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골의학 현장을 가다②]
의대평가 보고서인 ‘플렉스너 보고서’ 이후 교육 커리큘럼 격변
교육 과정 의대 중심으로 개편 후 1973년 미 전역서 진료권 획득
DO 84.7%는 진로 가정의학과‧내과‧소아과 등 1차진료 분야 진출

미국 정골의학(Osteopathic Manipulative Medicine, OMM)은 의료 분야에서 의학(Medicine)과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과 상호 경쟁을 하면서 성장해 왔다.
창시자 앤드류 타일러 스틸(Andrew Talor Still)에 의해 만들어진 OMM은 19세기 중반 수기 치료를 강조하는 민간의료로 시작됐다.
치료 원리로 사람은 자기조절 신체를 가지고 있으며, 인체가 정상적인 구조 관계일 때는 자기치유와 질병방어가 가능하다는 믿음에 기초했다.
정골요법이 널리 알려지면서 스틸은 미주리주 콕스빌에 세계 최초의 Osteopathy School도 설립했다. 교육 과정을 마친 사람은 정골의학 의사(Doctor of Osteopathy, DO)의 자격을 부여했다.
1892년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 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는 강사진에 합류하면서 점차 의학 교육 형태를 띠게 됐다. 그는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산과학 등 당시 의학 과목을 정골의학에 대대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1896년에는 미국 최초로 버몬트 주에서 정골의학을 라이센스로 인정했고, 1897년에는 미국 정골의학회(American Osteopathic Association, AOA) 전신인 미국정골의학의 발전을 위한 학회가 설립됐다.
하지만 20세기 초 AOA 소속 DO들은 ‘레이션 오스티오패스(Lesion osteopath)’ ‘브로드 오스티오패스(Broad osteopath)’로 나뉘어 서로 분파를 형성했다. 레이션 오스티오패스는 정통 수기 치료법을 브로드 오스티오패스는 MD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외과수술과 같이 그들의 치료법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플렉스너 보고서 하나에…DO 대학 ‘대변혁’
정골의학은 1920년을 기점으로 대변혁을 맞게 된다. 교육학자인 에이브러햄 플렉스너(Abraham Flexner)의 보고서 때문이었다. 앞서 플렉스너는 미국 교육기관에 대한 평가서를 출판한 뒤 카네기재단의 요청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의과대학을 평가했다.
의과대학의 난립으로 연구나 임상교육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는 미국의학교육위원회의 요청이었다. 예상대로 평가보고서는 미국 의학교육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의학과 정골의학에 대한 신랄한 보고서로 인해 미국 내 많은 의과대학이 폐교 됐다. 1920년 이전 미국, 캐나다 전역에 있던 155곳 의과대학 중에서 약 10년 뒤인 1929년에는 76개로 감소했다.
플렉스너는 DO들도 MD와 같은 질환을 치료한다 보고 동일한 교육이 이뤄져야 판단해 DO대학을 보고서에 포함시켰다. 조사결과 DO대학은 교육, 임상 면에서 MD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보고서는 AOA로 하여금 대학에서 정골의학을 가르치는데 있어 인증기준을 설립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결국 전체적인 시대의 흐름은 플렉스너 보고서와 맞물려 브로드 오스티오패스 그룹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DO 대학들은 수술, 화학 및 생물요법 등을 교과과정에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DO대학의 기초과학시험 합격률은 1942~44년 52.5%에서 1951~53년 80%로 MD대학 합격률(87.1%)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랐다.
MD와 거의 동일한 의학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1973년에 이르러서는 미국 50개 주 모두에서 ‘완전한 진료권(Full Practice Rights)’을 획득했다. 즉, 수기치료 외에도 수술치료, 약물처방 등 MD와 마찬가지로 제한 없는 모든 영역의 진료가 가능하게 됐다.
이에 대해 MSU COM 리사 디스테파뇨(Lisa DeStefano) 학과장은 “정골의학에 의학을 덧씌운 게 아닌 의학 과정에 정골의학을 덧씌웠기에 오늘날 MD와 동등한 지위와 완전한 진료권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의대 교육 과정에 별도 211시간 정골의학 교육 시행
실제 모든 DO 대학은 의과대학(Medical school)과 동일한 교육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단 이와 별도로 211시간의 정골의학(OMM)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DO 기초의학과목 강의 시수를 살펴보면 해부학이 216시간, 약리학이 111시간, 병리학, 생리학은 각각 99시간, 97시간에 달한다.
DO 임상의학과목 강의 시수에서도 가정의학과 내과의 경우 각각 191시간, 154시간에 달할 정도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전체 DO 중 84.7%가 근골격계가 아닌 1차진료를 수행할 수 있는 과목(가정의학과: 63%, 내과:15.5%, 소아과: 6.2%)을 선택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미시건 주립 대학교 정골의대(College of Osteopathic Medicine) 또한 이러한 교육을 바탕으로 5개 대륙 12개 국가에서 말라리아 등 감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MSU COM 빌 커닝햄(Bill Cunningham) 학장보는 “교육이나 연구 등 의과대학과 모든 것이 동등하기에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다만 정골의학은 모든 신체 시스템은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몸의 전체를 본다는 철학이 MD와 다를 뿐이다”고 설명했다.
