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의 한의학 <22>

기사입력 2023.08.1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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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의 기후위기 I
    “열기는 새로운 코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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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지구온난화에서 지구비등화로

     

    최근 국제뉴스의 대부분은 기후 관련 내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기후 뉴스에 가려질 정도다. 2023년 6월은 가장 더운 6월의 기록을 갱신하였다. 7, 8월에도 기록 갱신의 여름은 계속되고 있다. 혹서의 열기가 강타한 지역은 유럽 남부와 미국 남부가 대표적이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그리고 프랑스 남부는, 40도 이상을 표시하는 짙은 빨간색으로 날씨 지도가 도배되었다. 그리스의 고대 유적지 아크로폴리스에 이례적으로 관광객의 접근이 제한된 것도 고온 때문이었다. 미국도 고온의 여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40도가 넘는 무더위가 캘리포니아, 텍사스, 아리조나, 루이지에나, 조지아 등 미국 남부 주들을 달구고 있다. 하기인 북반부의 전 세계가 비슷한 상황이다. 과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바로 앞 문장에서도 사용한 “지구온난화”라는 용어를 사용할 시기는 지났다고 말한다. 그는 지구온난화(溫暖化)의 시대는 끝나고, 지구비등화(沸騰化)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강조했다. 생소한 용어를 통해, 유엔 사무총장은 그동안 기후변화를 지시하기 위해 사용하던 글로벌워밍(지구온난화)이 너무 온건한 표현이라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사실 워밍(warming)은 지금의 기후위기를 표현하기에는 긍정적인 뉘앙스가 크다. 물리적, 심리적 따뜻함에 모두 사용될 수 있는 워밍으로는, 재앙의 수준에 이른 지금의 기후위기를 말하기에 적당하지 않다. 경각심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지금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유엔 사무총장은 글로벌 보일링(global boiling)이라는 용어를 내세우고 있다. 

     

    국내 언론에서는 유엔 사무총장의 “글로벌 보일링”을 지구열대화라고 번역한 경우가 많았다. 지구온난화에 대비한 표현으로 생각된다. 지구열대화는, 열대, 온대, 한대의 기후를 가진 지구가 모두 열대 지역화된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쉽다. 하지만 온대, 한대보다는 덥겠지만, 열대기후도 사람이 살만한 기후다. 열대에도 계절에 따른 나름의 기온 변화가 있고, 우기와 건기가 있고, 습할 때와 건조할 때가 있다. 지구가 열대화되더라도 이러한 순환하는 변화가 있다면 거기에 적응하며 생명들은 살아갈 수 있다. 글로벌 보일링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순환의 고리가 끊어지는 돌출적인 기후변화를 말하고자 한다.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글로벌 보일링을 지구비등화로 표현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번역일 것 같다. 

     

    지구비등화에 대해 조금 길게 논의를 하는 것은, 지금의 기후문제를 직시하고 극복하기 위해 제안된 용어가, 그 본래의 의미에 맞게 사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워밍에서 보일링으로의 전이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 수립된 6월 최고기온 신기록은 그 지위가 매우 취약한 기록이다. 언제든지 이 기록은 깨질 수 있다. ‘기록은 깨라고 있는 것’이라는 말이 흔히 회자될 경우가 바로 앞으로의 여름 최고기온에 관한 것이다. 

     

    유엔 사무총장이 새롭게 명명한 “지구비등화”가 지금의 상황을 적시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이 단절적 변화를 지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등(끓음)은, 액체에서 기체로 상이 바뀔 때 일어나는 변화다. 이것은 국면이 바뀌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를 의미한다. 이 단절적 변화의 시대는, 워밍과 같은 동일한 상 내에서의 변화가 아니다. 이것은 지금과는 다른 비약적 변화가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등이라고 명명될 수 있는 비약적 변화는, 또한 기후위기와 연결된 다수의 문제를 돌아보아야 하는 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절적 변화인 만큼 그와 연결된 생태환경적,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이슈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인류세의 한의학>은 “연결의 기후위기”라는 제목 아래에 몇 번의 연재 글을 이어가고자 한다.

     

    먼저 비등화가 의미하는 미증유의 기온상승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 문제를 살펴보자. 기온상승은 단지 기록적 고온이 장기간 지속되는 것 이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기온은 많은 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온은 당장 건조함과 연결된다. 고온이 습기를 마르게 하기 때문이다. 당장 40도의 고온이 지속된 그리스 남부의 로도스(Rhodes) 섬에서는 건조해진 산야를 태우는 산불이 발생했다. 휴양지로 유명한 이 섬에서 수영복을 입고 대피를 하는 관광객이 있을 정도로, 불은 바싹 마른 초목을 타고 급격하게 퍼져나갔다. 대지를 말리는 고온은 또한 폭우로 연결된다. 고온이 많은 수분을 증발시키고, 또다시 폭우를 쏟아붓는다. 이번 여름 국내에서 기후 관련 문제로 대두된 폭우 또한 기록 갱신의 고온이 공급하는 수분의 양과 연결되어 있다. 


