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전문의 제도는 조선 초기에 이미 있었다”
黃子厚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서 본관은 懷德, 자는 善養이다. 그는 음서로 벼슬길에 나가 중앙과 지방의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태종초에 성주목사를 거쳐 1412년(태종 12) 仁寧府司尹을 지냈고, 이듬해 형조좌참의가 되어 호패법의 제정을 건의하였다. 1414년 호조참의, 경기도관찰사, 개성유후사부유후를 역임하였다. 이듬해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恭安府尹이 되어 동전의 사용을 건의하였다.
그는 의학에 정통하여 항상 典醫監의 提調를 역임하였다. 그는 1421년에 明나라에 가서 조선에서 산출되지 않는 약재를 널리 구하여 돌아왔고, 1427년 조정에 요청하여 충청도에서 『鄕藥救急方』을 인쇄하게 하였고, 1433년에는 『鄕藥集成方』 중 우수 경험방을 정선하여 鄕名과 藥毒의 有無에 대한 주석을 붙여 일반백성들이 알기 쉽도록 배려하였다.
그는 또한 銅人을 주조하여 點穴의 법에 따라 의사국가고시를 실시하는 법을 확정하였고 환자가 의사를 요청할 때 환자의 집에서 말을 보내 의사를 맞아야 한다는 등의 조항 만들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그의 의학적 활동은 조선 초기 한의학의 표준화와 역할 증대를 위한 특단의 조치들로 그의 제도화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다.
『世宗實錄』에 그의 주장이 나온다.
“또한 병을 치료하는 것 가운데 침구보다 빠른 것이 없으니, 의사가 침구의 혈자리를 안다면 한돈의 약도 허비할 필요없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지금부터 상국의 의학을 익히는 법처럼 각각 전문과를 세우고 주종소로 하여금 동인을 주조하게 하여 혈자리를 찍는 방법에 의거하여 고시를 본다면 고시를 시행하여 의사를 선발하는 방법이 가히 내실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鍼灸專門醫의 필요성을 역설한 대목이다. 아울러 “각각 전문과를 세우고(各立專門)”라는 대목을 볼 때 黃子厚가 주장한 것은 鍼灸專門醫 뿐만 아니라 內科, 外科, 婦人科, 小兒科, 耳鼻咽喉科 등 모든 전문분과를 세워 전문인을 키우자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침구사제도가 있었으므로 침구사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침구시술자들의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일선 의료 시술에 있어 약과 침구 치료는 상호 보완적일 수밖에 없다. 이로써 대민의료사업에 있어서 향약의 보급과 함께 침구치료의 효용성을 제도로써 확립하고자하는 황자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즉, 의술을 익히는 법에 의거하여 각 분과를 두어[各立專門] 의학의 발달을 도모하고 있다.
이는 향후 조선 중후기 침구의학의 발달을 이끄는 제도적 개혁임에 분명하다. 당장 세종대에 그 결과가 나타난다. 세종24년(1438)부터 침구전문의를 매년 3인씩 삼의사(三醫司)에 각각 1인을 서용(敍用)케 하고 있다.
이후 이 제도의 완전한 정착은 성종3년(1472)에 침구전문법을 다시 별도로 설치함으로써 확정되었다 (고대원, 김남일, 차웅석. 『醫人 黃子厚 인물 연구』, 한국의사학회지 제 23권 2호 THE JOURNAL OF KOREAN MEDICAL HISTORY. VOL. 23, No. 2. 2010. 12월).
성종 3년(1472년) 다시 침구전문생을 따로 설치하여 침구전문의의 취재를 별도로 설치하였고, 『經國大典』에서 鍼灸學의 취재과목으로 『纂圖脈』, 『和劑指南』, 『銅人經』은 誦하고, 『直指脈』, 『針經指南』, 『子午流注』, 『玉龍歌』, 『資生經』, 『外科精要』, 『十四經發揮』, 『針經摘英集』 등으로 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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