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윤 한의사/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한의대 학생들의 학업 소진
지겹도록 내리는 장맛비가 지나고 이렇게 찜통같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즈음이면 거의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여름방학 기간일 것이다. 대학생들은 방학에 여행이나 독서 등 평소 하고 싶었지만 미뤄두었던 취미생활을 하기도 하고, 자기 계발에 더욱 힘을 쏟으며 분주한 방학을 보내기도 한다. 방학을 보내는 방법은 한의대 학생들도 다른 전공의 대학생들과 마찬가지겠지만,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방학과 같은 휴식의 시간은 매우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학기 중에 받은 학업 스트레스를 풀고 재충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학업 소진(academic burnout)이란 학업 스트레스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상황이 축적되어 결국 신체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거나 학업에 대해 무능감을 느끼고 학업 수행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을 말한다. 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장기간에 걸친 과도한 학업량으로 인한 피로, 성적 유지에 대한 압박, 인간관계 문제, 유급의 공포 등으로 다양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게 되므로, 50~60%의 학생들이 학업 소진을 경험한다고 한다.
해외에서는 학업 소진에 대해 주로 대학생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국내에서는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이뤄져 왔으며 특히 의과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서양 의학 교육에서도 학업 소진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커리큘럼 조정과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 지원 등 현실적인 학업 소진 대처 방안이 등장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제 한의학 교육에서도 학생들의 학업 소진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의대 학생들의 학습량과 학업 스트레스는 서양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그리 많은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커리큘럼이 매 학기 20주로 구성되어 있고, 타 한의대에서 2~4학기 동안 학습하는 분량을 1~2학기로 단축하여 개설했기 때문에 유난히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높은 편이다.
2015년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에 실린 ‘한의학전문대학원 재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와 학업 소진에 관한 연구’는 한의학 교육에서 학업 소진에 대해 거의 처음으로 실증적이고 체계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연구 도구로 ‘의학 스트레스 척도(Medical Stress Scale)’,‘학업 소진 검사(MBI-SS)’,‘긍정적 정서 및 부정적 정서 검사(PANAS)’,‘상태-특성 불안 척도(STAI)’ 등의 다양한 검사를 사용하여 2년간 총 12회에 걸쳐 측정, 4개 학년 재학생의 학업 소진 및 정신 건강 변화 추이를 관찰한 것이다.
전체 재학생을 측정한 결과 3학년 1학기까지 학업 스트레스와 소진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1학년 초에 불안 수준이 가장 높았다. 부정적 정서는 학기 중에는 증가했다가 방학 중에는 감소하고 다시 다음 학기가 개강한 이후 증가하는 양상이 반복되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업 스트레스와 냉소가 증가하고 자기 효능감이 감소한다는 결과는 고학년으로 갈수록 학업 소진과 우울증 등이 증가한다는 기존 연구 결과와 일치하였다. 매 학기 동안 학업 스트레스와 소진, 부정적 정서가 증가한다는 것은 학생들이 학업으로 인해 정서적 고갈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올해 개원 10년차의 한의학전문대학원은 커리큘럼을 수정, 변경하여 신입생들의 수업 시수에 변화를 주었다. 방대한 학습에 매몰되고 과도한 경쟁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자기주도학습의 습관을 기르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전체 수업 시수가 줄어 겉으로 보기에는 수월해 보일지는 몰라도 아마 재학생이 느끼는 학업 부담과 스트레스는 여전할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의 시도는 긍정적이라 할 수 있다. 연구하고 계획하고 실천하며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한의학 교육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의과대학에서는 교육의 주체인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측정하고, 다가올 학업 소진의 정도를 예측하며 학습 효율을 높이는 방안을 고안해야 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업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한다거나 학기 중간에 학생들이 휴식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평가 방식의 개선도 학업 소진의 중요한 해결 방법이 될 수 있다.
장기간 많은 시험에 노출되며 서로 경쟁하고 성적에 대한 압박을 받는 것이 학업 소진의 핵심적인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평가는 학생들이 배운 것을 확인하며 공부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하며 평가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학생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면서 학업에 대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평가와 사후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학업 소진으로 인한 부작용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학업 소진에 대한 연구는 교육계에는 활발히 진행되어 왔지만 의학계에서는 잘 찾아보기 힘들었다. 학업 소진은 재학 중일 당시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최종적으로는 의료인의 역량을 저하시키는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에 한의학 교육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각 한의과대학은 한의대 학생들의 학업 소진에 대해 대안을 제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생들이 학업적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부정적 정서와 스트레스를 조절하여 성공적인 학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본 칼럼의 문의는 이메일(kmed17@pusan.ac.kr)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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