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일본을 얼마만큼 알고 있나?
떼려야 뗄 수 없는 가까운 거리의 일본과 일본인, 우리는 그들을 알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 지일(知日)을 통해야만 극일(克日)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태풍 제비가 일본 열도를 관통하며 25년만에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발생시키며,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이 폐쇄되어 오사카, 교토, 나라를 여행하는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이 묶인 바 있다. 연이어 홋카이도에도 강진이 발생, 산사태와 도로 붕괴로 많은 인명 피해는 물론이거니와 홋카이도의 관문인 신치토세 공항이 폐쇄되고 전 지역이 정전돼 암흑천지가 되었었다.
필자도 와세다대학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하던 때, 수 백년 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하다는 토호쿠(東北) 대지진을 직접 겪은 경험이 있다. 토호쿠(東北) 대지진은 2011년 3월11일 일본 혼슈의 북동쪽 해안에서 발생한 규모 9.0의 강진을 말하며, 이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터졌다.
이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와 실종자의 숫자만 무려 2만 4500명에 달했다. 강진과 쓰나미는 주택과 농경지뿐만 아니라 사회기반시설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특히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를 비롯한 몇몇 원자력 발전소는 전력이 끊겨 3개의 원자로에서 냉각장치가 작동을 멈추었고, 그 후 원자로 중심부가 과열돼 방사능 누출 위험이 발생했다.
각종 재해 대비해 어렸을 적부터 대처 교육 체득
몇해 전, 우리나라도 경주에서 진도 5.8의 지진이 발생해 온 나라가 놀라긴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그다지 큰 지진이 없었기에 지진이 얼마나 무섭고 공포의 대상인가를 실감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필자가 경험했던 3.11 대지진은 7년 반이 지난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상상해 보시라.
사방의 수십층 고층 빌딩이 상하 좌우로 흔들리며 내는 굉음, 도로 위의 모든 자동차가 마구 흔들리고 대형 크레인에 매달린 커다란 추가 이리저리 춤을 추며, 건물 벽에 붙여진 타일이 사방으로 떨어지고, 서 있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주변의 건물이 언제 무너져 나를 덮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다.
대지진이 지나간 후 여진으로 건물은 계속 흔들리고 있었지만 이대로 밖에서만 머물 수 없어 계단을 걸어올라 8층의 내 방 문을 여니 TV를 비롯, 책상 위의 책들, 찬장 속의 그릇들은 대부분 바닥에 깨진 채 널브러져 지진의 위력이 어떠했던가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와세다대학 부속 중·고등학교가 대학과 붙어 있는지라 마침 8층에 위치한 내 방에서는 학생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교복 차림의 수많은 학생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운동장 한 가운데 둥그렇게 모여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남극의 펭귄 떼가 추위를 이기기 위해 조금의 빈틈도 없이 서로의 몸을 밀착하여 추위를 이기는 모습과 같았다. 이는 아주 어린 유아원, 유치원 때부터 교육되어 몸으로 체득된 행동이다.
일단 지진이 발생하면 가장 먼저 체감한 사람이 ‘지진’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동시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문을 열고 문틈에 삼각 지지대를 끼워 탈출구를 확보하는 일이다. 이는 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틀어지면 문이 열리지 않아 탈출이 불가능하게 되므로 바로 삶과 죽음의 일차 관건이 되는 탈출구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일이다.지하철과 버스가 스톱되고 휴대전화마저 불통되자, 집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대부분의 대학과 고등학교에서는 대강당이나 체육관을 개방해 잠자리를 제공했다.
나도 나 나름대로 살 방도를 마련해야 했다. 태풍이나 폭우는 예보가 가능하지만 지진은 언제, 어떤 강도로 찾아올지 모르는 것이기에, 나는 24시간 TV를 틀어놓고 어깨에 멜 작은 가방에 속옷 한 벌과 물 한병, 티셔츠 하나만 넣어두고 지갑과 여권은 주머니에 챙겨 여차 하면 튀어 나갈 자세로 옷을 입은 채 앉아서 잠을 자기를 열흘정도…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눕지 못하고 앉아서 자는 것이 열흘 이상 되자 “에라! 모르겠다”, “설마 또?” 불안하기는 하지만 자포자기 상태가 돼 비로소 누워서 잠을 자게 됐다.
와세다대학에 교환교수나 방문교수로 와서 게스트하우스에서 함께 생활했던 외국 교수들은 지진 이후 자신들의 나라로 대부분 곧바로 돌아갔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소위 선생이라는 자가 엄청난 자연참사를 겪은 제자들을 버리고 나 살자고 안전한 고국으로 도망치듯 갈 수가 없어 저녁마다 학생들과 사케잔을 기울이며 정을 나눴다.
그후 6개월여 동안에도 3700번 이상의 여진이 찾아 왔다. 날마다 시도 때도 없이 흔들어대는 여진 탓에 지진이어도 지진이 아닌 것 같고, 지진이 아니어도 지진인 것 같은 착각 속의 생활이었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대자연의 참사 앞에서는 그저 우리는 연약한 인간임을 확인하고 위로를 나눌 뿐이었다.
24시간 틀어 놓은 TV는 지진에 관한 소식뿐이었다.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는 장면에서부터 피해지역의 모습과 상황, 정부의 대책, 가족을 잃은 사람의 인터뷰 등등. 우리 방송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를 잃었다고 하는데 너무들 덤덤한 표정이다. 심지어 NHK 인터뷰에서 “피신하던 중에 잡고 있던 딸의 손을 놓쳤다. 나는 살아 남았지만 딸은 살리지 못했다. 딸 생각에 바다 쪽을 보는 것이 두렵다”고 하는 엄마의 인터뷰도 있었다.
아마 한국에도 인터넷상에 논란이 되었던 장면이기에 어쩌면 기억을 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논란의 쟁점은 어떻게 저런 상황에서 웃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마침 그 시기에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도쿄 특파원으로 와 있었다. TV방송사인지라 인터뷰에 응한 주민의 표정이 피해를 당한 사람 같지 않게 너무 밝다거나,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과 매치가 안 된다며 다른 내용은 없느냐고 서울 본사에서 지적을 받는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일본인, 다른 사람 앞에서 속마음을 잘 내보이지 않아”
피해 지역 주민 대부분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인터뷰하는 기자로서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는 것이다. 서양인들에게도 이런 일본인들이 이상해 보여서인지 표정 연구의 세계적인 석학인 폴 에크만 박사가 이미 1970년대에 ‘감정 따로, 얼굴 따로’ 인 일본인들에게 비참한 영상을 보여주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연구했다고 하지 않던가?
“일본인은 다른 사람 앞에서는 속마음을 보이면 안된다는 자문화 특유의 개념이 있는데 그 개념은 감정의 ‘은폐’와 ‘억제’다”라고 에크만 박사는 지적했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나라 사람들을 싫어하는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단연 일본이 1위가 될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일본에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뉴스가 뜨면 밑에 달리는 감정적 댓글은 한글 사용자인 한국인으로서 미안할(?) 정도로 무섭다.
그런데 일본을 찾는 여행객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이자카야를 비롯 일본풍 식당이 개업 러쉬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다녀오지만 정작 무엇을 보고 느끼고 오는지 사뭇 궁금하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가까운 거리의 일본과 일본인, 우리는 그들을 얼마만큼 알고 있나? 그들을 알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 지일(知日)을 통해야만 극일(克日)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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