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무프로그램 안정화·커뮤니티 활성화·한의맥 리뉴얼 등 “회원들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최신기술 도입 노력할 것”Q. 본인 소개를 부탁드린다. 중앙회 정보통신이사를 맡고 있으며, 현재 진료를 하면서 협회 회무를 같이 하고 있다. 이렇게 지면을 빌어 회원들을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고 영광이다. 정보통신이사로서 회원관리, 회비관리, 보수교육관리, 전자문서관리 등 기본적인 회무관리 시스템에서 회원들의 커뮤니티, 대국민 홈페이지, 온라인 교육 시스템 관리, 전자차트 한의맥 등 전산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Q. 정보통신이사로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먼저 회무프로그램의 세세한 부분까지 안정화를 완료하고 싶다. 전산시스템은 사람이 사용한다. 대부분의 중요한 기능을 갖췄다고 해서 완성된 것은 아니다. 자주 쓰지는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기능들, 편의성을 높일 수 있는 기능들을 완성하여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또한 커뮤니티의 활성화도 중요한 과제다. 협회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공식적인 온라인 창구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협회에서 제공하는 세무, 노무 상담, 구인구직 등 회원들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온전한 커뮤니티의 기능을 갖춰야 할 것이다. 한의맥의 리뉴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의계의 대표적인 전자차트로 이름을 알리고 있지만 그동안 리뉴얼, 즉 개편이 진행되지 않아 성능과 편의성이 저하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필두로 한 4차 산업 혁명의 흐름 속에 의료데이터가 중요해지고 있는 시기에 한의맥이 대응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아무래도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이다 보니 대응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기술은 언제나 발전하고 변화한다. 하지만 사람이 쓸 수 없는 기술은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해 기술이 사람에 맞춰져야지, 사람을 기술에 맞춰야 한다면 주객이 전도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사용자의 경험과 인식속도와 다르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살펴보고 적용가능성을 평가하지만, 최신 기술이라는 이유만으로 회무에 도입하는 것은 지양하는 편이다. 2만5천 회원이 쓰는 시스템인 만큼, 회원이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최신기술을 접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Q. 통합정보시스템과 통합홈페이지 개편 등 임기 초반부터 어려움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회무를 시작했을 때 통합정보시스템과 통합홈페이지가 미완인 상태였고, 많은 분들이 사용에 불편을 호소하고,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바 있다. 이에 새롭게 구축까지 고려하면서 여러 회무시스템 사용 사례를 비교해보기도 하였고, 중앙회 및 지부 사무국의 의견을 취합했다. 현재는 지속적인 개발이 진행되면서 전체적인 수정 요청사항은 줄어든 상태다. 다만 지부와 분회에서 사용할 때 한정된 사무인력, 지부와 분회별 상황에 따라 교육등록, 회비관리 등에서 개선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문제점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의견을 청취하고, 개발 가능 사항들을 고려해 빠른 시일 내에 결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Q. 개인정보보호 자율점검, 한의정보원 설립, 한의맥 리뉴얼 등 정보통신 분야의 이슈들의 진행상황도 궁금하다. 개인정보보호 자율점검은 행정안전부가 주관하고 심사평가원에서 시행하던 것을 협회가 자율규제 단체로 지정되면서 협회에서 주관하고 있다. 한의원 개설회원이 대상이며, 자율점검을 완료하게 되면 자료제출 요구 및 검사가 1년간 면제가 된다. 행정안전부의 단속 대상에서도 제외가 되니 관심을 가지고 시행해주기를 부탁드린다. (가칭)한의정보원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전자차트 한의맥의 리뉴얼을 중심으로 한 경쟁력 강화와 정부의 전자의무기록 사업, 협회의 정보통신 사업 등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기획하고 있다. 현재 한의맥 소위원회를 중심으로 컨설팅, 로드맵 작성 등을 시행하고 있는데, 아직은 초기 단계라 조직형태, 사업목적, 사업 내용 등을 논의 중에 있다. 구체적인 안이 나오게 되면 회원들에게 안내할 예정이다. Q. 중앙회 임원이 되고 나서 느낀 점이 있다면? 사실 일반 회원일 때는 협회가 주관하는 업무가 보수교육, 회비납부 정도가 전부라고 느꼈다. 그러다 협회 임원이 되니 훨씬 더 많은 일들이 협회에서 수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사무처 직원들 역시 회원들을 위해서 많은 일들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업무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렇게 고생해서 하는 일들이 일선 회원들에게 좋은 결과로 나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평소 스트레스 해소법은? 생각이 많을 때는 걸으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목적 없이 처음 가는 곳에서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음미하면 많은 경우 고민하던 것들이 정리가 되는 편이다. Q. 인생의 좌우명은? 주역의 ‘獨立不懼 遯世無悶’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 홀로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는 내용인데, 방향이 잡히지 않지만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마주할 때 위의 내용을 되새긴다. Q. 회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SNS 등 온라인상으로 교류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고 많아지고 있지만 회원들이 직접 만나는 자리가 더 깊고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균형 있게 협회와 회원이, 회원과 회원이 만나는 모습이 이뤄졌으면 좋겠고, 이는 회원들의 참여로 가능할 것이다. 반모임과 분회모임부터 많은 관심을 가져 주기를 부탁드린다.
