부는 드라마나 미디어를 통해 침 치료에 대해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침을 맞아보는 것은 대부분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낯선 의료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보이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치료 후 “생각보다 아프지 않고 시원하다”는 반응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진료 분위기가 더욱 편안해졌고, 한의학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봉사 이후에는 현지 주민들과 시청 관계자들로부터 “꼭 다시 와달라”는 요청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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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초에는 KOMIV와 함께 전북 진안군 운주면 운주교회에서 진행된 의료봉사에 참여했다. 이번에는 본과 1·2학년 학생들이 예진을 맡았고, 나는 침 치료와 부항, 약침 등의 시술을 담당했다. 특히 봉사 전 학생들과 함께 모의 진단 및 치료 스터디를 진행했던 덕분에, 협착증 케이스 환자를 명확히 감별할 수 있었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진료 현장에서의 경험은 교과서 속 이론과는 또 다른 차원의 배움이었다. 직접 환자를 마주하고 치료한 뒤, “많이 좋아졌다”는 환자의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어떤 시험의 합격보다도 크게 다가왔다.

     

    한의대생으로서 봉사의 의미는, 단순히 환자를 돕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를 잘 치료하고 싶다는 마음은 스스로를 더 열심히 공부하게 만들고, 그렇게 쌓은 지식을 다시 봉사 현장에서 환자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동기가 된다. 봉사는 나와 환자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봉사는 실력을 넘어서는 무모한 도전이 되어서는 안 되기에, 나는 매 순간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구분하려 노력하고 있다.

     

    엔데믹 이후 다시 열린 봉사 현장은 나에게 단순한 활동 이상의 의미를 준다. 지역의 의료 사각지대를 메우는 일에 한의대생으로서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도 내가 꾸준히 의료봉사에 참여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한의대생과 한의사들이 지역과 세계를 향해 발을 넓히는 일이야말로, 한의학의 사회적 역할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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