    “열기는 새로운 코비드”

     

    지구온난화에서 지구비등화로의 변화는 단절적인 변화인 만큼 그 여파도 크다. 무엇보다도 기록 갱신의 고온은 새로운 건강 문제의 국면과 연결된다. 지난 7월 20일, 뉴욕타임즈는 다음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유럽의 노년들에게 열기(서기(暑氣))는 새로운 코비드”라는 제하의 기사는 이탈리아 현지 리포트를 통해 유럽의 혹서와 건강의 위험을 논의하고 있다. 먼저, 이 기사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논의를 하는 것이 시선을 끈다. 코비드-19가 인류사회를 강타했던 때의 기억을 복기해 보면 이탈리아는 매우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특히 코비드 팬데믹 피해가 속출하던 첫 1년 동안 이탈리아는 많은 노년이 코비드에 의해 희생된 국가였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가장 고령화된 사회라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1). 기사는, 지난 팬데믹 때 많은 노년이 피해를 본 이탈리아와, 40도 이상의 고온이 지속되는 2023년의 이탈리아를 오버랩시키며, 서기(열기)와 코비드를 연결하고 있다. 

     

    실제 노년 건강의 문제에서 서기의 문제는 코비드와 매우 유사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코비드-19와 같이, 서기는 모든 사람에게 무차별적이지만, 특히 노년들에게 건강문제를 야기한다. 코비드-19의 고위험군인 노년 인구가, 혹서에도 고위험군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코비드-19와 같이 격리의 문제를 야기한다. 코로나 집중방역 기간의 경우처럼, 노년은 고온의 여름에 서기에 노출되지 말아야 할 대상이 된다. 국내에서도 어르신들은 실내에 머물러야 한다는 혹서기 건강 가이드를, 방송과 재난 문자를 통해 수시로 접한다. 이것은 또한 노년들의 정신건강과 연결된다. 코비드-19 팬데믹 기간 동안 격리로 인한 정신건강 문제는 잘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고위험군인 노년의 문제가 특히 중요한 이슈로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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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기는 서기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기에 연결된 건강의 문제는 정신건강에서 그 연결이 종결되지 않는다. 서기는 다른 질병의 문제들과 또한 연결된다. 한의학의 의서들은 이 문제를 강조해 왔다. 『내경』은 “여름에 서에 상하면 가을에 학질이 온다(夏傷於暑 秋必痎瘧)”라고 논하며2) 서병과 다른 질병과의 연결에 주목할 것을 촉구한다. 강조해야 할 부분은, 단절적 기후변화의 시대에는 서기의 양태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 다양한 서기에 상하여, 진액이 소모되고, 정기가 온전치 못한 상황에서, 학질뿐만 아니라 다양한 병증이 일어날 수 있다. 『동의보감』은 서문(暑門)에 하나의 섹션으로 연결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소제목으로 “상한이 전변되어 온병과 서병이 된다(傷寒傳變爲溫爲暑)”는 것을 강조하며3), 상한과 서병을 연결하고 있다. 서병이 (학질과 같은) 다른 병증과 연결될 수도 있고, (상한과 같은) 다른 질병이 서병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지구비등화와 인구고령화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고령화 사회가 진행될수록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서병의 문제가 전체 인구의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할 노년 인구에 해마다 새로운 코비드의 양태로 영향을 줄 것이다. 지구비등화와 서병, 또한 서병과 연결된 다른 질병들 그리고 인구변화와 같은 사회변화에까지 다각적 연결 속에서 지구비등화 시대의 몸과 기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이다(다음 연재글에서 “연결의 기후위기 II에서 계속).


    1) 이 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인구(약 6천만 명)의 24%가 65세 이상의 노년 인구다. 80세 이상의 고령 인구도 450만 명이나 된다.

    2) 「음양응상대론(陰陽應象大論)」에서 논의하고 있는 문장이다.

       『내경』은 서병뿐만 아니라 다양한 외감의 문제를 제기하며, 한 계절을 건강하게 보내지 못하면 다음 계절에 어려운 병증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경각의 논의를 하고 있다.

     

    3) 「잡병편(雜病篇)」 “서(暑)”의 두 번째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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