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인은 또 하나의 히말라야다

기사입력 2025.02.1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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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봉사와 트레킹 하면서 느낀 네팔과 히말라야 이야기
    김경택 김경택한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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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기 며칠 전부터 수염을 기른다. 반쯤 하얀 수염이니 마스크를 쓰고 진료할 수밖에 없다. 3개월 지난 펌 머리가 숫 사자 갈기 같다. 수염과 모발을 방치한 방황의 젊은 어르신은 아직 철들지 않았다. 하긴 남자들 철들면 돌아올 수 없는 저 먼 길로 간단다. 아직 철없이 지내기로 했다.

     

    여행은 현실을 벗어난 일탈이다. 현실 환경과 다를수록 여행의 깊이와 의미가 있다. 다른 환경에서 다른 생각으로 새로운 시간을 꿈꾼다. 다른 문화 언어 음식 풍광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 역시 가슴을 두근거리는 그 무엇이 숨어 있다. 그 무엇을 꼭 집어 표현할 수 없어 더 가슴이 아리다. 화려한 흉통.

     

    여행은 고생조차 설레인다. 그 여정은 성찰을 동반한다. 그래서 떠난다.

     

    네팔에 간다. 두 존재를 만난다. 네팔인과 히말라야다.

     

    미지의 그곳, 히말라야

     

    미지(未知). 예민한 걱정과 벅찬 기대가 교차하는데, 후자의 영역이 더 넓고 크다.

     

    그동안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코스를 다니며 느끼는 그 무엇이 있었다.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 쿰부 지방의 벅찬 칼라파타르(5600m), 야생화의 넓은 평원을 지닌 랑탕밸리와 고사인쿤드. 에베레스트 로체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마차푸차레 푸모리 아마다블람 7~8000m 위용을 보면서 걷는데, 숲속의 마을 주민을 만난다. 검게 그을린 주름의 할아버지, 수줍은 눈의 어린이. 2~3000m 숲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삶을 마치는 사람들. 의료 혜택을 기대하지 않고 그저 히말라야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 아마 죽음의 원인도 모른 채 태어난 땅에 묻히는 사람들, 지금도 쌀밥 달바트 음식을 거친 손으로 먹는 사람들. 몸은 씻지 않고 옷은 세탁하지 않는 셍활이 부끄럽지 않는 사람들, 그저 맑은 눈과 미소로 살아가는 사람들.

     

    나마스테 – 나의 신이 당신의 신에게 정중히 인사합니다. 마치 선승의 화두 같은 그 언어는 곧 신앙이요 생활이다. 어쩌면 히말라야보다 더 가까이 만나고 싶은 존재들이다. 서로 같은 심장을 가진 호모사피엔스. 트레킹만 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만나고 싶었다. 직업을 통해 교감하고 싶었다.

     

    그래서 1년 전 랑탕 헬람부에서 순다리잘 - 타레파티(4600m) - 멜람치강 타게르강 트레킹하면서 이동 한의원을 개원(?)했다. 침, 갖은 약재 등을 꾸리고 포터를 한 명 더 채용하고 트레킹을 겸한 의료활동을 했다. 난생 처음 혈압 체크하고, 손 끝에서 피 한 방울로 혈당 측정하는 그 신기한 의료 행위가 생경한 사람들을 만났다. 고산 마을 주민들은 한국 한의사의 첨단(?) 진료에 놀라고, 한국 한의사는 그들의 열악한 의료 환경에 놀랐다.

     

    다시 1년이 지나고 설 연휴 안팎 2주 일정으로 네팔을 찾았다. 2번째 진료실을 차린 셈이다.

     

    반은 진료, 반은 트레킹 일정이다.

     

    그래서 필자의 전담 가이드인 N과 함께 그의 고향을 찾았다. 작년 곁에서 한의 진료를 보던 N이 이번에는 그의 고향에서 의료활동을 제안, 부탁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너덜거리는 버스로 6시간만에 도착한 도시는 Gorkha. 거의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심하게 흔들리고 먼지가 동행한다. 큰 짐을 버스 지붕 위에 잔뜩 싣고 좌석이 차야 떠난다. 네팔의 버스는 신차가 출고되고 폐차될 때 까지 세차하지 않는다. 겨우 장마 소나기로 쌓인 먼지를 씻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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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차 가이드 N은 한국어를 더듬거리며 말하고 영어는 능숙한 베테랑이다. 네팔 사랑이 지극하다.