-
우리의 성공적인 한의학을 위한 제안나만 배부르면 후배의 앞날이야, 한의학의 앞날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는 잘 먹고 잘 살았으니 나 몰라라 할 것인가? 우리가 환경을 택할 수는 없지만, 성공적인 삶은 택할 수 있다. 필자는 1984년 한의 본과 4학년 때 “한의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의학연구소가 필요하다”는 기고문을 한의약 전문지에 게재하여 많은 선배들로부터 격려와 칭찬을 받았었고, 35년이 지난 오늘 날까지도 한의학의 과학적인 합리성을 찾아 일관되게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한의학이 2천년 이상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이론과 실체가 아직도 유용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이름과 ‘다국적 제약회사’ 라는 외세의 힘에 밀려 우리나라에서 퇴로의 길로 밀려 나고 있다. 일본은 약 150여 년 전 메이지 유신 때 한의학을 미신적 요소가 있다고 버렸지만, 현재는 한의사제도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보다 의약시장에서 3배 이상의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한의사들은 ‘기미론’이 중요하다며… 10여 년 전 한국한의학연구원장에 재직할 할 때 중국에 출장을 가서 중의약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물어보면 무조건 ‘국가비밀’이라고 말도 못 꺼내게 했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중국에 가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인터넷에 CNKI를 접속하면 현대화된 중의약의 모든 데이터를 무료로 얻을 수도 있다. 중국은 미국보다도 특허 건수나 논문 피인용지수가 높아 우리나라의 한의학 수준과는 비교가 안된다. 다단계회사인 A사의 한약추출물인 ‘H’제품이 연간 6천억 원의 매출을 올려 한의원 전 매출의 몇 배가 넘어가고 있건만 한의사들은 ‘기미론’이 중요하다며, 고기는 살코기보단 역시 뼈가 더 영양가 있다고 헛된 망상으로 허풍을 떨고 있다. 단순히 국가에서 보장해주는 면허증만 믿고 사는 후배들은 앞으로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질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의 규정 하나에 자칫하다간 한의약의 전통은 곧장 박물관에 묻혀 버릴 수 있는 거센 바람 앞의 호롱불 신세다. 필자가 대한한의사협회 수석부회장 시절 <동의보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 유산’으로 등재하려고 시작 할 때만해도 <동의보감>이 그렇게 훌륭한 것인지도 모르고 시작했다. 중국을 비롯한 전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의서를 이젠 더 이상 의학적 에비던스가 되지 못한다고 평가 절하되는 요즈음이다. 우리가 독하게 마음먹고 한의학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한의학은 이제는 죽음이라는 공포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제도권’이라는 정부의 정책을 우습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구한말 의사라는 명칭도 양의사들에게 넘겨주고 ‘의생’으로 전락한 바 있다. 한국 한의사의 지위는 매우 훌륭한 엘리트가 한의과대학에 들어와 가장 체계적인 의학수업을 받고도 민속치료사 또는 무당 정도의 놀림을 받는가하면 제대로된 ‘Doctor’로 인정도 못 받는 처지에 몰리고 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빌딩 한 채 있다고 자부심을 가질 것인가? 후배들은 ‘허준’ 드라마 보고 한의대에 들어 왔으니 굶어 죽어도 나와는 상관없고, 나만 배부르면 후배의 앞날이야, 한의학의 앞날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는 잘 먹고 잘 살았으니, 나 몰라라 할 것인가? 첩약보험 급여화 정부안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에 정부에서 모처럼 한의약을 이용해 국민건강에 도움을 주겠다고 천억 원 상당의 첩약보험 급여화를 시행하려 하고 있다. 만약 한의사들이 그 정도의 펀드를 만들려면 현재의 사고방식으로는 몇 백 년이 지나도 꿈도 못 꿀 것이다. 만약 한의약이 고사된다면, 학문의 정통성이고, 의약분업의 가능성이고는 다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젊은 한의사들의 생계가 나아지고,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록 선배들한테 다소 손해가 있을지라도 양보해야 한다. 우리의 위대한 한의학을 살릴 수 있다면, 국민 건강에 합리적인 케어로 이바지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첩약보험과 관련한 정부의 안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의계가 힘을 모아 진정으로 국민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지난날 의성 허준께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을 돌보고자 전쟁 통에도 끊임없이 연구하며, 한의학을 발전시킨 유업을 받들어 한의학을 통합의학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물론전 세계에 우리 전통의학의 우수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한·양방 의학을 통합한 새로운 ‘통합의학’으로 발전시켜 전 세계 인류 건강에 이바지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趙憲泳(1900-1988)의 생애(1)『通俗漢醫學原論』의 저자인 趙憲泳은 근현대의 대표적인 한의학자로서 1900년 3월 27일에 경상북도 英陽군 日月면 注谷리 주실마을에서 부친 趙寅錫(1879-1950)의 3남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1988년 5월 23일에 북한에서 세상을 떠났다. 본관은 漢陽, 어려서 본명은 禮慶이며, 자는 應文, 호는 海山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漢陽趙氏의 시조는 고려시대 朝順大夫 僉議中書事를 지낸 趙之壽이었는데 조선 중종14년(1519년) 기묘사화 때 趙光祖가 죽음을 당한 이후 그 후손들이 멸족을 피하기 위하여 경북 英陽으로 내려와 정착하였고, 다시 그 후손인 趙佺이 인조7년(1629년) 주실마을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趙憲泳의 조부인 趙承基(1836-1912)는 을미사변 이후 의병대장으로 활동하여 해방 후 건국훈장을 수여받았으며, 부친인 趙寅錫은 신학문을 교육하기 위한 英進義塾을 설립하기도 하였고 1927년에는 신간회 英陽支會의 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趙憲泳은 조부와 부친으로부터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고, 대구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고등사범부 영문과에 유학하여 1927년에 졸업하였다. 