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정 우 열 명예교수]
동아시아라 함은 중국의 한자 문화권에 속한 나라를 말하며 그 중에서도 한국·중국·일본이 중심이 된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찍부터 전통의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 의료체계는 자연적 의료체계였다. 그러나 19세기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이들 전통의학은 과학적 의학에 의해 수난을 맞게 되었다.
한국·중국·일본 3국이 서양의학을 받아들인 수용시기와 태도는 서로 다르다. 3국 중 서양의학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17세기 도쿠가와 바쿠후 시대에 데지마(出島)를 통해 네덜란드의학을 받아들였다. 이때 일본은 중국이나 한국이 선교사에 의해 선교의료를 통해 받아들인 것과는 달리 종교가 배제된 무역통상 과정에서 받아들였다.
동아시아의 서양의학 수용
중국은 런던 선교회에서 파송된 벤자민 홉슨(Benjamin Hobson, 1816-1873)이 『전체신론』(1851), 『서의약론』(1857), 『부영신설』(1858), 『내과신설』(1858), 『의학신어』(1858) 등의 의학서적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출간 한 이래 서양의학이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한국은 17세기 네덜란드를 통해 서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중국을 통해 이익(1762~1836)이 비로소 서양의학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이때 서양의학은 갈리노스의 생리학 범주에 머물렀으며, 중국에서 출간된 홉슨의 의서가 소개된 것은 19세기 최한기(1803-1877)에 의해서다. 근대서양의학을 받아들인 것은 19세기말 미국선교회의 선교의료와 일본제국주의 식민정책의 일환에 의해서다.
따라서 현재 한·중·일 3국이 각각 전통의학을 갖고 있으면서 서양의 과학적 의학을 받아들인 후의 의료체제 및 형태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일본은 전통의학을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서양의학 체제로 일원화하였으며, 중국은 서양의학(西醫)과 중의학(中醫) 그리고 중서의결합(中西醫結合)이라는 3원 체제를, 한국은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2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처럼 서양의학을 만나면서 각 나라마다 양상은 다르나 거의 100여년이라는 동안 동서의학이 대립된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현대 서양의학은 과학적 의학의 한계를 느끼면서 대체의학이란 이름으로 자연의학의 전일론적 ·유기체론적 개념으로 전환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동아시아 전통의학자들은 한편 반가우면서도 한편 두려움을 지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전통의학이 주류의학에서 소외된 듯 하였다가 각광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서양의 대체의학이 19세기 제국주의 선교 오리엔탈리즘을 연상케 하는 면에서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체의학 프로젝트에는 건강식품이 있다.
그동안 동양 전통의학의 약물들은 생약 자체로서의 천연약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제 이 약물(한약)들을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전 세계적으로 파고들므로 동양의학의 학문적 체계와 의료질서를 파괴시킬 수 있다.
100여년 동안 동서의학 대립
현재 대체의학자들은 동아시아 전통의학(한의학)이나 체액의학 및 아유르베다 의학을 자연의료체계의 동일체계로 보고 한의학을 대체의학의 범주에 넣는다. 그러나 한의학의 음양론은 4체액설의 한·열 이론과는 다른 면이 있다.
즉, 한의학의 음양론은 상반된 두 작용이 합해서 ‘조화’를 이룬다는 ‘역설적 논리’이고, 4체액설은 상반된 두 관계가 대립하여 ‘투쟁’을 이룬다는 ‘모순적 논리’이다. 예를 들면 한의학에서는 한과 열을 고정된 ‘절대적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상대적 관계성’으로 보는 것이다.
寒·熱 상대적 관계성 지녀
그러므로 한증(寒證)의 병을 치료할 때는 반드시 더운약을, 열증(熱證)에는 반드시 찬약만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열치열의 경우와 같이 열증에 열약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체액설에서는 한과 열을 절대적 개념으로 보고 한증에는 반드시 더운약을, 열증에는 찬 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체의학이 생약(한약)을 천연물이라 하여 건강식품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좋지만, 약물 운용을 한의학적 원리가 아닌 과학적 원리로 적용한다면 이는 동양의학이 아닌 서양의학이다. 따라서 대체의학은 과학적 의학의 연결상에서 생의학적 패러다임에 따라서 몸을 임상적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지 결코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니다.
생체권력이 작동하는 기전은 실로 전 세계적이다. 전 세계보건의료의 활동을 관장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 세계적으로 유수한 과학자들의 연구비를 통제하고 있는 미국의 국립보건원, 동아시아 국가들의 의료정책을 ‘약의정치(Phamacracy)’를 통해 무대 뒤에서 교묘히 조종하는 다국적 제약회사 등은 말할 것도 없다.
