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준전 교수님의 한의학 사랑 이야기

기사입력 2018.11.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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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규석 경희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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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 문준전 한의협 명예회장(왼쪽)과 안규석 경희대 명예교수

    문준전 교수(한의사협회 명예회장)님께서 갑자기 하늘나라로 가신 지 1개월이 훌쩍 지났는데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이제 49일도 가까워지고해서 경희대학교 재임 당시 가까이에서 느낀 교수님의 한의학 사랑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해서 전하고자 한다.
    제가 한의대에 입학하여 고민 중 가장 큰 것이 연구자냐 임상가냐 이었는데 임상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예과부터 교수님들과 유명 선배님들을 찾아다니며 배우는 것을 열심히 하여 본3, 4년 때에는 가족들과 하숙집 주위에서는 제법 명의(?) 소리를 들었으므로 졸업하면 임상가로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런데 본4학년 12월에 문교수님께서 ‘너 병리학교실에 남아’ 이 한마디를 하셨는데 갑자기 온몸이 굳어지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멍 하니 서 있다가 ‘예’ 하고 대답하였다. 당시에는 석성화 선배님이 조교로 계셨었다.

    1. 간질환의 과학적 연구 주도적 기획
    당시까지만 해도 한의학이 치료의학으로서의 객관적 자료가 부족한 시점 이었고 더구나 서양의학에서도 간 질환을 치료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을 시기이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어려운 간질환을 택했을까? 그 이유는 한의사들이 의사들이 치료하지 못하는 간질환을 자주 고치고 있었고, 문교수님도 개인적으로 치료 경험이 있어서 실험적으로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 이었다.
    우선 한의사 겸 약사이신 김광호 교수님을 약대에서 한의대로 영입하고, 그 때까지 서의학에서 하는 모든 간질환 실험방법을 정리하여 생화학적, 약리학적, 조직학적 방법으로 실험에 착수하여 성공하였다. 여러 교수들이 협럭하여 실험한 결과 인진호탕, 인진오령산, 가감위령탕, 소시호탕, 대시호탕, 가감청간건비탕 등 모두에서 손상된 간이 회복되는 결과가 나왔다. 당시 경희대학교 대학 주보에는 ‘한의학 간질환을 완치한다’라는 제목으로 1면을 장식했다. 동시에 전국의 일간지에서도 중요기사로 다루게 되었고, 전국의 한의원에서는 간질환으로 찾는 환자가 급증하였다. 당연히 경희대 한방병원에서는 6개월이상 예약환자가 대기할 정도였다. 이로 인해서 한의학, 한의사, 경희대의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작업은 1977년부터 1980년 사이에 이루어 졌다. 그래서 80년 이후부터 한의대 입학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2. 군진한의학 제도 확립을 위한 노력
    1960년대 후반에 입학한 학생들은 해마다 군진한의사제도(한의사군의관) 때문에 대모 하였다. 그런데도 조직적이고 합리적으로 대처하지를 못하고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실무자들이 원하는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국방부를 무수히 들렸으며, 많은 자료를 준비하여 제출하고 설득하기를 무수히 반복하였다. 당시 나는 조교로서 따라 다녔는데 국방부 사람들이 ‘ 한의사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다….’ 하면서 여러 번 감탄하는 예기를 들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데모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고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이 되고 또 검증을 받아야 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각 대학에 양방진단학, 방사선학, 임상병리학 등을 반드시 교육과정에서 다루도록 독려하기도 하였으며 이러한 노력들이 쌓여서 결국 군진한의학 제도가 정착되었다. 지금 협회와 각 대학에서 추진하고 있는 미래의 의학시스템에서 대부분의 의사 역할을 할 수 있는 한의대 교육과정 개편 작업은 매우 중요하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문제인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서로 양보하면서 해결하여 주기를 바란다.

    3. 최신 중의학의 분석 및 도입에 선도적 역할
    1975년 이후부터 홍콩을 통하여 중국대륙의 한의서들이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서문의 모택동주석이란 말을 붉은 잉크로 지워져서 들어왔다. 교수님께서는 빨리 이 문헌들을 분석하여 한국한의학에 활용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빠른 번역을 독려하셨고 연구실에 계시다가 택시타고 귀가하시는 일이 자주 있었다. 우선은 내용이 간체자로 되어 있어서 간체자 사전을 구하여 익혀서 시작하였고, 동의보감 중심으로 배워왔던 우리에게는 생소한 술어들이 많았다. 소설, 간양, 비양, 공능 등과 장부중심 변증들이 있었고 기초와 임상 각 분야에서 술어들이 통일 되어 있었다. 이들을 보고 가슴 벅차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대학원 석 박사 과정 학생들의 중간 연구발표는 대부분 새 문헌 들을 참고하여 우리 것을 융합하는 것들이 많았다.
    당연히 이러한 문헌을 접하지 못한 다른 교실에서는 당황하기도 하였다. 그때 새 중국 문헌을 구입하시기 위해 봉급의 절반정도까지 지출 하신 적도 있었다. 병리학 교실의 이러한 노력이 모든 교실에 자극이 되어 지금은 대부분의 전공교과서가 중의학 문헌들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4. 한의학 연구기금 조성
    간질환 연구를 하면서 연구를 위한 기본 시설과 인력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범 한의계에서 연구기금을 모금키로 작정하였다. 우선 1억원을 목표로하고 한의학 현대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지인들을 중심으로 모금을 한 결과 몇 개월도 안되어 목표치를 달성하였다. 당시(1980년)만 하여도 연구기금법이 잘 갖추어지지 않았고 각 기관에서 불만 없이 잘 운영 되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의 시기로 인하여 동아일보에서 ‘ 경희 한의대 연구기금 강제 모금’ 이라는 제목으로 대학이 교육부로부터 압박을 받아 결국 문교수님이 자진 사퇴하셨다.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사건이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고 한명에게도 강제로 모금하지 않았고, 연구기금을 낸 모든 분들은 순수하게 한의학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참여하였다. 그 가운데 당시 대학원에 재학 중인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대학원 학점과 논문 통과를 잘 해주겠다는 조건으로 강제 모금 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도저히 이러한 곳에서 더 이상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어 나와 최승훈 선생이 조교 사표를 내고 학교를 떠나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난 경희대로 다시 와서 연구기금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학장이 된 후 전 교수가 매월 발전기금을 내도록 교수회의에서 동의를 받아서 시행하였으며, 많은 동문들의 지원으로 직 간접적으로 수년간에 걸쳐 20여억원을 조성하는데 기여 하였으며, 이것이 연구비, 학생들의 장학금, 캘린더 제작, 학관건립에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이 자리를 빌어 나를 믿고 많은 금액을 희사해 주신 동문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것 이외에도 최초로 경락허실측정기(양도락)를 활용하여 100m 뛰기 전후의 기록, 어떤 포인트의 오르내림에 따른 약물 가감 등을 상세히 기록해 놓은 것 등은 후세 연구자들의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동국대에서의 학장, 병원장 재임시의 역할 들이 있으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다시 한번 교수님의 명복을 빌며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계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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