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에 근무하고 있다 보니 가끔 비방(祕方), 비법(秘法)이 있다고 전화나 장문의 편지를 받게 된다. 또 청와대, 정부 부처, 방송사 등에서 먼저 접수받은 후 한의학 분야이므로 이첩되는 경우도 있다. 단조롭고 계획된 일만하는 직장 생활에서 예상치 못한 이런 연락이 지적 호기심과 탐구의 즐거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내용의 대부분은 비방이고, 나머지가 침술, 진단, 기타 득도(得道)한 비법들이다. 비방은 약물이므로 확인할 점이 명확하여 해결이 간단하지만, 비법은 분야가 다양하고 대면 상담해야하며 평가 과정에 많은 지식과 생각을 요구한다.
상담의 원칙은 의뢰인의 배경과 직업(의료인인지 아닌지가 중요, 잘못하면 불법의료 행위에 가담할 수 있다), 의뢰한 이유, 비방과 비법의 형성 과정과 내용, 제시할 수 있는 증거 자료, 의뢰인이 기관에 제공(공개여부, 연구자금 등)할 수 있는 범위를 문의하고 답변을 드린다. 직업을 살펴보면, 일부 한의약계 종사자를 제외하고는 대다수가 한의약과 관련 없는 분들이다.
비방과 비법을 보유하고 있을 만한 직종은 아니지만, 기관에 연락 온 이상 상담은 한다. 의뢰 내용은 어떤 통증 혹은 어떤 피부병도 다 치료되는 놀라운 약초를 본인만 알고 있기에는 아까워서 널리 알리고 싶다고 전화주신 분, 국가와 민족, 어려운 경제를 살리고자 비방을 제품화하겠다고 편지 주신 분, 본인이 터득한 비법을 한의계에 홍보해달라는 분 등이 있다.
또한 의과대학 부속병원에서 난치병이라고 돌려보낸 환자를 여러 명 고쳤다고 자랑하시는 어르신, 본인 스스로 득도한 진단법, 침술법 등을 기관에서 증명을 해 달라 요청하는 분, 만주에서 독립 운동하셨던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비방을 기관에서 알아서 해달라는 분, 가지고 있는 비방을 연구하여 같이 사업하자는 분 등 여러 사례가 있다.
의뢰인들은 비법과 비방에 절대적 확신 갖고 있어
처음에는 이런 상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이 없어 내심 불안하였다. 그동안 비방 비법에 대한 무수한 전설을 들었고, 현재도 보고 듣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의 옥석을 가리는 조사 분석 평가하는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해결하는 지침도 없어 해결하기란 난망(難望)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학생시절 당대 최고의 절대 고수들로부터 비방 비법 교육과 훈련 경험이 있어 낯설지 않는 영역이었다. 또 입사 후에 천연물신약 개발, 제약관리, 임상시험, 연구윤리 등 관련된 교육을 통해 얻어진 지식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의뢰인들은 본인이 통찰한 비법과 비방에 대해서 절대적 확신과 희망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을 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 세상에 매우 중요한 것들은 모두 어렵고 희귀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정직해야하고 냉철하고 엄격한 이성적 정신으로, 과학적 논리로 대응해야한다. 결코 쉬운 개념들이 아니다. 만약 감정적으로 움직이거나 혹해버리면 해결책은 없고 의뢰인에게 영혼까지 종속된다.
비방, 비법의 ‘증거’를 내놓고 ‘증명’해야 한다
그 분들이 갑자기 깨달았든, 고생 고생하여 알아냈든, 밝혀낸 진리에 대해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해가 서쪽에서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도 열린 마음으로 들어야한다. 이 세상에 기적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상호간의 종결 접점은 비방, 비법의 ‘증거’를 내놓고 ‘증명’해야 한다. 비방과 비법의 과학화·상품화는 신념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판단의 유일한 도구는 증거에 대한 관찰력과 과학적 사고뿐이다. 개인적인 득도·통찰·신념이 아무 이해 관계없는 제3자에게까지 검증될 수 있어야한다. 즉 의뢰인에게도 구현되고 효능이 있으면, 동시에 다른 이가 하여도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재현되어야 한다.
대부분 비법들은 평가가 가능하지만, 일부는 처음부터 증명이 불가능하거나 과학적인 객관성을 확보할 수 없는 회의적인 내용들도 있다. 무수한 일화를 듣는 중에, 간혹 관찰자를 곧 바로 신자로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본인의 천부적인 카리스마 기질과 타고난 언변력, 인간관계의 절대 기준인 지긋한 연세와 사회적 권위, 거부할 수없는 한의서 위력의 근거, 고개 숙일 수밖에 없는 성현 존함의 거명, 확인할 수 없는 불명확한 숫자(수십 년, 몇 천 명 등) 등을 내세우며 관찰자의 정신세계로 들어온다.
그러면 학생 때 도사들로 부터 터득한 공력과 입사 후 받은 교육력을 합쳐 힘겹게 겨우 버틴다. 면담은 1시간 이상하였는데, 내 공책에는 1∼2줄 밖에 적을 게 없다. 대부분 근거의 양과 질이 빈약하고, 있다하더라도 상대적으로 의료 가치나 경제 효용이 있다고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비방이 공개되었으면, 비방의 가치가 없는 것”
비방 의뢰에 대한 상담은 아주 간단하다. 먼저 비방의 치료 질병명 때문에 상담이 끝난다. 비방 치료 질병이 두통, 요통, 나쁜 피(瘀血), 부종, 담(痰), 암, 당뇨, 고혈압, 피부병, 빈혈 등으로, 연구자에게는 막연하고 모호하여 의미 없는 질병들이다. 즉 효능은 강력하게 이야기하는데 관련 질병에 대한 지식은 부실하다. 이런 질병들의 정의나 원인, 분류, 기전들은 아주 복잡 다양하고 이해도 쉽지 않다.
그런데 아무 상관없이 효과를 보았다는 논리 자체를 신뢰할 수 없다. 또 효험을 본 대상이 대부분 동네 분, 친지, 동료들이다. 의뢰자와 우호적인 분들에 대한 효능 결과 또한 신뢰할 수 없는 결과이다. 또 치료하였다는 인원수와 투여 기간, 투여량이 불명확하다.
만약 이 단계를 넘어서 약간의 증거가 있고 의뢰자가 비방의 상품화를 원한다면 “비방을 구성하는 약초를 알려줄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의뢰인들의 100%가 알려 줄 수 없다고 대답한다. 어떤 분은 약초를 알아볼 수 없게, 잘게 잘라서 혹은 가루로 하여 택배로 보내 왔는데, 어떤 방법으로도 약초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비방을 사전에 알려주어야만 이미 누군가 비방과 같은 약초로 논문이나 특허를 발표했는지 조사할 수 있다.
이미 연구되어 비방이 공개되었으면, 이제 비방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런 확인 작업이 필수적인데 알려주질 않으니 다음 단계를 나갈 수 없다. 비방 상담은 싱겁고 무미건조한 과정이지만, 비법은 설렘이 있는 지적 여행이었다.
최근 같이 근무하는 연구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코로나바이러스를 예방 치료하는 비방가지고 있다고 연락이 왔는데, 이런 건 어떻게 처리하면 됩니까?”
(본 글은 저자의 소속기관이나 한의신문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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