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아직 따뜻하구나라고 느끼는 일들이 가끔이지만 계속 있는 게 참 신기해”
김은혜 치휴한방병원 진료원장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원장의 글을 소개한다.
암은 의학이 이 정도로 발전한 지금까지 여전히 난치병이라는 사실만으로 무섭게 느껴진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앞에서 돌변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무섭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본인의 죽음을 코앞에서 느끼고 있는 와중에 평생을 보고 지낸 지인들이 돈 몇 푼 때문에 좁디좁은 병실 안에서 서로 쥐어뜯고 싸우고 있는 광경을 보아야 했던 환자들의 심정은 직접 겪지 못한 사람은 감히 이해한다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처량해 보였다.
하지만 어두운 면이 있는 만큼 밝은 면이 더 찬란해 보일 때도 있었다. 우연히 시작된 인연임에도 보는 이로 하여금 ‘저들은 정말로 서로를 진심으로 대했구나’라는 감정을 느끼게 하는 관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뜨거운 진심을 느끼고 나면 저절로 같이 눈물을 흘리는 와중에 내 가슴도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곤 했다. 오늘은 그 중에 한 순간을 나누고자 한다.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네요”
어느 날,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환자 한 분 가실 거야. 혹시 문제 생기면 중환자실 가셔야 되는 분이니까 잘 부탁한다.”
해석하자면 ‘마지막으로 시도할 수 있는 항암제를 컨디션이 될 때까지는 사용해 보려고 계획하고 있고, 언제든지 응급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기로에 있지만, 그럼에도 치료를 적극적으로 해보고 있는 상황인 만큼 잘 신경을 쓰라’라는 의미였다.
직접 본 환자의 컨디션도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다. 70대 후반에 누적된 투병 세월이 있음에도 잘 걷고, 잘 먹고, 그리고 잘 웃으셨다. ‘허허’ 웃으며 말간 얼굴을 한 노인이 링거 거치대를 끌며 뚜벅뚜벅 걸어 다니는 모습을 모두가 좋아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달랐다. 폐로 시작된 암이 왼쪽 오른쪽을 막론하고 커다랗게 차지해 있었고 간과 척추 뼈에도, 그리고 신장의 일부까지 전이가 되어 있었다. 몇 번의 폐렴에 중환자실을 들락거리고 항암제가 바뀔 때마다 희망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고문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모를 선택을 반복해 온 사람이 어떻게 ‘허허’ 웃고 다니는지, 또 지친 기색 너머로 여전히 반짝거리는 눈빛을 가졌는지 모를 어르신이었다.
입원 둘째 날, 어르신 옆에는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간병인 한 분이 상주하기 시작했다. 가족의 성화에 못 이겨서 결국 한 분을 모시게 되었다고 말하면서도 간병인 덕분에 일상생활이 훨씬 수월해 진 게 보였다. 당시 환자 말로는, 식사가 끝난 식판을 반납대에 대신 가져다 놓는 것부터도 편해졌다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원래 자기가 먹은 건 본인이 치워야 되는 건데,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네요.”, “아이고 어르신. 이게 원래 내 일인데요 뭘.”, “직업이라 하셔도 어쨌든 제가 편해진 건 맞으니 고맙다고 말씀드려야죠.”
이게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 무드였다. 그 때는 환자의 태도가 따뜻한 무드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간병인도 결이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제야 간병인의 얼굴이 보였다
간병인이 환자를 신경 쓰고 있는 지는 몇 가지만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환자에게서 나는 냄새, 환자가 입고 있는 병실복의 청결, 베개 시트의 색깔, 침대 시트가 주름지지 않게 잘 펴져 있는지, 그리고 본인 개인물품의 청결 등 몇 가지를 본 뒤, 간병인이 환자를 터치하는 행동에서 우악스러운 느낌이 드는 지까지만 관찰하면 된다.
다 파악하는 데에 5분도 걸리지 않고 병원에서 가장 티가 잘 나는 것들이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그 간병인은 완벽했다. 사실 프로로서 완벽한 걸 넘어서서 환자를 유난스럽지 않으면서도 꼼꼼하게 챙겼다.