신간회 동경지회 초대회장 역임 애국 활동 족적 재학 중 민족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1925년 3월 1일 3·1운동 기념회에서 사회를 보고 시위를 주도하다 체포되기도 하였고, 아나키스트 朴烈과 가까운 관계로 그의 수감 중에 도움을 주었으며 재판 때에는 재판장에서 朴烈이 입을 사모관대를 마련해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1926년에는 재일본조선유학생학우회의 회장이 되었고, 1927년에는 민족협동전선인 신간회 운동에 참가하여 같은 해 5월 7일에 신간회 동경지회 초대회장이 되었다. 이후 귀국하여 1928년에는 신간회 본부 총무이사, 1929년에는 신간회 중앙의 검사위원회 상무, 신간회 경성지회대회의 서기장, 중앙상무집행위원 등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서 하다가 1931년 5월 신간회 해산 이후로는 한의계에 모습을 드러내고 공식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趙憲泳이 한의계에서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1934년 10월 15일에 東西醫學硏究會가 振興大會를 열고 任員을 개편하게 되는데 이때 회장에 金明汝, 부회장에 安孝式, 李明善, 간사 金東薰, 金鍊煥, 金永勳, 趙憲泳, 李元模, 평의원 李世林, 都殷珪, 朴麟緖, 李乙雨 외 24인 등이 선임되었다. 東西醫學硏究會는 1910년 한국병합늑약 이후 朝鮮醫師硏鑽會, 朝鮮漢方醫師會, 朝鮮醫生會, 全鮮醫會 등을 계승하여 1921년에 공식 설립된 한의계를 대표하는 조직이었다. 이 총회에서 『東洋醫藥』 잡지의 발간을 결의하였는데 趙憲泳은 바로 직후에 발간되는 『東洋醫藥』의 編輯 겸 發行人을 맡게 된다. 1931년 신간회 해산 이후 1934년까지의 사이에 어떻게 한의학을 접하고 한의계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趙憲泳은 1950년 重刊된 『通俗漢醫學原論』(1934년 초판)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내가 漢醫學에 관한 著書를 한다는 것은 나 自身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다. 三十이 되어서 漢醫學 書를 처음 펴보게 된 것은 그때 우리의 處地가 남달랐고, 大衆醫療가 實로 悲慘한 狀態에 있었으며, 이 大衆醫療에 가장 貢獻이 많고 偉大한 功效가 있는 漢醫學이 날로 衰頹해가는 것이 愛惜하고 憂慮되어 그 復興에 微力을 보태려고 한 것이며, 그 結果가 이 冊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조선시대 전통 있는 가문에서 의학을 습득하여 가족들에게 자가 치료를 했던 경우가 많았으므로 趙憲泳의 경우도 어려서부터 韓醫學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다. 북한에서 간행된 『동의학사전』에는 趙憲泳이 25살부터 자습의 방법으로 한의학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고 되어 있으며, 또한 집안에서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趙憲泳이 유학시절 친해진 김재량이라는 독립운동가 여성이 폐결핵을 앓자 고향집으로 데려와 1년 정도 치료하였는데 이 시기에 여러 한의서를 탐독하면서 한의학을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김재량이란 여성은 결국 왜경의 잇단 고문으로 사망하였다고 전한다. 아무튼 趙憲泳이 자신의 본래 전공 분야와 전혀 다른 한의학을 매우 짧은 시기에 전문적인 수준까지 빠르게 흡수해 나간 것은 분명하다. 1932년 朝鮮理療會 초대 회장, 민중의술 계몽 운동 당시 한의학의 대가였던 晴崗 金永勳의 『晴崗醫鑑』 회고록을 보면, 1932년에 청년 趙憲泳이 자신을 찾아왔는데, 이미 한의학에 조예가 깊었고 설명하는 논리가 현대적이어서 단번에 귀가 트일 정도였다고 한다. 또한 회고록에 의하면 동경 유학 시절부터 한의학과 침술에 밝아서 이를 통하여 학비를 충당하였다고 하며, 신간회 해산 후 일제의 탄압과 감시에서 벗어나기 위한 호신책으로 한의계에 몸담게 되었다고도 하였다. 그런데 趙憲泳은 1932년 5월 20일에 창립된 朝鮮理療會의 초대 회장을 맡게 되는데, 여기서 ‘理療’라는 것은 鍼灸 및 약물을 포함한 자극을 통한 치료를 통칭하는 것이지만, 그가 중시한 民衆醫術을 대신하는 개념이기도 하였다. 즉, 理療에서 사용되는 자극의 대부분은 침구 및 물리치료이나 약물도 체질에 따라서 치료에 유용한 자극이 될 수도, 유해한 자극이 될 수도 있다고 하여 약물치료도 자극의 일부로 보았는데, 이와 같이 ‘자극’을 중심으로 한의학과 물리요법을 망라하여 폭넓게 해석한 것은 민중들이 손쉽게 의술을 활용하기 위한 일종의 계몽운동의 목적 때문이었다. 이때 朝鮮理療會에 참여한 사람들은 한의계에 속하지 않은 李光洙, 曹晩植, 俞鎭泰 등 신간회와 조선어학회 활동을 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즉, 趙憲泳은 이미 신간회가 해산된 직후부터 한의계 밖에서 의료계몽 활동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대한제국 이후 일제강점기 및 해방 직후까지 한의계에서 활동한 주요 인물들은 대체로 金永勳과 같이 官醫 출신이거나 아니면 개항 이후 초기 한의학의 계몽과 교육에 힘썼던 洪鍾哲과 같이 오래 동안 민간에서 임상의사로서 활동해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이와 달리 한의학의 배경이 없었던 趙憲泳은 東西醫學硏究會 개편과 『東洋醫藥』의 창간을 계기로 이후 여러 저서를 출간하고, 전국을 순회하며 강습회에서 강연을 하며, 신문 및 잡지에 많은 칼럼을 기고하는 등 한의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趙憲泳이 당시 한의계의 중심에서 활동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1934년에 벌어진 한의학 부흥 논쟁에서 찾을 수 있다. 일제는 일제강점기 초기의 탄압 정치가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한계에 다다른 것을 깨닫고 유화 정책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한의학에 대한 정책에도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즉, 한의학의 임상적 가치를 단지 침구치료만으로 제한하여 허용하는 정책을 바꾸어, 성분 중심의 약리학적인 해석을 바탕으로 한 한약의 치료 효과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그 사용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정책 변화의 이유를 학계에서는 당시 만주사변과 태평양전쟁을 야기하게 될 확전의 준비와 악화되는 경제 여건, 의료체계의 미비 등으로 인하여 의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의 변화가 실제 한의학 발전의 중요한 토대가 되는 고등교육기관의 설립이나 한의사 면허의 인정 등으로 이어지지 않았으므로 실제적인 변화는 미미하였다. 단, 이러한 정책의 변화로 인하여 한의학이 다시 부흥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1934년 2월 16일자부터 朝鮮日報에 張基茂가 漢方醫學의 復興策을 연재하였는데, 張基茂는 관립 漢城醫學講習所의 3회 졸업생으로 1908년 최초의 의사단체인 韓國醫事硏究會의 창립회원이며 1915년 漢城醫師會 창립의 발기인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이 기고문에 대하여 경성제국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개업의로 있던 鄭槿陽이 1934년 3월 9일자부터 조선일보에 반론을 발표하였고, 이어서 李乙浩, 趙憲泳 등이 논쟁에 가세하였다. 1934년 한 해에 걸쳐 朝鮮日報 지면상의 논쟁을 촉발시킨 사람은 張基茂였으나 이후 논쟁을 주도한 인물은 바로 趙憲泳이었다.