     

    ‘어느 나라는 화성에 간다는데, 우리나라는 도로 포장도 안되었어요’

     

    사실 한국의 경부선 같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와 제2의 도시 포카라 구간 족히 10시간 걸린다. 도로거리 204km인데 하루 종일 걸린다. 중간 정류장에서 식사하고 또 다시 먼지 날리며 달린다. 한국의 몇 십 년 전 모습, 하지만 우리처럼 발전할 가능성이 희박하여 더 답답한 나라. 먼지와 무질서의 네팔을 생각하면 여행객의 머리가 무겁다.

     

    고르카에서 지프를 대절하고 너덜거리는 산길을 달린다. 뿌연 먼지가 뒤쫒아오는 산길은 여름 장마에 유실될 것이다. 하지만 저만치 다락논이 보이고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산간 마을이 참으로 평온하다. 곡식이 가득한 다락논은 마치 그림 같지만 그 내면은 척박하다. 비료 농약 용수시설 등이 없는 그곳의 농법은 순전히 하늘에 맡겨야 한다.

     

    히말라야를 품고 있는 그들, 그 산을 위안 삼아 살고 있다. 주민들은 히말라야가 있어 터 잡았고, 이제 히말라야는 그들의 존재로 혼자가 아니다. 어쩌면 두 존재는 동반자이리라.

     

    1시간 30분만에 도착한 마을은 N의 고향 롤랑. 그의 친구가 마중 나왔다. 그 친구 집에서 진료하기로 연락한 상태. 맨발로 나타난 친구는 마르고 검게 그을린 얼굴이다. 준비해 간 30kg의 의료용품 등을 번쩍 들고 집으로 향한다. 우리들의 건강을 위한 ‘황톳길 맨발 걷기’는 호사이다.

     

    사전 연락한 상태라 서서히 환자들이 진료소(?)를 찾는다. 툇마루와 방안의 삐긋거리는 2개나무 침대가 전부이다. 집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는데 어디서 오는지 꾸준히 주민들이 모인다. 아마 서울의 살찐 의사가 좋은 약 많이 들고 올 거라고 사전 고지한 상태이니 기대가 컸으리라.

     

    1년 전 진료 경험으로, 혈압과 혈당 검사만으로도 진료라는 생각으로 다시 히말라야를 찾았다. 하지만 침, 구, 부항은 물론 운동기 소화기 호흡기 순환기 환제와 엑기스를 넉넉히 준비했다.

     

    가이드 N이 친절한 통역사다. 침 시술, 한약 일주일분. 한약과 더불어 준비한 구충제를 한 알씩 처방한다. 손으로 먹는 식생활은 위생에 취약하다. N은 300인분 구충제를 자세히 설명하느라 바쁘다. 기다란 대기줄을 보면 조급증이 나지만 서두르면 안 된다. 차분히 꼼꼼히 허리를 세운다. 오후부터 한약을 5일분으로 줄인다. 아무래도 준비한 한약이 부족할 것 같다.

     

    진료부에 환자의 이름과 나이, 그리고 이런 저런 증상을 꼼꼼히 기록한다. 언제? 1, 2년 후 다시 이 마을을 찾을지 모른다. 그럼 재진 환자가 될 테고 진료에 참고가 될 증상을 기록한다. 모든 환경이 생경한 롤랑 2800m 숲속 마을(백두산 천지보다 높다), 다락논에서 감자 마늘 야채 바나나를 재배하고 염소 물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기름 번지르르한 한국 한의사는 편작 또는 허준선생일 것이다.

     

    명의는 아니지만 최선의 의료인이어야 한다. 그런 다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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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에서 느낀 것

     

    오전 7시에 시작한 진료가 서서히 해가 저 멀리 히말라야 산속을 지나 일몰을 준비한다. 서서히 다가오는 히말라야 산간마을의 어둠이 밀려온다. 침침한 불을 밝히고 진료는 지속된다. 어두워질수록 기온이 내려가고 의료인은 하품이 잦다. 그래도 히말라야 기운 때문인지 눈동자가 초롱초롱하다.