날이 좋을 때 산책을 해야 한다며 추워서 귀찮다고 말하는 환자에게 본인의 귀마개를 씌워주고 데리고 나가고, 나이 들수록 밤에 숙면을 하려면 자기 전에 화장실을 한 번 갔다 오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며 본인이 먼저 잠깐 졸고 있었어도 시간에 맞춰서 챙겼다.
폐가 안 좋은 사람은 식후 몇 분은 앉아 있어야 된다고 들었다며 점심 직후에는 휴게실에서 항상 같이 앉아있다 들어갔다.
그리고 그 때마다 환자는 간병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아, 귀찮다고 투정 부렸는데 역시 선생님 말씀 듣길 잘했네요.”, “덕분에 오늘은 잘 잤습니다.”, “챙겨주시니 입맛도 잘 도네요.” 그렇게 결이 비슷한 그 둘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신뢰가 쌓이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러나 당시 내가 간과했던 것이 환자의 건강 상태에 대해 들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보호자’라는 것은 법적 보호자뿐이라는 생각에, 마음의 준비도 법적 보호자에게만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점이었다.
환자는 서서히 악화되어 갔다. 예상된 일이었다. 기침, 주사, 수액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양만 봐도 그가 조만간에 중환자실로 다시 가게 될 것이라고 교수님은 우려했다. 물론 그 일을 막는 것이 의료인의 역할이지만 보호자에게는 설명이 필요했고, 그들도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날이 좋았던 어느 날, 환자는 갑자기 다량의 피를 쏟아내며 주저앉았고 혼자 힘으로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상태를 확인하고는 교수님, 중환자실, 보호자에게 전화를 돌리며 이동 준비를 마치기까지 걸린 시간은 1시간도 되지 않았다.
정신없이 정리를 마치고 곧 이동하겠다는 말을 꺼내려고 처치실에 들어간 순간, 그제야 간병인의 얼굴이 보였다. 간병인은 침대에 멀찍이 떨어진 채 허공을 쳐다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간 수 주 동안 바로 옆에서 챙겨온 것이 본인임에도 위급한 순간에는 제일 뒤로 밀려나며 지금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듣지 못 할뿐만 아니라 들을 수 있는 법적 권한도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구 선생! 구 선생! 나 봐요!”
조심스럽게 다가가 “어르신 중환자실로 가실 건데요, 교수님들도 다 알고 계신 상황이라 잘 극복하실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간병인은 물었다. “평소에는 피 나온 적 없는데...내가 놓친 것 같나요? 아까 넘어질 때 내가 받쳐줬어야 했는데 어디 부러져서 피가 나오는 건가요?”
대답하려는 순간 스테이션에서 ‘지금 이동할게요!’라고 말하며 처치실 문이 벌컥 열렸고, 환자 침대의 고정대가 ‘탁’하고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것과 동시에 환자가 외쳤다.
“이봐요! 나 봐요!” 순간 모두가 행동을 멈추고 환자를 쳐다봤다. 환자는 오른손을 앞으로 번쩍 뻗으며 간병인을 가리키면서 재차 말했다.
“구 선생! 구 선생! 나 봐요!” 그제야 간병인도 환자를 쳐다봤다. 두 시선이 만나자 환자는 외쳤다. “자네 잘못 없어! 그러니 잘 살다가 또 봐요. 둘 다 잘 살아야 또 볼 일이 있는 거야!”
정적이 한 번 더 흘렀지만 누군가의 ‘이동하셔야 돼요!’라는 외침에 분위기는 다시 분주해졌고 환자는 병동을 떠났다.
결말을 말하자면 환자는 잘 회복되었고, 두 분은 다시 만났으며, 치료가 종료된 이후에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동하셨다. 듣기로는 병원을 완전히 옮긴 이후에도 간병인 선생님은 환자를 따라 움직였고 임종도 지켰다고 한다. 나를 평소에 ‘자기’라고 부르며 이 소식을 전해 준 시니어 간호사 선생님이 덧붙였던 말을 함께 전하며 글을 마친다.
“우리는 평생 아픈 사람만 보는 직업인데도 일하는 중에 세상이 아직 따뜻하구나라고 느끼는 일들이 가끔이지만 계속 있는 게 참 신기해. 이래서 내가 이 일을 하나 봐, 자기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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