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윤 한의사/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어떤 학생을 선발할 것인가?
“한의대에 필요한 적성은 무엇인가요?”
입시철을 앞두고 한의대 수험생들이 드나드는 인터넷 사이트들에서는 이런 질문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댓글로 답을 주는 사람들은 같은 수험생들도 있겠고 먼저 한의대에 입학한 한의대생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 같지만 실상은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짧은 시간에 자료를 암기하는 능력, 시험 기간에 지치지 않고 버티는 체력 등의 현실적인 조언이 주를 이룬다.
그런 능력들이 학교 생활을 하는데 있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텍스트를 읽고 빠르게 암기하며, 방대한 학업량에도 지치지 않는 능력이 한의대생이나 한의사가 되기 위한 핵심적인 자질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학교에 입학한 이후 적응을 하지 못해 방황하기도 하며 전문직으로서 의료인의 사회적 책무를 망각한 채 부도덕하거나 비양심적인 행위로 대중을 실망시키는 사람도 존재하는 것을 보면, 단순히 시험 성적을 잘 받고, 무사히 진학하여 의료인이 되는 것만을 목표로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의료인의 역량은 이제 더 이상 학업적, 인지적 능력에 머무르지 않는다. 미국의과대학협회는 ‘Medical School Objectives Project’와 같은 보고서에서 미래 의료인의 역량으로 사회적 책무성, 의사소통능력, 자기계발 태도 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역량은 의과대학의 교육과정 안에서 최대한 교육해야 하겠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방대한 전문적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여건 하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미 가치관과 생활 태도가 어느 정도 형성된 이후의 성인 교육이라는 점에서 대학 입학 후의 교육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 입학 전형과 학생 선발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적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의료인의 자질을 미리 갖춘 학생을 선발한다면 의학 교육의 효율성을 달성함과 동시에 더 바람직한 역량을 갖춘 의료인을 양성, 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학생 선발에서 평가 요소의 다각화를 모색해야 한다. 학생의 학업 성취도 뿐 아니라 의사소통능력, 공감능력, 문제해결능력 등 비 학업적인 측면의 요소를 측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 12개 한의과대학에서는 수시와 정시로 전형을 나누어 실시하고 있으며 학교에 따라 다양한 단계를 도입해 신입생을 선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논술로는 문제 파악 능력, 비판적 사고력, 논리적 사고력, 표현 능력 등을 측정할 수 있고 면접은 심층 면접을 통해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결능력과 대처 능력, 동료 집단 안에서의 적응성이나 소통능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면접과 논술 등에서 이미 판에 박힌 정형화된 문제를 여전히 암기식으로 대비하는 풍토 역시 존재한다. 따라서 대학은 면접 문항과 논술 문항을 지속적으로 연구, 개발하여 바람직한 의료인상에 부합하는 학생을 선발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단순한 면접문항이나 논술문항에서 벗어나 보다 더 포괄적으로 지원자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할 필요도 있다. 영국의 페닌슐라 의과대학은 지원자의 학업 능력 이외에 의사소통, 이타심과 사회에 이익이 되는 행동, 융통성, 의사결정능력, 협동심, 정직함, 반성적 태도, 자기통찰력, 질병과 의학에 대한 통찰력, 관리능력 등 10가지 영역을 평가하기 위해 독자적으로 구조화된 면접 질문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2004년 캐나다의 McMaster 의과대학에서 개발되어 현재 미국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로 확산된 학생 선발도구인 다면인적성면접(multiple mini-interview)역시 선발방식 변화의 중요한 예로 들 수 있다.
다면인적성면접은 학생의 비학업적인 특성을 보기 위해 객관구조화진료시험(OSCE)의 원리를 면접에 적용한 것으로서 한 학생이 여러 면접 스테이션을 거치며 제시되는 문제에 답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주로 구체적인 문제 상황 하에서의 판단력과 평소 가치관, 인성을 평가하도록 되어 있으며 최근 들어 우리나라의 몇몇 의과대학에서도 입학 전형에 도입, 실시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다면인적성면접이 단순히 선발도구로서 기능할 뿐 아니라 입학 후의 학업성취도와 학교 생활과도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McMaster 의과대학은 이 면접 점수가 OSCE점수와 임상수행능력 등과 높은 상관도를 보인다고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국내 서울대 의대에서도 다면인적성면접 수행군이 비수행군에 비해 더 타인과 사회지향적이며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학업성취도를 비교했을 때 다면인적성면접 수행군이 의예과 7개 과목 모두에서 비 수행군보다 더 높은 성적을 받았다고 한다. 동일한 다면인적성면접을 수행하고 입학한 학생들을 비교했을 때 그 점수의 높고 낮음에 따라서도 학업 성취도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 다면인적성면접이 의예과 학업 성취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지원자의 다양한 인성, 적성을 파악하기 위해 도입한 면접 방식으로 학습에 대한 내적 동기까지 유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인지적 역량과 비인지적 역량을 고루 갖춘 학생을 선발하여 교육하는 것이 의과대학이 가진 중요한 사회적 의무라 할 수 있다. 바람직한 의료인을 양성하는 기관으로서 대학은 의료 역량의 핵심 요소를 추출하여 그에 맞게 학생 선발 단계를 끊임없이 발전시키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9월은 수시모집의 시즌이다. 올해는 12개 한의대 수시모집의 비중이 55.2%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심의(心醫)를 꿈꾸는 모든 수험생들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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