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승님 南村/笑泉 김완희

기사입력 2022.10.1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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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을 떠나신 당신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
    “예의를 중시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와 같은 모습 결코 잊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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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完熙 선생님은 尙州人으로 이소리초등학교가 모교이다. 대학교수 시절 모교의 교문을 새로 만드는데 일조한 바 있는데 그분이 남긴 유지의 한 부분이다. 그분이 다닌 상주농잠학교는 농촌지역에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하는 좋은 학교라고 여러 번 들려주셨다. 

     

    선생님이 입학한 첫 대학은 서울 문리대 국문학과로 가끔 지으신 詩와 한의신문의 사설 등이 국문과 지망생임을 증거하였다고 기억한다. 그분의 詩作에는 ‘웃음 샘’(笑泉)의 雅號가 동반한다. 선생님과 제자인 나와 홍무창 교수가 지도교수로서 연이어 공들인 경희대 학생동아리 靑鹿의 ‘靑鹿歌’ 작사가 그분의 작품이다.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常綠樹의 영향을 크게 받아 계몽학교인 상록학원 이사를 역임하면서 몇 년을 고향에서 활동하다가 뜻을 바꾸어 동양의약대학 한의학과에 새롭게 입학하셨다. 입학 시절부터 성북구 안암동 동양의대 교사에서 그분의 눈에 특별히 띈 윤길영 교수님은 평생의 스승으로 남게 된다. 

     

    재학시절 윤 교수님 댁으로 매일 출퇴근하면서 그분의 일사불란한 한의학 이론을 계승하고, 본인의 새로운 관점으로 ‘신한방생리학’, ‘유기능체계’라는 독자적인 학문의 세계를 이루셨다.

     

    선생님의 조교였던 나는 內經의 기초부분을 카드화, ‘방제학’과 ‘사상체질의학’의 윤 교수님 서책을 校訂한 자료를 찾아볼 기회가 있어 선생님의 한의학을 이해하는 폭넓은 지식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한의학 관련 글을 전문지나 논문, 서적에서는 ‘南村’의 雅號를 차별화하여 사용하는 선생님의 독특함이 있으셨다.

     

    뒤늦게 생긴 경희대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모두 졸업한 선생님은 한의학과 생리학 주임교수로서 정년퇴임까지 학과장, 학장을 거치면서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셨고, 정년 이후 명예교수로서 경희대 사회교육원에서 교양한의학 강의로 일반인에게 한의학 홍보에 힘쓰셨다. 

     

    재직 시 대구한의대가 개교하여 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시면서 동양의대 동기생 변정환 총장을 돕고, 외래교수로서 주 1회 출강하여 박사과정 대학원생들을 지도하기도 하셨다.

     

    南村 선생님을 가까이한 많은 제자들이 있다. 그들의 기억은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의학을 전공한 자부심을 놓지 않으시고, 토론하기를 즐겨 하셨던 분, 생활 속에서는 항상 미소를 머금으시고 인위적이라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 주시려고 노력하셨던 분, 부드러우시면서도 완강한 고집도 갖고 계셨다. 

     

    특히 선생님을 본받아 실천한 것은 학술봉사동아리 청록의 회원들을 자식같이 사랑하고 지도하신 점이다. 예의를 중시하고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와 같은 모습은 잊지 못할 것이다. 

    잠시 눈을 감고 그분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좋으셨던 나의 스승님이 틀림없으시다. 고통이 없는 보다 좋은 곳으로 가시길 제자들이 함께 기도합니다. 


    2022. 10. 03

    南村 선생님의 제자, 효전 신민규 삼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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