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형 교수 국민대 특임교수
☞ 우연한 계기로 한의사 군의에 ‘관심’…보다 많은 인물 발굴되길 기대
☞ 시대정신 구현한 선배 한의사들 조명은 한의학 정체성 확립에 큰 도움
☞ 이계형 국민대 특임교수, 내달 19일 ‘국제 동아시아 과학사 회의’서 발표
내달 19일부터 23일까지 전북대학교에서 ‘제15회 국제 동아시아 과학사 회의’(이하 과학사회의)가 개최된다. 과학사회의는 동아시아 지역의 의학, 과학, 기술의 역사를 다루는 연구자 및 학자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국제 동아시아 과학, 기술, 의학사 학회’가 4년마다 개최하는 대규모의 국제적 학술대회다.
특히 이번 과학사회의가 한의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이계형 국민대학교 특임교수가 ‘한국 독립군 韓醫 군의관의 역할과 활동’(가제)을 주제로 한 발표를 통해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대한민국 독립운동사 속 한의사의 활동에 대한 조망과 함께 거기에 담겨진 한의학의 정체성 및 시대정신을 소개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독립운동사 연구에 매진해왔던 이 교수에게도 독립군 내에서의 한의사의 활동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지만, 우연한 기회에 독립운동을 했던 한의사의 활동을 접하면서 이번 발표를 준비하게 됐다.
“자생의료재단 신준식 명예이사장의 동생인 신민식 원장이 작은할아버지인 신홍균 선생이 독립운동을 했던 자료를 찾던 중 우연히 제가 쓴 논문을 보고 찾아와 도움을 청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들에 대한 기록은 일본의 밀정이 기록한 자료가 주를 이루다보니, 독립운동가들이 본명보다는 가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자료를 찾는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다행히 김중권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인물을 찾던 중 ‘신흘’(申屹), ‘신골’(申矻)이라는 이름을 찾게 됐고, 독립운동가 조경한 선생의 ‘백강회고록’ 등의 관련 자료를 통해 바로 이 인물이 신홍균 선생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의사’라는 생업 활용해 독립에 기여한 사실 ‘관심’
이처럼 우연한 기회에 한의사들이 무장투쟁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생업을 활용해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된 이 교수는 독립군이 있다면 당연히 독립군을 치료하는 사람, 의식주를 해결하도록 도와줬던 사람 등 이름 없이 묵묵히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노력한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을 조명하는 연구는 너무 미진하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때문에 이번 일이 계기가 돼 내달 개최되는 과학사회의에서 독립군 내에서의 한의사들의 활동, 특히 자신들의 본업인 한의학을 이용해 독립군 내에서 군의로 활동했던 인물들에 대해 발표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신홍균 선생의 기록을 찾던 중 대전자령 전투 얘기가 나오는데, 이 기록에서 신홍균 선생이 당시 식량이 떨어진 독립군들에게 주위의 버섯을 먹여 위기를 극복해 승리까지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일화가 나온다. 독립운동이라고 하면 단순히 무력투쟁만을 생각하게 되는데, 이 일화를 통해 자신의 생업인 한의사라는 장점을 살려 독립군 내에서도 역할을 했던 것이 깊게 다가왔다. 특히 한의사라는 역할을 통해 독립운동에 매진했던 선배 한의사들을 발굴하는 것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구현코자 자신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했던 선배 한의사들의 정신을 재조명하는 것으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한의사에게도 ‘과연 한의사로써 현재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구현해낼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독립운동가들 발굴은 시대정신을 이어가는 일
그동안 한의사 출신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인물은 강우규, 노병희, 조종대, 심병조, 이병우, 정구용, 함태호 등이며, 이들은 한의사로서의 역할보다는 무력투쟁이나 군자금 모집 등 대외투쟁을 주로 행했던 인물들이다.
이 교수는 “사람들은 독립운동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 국민의 1% 정도만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며 “역사는 누가 기록했느냐에 따라 (해석)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지 못했다면 이들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잘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재조명하는 것이야말로 당시의 시대정신을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역사가 없는 민족은 미래도 없다’라는 말처럼 역사를 제대로 계승하지 않고서는 민족의 발전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역사적인 사실은 그 누구도 정답을 확신할 수 없음에도 역사가 단순한 암기과목 으로 인식되고 있는 현실은 반성해야할 부분이며, 역사야말로 다양한 관점 속에서 여러 가지 해석을 통해 고려되고 논의돼야 할 인문학적인 학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의협 차원서 독립운동 한의사 발굴하는 계기되기를 바래
이같은 이유로 이계형 교수는 아직까지 주목받고 있지 않은 한의사 독립운동가들, 특히 한의사의 역할을 살려 독립군 내에서 군의로 활동했던 한의사들을 발굴하는 것은 한의사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조지 오웰의 ‘1984’라는 책을 보면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이야말로 역사의 중요성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문구가 아닌가 싶다. 한의사들도 지금부터라도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발굴에 나설 필요가 있다. 최근에는 후손이 없더라도 관련된 협회가 있으면, 협회 차원에서 국가유공자 신청을 할 수 있다. 한의사협회에서 이러한 일은 하는 것은 한의사의 뿌리(근본)를 찾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미래의 발전까지도 도모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이러한 활발한 발굴작업과 함께 군의관으로 활동한 한의사들만 모아 따로 서적을 발간하는 것도 한의사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독립운동 한의사는 한의계의 커다란 자부심이자 자산될 수 있어
한편 이계형 교수는 현재 다양한 자료를 통해 △독립군 내에서의 군의 △독립운동에 참여한 의생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조사하는 한편 이들에 대한 세부적인 활동상을 조사해 나가는 등 발표 준비에 분주하다.
이 교수는 “앞으로 조사한 인물들에 대한 추가적인 확인작업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당시 서양의학 교육을 받는 것이 제한적이라는 등의 시대상황에 비춰보면 독립군 내에서 군의로 활동했던 사람들은 대부분이 한의사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한의사와 같이 자신들의 기술 혹은 본업을 살려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은 독립운동사 연구에도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만큼 이번을 계기로 알려지지 않은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발굴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밝혔다.
특히 이 교수는 “최근 여러 단체에서 ‘뿌리찾기’가 진행되고 있다. 그만큼 뿌리(근본)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심어진 것”이라며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일제강점기 때의 시대정신의 발현이다. 이러한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구현한 선배 한의사들을 두고 있다는 것은 현재 한의사들에게는 커다란 자부심이자 자산이 될 수 있는 만큼 보다 많은 선배 한의사들이 발굴돼 한의학의 정체성을 올곧게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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