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나의 길잡이

기사입력 2019.08.0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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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보건·의료전문가 바둑대회’ 준우승 소재경 한의사
    한의사 바둑 모임 추진, 대회 참가도 희망
    소재경1.jpg소재경 한의사

     

     

    가로, 세로 약 45cm 목판 위에서 흑·백의 돌이 자신의 집을 지키고, 새로운 집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네 귀에 위치한 화점을 먼저 차지할 것인가, 아니면 중앙을 차지할 것인가, 초침 소리만 들리는 바둑판 앞이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다.

    10년여 만에 총성 없는 전쟁에 투입된 소재경(금천구 남문한의원) 한의사는 바둑돌을 옮기며 오랜만에 열정을 불태웠다. ‘2019 보건·의료전문가 바둑대회’에서 4단부터 1단까지 참가하는 피로회복조 준우승을 차지한 그는 다시 한 번 바둑의 부흥을 이끌어보겠다고 선언했다.


    Q. 독자들에게 ‘바둑’이 어떤 스포츠인지 간략히 설명해준다면?

    바둑은 침착, 냉정, 균형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인간이 잘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또한 바둑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승리의 기쁨을 그 자리에서 표하지 않으며, 실력에 따른 어드벤티지가 적용되기도 하고, 인사로 시작해 인사로 끝나는 신사적인 스포츠다.

    세월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주류는 아니지만 몸과 정신만 허락한다면 백발노인이 돼서도 타인과 선의의 경쟁이 가능한 멋진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Q. 바둑과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는가?

    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약 10명의 한의사와 함께 바둑 모임을 갖고 한 달에 한 번씩 활동했었다. 당시 보건사회부장관배 의약인 바둑대회 단체전에도 3회 가량 출전했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는 모임이 사라졌다. 

    그 시절이 그립다. 약 10년간 바둑을 멀리하다 올해 개최된 ‘2019 보건·의료전문가 바둑대회’에서 혹시나 옛 기우회 멤버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하고 참가했었다.

    한의사 바둑 모임을 다시 만들고 싶다. 친선을 도모하고, 함께 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는 그런 동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관심 있는 분들은 제게 꼭 연락해주길 바란다.


    Q. 지난달 보건의료인 바둑대회 피로회복조(4단~1단)에 참가해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뒀다.

    전혀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단지 인생을 함께 즐겼던 옛 기우님들을 뵙고자 대회장을 찾았는데 당일 참가 신청을 받더라.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참가해 볼 것을 권유해 뜻하지 않게 대회를 치르게 됐다. ‘이왕 참가하게 된 거 재미있게 해보자’ 생각하며 경기에 임했다.

    마음을 비워서인지 쉽게 예선을 통과했다. 게다가 8강에서는 운 좋게 부전승으로 다음 상대를 맞이하게 됐다. 다른 선수들은 많은 경기를 치러 피곤함을 느꼈던 것이 나에게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결승에 진출하게 됐지만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했던가 모든 운을 다 썼더니 결승전에서는 결국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즐거웠다. 바둑판에 돌이 올려질 때 나는 소리,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Q. 바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누구보다 활발했고, 사교적이었다. 누구나 겪었겠지만 어르신들은 이런 모습을 두고 ‘덜렁거린다’고 규정하고, 점잖고 차분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훈육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아버지께서 덜렁거린다는 이유만으로 바둑을 가르쳐주셨다. 그 때부터 진중한 면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바둑을 접하기 전보다 침착해졌던 것 같다.

    조그마한 바둑판 안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 때 내 나이는 13살이었다.

    천원점(바둑판 한가운데의 점)과 8개의 화점 모든 곳에 흑돌을 놓았는데도 아버지의 백돌이 순식간에 그 자리를 점령했다. 나의 흑돌이 견고하게 집을 세우기까지는 열흘이 걸렸다. 네 귀 모든 화점에 흑돌을 놓고 아버지를 상대로 이겼을 때, 나의 자만심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하지만 그 자만심이 그리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같은 동네에 동갑내기 친구 하나가 있었다. 내가 바둑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하니 친구도 바둑에 대해 이전부터 공부했었고, 여러 번 시합을 했다고 하더라. 이내 우리는 바둑판에 앉아 대국을 시작했다. 하늘을 찌르던 나의 자만심은 내리 세 판을 지고 나서 속상함으로 변질됐다. 속상함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복수심이 차올랐던 것 같다. 아니 이기고 싶은 욕구가 솟았다. 그 때부터 청계천 헌 책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바둑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바둑에 대한 열정이 이어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바둑의 요소인 ‘균형’, 그 의미를 이제야 깨닫게 됐다. 승패를 떠나 바둑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지금의 상태가 ‘균형’인 것이다.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그 친구가 보고 싶고, 찾고 싶다. 


    Q. 8~90년대 바둑의 인기가 정말 대단했었다. 

    그 당시 웬만한 스포츠보다 바둑의 인기가 더욱 좋았던 것 같다. 남녀노소, 장소불문 누구나 어디서든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장점과 수많은 상황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또한 8~90년대에는 스타 기사들이 많았다. 70년대 말에는 조치훈 프로가 일본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80년대는 응창기 세계대회에서 활약을 펼쳤던 조훈현 프로가, 90년도에는 홀로 고군분투했던 이창호 프로라는 걸출한 스타 기사들이 바둑의 인기몰이에 큰 역할을 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바둑 학원을 많이 선택했다. 최근 이세돌 프로가 알파고와 대국을 펼쳐 세간에 관심을 받았다. 이번 계기를 통해 젊은 세대들이 바둑의 매력을 느끼고, 바둑의 부흥을 이끌어주길 바란다.


    Q. 원장님의 바둑 스타일이 어떻게 되는가?

    사실 저 자신도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집중력이 산만해서 그런지 공격적인 전략을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20대에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수 들을 펼쳤던 것 같고, 30대와 40대를 거치면서 인내심과 기다림을 터득하고부터는 조심스럽게 대국을 펼치는 수비적인 전략을 쓰기도 했다. 지금은 공격과 수비 그리고 창의적인 묘수까지 생각해내며 바둑을 즐기고 있다.


    Q. 바둑기사 중 롤모델이 있다면?

    조훈현 기사의 스승인 세고에 켄사쿠 기사를 롤모델로 삼았다. 바둑의 발상지인 중국과 한반도를 경유해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고 생각한 세고에 옹은 보답의 의미로 한·중·일 3개국에서 각 1명씩 총 3명의 제자를 두고 바둑기술의 교육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예와 도덕을 가르쳤다고 한다. 국적을 초월한 진정한 범세계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의사로서 예와 도덕의 의미를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 바둑의 기술은 그 다음이라 생각한다. 


    Q. 원장님께 ‘바둑’이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좋은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미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바둑을 통해 느끼고 있다.

    바둑을 시작한 이래로 삶이 더욱 윤택해졌으며, 의료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치고 힘들 때, 야외에서 바람을 쐬고 올 때가 있다. 하지만 모든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 때, 바둑판 앞에 앉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다. 계속해서 ‘바둑’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그리고 ‘바둑’과 함께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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