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탐구 과정을 통해 질병을 살피는 것은 한의학, 한방내과학이 가진 본연의 자세
이제원 원장
대구광역시 비엠한방내과한의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방내과 전문의인 이제원 비엠한방내과한의원장으로부터 한의사가 전공하는 내과학에 대해 들어본다. 이 원장은 내과학이란 단순히 몸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질환의 내면을 탐구하는 분야이며, 한의학의 근간이 곧 내과학이라면서, 한방내과적으로 환자를 어떻게 진료할 것인가의 해답을 제시해 나갈 예정이다.
과학적 탐구 방법은 크게 귀납적, 연역적 방법으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진료실에서 이뤄지는 진료 과정은 일련의 가설 연역적 방법에 따른 추론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등 통증이 발생해서 한 달 넘도록 나아지지 않아요. 주로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 편인데, 허리 통증인가 싶어 치료받았으나 차도가 없습니다.”
60대 여성 환자가 내원했다. 약 1개월 전 발생한 등 통증에 대하여 근골격계 문제에 초점을 두고 치료받았지만, 호전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공복 시 상복부 통증과 소화불량을 함께 호소했다. 활력징후는 모두 정상 범위 내에 있었으며, 구역 및 구토 증상은 없었다. 상복부 우측으로 압통과 근성방어 징후가 관찰됐으나 반동압통, 복부팽만은 관찰되지 않았다. 복용 중인 약물은 없었고, 과거 난소낭종으로 자궁절제술을 받은 병력이 있었다.
이에 근골격계 문제, 소화기 문제, 신장 및 요로 문제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었으며, 질병의 내면을 살피기 위한 진료. 즉, 과학적 탐구를 시작했다.
가장 유력한 가설을 가려내기 위해 조금 더 세밀하게 병력 청취와 진찰을 시행했다. 환자의 등 통증은 신체 활동과 큰 연관성이 없었다. 통증은 밤에 잠을 자려고 침대에 바로 누운 자세로 있을 때 오히려 심해지고,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는 경감된다고 했다. 그리고 늑골척추각 압통이 우측에서 뚜렷하게 관찰됐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근골격계 문제보다 소화기 또는 신장 및 요로의 문제가 더 의심됐다.
복부 초음파 검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췌장 두부에서 경계가 불분명한 저에코 음영이 관찰됐고, 좌측 신장 상극에서 낭성 병변(5 cm × 6 cm × 5 cm)이 관찰됐다(그림 1).
이에 추가 평가를 위한 복부 전산화단층촬영(CT)을 시행했다. 그 결과 주 췌관이 두드러져 보이고, 좌측 신장에서는 65mm 크기의 낭종이 관찰됐으며, 그 외 상복부의 다른 병변은 관찰되지 않았다(그림 2).
영상의학과에서는 두드러진 주 췌관이 노화 과정에 의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이와 함께 간 기능 검사, 신장 기능 검사, 췌장 기능 검사, 염증 수치(CRP, ESR) 검사, 혈액학적 검사, 소변 검사, 종양표지자(AFP, CEA, CA19-9, CA125) 검사 등 진단의학적 검사도 시행했지만 이들 검사에서는 이상 소견이 관찰되지 않았다.
남은 유력한 가설은 식도 또는 소화성 궤양과 관련한 문제라는 것이었다.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상부소화관내시경(EGD) 시행까지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환자의 증상 중 식도 또는 소화성 궤양 질환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그것은 등 통증이 특히 밤에, 바로 누운 자세로 있을 때 심해진다는 것과 늑골척추각 압통이 우측에서 뚜렷하게 관찰된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내시경에 앞서 자기공명담췌관조영술(MRCP)을 포함한 자기공영영상(MRI) 검사 시행을 권고했다.
그 결과 췌장 두부에서 2mm 크기의 낭성 병변이 발견되었다(그림 3).
하지만 병변의 크기가 너무 작아 분지췌관형 유두상점액종(branch duct type IPMN)인지 낭성신생물(cystic neoplasm) 또는 장액성종양(serous tumor) 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나는 환자의 증상과 MRI 소견을 바탕으로 少陽陽明合病에 사용하며, 和解少陽, 內瀉熱結 작용이 있는 大柴胡湯을 가감하여 사용했다. 투약 후 환자의 증상은 호전되기 시작했으며, 3개월 후 완전히 개선됐다. 그리고 췌장 두부의 낭성 병변에 대해서는 추적 관찰을 이어갈 예정이다.
내과학은 질병의 내면을 탐구하는 분야다. 그리고 내과학의 기본자세는 인체와 관련된 기초 과학 지식을 환자의 진단과 치료에 적용하며, 과학적인 태도와 탐구 과정을 견지하는 것이다.
『傷寒論』은 한의학이 과학적 탐구 과정을 통해 질병의 내면을 살피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원전 중 하나이다.
그리고 大柴胡湯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大陽病, 十餘日, 反二三下之, 後四五日, 柴胡證仍在者, 先與小柴胡湯. 嘔不止, 心下急, 鬱鬱微煩者, 爲未解也, 與大柴胡湯下之, 則愈.”
『傷寒論』이 저술될 당시의 의사들도 지금처럼 과학적 탐구 과정을 통해 병을 진단하고, 치료하였을 것이다. 단, 차이가 있다면 당시에는 초음파, CT, MRI와 같은 도구가 없었고, 혈액 및 검체를 이용하여 질병의 내면을 살피는 기술이 없었다는 것뿐이다.
초음파, CT, MRI와 같은 진단기기와 혈액 및 검체를 이용한 검사 기술은 현대과학의 산물이며, 도구일 뿐이다. 국민 보건의 향상을 이루고, 국민의 건강한 생활 확보에 이바지함을 사명으로 하는 것이 의사라면, 한의사든 양의사든 진료 과정에 필요한 도구 사용에 결코 제한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과학적 탐구 과정을 통해 질병을 살피는 것은 한의학이 가진 본연의 자세이며, 한의사는 한의학적 이론과 관점에 따라 현대과학이 만들어 낸 도구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것이 한의사가 전공하는 내과학, 한방내과학이 견지해야 할 기본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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