     

    그들과의 소통이다. 그들과의 교류이다. 작은 나눔이다. 나마스테. 나의 또 다른 나에 대한 봉사일 뿐이다.

     

    다음날 일찍 서둘러 도보 1시간 거리 학교가 있는 윗마을을 찾았다. 마을 회관 같은 먼지 나는 시멘트 바닥을 청소하고 간이 침대와 책상과 의자를 준비한다. 이 마을은 훨씬 주민이 많아 서서히 잔칫집 분위기이다. 찾아오는 환자 때문에 겁이 나는 것은 처음이다. 꼬마들은 진료보다 혈압기가 궁금하고 혈당 측정이 신기하다. 그리고 선물받은 한국 볼펜과 치약 칫솔은 어젯밤 길몽 덕분이다.


    척박한 땅에서 거친 일을 하는 주민들의 허리, 무릎, 어깨는 멀쩡할 수 없다. 준비해 간 침, 간접구, 부항요법, 그리고 정성 처방을 한다. 얼마나 큰 결심으로 찾았던가. 얼마나 기다린 히말라야 왕진인가. 한의학은 본디 혜민(惠民) 의학이거늘. 실천하고 싶었다.

     

    어두워지기 전 진료를 마치고 어제 그 마을로 내려가야 한다. 저 멀리 설산이 선명한데 마나슬루이다. 마을 주민들은 매일 저 만년설을 보고 지낸다. 마나슬루 어느 한 봉우리가 마을을 지킨다. 척박한 마을은 저 설산으로 결코 외롭지 않다. 그 만년설은 친구, 스승, 의료, 교육, 신앙인지 모른다. 그들은 그렇게 살아간다.

     

    진료를 마치고 아랫마을로 내려가는데 어둠이 몰려오고 마나슬루의 만년설이 더욱 선명하다. 무슨 인연 있어 이 먼 마을을 찾았는지 히말라야의 하늘을 바라본다. 거친 바람도 히말라야에 오면 순해진다. 폭풍 낙뢰도 히말라야에서는 그저 미풍 섬광일 뿐이다. ‘의료 봉사’라고 찾은 히말라야 숲속 마을, 명함을 내밀면 안 된다. 일몰의 마나슬루가 빙그레 웃고 있다.

     

    진료 3일째. 준비해 간 한약재가 동났다. 준비해간 혈당 측정에 필요한 란셋이 떨어져 할 수 없이 침으로 손끝을 자극하여 채혈 측정한다. 알코올 솜이 바닥나 포장 알코올 스왑을 반으로 잘라 사용한다. 한약 환산제가 떨어져 거의 모든 환자에게 침구 시술을 한다. 의료 혜택을 더 드리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한약재, 혈당 스틱, 알코올 솜, 란셋은 소진되고 의료인의 체력도 고갈되어 더 이상 진료할 수 없다. 5일간 계획된 진료는 3일간으로 단축되고 말았다.

     

    생각보다 고혈압 환자가 많다. 아마 선천적 1차성 고혈압 환자로 사료된다. 염분 섭취 과다의 식생활을 무시할 수 없다. 덥고 추운 기온이 반복되어 음식이 대체로 짜다. 낮의 고온과 노동은 염분을 원한다.

     

    생각보다 80대 90대 어르신이 많다. 의료 시설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장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기 건강 검진을 받지 않는데, 장수 식품을 먹지 않는데, 정기적인 근력 운동하지 않는데, 영양 식단이 아닐텐데 오랜 수명을 유지한다.

     

    아마 맑은 숲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맑은 산소는 천기(天氣)이다.

     

    하지만 더 특별한 이유는 숲속 마을의 인정(人情)이라 여겨진다. 그들은 한 가족처럼 지낸다. 물질이 빈곤하지만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며 마음의 풍요를 유지한다. 부족 씨족 사회처럼 모두 친인척의 관계로 살아간다. 모두 형님 누나 아버지 어머니로 존재한다.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넉넉함이다. 척박한 땅이지만 주민들의 마음은 촉촉하다.

     

    훈훈한 인정이 활성산소를 없애고 질병을 예방한다. 다툼 경쟁하지 않는 순수는 원기를 생한다. 이익사회(게젤샤프트)가 아니라 공동사회(게마인샤프트)를 본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 사회, 큰 교훈을 얻는다.