-
2018년 한의약 건강증진사업 사례 8한의사 포함한 진료팀 구성해 직접 찾아가 한의치료 주민참여 공모사업으로 참여도 높여 충청남도 서천군 보건소 ‘생생(生生) 한방 건강마을’ 2017년 기준 서천군은 전체인구 5만5175명 중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1만7931명(32.4%)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지역사회 건강조사에 따르면 중풍과 관련한 기저질환인 질환별 평생의사진단경험률을 충남과 비교해 봤을 때 고혈압은 충남이 27.5%, 서천이 37.4%, 당뇨는 충남이 11.1%, 서천이 13.6%, 이상지지혈증은 충남이 20.8%, 서천이 26.1%, 관절염은 충남이 25.7%, 서천이 32.3%로 충남 대비 높은 편이다. 2016년 기준으로 인구 10만명당 고혈압성질환 연령표준화 사망률로 보면 충남이 5.6%인 반면 서천은 9.6%로 큰 격차를 보였다. 이에 충청남도 서천군 보건소는 만성질환관리·건강행태요인 개선을 위해 한의약을 접목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및 의료지원 서비스를 제공해 건강증진 및 자가건강관리 능력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한의약 건강증진사업을 실시했다. 먼저 ‘생생 한방건강마을’ 프로그램은 노인비율이 높은 의료취약마을 주민 중 중풍관리군(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자 및 위험군)을 대상으로 공중보건한의사가 1:1 맞춤형 한의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한의약적 중풍예방 및 관리, 사상체질 등 교육 프로그램과 한방기공체조 운동(요가, 태극권), 영양교육, 정신건강교육, 심폐소생술 교육, 세라밴드 운동 등을 제공했다. 주민 참여공모로 13개 마을을 최종 선정해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한의사와 함께하는 가정방문’ 프로그램은 중풍 및 관절통으로 고통받는 취약계층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방문 진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통경감 및 의료비 부담을 줄여주고자 한방진료실이 있는 5개 보건지소에서 실시했다. 한의사와 통합보건담당자가 진료팀을 구성해 노인, 장애인, 중풍·골관절질환 및 만성퇴행성질환자를 직접 찾아가 한의진료는 물론 상담과 교육, 기초검사, 일상생활동작 및 재활을 위한 운동지도 등을 제공했다. 그 결과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생생 한방건강마을’ 프로그램 운영 후 사전 대상자들의 중풍예방 인지 개선율이 65.8%에서 74.4%로 8.6%p 상승했다. ‘한의사와 함께하는 가정방문’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골관절질환 예방 및 관리법 인지율이 사전 36%에서 사후 82%로 골관절질환 예방 및 관리법 실천율은 사전 14%에 사후 70%로 크게 높아졌다. 만족도는 모두 100%였다. ‘생생 한방건강마을’은 ‘매우만족’이 83%였고 ‘한의사와 함께하는 가정방문’은 ‘매우만족’이 58%로 나타났다. 서천군 보건소는 한의사의 적극적인 개입과 공모를 통한 사업 참여로 지역주민의 참여도를 향상시킨 점을 주요한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서천군 보건소는 2019년 한의약건강증진사업 성과대회에서 우수사례부문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보건복지부장관상을 수상했다.
-
임상증례 발표 문화를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여러 가지로 정신없고 바빴던 일상을 벗어난다는 기대감과 새로운 일들을 본다는 설레임으로 동경을 향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학술대회가 열리는 곳과 가까운 시내를 잠깐 걸으면서 비슷하지만 많이 다른 일본과 한국의 문화만큼이나 한의학의 접근과 응용도 다를까하는 궁금증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김포공항 출국수속을 하면서부터 하나 둘 인사를 나눴던 분들을 비롯해 JSOM(일본동양의학회)에 참석한 교수님들과 증례발표를 준비하는 동료 한의사들과 첫날 저녁모임을 가졌다. JSOM을 통해 다양한 증례발표의 방식 그리고 운영되는 모습들을 자유롭게 보면서 국내에서도 증례발표의 활성화를 기대하고, 각자 관심 있는 분야의 임상증례들을 발표하는데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송미덕 학술부회장께서 밝혔다. 이번 학회를 계기로 한국 한의계에 임상증례발표 문화가 정착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또한 구체적으로 증례발표를 하는 방식에 대한 김현호 동신대 한방병원장의 브리핑은 쉽게 접근하지만 확실한 근거가 있는 실제적인 증례보고 방식에 대한 어려움을 한결 가볍게 극복하도록 도와줬다. 참석하신 로컬의 한의사들은 임상현장에서 증례들과 관심사항 등을 경험하고 공유하며, 이를 구체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도움을 얻기를 원했다. 증례 발표, 거대한 변화의 물꼬 함께 참석한 교수님은 임상경험을 통해 증례보고 발표 시 주의해야 할 점, 미리 기록해야할 부분, 참고사항 등을 말씀해 주었고, 각자의 분야에서 필요한 조언들을 해줄 수 있다는 의견들을 주셨다. 작은 시작이지만, 이 발걸음이 잘 정착된다면 한의계에 거대한 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를 갖게 하는 시간이었다. 둘째 날 부터는 각자가 한의학의 입문에 대해 소개하는 포스트 형식으로 발표된 3층과 4층 발표장을 돌아봤고, 특히 제제를 만드는 회사들과 한방관련 제품을 전시해 관심을 끌고 있는 부스들은 우리의 보수교육장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특히 가장 인기 있는 세션은 한방입문에 대해 소개하는 제4회장이었고, 빈자리가 없는 것은 물론 복도까지 빼곡하게 서서 열심히 청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리의 보수교육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라 부끄럽기도 하고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보수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주무이사로서 우리의 보수교육장 풍경도 이와 같이 되기를 소망했다. 한방입문강좌는 각 세션마다 진찰, 조제 및 복약지도, 천식과 성장에 대한 소개로 시작해 순환기, 두통, 피부과, 생약의 효능, 산부인과, 정신과, 내분비질환, 이비인후과, 소아과, 인지장애, 갱년기증상 등 각과의 한방치료에 대한 소개를 주로 사진팔강을 이용한 진단과 변증에 따른 처방 및 임상례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소개했다. 보고 듣고 배운 만큼 숙제도 생겨 우리와 다른 흥미로운 부분들은 한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의사들이기 때문에 각종 검사를 자유롭게 해 전후 치료 효과를 보여주는 내용과 가지고 있는 제제약 만을 사용해 처방하기 때문에 그 한도 안에서 여러 처방을 혼용하고, 치료기간은 수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치료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포스터 발표장은 눈길을 끄는 도표, 사진, 그래픽 자료들을 이용한 모습과 후향적 연구에 대한 발표 및 임상 1례를 발표한 포스트 발표도 있었다. 이들의 자유로운 발표문화는 향후 우리 한의계도 조금 더 적극적인 임상증례발표가 충분히 가능하리라 기대케 했다. 둘째 날 저녁의 임상증례발표 준비를 하는 임상한의사들과 교수님들의 멘토링을 위한 저녁모임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이 식을 정도로 열띤 이야기들이 오갔다. 