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윤 한의사/부산대학교 한의학전문대학원 박사과정지난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은 한반도의 대립과 분단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와 번영을 위한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자는 ‘판문점 선언’을 하였다. 한반도의 평화 체제 구축에 대한 노력과 상호 협력에 대한 선언문은 그 자체로 매우 큰 의미가 있으며, 우리 민족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이미 단단한 지지를 받고 있다.
‘판문점 선언’은 짧지만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는데, 기존의 남북 합의 이행이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이산가족 상봉 등 모두가 반가운 내용이었지만, 유독 눈에 들어온 조항이 있었다.
“남과 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고조시켜 나가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 왕래와 접촉을 활성화하기로 하였다.”
민족 화해와 단합을 위한 협력과 교류에는 그야말로 다양한 분야가 참여 가능할 것이다. 그 중에서 한의학만큼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시키고 나아가 통일 한국의 발전 동력으로 작용할 만한 분야도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해방 이전까지만 해도 남과 북의 전통의학은 하나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70여년의 분단 기간을 거치며 상이한 역사적 맥락과 사회적 여건 속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의학과 고려의학으로 일단 그 명칭이 달라진 것이 상징적이라 하겠다. 오랜 기간 상호 교류가 단절되어 의료인이 사용하는 언어나 의학 용어가 달라져 언어 문화적 이질성이 생겼으며 서로 상이한 의료 시스템과 의료인 면허 제도의 차이로 인해 상호 이해가 힘들게 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의학과 고려의학은 같은 뿌리를 가진 만큼, 아직 상호 교류의 바탕이 되는 접점이 여럿 존재한다. 일단 남한과 북한의 의료인 양성 기간과 대학 기관이 유사한 측면이 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도 보통 6년의 교육 기간을 거쳐 고려의사가 양성되며 각 지역에 11개의 의학대학에서 매년 1000여명의 고려의사가 배출되는 현황이 우리와 비슷하다. 교육과정 역시 서양의학 교육에 상당부분 시간을 할애해 서양의학과 고려의학이 거의 동등하게 교육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현실과 비슷하게 보인다.
법적 제도적 측면에서도 유사한 것이 발견된다. 남한은 한의약육성법을 통해 한의약 기술의 발전과 과학화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명시하였고, 북한은 인민보건법을 통해 고려의학의 과학화와 체계화를 명시하고 있다. 우리의 한의학연구원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고려의학의 과학화·현대화를 위한 연구 시설로 고려의학과학원을 설립하여 전문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효과적이고 발전적인 한의학과 고려의학의 교류는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가? 그 방법과 절차는 어떻게 마련해야 하는가?
교육적 측면이 바로 그 질문에 대한 유력한 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의과대학의 교육과정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으며 어떠한 교육 목표 아래 의료인을 양성하고 있는지, 배출된 의료인의 임상 역량은 어떠하며 보수교육을 비롯한 의료인의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비교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장단점이 드러나며, 장점은 받아들이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북한의 의학교육은 최근 들어 수업과 실습 교육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작년 통일정책연구지에 실린 ‘『고등교육』에 나타난 ‘북한의 의학교육 현황 분석’이라는 논문을 보면,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실천 능력을 가진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학과간, 기초-임상간 연계 교수 방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또한 컴퓨터 기반 교수 수단을 통해 학생들로 하여금 실제적 임상 능력을 갖추도록 의학 교육이 개선되고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1차 의료의 대부분을 고려의학이 담당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임상 역량과 관련하여 남북의 전통의학 교육과정에 대한 비교와 분석이 필요하다. 먼저 국립대학끼리 시범사업을 통해 서로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깊이 있게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부산대학교 한의학과와 평양의학대학 고려의학부가 교육과정을 교류하고 분석하여 서로 이해하는 노력을 한다면, 그 과정은 통일 이후 전통의학 모델 정립의 발판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 민족에게는 ‘사상의학’이라는 좋은 콘텐츠가 있다. 한의학과 고려의학을 이어줄 수 있는 연결 고리로 이보다 더 좋은 주제는 찾기 힘들 것이다. 사상의학은 한국 전통의학의 고유한 의학 이론이며 기술로써 남과 북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교육하고 발전시켜 왔을 것이다. 고려의학에서는 사상의학을 어떻게 교육하며 임상에서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알아봄과 동시에 국제적 연구 성과를 꾸준하게 쌓아 온 남한의 연구 실적과 결과물을 교류하면서 사상의학의 남북 공통 교육과정 개발을 착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의학과 고려의학이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현존하는 차이를 줄이고 상호 이해를 하는 것은 통일된 한국의 전통의학을 만드는 데 있어 불가피한 과정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관문이 있겠지만, 남과 북이 서로 합심하여 노력만 한다면 하나의 전통의학으로 많은 학문적·임상적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와 갈등에서 벗어나 신뢰와 협력으로 남북 상호 관계를 다지려는 시대적 흐름에서 우리의 전통의학, 민족의학이 그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두 손을 모은다.
※ 본 칼럼의 문의는 이메일(kmed17@pusan.ac.kr)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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