    배품은 성찰, 계발이니 얻음이다. 그리고 삶의 확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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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팔인과 히말라야는 눈물이다

     

    진료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이제 트레킹이다. 원래 트레킹 일정은 최소 10일 이상이어야 제대로 설산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진료로 반을 사용하여 짧은 코스를 선택했다.

     

    마르디 히말(Mardi Himal)은 안나푸르나 옆 산자락으로 4일간 일정이면 충분하다. 늦게 개발된 코스로 산길이 순하고 주위 풍광이 아름답다. 걷는데 이골이 난 트레커들에게 좀 심심하지만 가족과 같이 다닐 수 있는 산길이 이어진다. 히말라야를 보고 싶은데 등산이 겁나는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코스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보다 코스가 편하고 능선따라 설산과 호흡할 수 있다.

     

    포카라에서 지프로 1시간 거리, Khare에서 오르기 시작한다. 히말라야다. 매번 벅차다.작은 능선과 돌계단을 반복하며 오른다. 숨이 차지만 흥분된 감동이 밀려온다. 아직 열정과 체력이 있으니 감사하다.

     

    1시간여 만에 도착한 오스트레일리아 캠프는 구름이 점령했다. 저 멀리 하얀 눈으로 덮힌 산군들이 보여야 할 텐데 하얀 구름이 차지했다. 일출이 아름다워 하룻밤 묶는 롯지인데 영 불안하다. 다음 날 아침 일출이 어려울 것 같아 트레커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구름이 산뿐만 아니라 방문객의 가슴까지 뒤덮는다.

     

    트레킹 2일째, 구름의 히말라야를 걷는다. 구름의 히말라야는 한국 마을 앞산과 진배없다. 그저 흙산이요 돌길일 뿐이다. 저만치 보일 만년설은 옥양목에 가려 볼 수 없고 내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날 숙소인 포레스트 캠프에 도착하여 한국인을 만났다. 가이드 포터없이 혼자 처음으로 히말라야를 찾은 30대 한국 남자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건너편 ABC 오르는 코스로 가야 하는데 길을 잃어 다른 하산길로 갔다 다시 오르는 길이란다. 5시간 산길을 헤매 얼굴이 창백하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코스인 란드룩 까지 가야하는데 히말라야의 해는 저 산으로 기울고 있었다. 네팔에 가면 지갑을 반쯤 여는 것도 품격이다. 옹색한 여행객은 히말라야를 즐길 자격이 부족하다.

     

    조금 후 30대 초반의 한국 여자가 당나귀 타고 나타났다. 그녀의 가이드 겸 포터에게 왠 당나귀냐고 묻는다. 트레커가 지쳐 5천 루삐(5만원) 주고 빌린 당나귀도 지쳐 있다. 주위 사람들이 한심하다는 표정이다. 명품 등산복에 화려한 패딩을 입었는데 체력은 싸구려다.

     

    용감하고 도전적인 한국인? 무모하고 무지한 한국인? 어느 쪽인지 모른다. 아무튼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 히말라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만년설을 보고 걷는 산길은 사유(思惟)의 시간이다. 보통 2~3주 트레킹은 차라리 짧은 수행이다. 6000m 이하의 설산은 이름조차 없는 무명의 산이다. 걷고 또 걷는다.

     

    히말라야 방문객들의 숙소인 Lodge의 밤은 어둡고 춥다. 해지면 어둠과 추위가 몰려온다. 서서히 물질과 풍요는 사라지고 히말라야의 거친 바람과 추위가 엄습한다. 그동안 즐겼던 문화와 물질은 사라지고 이제 추위만 남았다. 무언가 외로움 허전함, 심연의 고독이 찾아온다. 도시인은 불안하고 도시가 그리워진다. 차가운 손수건으로 하루의 땀을 닦고, 머그잔 한 컵의 냉수로 양치하고 정리해야 한다.