기존에 거의 없었던 시도를 하다 보니 어떻게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어떤 도움을 어떤 방식으로 줘야 하는지에 대한 어려움과 서로가 생각하는 발표 내용의 기준차이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협회 학술이사로서 이 부분을 잘 조율해 가며 멘토링을 적절하게 하는 것이 필요한 일로 여겨지고, 초반의 시행착오들과 익숙지 않은 임상증례발표 문화의 확산이 꾸준히 이뤄져야 할 것으로 생각됐다. 마지막 날의 한일교류 심포지엄이 상한론에 관한 내용으로 열리며 모든 일정이 끝났다. 개인적으로 영어의 중요성을 한 번 더 느끼게 되는 자리였다. 2박3일간의 모든 일정이 무사히 마무리됐다. 많은 부분들을 보고 듣고 보고 배웠으며, 또한 숙제들도 생겨났다. 포스트 JSOM 모임 JSOM을 다녀온 후 1주가 지난 시간 대한한의영상학회 강의실에서 모임을 가졌다. 동신대한방병원 김현호 원장의 일본한의학에 대한 간략한 특징 소개와 송미덕 부회장의 난임관련 포스트발표와 관련한 소감, 우석대 장인수 교수의 혈압강하를 위한 한약제제 사용에 따른 내용 소개가 이어졌고, 세명대 신선미 교수의 방광염, 체중조절, 당뇨환자 등을 대상으로 한 임상증례의 포스트발표에 대한 소감이 있었다. 또한 임상가의 백정의 원장께서 구내치료를 위한 도구에 대한 흥미로운 소개가 있었고, 동신대 연구원인 이원준 선생의 암묵지와 형식지에 대한 내용을 통해 한의학의 정량화·객관화·수치화 등에 대한 고민이 소개됐다. 각자 흥미로운 발표를 통해 임상증례 발표에 있어 참고할 점, 접근시의 고려사항 등을 배울 수 있었고, 가장 중요한 임상증례 발표를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과감하게 시작해 볼 수 있음을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향후 해결해야 할 여러 어려움들이 있을 것이다. 증례발표자들과 조언을 해 줄 교수들과의 멘토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증례발표자들의 발굴과 적극적인 참여의 필요성을 알려서 증례발표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제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통해 한의계의 전진을 위한 걸음이 필요하다 생각된다. 서로 돕고, 설득하고, 한발 먼저 내딛어 보고, 다시 방향을 잡아 나가는 실천이 필요한 시점에 서 있다.
-
“독립운동가들의 정신, 전세대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편집자 주] 자생의료재단 신준식 명예이사장은 지난 2월 독립유공자유족회에 사재 1억원을 기탁해 눈길을 끈 바 있다. 이에 자생한방병원은 내달 19일부터 23일까지 개최되는 ‘제15회 국제 동아시아 과학사 회의’에 공동개최기관으로 참여하는 한편 독립운동에 참여한 한의사를 발굴·조명하는 세션을 운영한다. 본란에서는 신준식 명예이사장으로부터 독립유공자에 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이유 등을 들어본다. Q. 독립유공자유족회에 1억원을 기탁한 이유는? “독립을 위해 힘쓴 분들은 대부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었다. 이들의 값진 희생으로 독립을 얻을 수 있었지만, 독립 이후 독립유공자나 유족 중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았고, 가장 가슴이 아픈 것은 몸이 아픈데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자 지난 2월부터 자생의료재단 기금 3억원을 투입해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으며, 연말까지 100명의 독립유공자 및 후손을 치료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이는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이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재단 기금이 아닌 사비 1억원도 이들을 위해 기부했다. ‘신준식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앞으로 독립유공자 후손의 학업과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족들을 위해 쓰인다. 작은 걸음이지만, 늘 그래왔던 것처럼 이들을 돕기 위해 조금씩 나아갈 것이다.” Q. 선친과 작은 할아버지도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선친인 청파 신현표 선생은 9세 때 만주로 건너가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면서 일제의 만행에 의해 자행됐던 통한의 침략 역사를 보며 성장했다. 민족의 고통을 더 이상 지켜볼 수만 없다고 생각한 선친은 23세에 중국 봉천성 장백현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했으며, 25세에는 대진단(만주에서 조직된 항일 무력 독립운동단체)에 들어가 중국 용정시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후 일제가 간도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을 검거한 ‘제3차 간공사건’으로 선친은 서대문형무소에서 10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출소 후에는 만주에서 의사시험에 합격해 광생의원을 개원하기도 했지만, 개원 후에도 비밀리에 독립운동가를 치료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속했다. 또한 1940년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의원을 폐업하고 작은 할아버지이자 대진단 단장인 삼촌 신흘(신홍균) 선생을 따라 독립운동의 산실인 동승촌(만주 목단강 시 외동구)에서 군수품을 전달하는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곳에서 선친은 양식과 솜, 옷 등 군수품을 항일연합군부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 당시 일제가 항일연합군 군수물자 보급을 차단한 상황에서 독립운동에 큰 도움을 줬다. 이와 함께 한의사였던 작은할아버지인 신흘 선생은 군의관으로서 독립군 활동을 하면서 독립군 3대 대첩으로 꼽히는 ‘대전자령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한 독립투사를 육성하는 데에도 많은 큰 공헌을 했으며, 1940년 전후로 일제의 강제 봉쇄정책으로 인해 목단강 주변의 군수물자 보급이 차단되자 동구 지역 조선 농민들을 통해 양식, 솜옷, 신발 및 기타 보급 물자가 항일연합 군부대에 전달하는 역할을 통해 향후 독립투사가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Q. 매년 자생의료재단에서 현충원 묘역 정비 활동도 진행하는데? “우리나라가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나라가 어려울 때 목숨을 바쳐 지킨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독립운동 정신이 전세대에 이어지길 바라며 활동하고 있고, 이를 병원과 재단 직원들과도 나누고 싶었다. 매년 현충원을 찾아 참배를 하고 묘역을 정화하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이러한 활동 하나만으로도 마음가짐이 달라진다고 믿고 있다.” Q. 국제 동아시아 과학사 회의에서 세션을 운영하는데? “자생한방병원이 마련한 세션에서는 △독립운동사에서 한의사의 활약상 △한의학의 현대화와 제도 △추나요법의 역사 및 급여화 과정을 통해 본 한의학회 세계화 활동으로 구성돼 있다. 우선 올해는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해이지만 여전히 잊혀진 독립운동가들이 많다. 국민대학교 이계형 특임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아직까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독립운동사 속 한의사들의 활약상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할 예정이다. 