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은 대구한의대학교 본과 1학년
2021년, 건강보험 비급여 항목에 포함된 EFT(감정자유기법)은 한의학에서 최초로 신의료기술로 등재된 심리치료법이다. 그러나 EFT의 존재나 개념, 그리고 급여화된 사실조차 대중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정신건강 의료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심평원의 2022년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 진료 환자는 100만 명에 달해 5년 전 대비 33% 증가했다. 이에 따라, 우울증 및 공황장애와 같은 문제의 치료에는 양방의 약물치료뿐 아니라 한의학의 EFT 기법을 포함한 다양한 방법이 있음을 경험하고 이를 널리 알릴 필요성을 느껴 본 후기를 작성하게 되었다.
본인은 과거 약 2년간의 직장생활을 통해 사람들의 건강에 직접 기여하고자 하는 꿈이 생겼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한의대에 편입학했다. 학업의 한 목표를 이루고 진로와 관련한 탐색을 하던 중, 대한여한의사회 학생위원 2기로 활동할 기회를 얻게 되었고, ‘Trauma Informed Care(이하 TIC)를 위한 트라우마 한의 일차진료 전문과정’ 교육 프로그램 공고를 접하게 되었다. 한의학의 정신과 육체는 하나라는 ‘신형일체 심신일여(神形一體 心身一如)’ 이론에 깊은 관심이 있었던 나로서는, 이 강의가 학생들에게도 오픈된다는 사실이 매우 매력적이었다. 강의를 통해 한방신경정신과 분야에서 이 이론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경험하고자, 주저 없이 수강을 신청했고, 8월 초에 시작된 강의들이 무척이나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아서 단 이틀 만에 모든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본 교육은 2024년 8월 1일부터 10월 11일까지 온라인으로 총 17개 강좌가 진행되었으며, 10월 12일 약 3시간의 오프라인 실습이 이루어졌다. 강의는 크게 (1) 트라우마 기초를 다지는 뇌과학, (2) 한의학적 트라우마 접근법, (3) 트라우마 이해를 위한 성인지 감수성과 법적·제도적 내용, (4) 트라우마 치료기법(EFT, Brainspotting, M&L 심리치료 등)으로 나뉘었다. 특히, 오프라인 실습에서는 실제로 트라우마 심리치료를 실습하는 기회도 주어졌다. 프로그램을 마친 수강자에게는 트라우마 한의 일차진료 전문과정 수료증이 발급되며 TIC 한의진료 네트워크 참여 자격도 주어진다.
신체와 마음을 아우르는 한의학적 접근
트라우마 치료에는 한의학적 접근이 특히 유리하다. 한의대 재학 중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접하게 되지만, 대부분은 주로 지식과 술기를 습득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교육만으로는 의료인으로서 몸과 마음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역량을 기르기 어려워질 수 있다. 본 교육은 지식과 술기뿐 아니라 사회적 감수성까지 함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큰 매력이 있다. 우리는 신체적 통증이 마음의 통증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을 알기에,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신체의 통증 치료에서도 강점을 가질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트라우마 유형 중 성폭력 피해자의 연령은 점차 낮아지고 있으며, 이들을 위한 전담 의료기관은 2022년 기준으로 281개 중 단 1개만이 한의원이다. 성범죄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는 직간접적으로 사회에 막대한 비용을 유발하기에,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신체와 정신의 통합적 관점에서 치료할 수 있는 한의학이 1차 진료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연구 결과도 여러 차례 발표되었다. (참고논문: 성폭력 피해자 한의의료 지원 시스템 구축을 위한 인식조사 결과(최유경, 2019)) 이에 한의학계가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함께 노력할 사람들에게 입문 강좌로 이 교육을 추천한다.
이번 TIC 교육은 한의학의 새로운 시장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정신과 육체의 일체를 강조하는 ‘신형일체 심신일여(神形一體 心身一如)’의 한의학적 관점을 통해, 트라우마를 비롯한 다양한 신경정신적 문제에 접근하고 치료할 수 있는 강점을 체감했다. 특히 PTSD 치료에 대한 한의학 임상연구 동향을 통해 1차 의료기관으로서 한의원이 사용할 수 있는 PTSD 진단 도구들이 다양하고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상 사례를 통해 트라우마 기억을 효과적으로 다루기만 해도 신체적 증상이 해소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M&L 치료에서는 트라우마를 없애는 것이 아닌 트라우마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환자가 가진 힘을 키우는 것이 목표라는 점에서 한의학적 접근이 유용하다는 것을 배웠다.
또한 미국의 신경과학자인 Paul D. MacLean이 소개한 뇌삼중구조론(Triune brain theory)을 통해 한의학의 삼단전(정기신)이 뇌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신피질은 이성적 판단 및 성찰을 담당하며 상단전인 기(氣)에, 대뇌변연계는 감정을 담당하는 중단전인 신(神)에, 뇌간은 생명 유지의 중심으로 하단전인 정(精)에 해당하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후 직접 논문을 찾아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성범죄 피해자를 비롯한 트라우마 환자를 위한 한의의료 지원 시스템 구축을 위해 전담의료기관 지정 및 내원 경로 다각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
본과 1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2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 왕복 5시간이 걸리는 경산-서울 간 이동을 감수하고 오프라인 실습에 다녀온 것은 전혀 후회가 없을 만큼 알차고 값진 시간이었다. 한의학적 사고와 시각을 넓히고 임상적으로 트라우마 치료기법을 한의학적으로 해석하고 접근하는 데 초석을 다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교육을 주최하고, 트라우마 환자의 미충족 의료를 개선하는 데 기여하신 대한여한의사회 박소연 회장님, 박경미 부회장님, 최유경 부회장님 및 여러 이사님께 감사드린다. 한의학계의 대선배님들이 닦아주신 길을 본받아 본인도 또한 훗날 좋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을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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