21세기 세계의학의 전망과 전통의학의 역할
西歐, 동아시아 전통의학 점진적 포섭
어느 한쪽의 편식적 학문 경향은 부당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정우열 명예교수
또 동아시아 의료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동아시아의 경제적 위기를 주무르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등이야 말로 이런 작동기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이다.
저들의 대체의학은 이런 범주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지금 세계의학(미국)이 ‘과학적 생의학(Scientific biomedicine)’의 이름으로 의학의 제국을 구축하는 방식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대체의학 전략은 또 다른 위기
그것은 서구에서 동아시아로의 대체의학의 확산도 아니요,‘전통의학’의 ‘발명’을 통한 동아시아의학과 대체의학 사이의 접목도 아니다. 그것은 상품화된 생의학이 전 지구적인 시장경제에서 대체의학의 이름으로 ‘전통의학’의 ‘발명’을 부채질함으로써 동아시아의학을 점진적으로 포섭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대체의학의 전략은 동아시아 국가(특히 전통의학자)들에게는 위기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위기를 극복하여 잘 대처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따라 동아시아의 전통의학을 대체의학이 아닌 새로운 개념으로 바꾸어 세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과 대책이 필요하다.
21세기에는 동서의학이 공존하는 시대로 여러 지역의 의학들이 상황에 맞게 적응하면서 변모하여 갈 것이다. 서양의학이 아무리 과학적 의학의 한계를 느껴서 대체의학으로 그 대안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닌 상품화된 생의학을 전 지구적으로 시장화하려는 전략이며, 과학적 의학의 자연의학으로의 전환은 결코 아니다.
대부분의 동양의학자들이 서양에서 과학적 의학의 한계를 느껴 그 한계를 대체의학으로 보완하려한다 하여 서양의학이 자연의학으로 돌아온다고 흥분하고 있는데, 서양의 체액설을 틀로한 대체의학과 동양의 음양론을 틀로한 동양의학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
따라서 동양의학을 지금 서양에서 하고 있는 대체의학으로 만족한다면 동양의학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할 것이며, 또한 서양의학의 한계를 보완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도 동서의학자들에 따라 대체의학을 대하는 입장과 태도가 서로 다르다.
깊이있는 동서의학 연구 필요
즉 서양의학자들은 과학적 틀에서, 동양의학자들은 자연적 틀에서 보려는 것이 그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서양의학이 각 나라마다 다른 양상으로 수용됐지만 동서의학이 만난 이래 근100년 동안 대립적 관계에서 서로의 입장만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젠 어느 정도 상호 협력적 자리가 마련되었다.
따라서 서양의 대체의학에 대한 동아시아의학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동안 동서의학이 어느 정도 협진적 체계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아직도 부족하므로 보다 깊이 있는 동서의학의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 각국의 동서의학자들이 이룩한 연구기반을 토대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적 공동연구체’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1세기에 동양의학이 세계의학(서양의학)에 대해 할 수 있는 역할은 첫째, 유전의학시대가 열리면서 ‘난다(生) → 만든다(造), ‘부모 → 연구실’, ‘따뜻한 인술자 → 차가운 과학자’로 바뀌는데 있어서 나타나는 ‘인간상실’에 대한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이며, 둘째, 지금까지 ‘투쟁’으로만 이끌어온 치료방법을 ‘조화’라는 ‘내공생(endosymbiosis)’으로 바꾸도록 하는 의식전환의 역할이다.
질병에서 건강중심 사고 전환
죽은 몸을 살아 있는 몸으로, 질병중심에서 건강중심으로, 치료의 개념에서 관리(양생)의 개념으로 사고를 전환하도록 하는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동양의학 교육에서는 실험위주의 교육만이 전부가 아니며(물론 실험교육도 필요하다), 기술만을 능사로 한 교육 또한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론·기술·실험이 균형적으로 발전 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과 과정에서는 의철학· 의과학·과학철학·의학사상·의학윤리(생명윤리) 등과 같은 기초학문이 중시되어야 할 것이며, 의학개론 ·생리학·병리학 등을 통합한 기초의학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서양이 쌓아온 과학적 지식 및 기술 또한 중시되어야 한다.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어느 한쪽으로만 경도된 편식적 학문 경향에 대한 부당함이다.
21세기에 요구되는 바람직한 세계(미래)의학상은 상위 개념에서는 ‘융합의학’을 목표로 하면서 하위 개념에서는 지금까지의 인류가 개발한 여러 가지 형태의 ‘다종의학’을 조화시켜 ‘새로운 의학(신의학)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중·일 3국이 함께 참여하여 공동연구 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학 연구’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제안하는 바이다.
동아시아라 함은 중국의 한자 문화권에 속한 나라를 말하며 그 중에서도 한국·중국·일본이 중심이 된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일찍부터 전통의학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들 의료체계는 자연적 의료체계였다. 그러나 19세기 서구의 근대화 과정에서 이들 전통의학은 과학적 의학에 의해 수난을 맞게 되었다.
