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혜 경희대학교 산단 연구원
(전 강동경희대한방병원 임상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경희대 산단 연구원의 글을 소개한다.
지난 한 달 간 개인적인 부고 소식을 3번 잇따라 들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축하할 일보다 조문갈 일이 더 많아진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연달아서 먹먹한 소식을 듣는 건 처음이라 문득문득 머리가 멍해진다.
그 중 한 사람은 미국에서 신장암으로 1년 반 간 투병하다가 말기 판정을 받고 호스피스 케어를 받고 있었던 가족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병원으로부터 전화가 와 ‘이번 주를 넘기기 힘들 것 같다’라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짐을 싸 미국으로 건너갔다.
병실 문을 열자, 진통제에 취해 의식이 떨어져있는 상태이며 보호자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라는 의료진의 말과 다르게,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는 삼촌이 눈을 번쩍 뜨더니 “누가 왔는데?”라며 시선을 맞췄다. 그리고 나를 알아보고는 눈물을 펑펑 흘리며 말했다. “너랑 너희 엄마가 그렇게 힘들 때 삼촌이 그 한 번을 안아주지도 못해서 너무 미안했다.”
이런 순간을, 의학적인 이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과 마지막 인사 기회의 순간을 환자를 통해 수없이 경험했었다. 그럼에도 막상 내가 직접 겪어보니, 그렇게 기적적으로 의식을 차린 환자의 품 안에 안긴 체 엉엉 울던 보호자들의 심경이 새삼 더 가까이 느껴졌다. 그리고 안타깝게 기억되고 있던 몇몇의 얼굴들이 지나갔다.
“나 괜찮아”
한 환자는 이미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언니에게 짐이 될 수 없다며 유방암을 진단받은 것과 투병하는 내내 가족에게 비밀로 했었다. 직업이 프리랜서 작가였는데 가끔 입원한 상태로 언니의 전화를 받을 때면 일 핑계를 대고 얼른 끊곤 했다.
잘 버텼었고 처음에는 완치까지도 기대했었는데 결국은 아무 치료로도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끝내 환자가 언니에게 얼마 남지 않음을 고백한 그 날, 만신창이의 모습으로 병원 복도에 주저앉아 오열하던 언니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쓰러지려는 언니를 부축하며 환자는 ‘나 괜찮아’라고 계속 말했지만 언니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읊었다. “내가 나 살기에도 너무 바빠서... 괜찮다는 너의 말에 내가 한 마디만 더 물어봤어도 혼자서 이렇게 싸우고 있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 딸, 잘 갔다 와”
또 다른 환자는 딸의 결혼식을 앞두고 폐를 끼칠 수 없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심지어 딸에게조차도 뇌암을 치료받고 있다는 것을 숨겼다.
결혼 준비 때문에 아무리 바쁘더라도 조금씩 말과 걸음걸이가 이상해져가는 아버지의 병세를 결국은 알게 된 딸이 아버지를 끌고 오다시피 모셔와 나에게 말했다. “제 결혼은 아버지 치료 일정이랑은 아무 상관없고요, 그냥 모든 치료 다 받게 해주세요.”
딸의 눈물과 호통 아닌 호통에도 묵묵히 있던 아버지는 딸이 병원을 떠나자마자 나에게 말했다. “치료는 필요 없고요, 딸 결혼식에 멀쩡한 척 걸어 들어갈 수 있게만 해주세요.” 마음 같아서는 둘 중 한 사람의 말은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과 기적을 바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환자는 딸의 손을 잡고 결혼식에 들어가지도 못했고, 딸은 결혼기념일 다음날이 아버지의 기일이 되었다.
결혼식 하루 전 날, 딸의 손을 쓰다듬으며 환자가 했던 말, “우리 딸, 잘 갔다 와”, 그리고 결혼식 다음 날 눈을 감고 있는 아버지의 손을 쓰다듬으며 딸이 했던 말, “아빠, 잘 기다리고 있어. 하늘에서 식 한 번 더 올릴 때는 우리 손잡자”, 지금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왜, 하필 꼭~~”
죽음과 이별이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인데 이런 지난 일들을 떠올릴 때면 ‘왜 하필 꼭 이런 사연이 있는 사람들에게만 유독 더 비극적인 이별이 닥치는 걸까’라는 세상에 대한 원망과 회의감이 들곤 한다.
‘착하게 산 사람이 더 빨리 죽는다’라는 항간의 말도 있지 않은가. 그러다 한편으로는 ‘사는 것이 고통이지, 죽음은 평안한 휴식이다’라고 말했던 퀴블러 로스의 말을 생각하면 이른 이별을 ‘그간 고생 많았다. 충분히 했으니 이제 쉬러 와라’는 위로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정말 그런 것이라면, 남은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가끔은 먼저 간 이들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이라도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보호자들이 종종 말했던 꿈을 통해서든, 자주 풍기던 향취로든, 함께 했던 장소로 이끌어서든. 이러한 우연들이 진짜건 아니건 간에 이별이 슬픔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남은 이들의 동기와 희망이 되는 일들이 반복되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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