     

    5000m 오르면 산소는 해수면의 반이다. 고산증이 발생하면 심장 폐 뇌가 망가져 생명이 위험하다. 도시 물질에서 느끼지 못하는 외로움은 잔인하지만 괜히 수행자의 고행같다. 어려움이 있어야 성숙한다. 쾌락만 있으면 발전 보다 퇴행의 영역이다. 고통이 있어야 성숙할 수 있다. 춥고 외로운 공간으로 자신을 몰아낸다. 그리고 퍼석이는 고독을 느낀다. 히말라야에 구멍이 숭숭난 건조한 외로움이 바람과 함께 떠다닌다. 그 바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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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물질로 느끼지 못한 인간 본연의 시간은 고독이다. 홀로 외로움, 인간은 본디 혼자이었으니 본인이 해결해야 한다. 즐거움과 괴로움도 본인의 몫이다. 히말라야는 바위의 골산(骨山)이다. 바위산은 수행처이다. 히말라야는 트레킹코스이면서 기도, 염원, 수행의 공간이다.

     

    네팔인과 히말라야를 보면 왠지 울컥하여 눈시울이 붉어진다. 기쁨과 슬픔의 염분 농도가 다르단다. 히말라야와 네팔인은 환희와 애잔이 공존한다. 물질 없는 자연은 얼마나 고단한가. 순수만으로 살아가기 얼마나 힘들던가. 누가 네팔을 축복의 땅이라고 했던가?

     

    네팔은 히말라야의 나라이다. 고산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 하고, 만년설을 보고 무한 도전과 품격을 배운다. 터벅터벅 걸으며 히말라야와 호흡한다. 저 깊은 히말라야로 들어간다.

     

    트레킹중에 만나는 코흘리개 꼬마의 나마스테 인사는 참으로 순수하다. 그 꼬마는 작은 히말라야다. 준비한 볼펜을 건넨다. 수줍은 얼굴은 꼭 히말라야를 닮았다. 방문객은 순수에게 나마스테 인사를 건넨다. 그 순간 순수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거친 숨을 쉬는 트레커의 가슴에 벅찬 감성이 출렁인다. 눈시울이 뜨겁다. 히말라야가 신의 거처인 까닭이다.

     

    3일째 숙소는 하이캠프(3550m), 일찍 도착한 롯지에서 따뜻한 밀크티를 마신다. 식사하고 휴식의 공간인 다이닝 룸에서 하얀 밖을 바라본다. 걷히지 않은 하얀 구름이 두텁다. 밤이 되면 히말라야의 구름은 사바세계로 내려간단다. 그래서 4000m 산에서 늦은 오후 일몰부터 설산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음 날 자정이 다가오면 구름은 스멀스멀 산줄기 타고 상승한다.가이드 N은 히말라야의 구름 이야기를 들려주며 트레커를 위로한다.

     

    구름은 더욱 무겁고 두텁고 진하다. 트레커 보다 N의 얼굴에 먹구름이 끼었다.

     

    해 질 무렵 5시 지나 저 멀리 눈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 구름이 걷힌다. 롯지에 있던 트레커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모습을 드러낸 안나푸르나 남봉(7219m), 히운출리(6444m), 마차푸차례(6993m), 마르디 히말(5553m). 그리고 작은 산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기적이다. 황홀이다. 감탄, 감사, 그리고 경외이다. 한국- 카트만두-포카라- 카레, 그리고 험한 산길 3일째 만년설을 만난다. 긴 여정 만큼 신비의 깊이가 있다.

     

    다음날 새벽 헤드 랜턴에 의지하여 뷰포인트에 오른다. 고산증 있는 사람은 롯지에서 쉬어야 한다. 2시간 만에 오른 4600m 뷰포인트에서 더욱 가까이 명산을 조망한다. 만년설을 이고 있는 히말라야가 가슴속으로 들어온다. 거대한 암벽이 큰 산맥을 이루고 버티고 있다. 병풍처럼 기다란 산군이 이어져 있다. 선명하다. 맑다.

     

    히말라야, 지구의 척추 근간이다. 지구의 지지대이니 생명체로 존재한다. 작은 트레커는 잠시 그곳에 조심스럽게 기대어 본다. 히말라야를 꿈꾼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아침에 바라본 마차푸차레는 예전 모습이 아니다. 20년 전 ABC 오르며 보았던 마차푸차레는 설산이었다. 산 중간 허리까지 눈에 덮이고 꼭대기는 이름처럼 물고기 꼬리 지느러미 형태였다. 그런데 산 정상 주위 몇 점 눈이 전부이다. 눈이 녹아 검은 골산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마치 시한부 삶의 말기 환자처럼 수척한 모습이다. 빙하가 녹고 고산의 눈도 녹고 있다. 지구의 온난화가 히말라야에도 예외가 아니다. 앞으로 20년 지나면, 아니 그 이전에 얼마 남지 않은 정상 부위의 눈도 녹아내릴지 모른다. 나마스테, 절박하여 불러본다.

