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의 한의학 <13>

기사입력 2022.10.06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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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기(六氣)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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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우교수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한의원의 인류학 : 몸-마음-자연을 연결하는 사유와 치유> 저자


    육기(六氣)는 관계의 물(物)이다. 바람[風], 한기[寒], 더위[暑], 습기[濕], 건조[燥], 열기[火]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거대한 “바람”인 태풍이, 적도의 열기와 고위도의 찬 기운 사이에서 불 듯이, 이들 여섯 기운은 사이의 관계 속의 실재다. 한의학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몸 안의 여섯 기운도 관계 속에 있다. 

     

    몸 밖의 거친 육기와 균형이 깨진 몸의 관계 속에,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드러난다. 몸과의 관계 속에서 여섯 가지 기운은 상한, 습열, 중풍 등으로 명명되고 진단과 치료의 대상이 된다. 실재가 된다.

     

     

    육기와 바이러스

     

    육기와 바이러스 사이에는 존재 이해의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세계를 이루는 물(物)들을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관해, 의미 있는 논의 거리를 제공한다. 이 글에서 육기와 바이러스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육기의 이해 방식이 나은지, 바이러스의 이해 방식이 나은지 경합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육기와 바이러스를 통한, 하나가 아닌 복수의 세계 이해의 방식에 대한 고찰이 이 글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연은 하나가 아니다”라는 제목 아래의 세 차례 글에서 논의하였듯이(<인류세의 한의학> 이전 연재 글 <10> <11> <12> “자연은 하나가 아니다” I, II, III, 참조) 자연은 하나가 아니고 그 자연을 이루는 “것들”도 하나가 아니다. 육기와 바이러스는 자연에 대한 복수의 이해를 논할 수 있는 흥미로운 예시를 제공한다.

     

    바이러스는 근현대를 주도한 생각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는 물(物)이다. 근현대는 분리하여 존재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순수이성”이나 “생각하는 주체”는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기여했지만, 또한 인간과 인간 외부를 분리하는 결과를 낳았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 인간과 물질을 나누는 생각의 방식이 근대라는 시대를 관통하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생각하는 주체, 혹은 순수이성의 인간이 그 주체 밖의 대상을 규정하고 명명하면서, 주체가 세계의 중심을 이룬다. 인간과 인간 밖의 분리를 전제하는 이러한 이해에서 “관계”의 언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개별적 존재에 대한 이해가 선행한다. 개별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개별들의 관계를 보려한다. 이러한 세계 이해의 방식은 바이러스의 탄생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의학들과 그 바탕의 생각들

     

    지금의 서양의학은1) 근현대의 분리의 세계 이해의 방식에 깊이 영향을 받은 의학이다. 인간과 인간 밖을 확실하게 분리하려한다. 이 경향에 의해 인간과 자연, 인간과 바이러스가 분리된다. 이러한 방식은 바이러스를 아는 방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인간과 바이러스를 분리하여 확인한다. 바이러스의 DNA, RNA 염기서열을 확인함으로써 그 바이러스를 알고 명명한다. 이러한 분리 확인은 당연한 것 같지만, 어떤 사유방식과 세계 이해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그와는 다른 이해의 방식도 존재한다. 동아시아에서는 관계가 기본이다. 바람이 열기와 한기 사이에 존재하듯이, 개별이 선행하지 않는 관계가 기본단위다. 이러한 동아시아의 관계를 중심에 두는 생각의 방식은 한의학 같은 동아시아의학에 깊이 영향을 미쳤다. 

     

    한의학에서 본격적으로 다루는 한사나 풍사는 인간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가 일상으로 사용하는 “감기”라는 말에는 이러한 관계의 사유가 담지되어 있다. 매몰찬 외기에 감한 것이 감기이다. 감기(感氣)는 기에 감촉된 몸의 상황이다. 

     

    감기에서 외기와 몸이 잘 분리되지 않는다. 외기와 몸의 얽힌 상황을 감기라고 한다. 진단을 할 때도 한이나 풍에 감촉된 몸의 “현상”을 통해 (예를 들면, 붉어진 얼굴, 뜨는 맥, 떨리는 손을 통해) 이들 기운을 알아 간다. 이 현상은 몸과 외기가 만나서 드러나는 현상이다. 이 현상에 몸의 내용도 외기의 내용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풍, 한, 서, 습, 조, 화는 관계의 물(物)이다. 

