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and Asian Medicines’ 제목으로 기조 발표
지난 6월 20~24일 타이베이에서 ‘The 20th Joint Conference of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the Study of Traditional Asian Medicine (IASTAM) and Asian Society for the History of Medicine (ASHM)’이 열렸다. 원래 2020년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COVID-19 팬데믹으로 인해 연기됐었다.
이번 행사에는 세계 각국에서 참가한 197명의 醫史學/人類學 분야 학자들의 발표가 진행됐다. 필자는 8명의 기조강연자 가운데 한 명으로 초청돼 ‘WHO and Asian Medicines’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한국에서는 김태우, 채윤병, 김현구, James Flowers 교수와 이태형 원장이 참가했다. 국내 한의대 의사학 전공 교수들이 대부분 참가하지 않은 것은 의외였고 실망스러웠다. 국제적으로 한국 의사학계가 지닌 위상이나 역량을 보는 듯했다.
대만 중의계의 괄목할만한 성장
이번 학회에서도 실감한 것은 대만 中醫界의 괄목할만한 성장이었다. 두 번째 기조연설자 Ted Chang(Quanta Computer CEO)의 강연 ‘Digital Transformation of TCM Through AIoT: Bridging Ancient Wisdom with Modern Technology’에서 보듯이 현재 대만 중의계는 AI 등 첨단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필자의 “WHO and Asian Medicines” 발표 모습
COVID-19 치료제로서 한약 소재 NRICM101을 개발해 위기를 황금기회로 만들었던 대만 중의학계의 위력을 이번 학회에서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적지 않은 歐美학자들이 발표장에서 중국어를 수시로 구사하거나, 심지어 일본 이바라키 대학의 마고토 마야나기 교수는 중국어로 발표하기도 했다. 대만 중의계가 지닌 국제적 영향력은 분명 한국 한의계보다 앞서가고 있었다.
필자는 2003년부터 5년간 WHO/WPRO(세계보건기구/서태평양 지역 사무처)의 전통의학 자문관으로서 32차례 WHO 회의를 주관했고, 주로 전통의학의 표준화를 추진하고 역사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귀국 후에는 “功成而不居”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겸손 모드를 지켜왔다.
국내 한의대 교수들은 대부분 WHO의 전통의학 표준화에 대해 별 반응이 없었고, 무관심에 가까울 정도였다. 그러나 그에 비해 대만에서 WHO 전통의학 표준화에 대해 강연을 하면 그들은 항상 깊은 관심을 표명했었고, 급기야 분야가 조금은 다른 이번 학회에서도 기조 강연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막상 WHO 회원국이 아니면서도 WHO의 상황에 대해 정밀하게 관찰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은 그들 학계의 성숙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전통의학 표준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
필자가 이번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 WHO 전통의학 표준화와 관련된 논문들을 읽으면서 뜻밖의 내용을 알게 됐다. 그동안 의사학 관련 저널에서 ICD-11에 전통의학이 포함되는 것을 계기로 WHO의 전통의학 표준화와 함께 필자를 몇 차례 소개한 바 있다.
필자와 Marta Hanson 교수, James Flowers 교수(왼쪽부터)
그러나 문제는 표준화의 시작 배경이 잘못 알려졌는데, 전통의학의 활용과 관련해 UN의 의뢰를 받은 WHO가 필자를 임용하면서 시작된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UN이나 WHO 본부로부터 전통의학 표준화에 관한 요구나 지시를 받은 적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WHO/WPRO 사무처장은 필자에게 “그런 표준 용어 같은 내용은 다루지 말고, 좀 더 학술적이고 과학적 접근이 가능한 주제를 다루라”고 요구했었다. 그에 대해 필자는 “전통의학의 발전과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는 표준 용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내가 그 작업을 완수하겠다”라고 답한 적이 있었다.
아무튼 의사학자들에게 그렇게 잘못 알려진 데에는 일차적으로 필자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깨달았다. 겸손이 미덕이라 생각하고 필자가 주도해 달성했던 성과에 대해 두루 알리지 않았던 것이 그런 결과를 낳았다. 그래서 이번 발표에서는 그런 사실들을 제대로 알리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대학 시절부터 필자의 비전은 한의학의 세계화였고, 세계화를 위해서는 표준화가 선행돼야 함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2003년부터 WHO에서 근무하면서 전통의학을 표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래서 5년간 WHO 전통의학 국제 표준 용어, WHO 경혈 위치 국제 표준, WHO 임상진료지침 개발 가이드를 만들었다.
발표를 마친 후 뜻하지 않은 새로운 인연과 계획
이번 학회에서 필자의 발표에 대한 참가자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전혀 면식이 없는 학자들이 인사하면서, “much impressive,” “amazing,” “admire” 등 다양한 표현을 했다. 여태까지 동일한 내용을 여러 차례 발표했었지만, 이번과 같이 뜨거운 반응은 처음이었다.
2018년 ‘Nature’에서 전통의학이 ICD-11에 진입하는 것과 관련해 필자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글을 게재했었는데, 이번에도 그에 못지않은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발표 다음날 아침 호텔에서 식사를 하는데, Marta Hanson 교수가 필자의 발표 내용을 책으로 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다. 필자가 웃으면서 “나는 역사를 만들었고 당신은 그것을 기술해야 한다”고 했다. Hanson 교수는 그의 지도 학생이었던 James Flowers 교수가 앞으로 그 작업에 참여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했다.
Scientific Program Chair인 黃榮村(황롱춘) 考試院 원장의 평가 모습
폐회식에서는 Scientific Program Chair인 黃榮村(황롱춘) 考試院 원장(전 대만 교육부 장관, 중국의약대학 총장 역임, 대만에는 행정원, 입법원, 사법원, 감찰원, 고시원 등 5개 국가 중심 조직이 있음)이 컨퍼런스 전반에 대해 총평을 했다.
그는 이번 컨퍼런스 발표 내용 가운데 필자의 WHO 전통의학 표준화를 가장 괄목할만한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대만 사회의 어른이기도 한 황 원장님의 평가는 필자에게 커다란 격려가 됐다. 중의계 인물이 아닌 국가 주요 인사가 학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함께 하는 것은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라 아니할 수 없다.
黃榮村(황롱춘) 考試院 원장의 필자 발표에 대한 평가 내용
이번 학회가 필자의 WHO 전통의학 표준화에 관한 마지막 발표장이 되리라 생각하고 참가했었는데, 뜻하지 않게 새로운 인연과 계획을 가지게 됐다.
WHO에서 5년간 미친 듯이 일하면서 세계 전통의학계에 뚜렷한 이정표를 세웠고, 이제는 그를 정확하게 기술해 알리는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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