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 범 상(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ICTM/WPRO ICD-11 포함… 한의학 EBM 자리매김
ICD-11, 2013년까지 실무작업 후 2015년 공식 발간
지난달 28일 호주 브리즈번(Brisbane)에서 의사학적으로 중요한 이벤트가 벌어졌다. WHO 서태평양지역사무처(WHO/WPRO) 전통의학자문관인 최승훈 박사에 의해 약 1주일 전 출판된 WHO 국제전통의학표준용어(WHO International Standard Terminologies on Traditional Medicine in the Western Pacific Region: IST. http://www.wpro.who.int/publications/PUB_97 89290612487.htm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음)는 세계표준기구(ISO)에서 건강정보를 다루는 기술위원회(Technical Committee 215 for Health Informatics: TC215) Working Group 3에 소개되었고, WG3 의장인 Heather Grain 교수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ISO는 전통적으로 의학지식 자체의 표준개발보다는 의학지식의 소통을 위한 기술적 방법의 표준개발에만 주력해 왔다. WHO의 최승훈 박사를 이번 회의에 초빙했던 TC215 의장 곽연식 교수(경북대 의대)는 이런 점에서 WHO IST의 ISO에서의 소개 및 표준개발 제안은 의학지식 개발자로서의 WHO와 표준개발자로서의 ISO가 의학지식 contents를 매개로 한 역사적 만남이었다고 평가하면서, 한편으로는 WG3 관계자들의 고무적인 반응에 대해 초대자로서의 감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ISO의 전통에 벗어나는 새로운 시도에 대하여 TC215의 의장으로서도 부담감을 갖고 있었는데, 막상 WG3 관계자들의 호의적인 반응을 보고 적잖이 안심이 된 것으로 보인다. 칭찬과 함께 관심을 보였던 ISO 관계자 중에는 일본측 참석자들도 있었는데, IST의 개발 당시 일본측은 IST가 중국의학용어 중심으로 만들어질 것으로 우려했었으나, 막상 회의장에서 최근 출판된 IST를 보고서는 그러한 편견을 불식하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또 프랑스측 참석자는 IST와 같은 전통의학 terminology와 ICD와 같은 classification 사이의 매핑에 대한 기술적 표준을 자신이 새로운 working item으로 ISO에 제안하겠다는 제의를 해왔는데, 이는 일본측보다 한술 더 뜨는 예상외의 반응이었다.
앞으로 IST는 ISO의 표준개발 절차에 따라 구체적으로 진행될 터이지만, 이날의 이벤트를 총평하자면 전통의학 분야에 있어서 WHO와 ISO의 미래 협력을 위한 장을 마련하였고 성공적으로 시작한 미팅이었다고 하겠다.
한편, WHO/WPRO는 IST에 기반한 국제전통의학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n Traditional Medicine; ICTM/WPRO)를 제정하여 WHO에서 개발·관리하고 있는 국제분류(WHO Family of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WHO-FIC) 중에 하나로 포함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WHO-FIC에는 약 10여 가지의 보건관련 분류가 있는데, 이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제질병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n Disease: ICD)로서 세계 각국이 이 ICD에 따라 질병 및 사인을 분류하여 WHO에 통계를 보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한글로 번역한 한국질병 및 사인분류(KCD)를 사용하고 있으며, 한의학 분야에서도 이에 상응하는 한국질병 및 사인분류-한의(KCD-OM)를 사용하고 있으나 아쉽게도 KCD-OM의 코드는 ICD 코드와 일대일로 매핑되지 않기 때문에 국가통계에서 누락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통계에서 누락되다 보니 보험청구뿐만 아니라 교육 및 연구에서도 표준의 부재로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에서 현행 KCD-OM 2차 개정판을 개정하는 중에 있으나 질병분류에 대한 각계의 이견이 맞서서 개정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WHO/WPRO는 올해 3월 도쿄에서 ICTM 개발을 위한 제2차 회의를 갖고 IST 및 한국의 KCD-OM을 기반으로 하여 ICTM 알파버전을 개발키로 결정하고, 알파버전 개발을 위한 실무팀(WHO/WPRO ICTM Working Group)을 구성한 바 있다. 도쿄회의 결정에 따라 필자가 ICTM 알파버전 초안을 마련하였고, 지난 8월 26일부터 29일까지 호주 브리즈번에서 ISO/TC215 WG3 회의와 병행하여 ICTM WG 미팅을 가졌다.
