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협회 정책사업국 특성화 실습 후기

기사입력 2020.07.2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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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백서」 작성에 참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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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완현 학생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석사 4학년

     

    코로나-19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를 의미하는‘숨 쉬는 것처럼’ 이라는 관용 어구는 답답하고 꽉 끼는 마스크 속에서 의식적으로 들숨, 날숨을 반복하고 있는 요즘에는 본래의 그 의미를 잃었고 수 천 년을 이어온 La bise, Le bisou (유럽과 중남미에서 하는 서로의 볼을 맞대는 인사법), 악수, 포옹 등의 인사법은 한때 코로나-19 전파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하며 설 자리를 잃었다. 

    나 역시 직격탄을 맞았다. 원래라면 뉴욕 맨해튼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야하는 시기에 이곳 대한한의사협회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본래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이하, 한의전) 본과 4학년 과정 중에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약 6주~8주간 국내외의 기관을 선정해 한의학의 세계화와 저변확대를 위해 다양한 체험을 하는 ‘특성화 실습’ 이라는 과정이 있다. 


    “협회가 얼마나 치열하게 일하는지 알지 못해”


    많은 학생들이 해당 실습을 그간의 학업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스스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향후 있을 한의사 국가고시 준비 전 마지막 휴식처로 삼는다. 학교의 커리큘럼을 명분삼아 타국에서 보내는 긴 여름휴가와 다양한 문화생활을 꿈꾸는 시기라 본 실습을 위해 1학년 때부터 계획을 세우고 저축을 하는 동기들도 더러 있을 정도로 그 의미가 우리 한의전 학생들에게는 결코 작지가 않다. 

    물론, 수 천 년을 매일 해온 인사도 못하게 되는 마당에 그깟 휴가 인 듯 아닌듯한 해외 실습이 날아가 버린 것이 대수는 아니고, 전 세계적으로 1000만 명이 넘는 감염자, 50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범세계적 대유행(pandemic) 상황에서 당당하게 투정 부릴 만한 일 또한 아닐 것이다. 

    아무튼 지금, 나는 대한한의사협회 정책사업국 여러 직원들 사이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고 아이러니 하게도 전 세계적 재앙이자 나를 이 자리에 있게 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고 이를 바탕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증 백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본 실습이 원래는 체험, 견학, 참관이 주를 이루는 과정이다 보니, 그리고 아무래도 평생 한번 해볼까 말까한 6주간의 맨해튼 생활대신 와있는 자리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에 대한 보상심리가 생겨서 가볍고 편한 마음으로 협회에 들어섰다. 

    하지만 내 기대가 당혹감과 부담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이제와 말하자면, 편할 것이라는 기대는 협회에 와보기 전까지 협회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다들 얼마나 치열하게 일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협회에 일이 있어봐야 얼마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따라온 것이기도 했다. 

    첫날, 우리를 안내해 주신 정책팀장님, 정책연구원장님은 한눈에 보기에도 각종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어 보였고 내 주변자리 직원 분들과 채 인사도 한번 나누기 전에 우리가 맡아서 할 일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그 일이 업무 보조, 문서 정리 등이 아닌 무려 코로나-19 백서의 초안을 만드는 일이라고 하셨다. 


    백서 제작, 감염병 대처의 중요한 길라잡이 기대


    코로나-19 백서라니! 반년이 넘게 계속되면서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는, 전 세계의 경제, 문화, 생활 전반을 쥐고 흔든 그 코로나-19? 사안의 과중함도 과중함이지만 백서라는 형식의 문서를 제작해본 경험은 당연히 전무했고, 어떤 종류의 백서든지 한번 읽어 본 적도 없다. 더군다나 코로나-19 에 대한 지식의 깊이 역시 깊지 않다보니 걱정이 됐다. 작성해야하는 항목은 또 어찌나 많은지, 대주제, 중주제, 소주제에 따른 세부항목이 60가지도 넘었다. 

    정말 막막하고 부담 됐지만, 한편으로는 코로나-19 백서 작성이 한의계의 참여를 알림과 동시에 향후 감염병 대처에 있어서도 길라잡이가 되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중요성을 인지하자 오히려 부담감은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바뀌었다. 

    이왕 이렇게 예상을 웃도는 중요한 일을 맡은 거, 시간만 의미 없이 보내지 말고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일이었지만 담당자 분을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참고할 만한 기존의 백서들을 보여주시고 양식과 자료도 제공해주시면서 진행 방향을 잘 설명해 주셨고, 추후에 전문가들이 붙어서 충분한 수정과 재검토가 이루어 질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해보라고 격려해 주셔서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진행 할 수 있었다. 

    다양한 배려와 도움으로 다행히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실습의 마지막 날, 기존에 계획했던 세부항목들을 모두 정리·작성할 수 있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의견을 내어 새로운 항목을 추가하기도 하고 기존의 항목을 변경하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책임감을 가지고서 주도적으로 업무를 진행한 결과 나와 함께 업무를 맡은 동기 한명을 포함해 둘이서 3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코로나-19 백서 초안 작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비록 아직 손댈 곳이 더 많은 미완의 초안일 뿐이지만 코로나-19 감염증 이라는 전 세계적인 재앙 현장에서 미래의 의료인으로서, 나도 작지만 의미 있는 일에 힘을 보탰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전염병 사태서 배제되고 있는 한의 현실에 분노


    백서 작업을 하면서 한의계가 국가 전염병 사태에 있어 법리적 근거 없이 부당하게 참여에서 배제되고 있는 현실에 함께 분노 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한의사 선배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의지를 드러내고 자발적인 활동을 해오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그러한 사실들을 토대로 협회가 다양한 기관에 한의계 참여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한의학은 우리나라가 법적으로 인정한 의학이다. 의학이라 함은 환자의 건강, 더 나아가 사회의 건강과 안녕에 이바지 할 수 있어야한다. 반대로, 환자의 건강과 사회의 안녕에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한의학이 아닌 그 무엇이라도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코로나-19 감염이라는 사태의 시급성을 고려했을 때,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서 주장하는 한의계의 참여를 단순히 밥그릇 싸움으로 격하하고 그 순수성을 훼손하여서는 안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오기 전 그저 맨해튼에서 평화로운 휴가만을 꿈꿔 왔던 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의계가 국민 건강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얼마나 다양한 노력과 투쟁을 하고 있는지 일깨워주고 귀한 기회를 주신 협회 관계자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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