또한 자생한방병원이 지난 30여년간 쌓아온 한의학의 표준화·과학화·세계화의 성과도 발표될 예정으로, 특히 지난 4월부터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는 추나요법에 대한 탄생부터 건강보험 급여화의 과정을 참석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예정이다.” Q. 한의치료의 체계적인 발전 방안은? “무엇보다 후학 양성이 중요하다. 즉 한의약의 표준화·과학화·세계화에 앞장설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내야 하며, 이렇게 성장한 인재들은 한의치료가 세계로 나아가는데 선봉장 역할을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최근에는 추나요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인재 양성·발굴을 위해 장학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에 추나요법 발전을 위한 기금 1억5000만원을 출연해 전달했으며, 경희대 한의과대학에도 예비 한의대생에게 졸업까지 필요한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현재 한의계는 추나요법 건강보험 적용과 함께 추나요법의 질을 관리하는데 관심을 쏟고 있는데, 추나요법이 지금처럼 사랑받고 오래도록 이어지기 위해선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또한 각 학회를 중심으로 치료법을 보다 전문적으로 교육하고 학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추나요법의 경우에는 척추신경추나의학회를 통해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실시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추나요법은 표준화에 성공했고, 안전하고 사랑받는 치료법으로 거듭났다. 학부와 수련 단계의 학습이 아닌 평생 배우고 연구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Q. 기타 하고 싶은 말은? “2008년 WHO가 주관한 세계전통의학총회에서 추나요법을 처음으로 해외에 소개한 이후 한의치료법을 알리기 위해 세계를 누비고 있다. 그 결과 추나요법 등 한방 비수술 치료법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음을 실감한다. 실제 2011년에는 미국 미시간주립대의 초청을 받아 오스테오페틱 의사(DO)를 대상으로 한의학 강의를 실시하고 있으며, 2015년에는 한방치료법이 미시간주립대의 보수교육 과목으로 지정되는 한편 지난해에는 추나요법과 동작침법 등 한방 비수술 치료법이 DO를 대표하는 미국 오스테오페틱의학협회(AOA)의 정식 보수교육 과목으로 인정받아 미국 전역으로 확대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특히 올해에는 ‘2019 자생국제학술대회’를 미국 워싱턴주의사협회(WSMA)와 공동으로 미국의사협회(AMA) 인증 보수교육 프로그램으로 운영, 국내 한의사가 미국의 의사(MD)와 DO 등 모든 의사에게 한방 치료법을 정식으로 교육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으며, 이로써 자생한방병원은 MD와 DO를 대표하는 AMA와 AOA의 소속 의사들에게 보수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됐다. 아직도 미국에서 한의학이라고 하면 중의학으로 오해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성과는 한의학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밖에도 해외 의대에서 예비 의사들이 한의학 교육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는 사례도 늘어나, 최근에는 두바이 모하메드 빈 라시드 의과대학의 의대생들이 방문키도 했다. 그동안 한의학을 알리기 위해 해외로 나갔던 시기가 있었다면, 이제는 한의학을 배우기 위해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발길을 옮기는 사례들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의료 한류라고 생각한다.”
-
단식 요법,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 있을까?[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한의약융합연구정보센터(KMCRIC)의 '근거중심한의약 데이터베이스' 논문 중 주목할 만한 임상논문을 소개한다. ◇KMCRIC 제목 격일 단식 요법(간헐적 단식)은 체중 감량과 유지, 심혈관 질환 예방에 효과가 있을까? ◇서지사항 Trepanowski JF, Kroeger CM, Barnosky A, Klempel MC, Bhutani S, Hoddy KK, Gabel K, Freels S, Rigdon J, Rood J, Ravussin E, Varady KA. Effect of Alternate-Day Fasting on Weight Loss, Weight Maintenance, and Cardioprotection Among Metabolically Healthy Obese Adults: A Randomized Clinical Trial. JAMA Intern Med. 2017 Jul 1;177(7):930-8. doi: 10.1001/jamainternmed.2017.0936. ◇연구설계 눈가림배정 비교임상연구 ◇연구목적 최근 유행하고 있는 격일 단식 요법(간헐적 단식)이 전통적인 다이어트 방법에 비해 효과가 더 있는지를 밝히기 위함. ◇질환 및 연구대상 18~65세, BMI 25.0~39.9 사이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함. ◇시험군중재 · 격일 단식군(n=21): 6개월간 격일 단식을 하였음(단식일에는 에너지 필요량의 25% 식사, 다음날은 에너지 필요량의 125% 식사), 그 후 6개월 동안 체중 유지 기간을 가졌음. ◇대조군중재 · 열량 제한 식이군(n=25): 6개월간 열량 제한 식이를 하였음(에너지 필요량의 75% 식사), 그 후 6개월 동안 체중 유지 기간을 가졌음. · 비중재군 (n=23) ◇평가지표 체중, 체성분, 혈압, 혈중지질 및 혈당 관련 혈액 검사 ◇주요결과 (1) 격일 단식군과 열량 제한 식이군 간 체중 감량 수치는 유의한 차이가 없었음. (2) 격일 단식군은 단식기에는 정해진 양보다 더 많이 먹고, 과식기에는 정해진 양보다 적게 먹었음. 반면 열량 제한 식이군은 보다 충실하게 식이 요법을 수행하였음. (3) 혈압, 맥박수, 중성지방, 공복 혈당, 공복 인슐린, 인슐린 저항성, C-reactive protein 및 homocystein 항목에서 두 군 간 유의한 차이가 없었음. ◇저자결론 격일 단식 요법은 식사 충실도, 체중 감소, 체중 유지 혹은 심혈관 보호에 있어 열량 제한 식이 요법보다 우수한 효과를 나타내지 않았다. ◇KMCRIC 비평 본 RCT 연구에서는 격일 단식을 통한 간헐적 단식 요법을 저열량 식이 요법과 비교했을 때 결론적으로 식사지침 수행도가 높지 않았고, 이로 인해 간헐적 단식 요법의 체중 감량, 체중 유지 및 심혈관계 질환 개선 효과가 유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저자들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간헐적 단식의 효과를 6개월간의 RCT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간헐적 단식 요법 RCT 연구 중 가장 장기간의 임상연구이다. 격일 단식 요법은 매일 열량 제한을 해야 하는 전통적인 식이 요법보다 방법이 쉽다고 생각되어 왔지만 본 연구에서는 격일 단식 요법군이 열량 제한 식이군에 비해 다이어트 충실도가 오히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2~3개월간 간헐적 단식을 했었던 기존 연구에서는 3~7%의 체중 감량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된 바 있으나 [1-7] 본 연구에서는 유의한 체중 감량 효과가 관찰되지 않았다. 