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경 학술이사 “전문인력 확보 중요…적극적 참여와 관심 당부”
최 유 경 대한여한의사회 학술이사
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편집자주]
대한여한의사회(회장 박소연)에서는 2021년부터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이하 전성협)과 함께 성폭력 트라우마 한의진료 시범사업을 추진해 왔다.
여한의사회는 성폭력을 비롯한 여성 폭력에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환자들에게 적절한 한의진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전국적인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본란에서는 최유경 학술이사를 만나 해당 사업에 대해 들어봤다.
Q. 성폭력 피해자 봉사 사업을 지속해 왔는데.
대한여한의사회에서는 성폭력피해자 한의의료지원시스템 구축을 위해 교육·연구·봉사 영역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중 봉사 영역의 경우, 전성협과의 논의를 통해 현장의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하고 있고, 규모가 작더라도 실질적이고 제대로 된 한의 치료를 제공하고자 하는 취지로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다.
아무래도 한의사들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영역은 트라우마로 인한 만성적인 신체 증상들에 대한 치료와 관리다. 약물, 상담만으로는 어렵다는 것을 피해자들을 직접 지원하는 종사자들이 더 잘 알고 있다.
Q. 봉사진료 진행 과정은?
봉사 형태의 경우 많은 고민 끝에 결정했다. 보통 의료봉사는 소수의 의료진이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가서 진료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경우는 피해자들이 자신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기 때문에 일반적인 방법으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일대일로 적합한 한의원을 매칭해 피해자 한명 한명이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기획하게 됐다.
치료방법은 진료현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제공할 수 있도록 계획, 참여하는 한의사 회원들이 침, 뜸, 부항을 비롯해 상담과 탕약까지 모두 활용해서 치료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봉사 과정이 새로운 형식이기도 하고, 환자의 특성상 피해자 개개인의 개별적인 문제를 고려해 가면서 세밀하게 진행해야 했던 사업이라 기획하고 어레인지하는 입장에서는 사실 신경 쓸 것도 많고 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효율적으로, 빠르게, 대규모로, 진행되긴 어려웠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일은 효율성과 신속성만으로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고, 조급하게 다가가지 않았다. 이렇게 현장과 조율하면서, 조심스럽게 가능한 방식들과 의미 있는 일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Q. 앞으로 전국적인 네트워크망을 구축할 예정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만성적인 신체화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 마음 놓고 치료받을 의료기관을 찾는 일이 의외로 어렵다. 사건화가 된 경우에는 국가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 해바라기센터에서 의료적·법적·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사건화가 되지 않았거나 신체화 증상으로 만성적인 고통이 지속되는 경우에서의 의료지원 시스템은 미비하다.
피해자들과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들은 적절한 의료기관을 찾아 전전하게 되는데 혹시나 의료기관에서 2차피해를 받지는 않을지, 정신과 약에 너무 쉽게 노출되는 것은 아닐지 등의 걱정이 많다. 현장에서 이런 고민이 있음에도 피해자나 피해자 지원단체들이 한의치료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 한의의료기관을 선택할 생각을 미처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여한에서는 지속적으로 관련 단체들과 간담회도 열고, 미팅도 하면서 트라우마 한의치료에 대한 필요성을 알려왔고, 봉사도 진행하면서 환자들이 한의치료를 통해 개선되는 경험과 사례들이 쌓이면서 이제는 오히려 전성협 측에서 더 많은 문의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봉사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평소에도 치료를 의뢰할 수 있는 한의원을 문의하기도 한다. 인식도, 상황도 많이 변화된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그 공급을 좀 더 확대하고 탄탄한 역량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숙제다.
이런 생각 속에서 좀 더 체계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을 세우게 됐다.
우선 여한이 교육 플랫폼 역할을 해서 트라우마와 관련된 여러 영역의 콘텐츠를 모아 교육프로그램을 제공, 트라우마 환자의 일차 한의진료를 위한 역량을 키워 나가려고 한다. 이후 교육과정을 수료한 한의사 회원과 전국의 성폭력상담소 또는 전국범죄피해자 지원연합회 등 사회단체와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만들 계획이다. Trauma informed care가 가능한 한의 전문 인력풀을 확보할 수 있고 동시에 전국에 거점이 되는 한의 일차의료기관이 마련되는 것이다. 그러면 피해자들이 의료기관을 찾아 헤매지 않고, 지역에서 쉽게 의료기관과 연결이 가능하며, 피해자들의 미충족 의료를 개선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Q. 향후 지부와는 협업 계획도 있는지?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여한의사회 지부뿐만 아니라 대한한의사협회 시도지부의 관심과 참여가 매우 필요하다. 각 지부에 우리의 의도와 계획에 대해 많이 공유하고, 공감을 이끌어내 참여도를 높일 계획이다. 앞으로 지부에서 추가적인 설명이나 내용 공유를 요청한다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
Q. Trauma informed care란 용어가 낯설다.
‘Trauma informed care’란 트라우마의 영향에 대한 이해와 대응에 기반을 두고 신체적·심리적·정서적 안전을 강조하는 관리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치료자는 치유 지향적인 효과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환자의 과거와 현재 삶 전반에 대한 그림을 파악할 의도와 역량을 갖춰야 한다.
우리나라 의료기관에서는 아직 이러한 개념이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성폭력 피해자 진료를 위해서는 증상 치료에 전문역량을 갖출 뿐 아니라 민감한 성인지감수성을 바탕으로 여성폭력사건과 피해자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야 하고, 트라우마로 인한 환자의 특수성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다양한 학제 간 통합 교육과정이 필요하지만, 학부 교육이나 현 제도권 교육과정에는 이러한 시스템이 미비한 상황이다.
Q. 이외의 계획하고 있는 교육프로그램은?
올해에는 그동안의 단발적 교육에서 벗어나 좀 더 심도있게 교육콘텐츠를 모아 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전통적인 신경정신과적인 접근, 뇌과학적인 접근, 신경내분비적인 접근 등 이론적인 내용뿐 아니라 몇 가지 실전에서 치료에 활용할 수 있는 한방신경과 치료기법에 대한 소개와 실습까지 경험할 수 있는 과정이다. 여성폭력에 대한 법적·제도적·사회적 이해에 대한 콘텐츠도 포함된다. 여러 학회들과 외부 인권단체, 법조단체에서 강의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전국에서 참여할 수 있도록 온라인 강의로 대부분 공개하려고 하고, 실습의 경우 오프라인으로 진행되는 블랜딩 강의가 될 예정이다. 지금 준비 중에 있고, 6월에 HAVEST에 강의가 오픈될 계획이다.
Q. 기타 강조하고 싶은 말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여한의사회는 ‘여성폭력피해자를 위한 한의의료지원시스템 구축’을 위해 교육·봉사·연구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한의계 전문인력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고 각 지자체 담당부서와 성폭력상담센터, 그리고 대한한의사협회 시도지부와의 연결을 통해 협업을 계획하고 있다.
실제로 의료기관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일어나기도 하기 때문에 여성폭력 피해자 진료 분야에 해당 전문성을 가진 한의사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고, 한의계에 해당 전문인력의 풀을 늘리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여한의사회에서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이 내달 26일에 오픈될 예정이니 뜻을 함께할 한의사 회원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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