한국·중국·일본 3국이 서양의학을 받아들인 수용시기와 태도는 서로 다르다. 3국 중 서양의학을 제일 먼저 받아들인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은 17세기 도쿠가와 바쿠후 시대에 데지마(出島)를 통해 네덜란드의학을 받아들였다. 이때 일본은 중국이나 한국이 선교사에 의해 선교의료를 통해 받아들인 것과는 달리 종교가 배제된 무역통상 과정에서 받아들였다.
동아시아의 서양의학 수용
중국은 런던 선교회에서 파송된 벤자민 홉슨(Benjamin Hobson, 1816-1873)이 『전체신론』(1851), 『서의약론』(1857), 『부영신설』(1858), 『내과신설』(1858), 『의학신어』(1858) 등의 의학서적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출간 한 이래 서양의학이 급속도로 보급되었다.
한국은 17세기 네덜란드를 통해 서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리고, 18세기에 이르러서야 중국을 통해 이익(1762~1836)이 비로소 서양의학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이때 서양의학은 갈리노스의 생리학 범주에 머물렀으며, 중국에서 출간된 홉슨의 의서가 소개된 것은 19세기 최한기(1803-1877)에 의해서다. 근대서양의학을 받아들인 것은 19세기말 미국선교회의 선교의료와 일본제국주의 식민정책의 일환에 의해서다.
따라서 현재 한·중·일 3국이 각각 전통의학을 갖고 있으면서 서양의 과학적 의학을 받아들인 후의 의료체제 및 형태는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즉 일본은 전통의학을 제도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서양의학 체제로 일원화하였으며, 중국은 서양의학(西醫)과 중의학(中醫) 그리고 중서의결합(中西醫結合)이라는 3원 체제를, 한국은 서양의학과 한의학의 2원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이처럼 서양의학을 만나면서 각 나라마다 양상은 다르나 거의 100여년이라는 동안 동서의학이 대립된 양상을 띠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이르러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현대 서양의학은 과학적 의학의 한계를 느끼면서 대체의학이란 이름으로 자연의학의 전일론적 ·유기체론적 개념으로 전환하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동아시아 전통의학자들은 한편 반가우면서도 한편 두려움을 지울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동안 전통의학이 주류의학에서 소외된 듯 하였다가 각광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서양의 대체의학이 19세기 제국주의 선교 오리엔탈리즘을 연상케 하는 면에서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체의학 프로젝트에는 건강식품이 있다.
그동안 동양 전통의학의 약물들은 생약 자체로서의 천연약물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제 이 약물(한약)들을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하여 전 세계적으로 파고들므로 동양의학의 학문적 체계와 의료질서를 파괴시킬 수 있다.
100여년 동안 동서의학 대립
현재 대체의학자들은 동아시아 전통의학(한의학)이나 체액의학 및 아유르베다 의학을 자연의료체계의 동일체계로 보고 한의학을 대체의학의 범주에 넣는다. 그러나 한의학의 음양론은 4체액설의 한·열 이론과는 다른 면이 있다.
즉, 한의학의 음양론은 상반된 두 작용이 합해서 ‘조화’를 이룬다는 ‘역설적 논리’이고, 4체액설은 상반된 두 관계가 대립하여 ‘투쟁’을 이룬다는 ‘모순적 논리’이다. 예를 들면 한의학에서는 한과 열을 고정된 ‘절대적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상대적 관계성’으로 보는 것이다.
寒·熱 상대적 관계성 지녀
그러므로 한증(寒證)의 병을 치료할 때는 반드시 더운약을, 열증(熱證)에는 반드시 찬약만을 쓰는 것이 아니다. 이열치열의 경우와 같이 열증에 열약을 쓰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체액설에서는 한과 열을 절대적 개념으로 보고 한증에는 반드시 더운약을, 열증에는 찬 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체의학이 생약(한약)을 천연물이라 하여 건강식품의 대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좋지만, 약물 운용을 한의학적 원리가 아닌 과학적 원리로 적용한다면 이는 동양의학이 아닌 서양의학이다. 따라서 대체의학은 과학적 의학의 연결상에서 생의학적 패러다임에 따라서 몸을 임상적 시선으로 바라본 것이지 결코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니다.
생체권력이 작동하는 기전은 실로 전 세계적이다. 전 세계보건의료의 활동을 관장하고 있는 세계보건기구, 세계적으로 유수한 과학자들의 연구비를 통제하고 있는 미국의 국립보건원, 동아시아 국가들의 의료정책을 ‘약의정치(Phamacracy)’를 통해 무대 뒤에서 교묘히 조종하는 다국적 제약회사 등은 말할 것도 없다.