참석자로는 WHO/WPRO의 최승훈 자문관, ICTM 개발의 컨설턴트를 맡은 호주의 Rosemary Roberts 교수, 각국 대표로 한국의 심범상(경희대)·박경모(현 하바드 연구교수), 일본의 Kenji Watanabe 교수(Keio University), 호주의 Chalie Xue 교수(RMIT University) 등이었으며, 중국측의 Yin Aining 교수(중국중의과학원)는 비자 문제로 참석치 못하였다. WG 미팅에서 알파버전 초안을 검토한 결과, KCD-OM과 IST의 매핑이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에 KCD-OM을 ICTM의 ‘모체’로 삼기에는 문제가 있으며 단지 모델로서 참고하기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IST 중에서 증상의 일부 94개, 변증명 391개, 질병명 581개(이상 제목 포함한 개수)를 ICD의 코딩체계와 유사하도록 재분류하여 ICTM 알파버전을 마련하였다. 이 알파버전은 10월28일부터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Trieste)에서 열리는 2007 WHO-FIC 미팅에 새로운 국제분류로서 제안된다. 앞으로 약 1년간 각국에서의 시험사용을 거쳐 베타버전으로 수정되고, 다시 WHO-FIC의 승인을 받게 되면 전통의학분야에서 국제적으로 공인되고 표준화된 질병분류가 될 것이다.
ICTM의 내용 중에서 변증명은 한의학 고유의 개념으로서 기존의 ICD와는 전혀 매핑되지 않기 때문에 ICD의 새로운 챕터로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질병부분 중에서 특히 피부과, 오관과 및 일부 증상명 등은 ICD의 기존 병명 등과 일대일 매핑이 가능한 병명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ICD와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가 현안 중에 하나이다. 한의질병명을 어떻게 정리하고 분류하느냐에 따라 몇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한데, ICD와의 연계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ICTM을 만들자면, 한의질병명의 대폭적인 축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행 ICD-10의 개정판인 ICD-11은 약 2013년까지의 실무작업을 거친 후 2015년에 공식 발간될 예정이다.
WHO/WPRO에서의 ICTM개발과정을 통해서 그간 각국에서 부진했던 전통의학적 질병분류 및 통계작업이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하였다. 이제 ICTM/WPRO가 베타버전을 거쳐 ICD-11의 일부분으로 포함되면 드디어 우리 한의학은 국내에서 합리적인 근거중심의 의료체계로 자리매김할 것이며, 세계적으로도 두루 활용될 수 있는 국제 전통의학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많이 본 뉴스
- 1 식약처, ‘2025 자주하는 질문집’ 발간
- 2 한의사 X-ray 사용…‘의료법 개정안’, 국회 검토 돌입
- 3 첩약건강보험 ‘조건에 따라 원점 재검토’ 찬성 ‘63.25%’
- 4 수원특례시한의사회, 강서원 신임 회장 선출
- 5 국가보훈부 “한의원, ‘보훈위탁병원’으로 지정한다”
- 6 “피부미용 전문가는 양방 일반의가 아닌 한의사!!”
- 7 “한의사 주치의제 도입 통해 일차의료 강화해야”
- 8 “한의약 육성발전 계획 핵심 키워드는 AI와 통합의료”
- 9 한의 레지스트리에서 침도·두개천골까지…인지장애 대응 기반 고도화
- 10 “침 치료, 허혈성 심질환 노인 환자 사망률 5년 낮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