     

    요즘 히말라야는 변하고 있다. 트레킹 코스는 방문객들을 위해 산허리에 길을 낸다. 지프가 산 중간까지 들어간다. 안나푸르나 일주 코스 마낭(3540m)까지 차가 들어간다. 옛날에는 트레킹의 시발점이 820m 베시시하르 였다. 이제 차를 이용하여 한없이 산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물론 고산증으로 다시 내려오는 사람이 많아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만 물질은 히말라야를 훼손하고 있다.

     

    언젠가 8000m급 고산에 케이블카나 곤도라를 설치할지 모른다. 다국적 기업이 거금을 투자하고, 네팔은 그 거대한 프로젝트 승인하여 국고를 채울 기회가 생긴다. 변변한 기업이 없는 네팔 정부로서는 자연, 환경보다 현금이 절실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진입하기 좋고 공사하기 수월한 고봉에 전망대를 세우고 세계 관광객은 산소마스크 쓰고 지구 최고의 하얀 파노라마를 조망할 수 있다. 힘들이지 않고 그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네팔 정부는 허락할 수 있다. 8000m급 14개 봉우리 중 8개를 가진 네팔이다. 전 세계의 뉴스, 지구 최상 최고의 케이블이 물질과 자연을 연결한다. 한 10년쯤 지나면 일어날지 모를 재앙이다. 인간의 끝없는 도전은 끝없는 모순을 낳는다.

     

    고지대 롯지에 불은 밝고 인터넷 와이파이도 터진다. 4000m급 롯지에도 태양광이 설치되어 자체 전기 생산되어 밤 9시까지 불을 밝힌다. 롯지 지붕의 검은 집광판이 이방인처럼 설치되어 있다. 불을 밝힌 식당, 객실은 밤의 생활이 가능하다.

     

    몇 년전 까지 롯지에서 와이파이 이용료를 내고 사용했다. 몇 천원의 이용요금을 내고 한국으로 소식을 전했는데, 이제 모두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롯지마다 ‘Wi-Fi Free’를 내걸었다. 고산에서 주식거래를 하고, 인터넷 뱅킹, 그리고 집으로 사진이나 문자 카톡을 보낼 수 있다. 유튜브를 보며 고독을 물리칠 수 있다.

     

    침잠 은둔의 땅 히말라야에 물질이 들어와 번잡하다. 조용히 사유하고 싶은 트레커는 자신도 모르게 자연과 물질을 공유하고 있다. 히말라야 공간에서 물질과 풍요는 오염물질일 수 있다. 혼란스럽게 변하는 히말라야. 그 본질이 훼손되는 것 같아 왠지 우울하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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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골드 마운틴


    정상 부근의 하얀 만년설은 히말라야를 지킨다. 4계절이 아닌 한 계절로 살아가는 히말라야는 묵언과 정적이다. 하지만 생명체로 존재하는 그 하얀 설산은 하루 2번 변신한다. 해 뜰 무렵 붉은 일출이 설산에 걸치면 하얀 설산은 붉게 변하는 Gold Mountain이 된다. 어쩌면 방문객에게 귀한 선물을 안겨주는지 모른다. 그리고 또 한 번 해질 무렵 일몰의 골드마운틴은 환호이다. 하루의 고단한 다리를 위로하고 지친 호흡을 토닥거린다. 붉은 산을 보며 그동안 삶의 여정을 회상하고 회한에 젖는다. 히말라야와 함께 침묵하고 사색에 든다.

     

    트레커들은 기억한다. 일출 보다, 일몰의 골드마운틴이 더욱 선명하고 진하고 아름답다고 추억한다. 하루를 마친 히말라야의 태양은 그렇게 비추고 또 하루를 마친다.


    허리 굽은 트레커는 스틱에 의지하여 한동안 일몰의 골드마운틴을 즐긴다. 자신만의 골드마운틴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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