의대평가 보고서인 ‘플렉스너 보고서’ 이후 교육 커리큘럼 격변
교육 과정 의대 중심으로 개편 후 1973년 미 전역서 진료권 획득
DO 84.7%는 진로 가정의학과‧내과‧소아과 등 1차진료 분야 진출

미국 정골의학(Osteopathic Manipulative Medicine, OMM)은 의료 분야에서 의학(Medicine)과 카이로프랙틱(Chiropractic)과 상호 경쟁을 하면서 성장해 왔다.
창시자 앤드류 타일러 스틸(Andrew Talor Still)에 의해 만들어진 OMM은 19세기 중반 수기 치료를 강조하는 민간의료로 시작됐다.
치료 원리로 사람은 자기조절 신체를 가지고 있으며, 인체가 정상적인 구조 관계일 때는 자기치유와 질병방어가 가능하다는 믿음에 기초했다.
정골요법이 널리 알려지면서 스틸은 미주리주 콕스빌에 세계 최초의 Osteopathy School도 설립했다. 교육 과정을 마친 사람은 정골의학 의사(Doctor of Osteopathy, DO)의 자격을 부여했다.
1892년 스코틀랜드 출신 의사 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는 강사진에 합류하면서 점차 의학 교육 형태를 띠게 됐다. 그는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산과학 등 당시 의학 과목을 정골의학에 대대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1896년에는 미국 최초로 버몬트 주에서 정골의학을 라이센스로 인정했고, 1897년에는 미국 정골의학회(American Osteopathic Association, AOA) 전신인 미국정골의학의 발전을 위한 학회가 설립됐다.
하지만 20세기 초 AOA 소속 DO들은 ‘레이션 오스티오패스(Lesion osteopath)’ ‘브로드 오스티오패스(Broad osteopath)’로 나뉘어 서로 분파를 형성했다. 레이션 오스티오패스는 정통 수기 치료법을 브로드 오스티오패스는 MD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외과수술과 같이 그들의 치료법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플렉스너 보고서 하나에…DO 대학 ‘대변혁’
정골의학은 1920년을 기점으로 대변혁을 맞게 된다. 교육학자인 에이브러햄 플렉스너(Abraham Flexner)의 보고서 때문이었다. 앞서 플렉스너는 미국 교육기관에 대한 평가서를 출판한 뒤 카네기재단의 요청에 따라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의과대학을 평가했다.
의과대학의 난립으로 연구나 임상교육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는 미국의학교육위원회의 요청이었다. 예상대로 평가보고서는 미국 의학교육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의학과 정골의학에 대한 신랄한 보고서로 인해 미국 내 많은 의과대학이 폐교 됐다. 1920년 이전 미국, 캐나다 전역에 있던 155곳 의과대학 중에서 약 10년 뒤인 1929년에는 76개로 감소했다.
플렉스너는 DO들도 MD와 같은 질환을 치료한다 보고 동일한 교육이 이뤄져야 판단해 DO대학을 보고서에 포함시켰다. 조사결과 DO대학은 교육, 임상 면에서 MD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보고서는 AOA로 하여금 대학에서 정골의학을 가르치는데 있어 인증기준을 설립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결국 전체적인 시대의 흐름은 플렉스너 보고서와 맞물려 브로드 오스티오패스 그룹쪽으로 흘러 들어갔다. DO 대학들은 수술, 화학 및 생물요법 등을 교과과정에 적극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DO대학의 기초과학시험 합격률은 1942~44년 52.5%에서 1951~53년 80%로 MD대학 합격률(87.1%)과 비슷한 수준으로 올랐다.
MD와 거의 동일한 의학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해 1973년에 이르러서는 미국 50개 주 모두에서 ‘완전한 진료권(Full Practice Rights)’을 획득했다. 즉, 수기치료 외에도 수술치료, 약물처방 등 MD와 마찬가지로 제한 없는 모든 영역의 진료가 가능하게 됐다.
이에 대해 MSU COM 리사 디스테파뇨(Lisa DeStefano) 학과장은 “정골의학에 의학을 덧씌운 게 아닌 의학 과정에 정골의학을 덧씌웠기에 오늘날 MD와 동등한 지위와 완전한 진료권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의대 교육 과정에 별도 211시간 정골의학 교육 시행
실제 모든 DO 대학은 의과대학(Medical school)과 동일한 교육과정을 가르치고 있다. 단 이와 별도로 211시간의 정골의학(OMM)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DO 기초의학과목 강의 시수를 살펴보면 해부학이 216시간, 약리학이 111시간, 병리학, 생리학은 각각 99시간, 97시간에 달한다.
DO 임상의학과목 강의 시수에서도 가정의학과 내과의 경우 각각 191시간, 154시간에 달할 정도로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전체 DO 중 84.7%가 근골격계가 아닌 1차진료를 수행할 수 있는 과목(가정의학과: 63%, 내과:15.5%, 소아과: 6.2%)을 선택하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미시건 주립 대학교 정골의대(College of Osteopathic Medicine) 또한 이러한 교육을 바탕으로 5개 대륙 12개 국가에서 말라리아 등 감염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MSU COM 빌 커닝햄(Bill Cunningham) 학장보는 “교육이나 연구 등 의과대학과 모든 것이 동등하기에 가능하기 때문”이라며 “다만 정골의학은 모든 신체 시스템은 서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몸의 전체를 본다는 철학이 MD와 다를 뿐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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