간헐적 단식 요법을 지속하기 어려운 이유로 환자의 인식, 환경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식욕 조절 호르몬 변화와 같은 생리적인 요소들과 관련이 있는지를 추후 연구에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격일 단식 요법을 통한 간헐적 단식 요법은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데에서도 유의한 효과를 나타내지 못했는데, 본 연구가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하여 콜레스테롤, 혈압 등이 대부분 정상 범위 내에 있었기 때문에 유의한 효과가 발견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본 연구의 제한점은 연구 기간이 6개월로 길지 않다는 점, 비중재군의 경우 음식이나 식이 상담 등의 관리가 거의 안 되었다는 점, 탈락 개체 수가 예상보다 많아 결과 산출에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점, 대사적으로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하였으므로 심혈관계 지표 관련 효과를 저해하였을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비만 환자의 식이 요법 교육에 간헐적 단식 요법의 경우 환자의 식사 패턴에 따라 단기간 사용은 고려할 수 있지만, 장기간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기존 열량 제한 식이 요법을 대체하기에는 부족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본 연구에서는 간헐적 단식 요법의 우수성으로 열량 제한 식이 요법보다 식사지침 수행도(dietary adherence)가 높을 것이라는 점만 부각하였는데, 간헐적 단식 요법의 효과를 보다 명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간헐적 단식으로 인한 호르몬, 대사 변화에 대해 생리학적, 생화학적 작용 기전 연구도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참고문헌 [1] Bhutani S, Klempel MC, Kroeger CM, Trepanowski JF, Varady KA. Alternate day fasting and endurance exercise combine to reduce body weight and favorably alter plasma lipids in obese humans. Obesity (Silver Spring). 2013 Jul;21(7):1370-9. doi: 10.1002/oby.20353. https://www.ncbi.nlm.nih.gov/pubmed/?term=23408502 [2] Hoddy KK, Kroeger CM, Trepanowski JF, Barnosky A, Bhutani S, Varady KA. Meal timing during alternate day fasting: impact on body weight and cardiovascular disease risk in obese adults. Obesity (Silver Spring). 2014 Dec;22(12):2524-31. doi: 10.1002/oby.20909. https://www.ncbi.nlm.nih.gov/pubmed/?term=25251676 [3] Johnson JB, Summer W, Cutler RG, Martin B, Hyun DH, Dixit VD, Pearson M, Nassar M, Telljohann R, Maudsley S, Carlson O, John S, Laub DR, Mattson MP. Alternate day calorie restriction improves clinical findings and reduces markers of oxidative stress and inflammation in overweight adults with moderate asthma. Free Radic Biol Med. 2007 Mar 1;42(5):665-74. https://www.ncbi.nlm.nih.gov/pubmed/?term=17291990 [4] Klempel MC, Kroeger CM, Varady KA. Alternate day fasting (ADF) with a high-fat diet produces similar weight loss and cardio-protection as ADF with a low-fat diet. Metabolism. 2013 Jan;62(1):137-43. doi: 10.1016/j.metabol.2012.07.002. https://www.ncbi.nlm.nih.gov/pubmed/?term=22889512 [5] Varady KA, Bhutani S, Church EC, Klempel MC. Short-term modified alternate-day fasting: a novel dietary strategy for weight loss and cardioprotection in obese adults. Am J Clin Nutr. 2009 Nov;90(5):1138-43. doi: 10.3945/ajcn.2009.28380. https://www.ncbi.nlm.nih.gov/pubmed/?term=19793855 [6] Catenacci VA, Pan Z, Ostendorf D, Brannon S, Gozansky WS, Mattson MP, Martin B, MacLean PS, Melanson EL, Troy Donahoo W. A randomized pilot study comparing zero-calorie alternate-day fasting to daily caloric restriction in adults with obesity. Obesity (Silver Spring). 2016 Sep;24(9):1874-83. doi: 10.1002/oby.21581. https://www.ncbi.nlm.nih.gov/pubmed/?term=27569118 [7] Alhamdan BA, Garcia-Alvarez A, Alzahrnai AH, Karanxha J, Stretchberry DR, Contrera KJ, Utria AF, Cheskin LJ. Alternate-day versus daily energy restriction diets: which is more effective for weight los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bes Sci Pract. 2016 Sep;2(3):293-302. https://www.ncbi.nlm.nih.gov/pubmed/?term=27708846 ◇KMCRIC 링크 http://www.kmcric.com/database/ebm_result_detail?cat=RCT&access=R201707020
-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한의진료실, “지부의 홍보·학회의 전문성·예비한의사의 열정이 어우러진 곳”[한의신문=윤영혜 기자]본란에서는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선수촌 메디컬클리닉 한의과진료실에서 개막식 전 주였던 7월 5일부터 폐막식이 끝난 다음날인 7월 29일까지 상주하며 진료를 담당한 대한스포츠한의학회 소속 박윤형 기획위원으로부터 그간의 여정과 소감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폐막 소감. 지난달 5~29일까지 동안 단 2일만 쉬면서 진료실에서 오전9시부터 오후9시까지 하루 12시간 상주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선수들을 만났고 길을 지나가면 인사해주고 안부를 물어주는 선수들도 점점 많이 생겼다. 선수촌은 말 그대로 하나의 마을인데 그 안에서 한의사로서 어떤 역할을 가지고 선수들의 삶에 녹아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 즐겁고도 좋았다. 선수들이 아무 때나 한의과 진료실을 방문하면 항상 그 자리에 똑같이 있었고 인사해주고 치료해줬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조그마한 위로와 응원을 해 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살면서 다시 못할 경험을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한의진료실에 대해 평가를 해본다면? 이번에 총 진료 건수 중 선수와 팀 코치, 관계자등을 포함한 외국인의 비율이 72%였다. 