21세기 세계의학의 전망과 전통의학의 역할
西歐, 동아시아 전통의학 점진적 포섭
어느 한쪽의 편식적 학문 경향은 부당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정우열 명예교수
또 동아시아 의료시장에 적극 개입하고 있는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동아시아의 경제적 위기를 주무르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등이야 말로 이런 작동기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기관이다.
저들의 대체의학은 이런 범주 내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지금 세계의학(미국)이 ‘과학적 생의학(Scientific biomedicine)’의 이름으로 의학의 제국을 구축하는 방식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대체의학 전략은 또 다른 위기
그것은 서구에서 동아시아로의 대체의학의 확산도 아니요,‘전통의학’의 ‘발명’을 통한 동아시아의학과 대체의학 사이의 접목도 아니다. 그것은 상품화된 생의학이 전 지구적인 시장경제에서 대체의학의 이름으로 ‘전통의학’의 ‘발명’을 부채질함으로써 동아시아의학을 점진적으로 포섭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대체의학의 전략은 동아시아 국가(특히 전통의학자)들에게는 위기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위기를 극복하여 잘 대처하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따라 동아시아의 전통의학을 대체의학이 아닌 새로운 개념으로 바꾸어 세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략과 대책이 필요하다.
21세기에는 동서의학이 공존하는 시대로 여러 지역의 의학들이 상황에 맞게 적응하면서 변모하여 갈 것이다. 서양의학이 아무리 과학적 의학의 한계를 느껴서 대체의학으로 그 대안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이 아닌 상품화된 생의학을 전 지구적으로 시장화하려는 전략이며, 과학적 의학의 자연의학으로의 전환은 결코 아니다.
대부분의 동양의학자들이 서양에서 과학적 의학의 한계를 느껴 그 한계를 대체의학으로 보완하려한다 하여 서양의학이 자연의학으로 돌아온다고 흥분하고 있는데, 서양의 체액설을 틀로한 대체의학과 동양의 음양론을 틀로한 동양의학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
따라서 동양의학을 지금 서양에서 하고 있는 대체의학으로 만족한다면 동양의학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상실할 것이며, 또한 서양의학의 한계를 보완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에서도 동서의학자들에 따라 대체의학을 대하는 입장과 태도가 서로 다르다.
깊이있는 동서의학 연구 필요
즉 서양의학자들은 과학적 틀에서, 동양의학자들은 자연적 틀에서 보려는 것이 그것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서양의학이 각 나라마다 다른 양상으로 수용됐지만 동서의학이 만난 이래 근100년 동안 대립적 관계에서 서로의 입장만을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젠 어느 정도 상호 협력적 자리가 마련되었다.
따라서 서양의 대체의학에 대한 동아시아의학자들이 풀어야 할 과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동안 동서의학이 어느 정도 협진적 체계를 이루었다 하더라도 아직도 부족하므로 보다 깊이 있는 동서의학의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어느 정도 각국의 동서의학자들이 이룩한 연구기반을 토대로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지역적 공동연구체’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21세기에 동양의학이 세계의학(서양의학)에 대해 할 수 있는 역할은 첫째, 유전의학시대가 열리면서 ‘난다(生) → 만든다(造), ‘부모 → 연구실’, ‘따뜻한 인술자 → 차가운 과학자’로 바뀌는데 있어서 나타나는 ‘인간상실’에 대한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이며, 둘째, 지금까지 ‘투쟁’으로만 이끌어온 치료방법을 ‘조화’라는 ‘내공생(endosymbiosis)’으로 바꾸도록 하는 의식전환의 역할이다.
질병에서 건강중심 사고 전환
죽은 몸을 살아 있는 몸으로, 질병중심에서 건강중심으로, 치료의 개념에서 관리(양생)의 개념으로 사고를 전환하도록 하는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동양의학 교육에서는 실험위주의 교육만이 전부가 아니며(물론 실험교육도 필요하다), 기술만을 능사로 한 교육 또한 만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론·기술·실험이 균형적으로 발전 할 수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교과 과정에서는 의철학· 의과학·과학철학·의학사상·의학윤리(생명윤리) 등과 같은 기초학문이 중시되어야 할 것이며, 의학개론 ·생리학·병리학 등을 통합한 기초의학이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서양이 쌓아온 과학적 지식 및 기술 또한 중시되어야 한다.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어느 한쪽으로만 경도된 편식적 학문 경향에 대한 부당함이다.
21세기에 요구되는 바람직한 세계(미래)의학상은 상위 개념에서는 ‘융합의학’을 목표로 하면서 하위 개념에서는 지금까지의 인류가 개발한 여러 가지 형태의 ‘다종의학’을 조화시켜 ‘새로운 의학(신의학)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중·일 3국이 함께 참여하여 공동연구 할 수 있는 ‘동아시아의학 연구’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를 제안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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