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백탐방보감’은 전국을 누비며 발굴한 재야 고수들의 임상비법서
“모든 것은 책에서부터 시작 돼, 한의학 원전 공부에 충실하기 바라”
본란에서는 최근 상지대 한의대생들과 강원특별자치도한의사회에 자신의 저서 ‘은백탐방보감’을 각각 350권과 200권을 기증한 박희수 원장(前 상지대 한방병원장·前 경락진단학회장)으로부터 ‘은백탐방보감’의 의미와 후학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편집자 주>
‘은백탐방보감’은 한의 처방의 비법을 담은 임상 보고(寶庫)다. 박희수 원장은 상지대에서 교직 생활 중 안식년을 이용해 2002년 9월부터 2003년 8월까지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면서 재야의 고수들을 취재했다.
그들로부터 임상 비법을 수집하는 과정은 한의신문에 ‘전국 우수 경험방 寶庫’라는 타이틀로 연재돼 많은 독자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딱 한 곳을 방문하기 위하여 100리가 넘는 길도 멀다않고 찾아간다. 그러나 도착했을 때 부재중이거나 아니면 개인적인 능력 부족으로 인하여 필자의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한 경우가 있기도 하고 때로는 취재에 응해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정말 맥이 빠져 그냥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중략) 교장증(장이 꼬이는 증상)에는 황기, 백하수오, 감초 각 2돈, 백출, 당귀, 진피, 목단, 사인, 청피, 초과 각 1.5돈, 승마(주세) 3~5돈, 시호(주세) 빈랑 각 1돈, 생강 3, 대추 2, 만약 습관적으로 교장증을 일으키는 경우라면 승마 양을 1~2돈으로 줄인다.” 한의신문 제1104호(2002.11.25.) 21면에 실렸던 내용의 일부다.
전국을 돌며 힘겹게 수집한 당대의 비법은 그만이 독식하지 않고, 한의 임상의들과 모두 공유했다. 벌써 22년 전의 일이다. 그의 세월도 흘러 팔순(八旬)이 넘었다(1942년·부산 영도 生). 그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봤다.
“어느새 팔십이 훌쩍 지나다보니 시력도 나빠졌다. 이제는 학술과 임상의 끈을 놓을 때가 됐다. 그래서 정리하는 마음으로 후학들에게 책을 기증했다. 상지대 에서 정년퇴임을 하는 등 오랫동안 몸담았던 곳이라 상지대와 강원도에 애정이 많다. 상지대 학생들과 강원도의 후학들에게 한의약계 원로들의 지혜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책을 기증하게 됐다.”
‘은백탐방보감’이란 책 이름에는 그만의 뜻이 담겨 있다. ‘은백(隱白)’은 그의 아호(雅號)다. 교직에 몸담기 이전 처음으로 한의원을 운영할 때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응급환자들이 많이 찾아왔다. 그때마다 은백혈(隱白穴)을 취혈하는 방식으로 응급처치를 해 환자들을 회복시켜 돌려보낸 경우가 많았다. 아호를 ‘은백’으로 정한 이유다. ‘탐방’은 전국 곳곳을 누빈 흔적이며, ‘보감’은 말 그대로 ‘寶鑑’의 뜻을 담았다.
당시 탐방 취재에 쓰인 경비만도 식비, 숙박비, 주유비 등 4000만원이 넘는다. 많은 경비가 지출됐지만 당시의 탐방 과정은 감사함, 그 자체였다고 술회한다. “그때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좋은 자료를 줘서 진심을 다해 정리했다. 그럼에도 내 마음에 충족할 만큼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것 같아 다소 아쉬움도 남아 있다.”
아쉬움은 이 뿐만이 아니다. 그는 2003년 7월 이후 넉넉한 일정으로 서울 지역 탐방을 계획했다. 하지만 재직 중인 대학 한방병원이 운영의 어려움을 겪게 됐고, 이에 대학총장이 그에게 안식년을 중단하고 조속히 복귀하라는 간곡한 요청을 전해왔다. 이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서울 지역 탐방을 마무리해야 했다. “서울에 우수한 경험방이 많았을 것 같은데 원래 계획했던 대로 취재를 완수하지 못한 게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는 또 자신들의 귀중했던 비방을 스스럼없이 전해준 이들의 사라짐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전했다.
“‘은백탐방보감’ 출판 후 취재에 응해주셨던 분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책을 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 사이 고령으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신 분들이 계셨다. 그 분들에게 책을 드리고자 했으나 그러지 못해 많이 아쉽다.”
그는 또 故 배원식 대한한의사협회 명예회장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2003년 봄, 상지대에 특강 차 오신 배 회장님께서 저를 보곤 쫓아오셔서 祕方 탐방하는 일을 끝까지 마쳐달라고 당부하셨다. 당시 배 회장님은 한의약 임상저널 ‘醫林’의 발행인이셨는데, 그 책의 표지 모델로 저를 써주셨다. 그 일로 많은 한의약계 관계자들이 제 얼굴을 알아보고는 좀 더 쉽게 취재에 응해 주셨다. 한의학을 무척 사랑했던 배 회장님께 다시금 깊이 감사드린다.”
이 책 저술을 비롯 그간의 한의약 발전에 공헌한 그의 공로는 산청군의 제1회 류의태·허준 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은백임상침구’, ‘두침학’ 등 20여 권의 저술 가운데 특히 ‘은백탐방보감’은 그의 생애 중 자랑할 만한 큰 업적이다. 그런 만큼 자신의 책이 후학들에게 어떻게 읽히기를 바라고 있을까? “비법을 소개해 주신 분들은 임상 30년 이상이었고, 대부분 70대 이상이었다. 자연스레 임상 경험이 매우 풍부하신 분들이다. 그렇다보니 비법 하나하나 마다 매우 유의미한 임상 정보를 담고 있다. 왜, 이렇게 처방했을까? 깊이 생각하고 탐구하는 정신으로 읽기를 바란다.”
그는 특히 후학들이 한의학 원전을 더욱 열심히 공부했으면 하는 바람도 밝혔다. “원전을 놓친 한의학은 퇴보를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후학들이 요즘 원전 공부에 다소 소홀한 것 같다. 모든 것은 책에서부터 시작되고, 독서는 사고의 폭을 확장시킨다. 한층 더 넓어진 사고로 임상을 접하면 분명 나날이 발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의학이란 학문은 공부하면 할수록 더더욱 어려워진다. 그렇기 때문에 사려 깊은 마음으로 깊이 있게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는 한의학으로 인해 너무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한다. “삶의 반세기를 환자들과 함께 하면서 많은 혜택을 주고받았다. 그런 나날들이 큰 즐거움이었기에 내게 있어 한의학은 곧 삶의 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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