     

    육기가 드러내는 관계적 이해는 양자역학의 존재론적 바탕 위에서 과학과 인문학을 논하는 캐런 버라드의 논의를 상기시킨다2). 그는 세계의 역동적 얽힘과 관계성 자체를 “현상(phenomena)”이라고 부르며, 개별 물체가 아니라, 현상을 기본적인 존재론적 단위라고 강조한다. 육기의 관계가 드러내는 것과 같이, 한의학 또한 (감기와 같이) 얽힘과 관계성을 단위로 하고, 그 얽힘의 상황을 치료한다. 

     

    동아시아에서는 인간 밖에 대한 논의에서도, 인간에 대한 논의에서도 관계를 중심에 두어왔다. 관계와 만남이 본디의 존재 방식이라는 생각이 분명했다. 『계사전』의 유명한 문구인 “일음일양위지도(一陰一陽爲之道)”도 관계를 중심에 두는 동아시아의 생각으로 읽을 수 있다. 하나와 하나가 만나서 되는 것이, 떠날 수 없는 진리라는 것을 강조한다고 할 수 있다.

     

    각 의학은 그 기저에 어떤 사유와 연결되어 있고, 그 사유의 방식이 의학의 각각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친다. RNA, DNA를 통해 분리된 개체를 분석하는 방식은 백신을 만드는데 용이하다. 몸과 기운이 만난 현상을 물(物)로 보는 생각의 방식은, 그 방식과 연결된 기여의 가능성이 있다. 

     

    한의학에서 한사와 풍사는 몸과 이미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에 관련된 치료 또한 몸의 상황을 고려한 치료가 된다. 여기서는 바이러스만 절멸하려는 것과 차이나는 방식이 치료의 방식이 된다. 한의학의 코비드-19 후유증 치료에 최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존재 이해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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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의학으로서의 한의학

     

    한의학에서는 육기와 몸과의 관계 속에서 그 기운을 다룬다. 몸 밖의 바람이 뜨거운 기운과 찬 기운의 “관계” 속에서 분다면, 다시 그 바람과 몸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의료적 상황은 “관계의 관계의 물(物)”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의학 치료가 관심을 가지는 육기는 이 관계의 관계의 물이다. 기후변화에 의해 태풍이 더 강력해지듯이3), 몸과 관계되는 여섯 기운도 변화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더위와 열기이다. 지구온난화와 함께 더 강력한 더위와 열기가 몸에 관계의 관계의 물로 드러나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 “기후의학”이4) 새로운 의료의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북미·유럽의 의대에서 기후의학 학위과정이 만들어지고 있다. 한의학은 기후의학으로서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기후의 개념이 몸 밖에도 사용되고 몸 안에도 사용되는 것이(<인류세의 한의학> 이전 연재글 <3> “기후의 의미” 참조) 기본적으로 기후의학으로서의 한의학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말만 동시에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기후는 몸 안에도 있고 몸 밖에도 있고, 두 기후는 연결되어 있다. 몸 밖의 기후가 이상의 상황이면 몸의 기후도 전과 다르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관계의 관계의 물”이 의미하듯이, 뜨거워진 지구에서 이상 열기는 이미 몸속의 열기와 관계된다. 또한 몸과의 관계 속의 육기는 외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몸의 심신(心腎)과 수화(水火)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의 관계의 물”로서 작용할 수 있다.

     

    모든 의학은 어떤 사유와 연결된 방향성을 가진다. 그 방향성 위에서 바이러스가 분석되기도 하고 육기의 현상이 드러나기도 한다. 관계의 관계, 관계의 관계의 관계와 같이, 관계의 그물망이 구성하는 동아시아의 세계 이해는, 그 사유에 연결된 한의학의 기후의학으로서의 가능성을 말하고 있다.

     

     

    1) 지금의 서양의학은 히포크라테스의학 같은 이전의 서양의학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의학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근대적 생각에 깊이 영향을 받은 근현대 서양의학을 말하며, 논자들은 “탄생”이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미셸 푸코(2006) 『임상의학의 탄생』 참조.

    2) 버라드의 주 저서가 2007년에 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15,000회 이상 인용된 것은, 세계의 관계적 이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Karen Barad (2007) Meeting the Universe Halfway: Quantum Physics and the Entanglement of Matter and Meaning 참조.

    3) 최근 미국 플로리다를 강타한 이안이나, 포항에 큰 피해를 낸 힌남노가 예시하고 있듯이, 기후변화로 더워진 지구는 더 강력한 태풍을 만들어 내고 있고, 앞으로의 태풍들은 더 짧은 시간에 초강력 태풍으로 바뀌는 일이 속출할 것이라고 기후과학자들은 말한다.

    4) 최근의 “기후의학”은 기후위기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기후변화의 상황 속에서 다변화하는 건강과 질병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의학 이론과 방법론을 연구,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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