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세계화 그리고 나 ③

기사입력 2007.03.16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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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醫文化 연구회 소속(cafe.daum.net/mommam21)
    세계 醫文化 학술기행단 신 동 진(서울 강남구 현대경희한의원)

    3외국에 대한 일본의 지속적인 관심과 번역 문화를 통해 이룩한 문화적 주체성, 세계무대에서의 위생의 힘, 이 밖에도 주목할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유학생과 사절단 파견이다. 에도시대 각 지방의 영주인 다이쇼(大名)들은 쇄국을 내세웠던 중앙 정부와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필요에 따라 외국으로 유학생들을 보내어 자주적인 세계화를 도모했다.

    또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선진문물을 배우기 위해 대규모 사절단을 미국으로 파견한다. 물론 이들은 일본과 세계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의 한의학이 세계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이 시기의 일본처럼 훌륭한 인재를 각국으로 보내어 신속하게 세계 의료계의 사정을 파악하고, 그들을 통해 우리의 모습들을 형성하고 알려야 한다.

    이상이 내가 일본 데지마(出島)에서 받은 충격들이다. 내가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일본에 대한 선입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교토나 도쿄를 들먹이지 않아도 한의학이나 한국의 세계화에 대한 자주적 모델은 데지마와 유학생과 의사를 중심으로 한 일본의 세계화·근대화의 역사만으로도 충분히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작년 말 베트남에서 APEC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곳에서 아베 일본총리가 나카타를 만났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본 축구 대표선수인 나카타는 30세의 젊은 나이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이제 새로운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글을 남기고 대표팀을 은퇴하고 사라졌던 터였다. 그랬던 나카타가 베트남에서 아베 총리를 만나고 있으니, 일본뿐만 아니라 APEC을 취재 나온 기자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왜 이 시점에서 ‘나카타’ 이야기를 꺼내는가. 그 이유는 일본과 같은 세계의 열강들이 각 지역에서 세계화를 주도하기 위해 쏟고 있는 노력 때문이다. 아시아의 최대 유전이 베트남에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베트남은 막대한 자원의 보고이다.

    그만큼 일본에게 매우 중요하고, 한국에게는 더더욱 중요한 나라가 베트남이다. 일본이 매년 베트남에 수억 달러씩 쏟아가며, 최대 경제 원조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일본이 베트남의 막대한 자원을 확보하고 베트남의 경제 개발을 주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베트남에서 세계적인 축구선수 나카타가 자국의 총리에게 “베트남에서 평생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며 살겠다”는 말을 남겼다. 나카타의 그 말 한마디는 수억 달러의 경제적 원조보다 베트남 인민들에게 더 큰 호감을 심어주었을 것이다.

    나카타는 축구 유학생으로서 받은 혜택을 이런 방식으로 조국 일본에게 갚아 나아가고 있었다. 조국이 너무나 간절히 원하는 방법이지 않은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총칼이, 냉전주의의 미국 폭격기가 그랬던 것보다 훨씬 다정한 방법으로 베트남 인민들에게 다가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나카타가 세계화 시대의 한국과 한국인이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카타를 통해 ‘세계’라는 무대 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법과 ‘세계화’라는 고민을 우리가 같이 나누는 법을 궁리하게 되길 바란다. ‘醫文化 연구회(cafe.daum.net/mommam21)’는 그 과정 속에 항상 같이 있을 것이다.

    눈을 들어 세계를 바라보는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한의사로서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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