평창올림픽 당시에도 강릉 선수촌에서 2주간 상주하며 근무해 봤지만 역대 대회 중 한의과 진료실에서 이렇게 높은 수치는 없었던 것 같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너무나 충실한 대회였다고 생각한다. ◇한의과의 성공적 운영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광주시한의사회에서는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치러본 경험을 고스란히 갖고 있어서 대회 준비 및 홍보를 완벽하게 할 수 있었다. 또 지역 내 모든 한의사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진료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원광대 한의대 봉사동아리 지역사회의료활동반 학생들의 진료 보조도 큰 몫을 했다. 예과 본과생으로 구성된 학생들이 접수 및 안내를 도맡아 해주고 선수 및 외국인들과 힘써 소통해 주었다. 덕분에 스포츠한의학회에서도 다년간의 의무 지원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진료실 분위기를 다잡고 보다 전문적으로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즉 광주시한의사회의 지역 사회 홍보 및 단합력과 스포츠한의학회의 전문성, 그리고 한의학의 미래인 원광대 한의대 학생들의 열정이 어우러져 다 같이 한 마음으로 큰 세계 대회에서 한의학의 위상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진료하면서 느낀 스포츠한의학의 장점은? 이번 대회에서도 한국 전통의학이 효과가 좋다는 입소문이 났다. 트레이너를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이 호기심에 먼저 방문 후 자국 선수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있고 근이완을 목적으로 물리치료나 수기요법을 찾다가 한의진료를 경험하고 만족해서 입소문을 내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스포츠한의학은 침과 추나 치료로 통증을 조절하고 근골격 문제를 개선해 주는데다 진통제처럼 도핑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보니 처음 경험하는 선수들도 좋은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의진료는 급,만성 통증을 관리하는 데 특화돼 있을 뿐 아니라 급성손상의 감별로 타과와의 협진도 가능하다. ◇환자들의 반응은? 학회 소속으로 지원을 많이 다녀봤지만 점점 더 한의학에 대한 호응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걸 피부로 체험했다. 샘람사미 FINA 부회장은 진료를 세 번이나 받고 아내까지 같이 왔다. 뉴질랜드 수구팀도 코치가 왔다가 치료 효과에 만족해 선수들도 데리고 오고 수구티도 보내왔다. 우리나라의 이주영 선수도 입촌 후 거의 매일 온 걸로 기억한다. 터키의 싱크로나이즈드 선수는 무릎이 신체보다 뒤쪽으로 빠져있는 슬관절 과신전 증후군을 겪고 있어 근육에 힘도 부족하고 통증이 심했는데 침 치료를 해줬더니 효과가 좋다며 연습만 끝나면 매일 왔다. 8~9일 연속으로 찾아오다보니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선수는? 카자흐스탄 여자 수구 선수인 Alexandra zharkimbayeva는 1년이 넘은 두통과 어지러움 및 상지 무력감으로 내원했다. 쌍둥이 언니가 얼마 전 생리통으로 한의과 진료실에서 치료를 받고 데려왔다. 여담으로 카자흐스탄 선수들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선수가 거의 없다. 그래서 진료할 때 구글 번역기를 항상 사용해야 하고 이 선수와도 의사소통 및 진료하는 데에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이 선수는 한의과에 오기 전 폴리클리닉 다른 과에서 x-ray 검사 후 진단을 받았으나 뾰족한 소견을 듣지 못하고 소견서 및 영상파일을 들고 내원했다. 자신의 증상을 상세히 담은 글귀를 보여주었고 선수촌에 머무르는 동안 치료를 받고자 했다. 경추, 턱관절, 여러 가지 근육의 문제가 있어 4회 치료했고 많이 호전됐다. 후에 이 선수는 치료받은 것이 너무 고맙다며 함께 찍은 사진을 인쇄하고 뒷면에는 감사의 편지를 적어 진료실을 방문했다. 선수촌 내 삼성체험관에서 한정판 사은품을 주는 서비스를 하는데, 시간이 없어 근처에 가지도 못하던 차였다. 하루종일 쉬는 날 없이 일해서 이 한정판 사은품들이 없을 줄 알고 챙겨왔다는 말이 위로가 됐고 감동받았다. 보답으로 기념품 가게에서 손톱깎이 세트를 선물해 주었는데 한 달 간 진료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다. ◇힘들고 고되지만 보람 있는 경험이었을 것 같다. 12시간 강도 높은 근무에 허리를 겨우 펴야 했지만 한의사로서 진료를 본다는 자체에 재미를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특히 당장 시합에 나가야하는 환자들이다보니 어느 정도 즉시 개선되는 효과가 없었다면 다시 진료실을 찾지는 않았을 것이다. 즉각적으로 움직임을 개선시켜주고 통증만 줄여줘도 굉장히 만족해서 갔다. 부담스러운 치료는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료했던 환자들의 경기는 최대한 시청하려 했다. 선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면 운동이 개선됐다는 생각에 더욱 뿌듯해졌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간에 충원되긴 했지만 진료를 원하는 환자 수요에 비해 한의사의 수가 적었던 게 사실이다. 조직위원회 예산상 인력 등록의 여건이 있어 더 뽑지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자발적으로 참여해 준 한의사들이 있어서 진료실 운영에 차질은 없었으나 다음 대회 때는 한의 치료 수요에 맞게 더 많은 한의사들이 처음부터 참여할 수 있다면 더 섬세한 치료가 가능하지 않을까. ◇남기고 싶은 말. 선수단을 위해 마련된 의료서비스 중 하나인 한의과 진료실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수단으로서도 톡톡히 제 구실을 해오고 있다. 한의 진료를 경험한 외국선수들과 스텝과 관계자들을 통해 우리 한의학의 우수성이 더 멀리 퍼지기를 소망한다.
-
“통합의학 중심의 현대한의학으로 경쟁력 높여야”<편집자 주> 최근 옴니허브가 기획해 진행하고 있는 한의원 성장 전략콘서트에서 '한의 암 치료와 관리'를 주제로 강의해 호평을 받고 있는 대한통합방제한의학회 장성환 회장. 그는 암 관리의 중심에 한약이 있으며 환자의 개별생리에 따라 맞춤처방을 할 수 있는 한국 한의학이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세계 의학의 화두인 통합의학 중심의 현대한의학으로 거듭날 것을 희망한 장 회장으로 부터 한의 암 치료와 관리에 대해 알아봤다. “암 치료는 단독치료보다 종합치료를 했을 때 환자에게 가장 좋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통합의학은 이미 세계적인 흐름이며 많은 논문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 한약의 효과를 확인한 미국과 유럽에는 이제 침을 넘어 한약에 주목하고 다양한 병행연구가 진행 중이다. 중의약이나 캄포의학에 비해 개별 생리와 환자의 상태 및 질병의 단계에 따라 다양한 맞춤 처방이 가능한 한국 한의학의 강점은 이러한 암 관리 영역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무궁무진하다. 한의학이 통합의학 중심의 현대한의학으로 거듭났을 때 강력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옴니허브가 기획해 진행하고 있는 한의원 성장 전략콘서트에서 ‘한의 암 치료와 관리’를 주제로 총 다섯 번에 걸쳐 강의를 해온 대한통합방제한의학회 장성환 회장. 대한암한의학회와 대한통합암학회에서도 이사로 활동 중인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종합치료 △변증과 병변을 통한 맞춤 처방 △면역력을 높여주고 염증을 완화해준다는 큰 전제하에 부정·거사의 운용이라는 3대 원칙이다. 장 회장에 따르면 암 치료의 세계적 흐름은 통합의학이다. 그동안 미국에서 침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으나 최근에는 그 관심이 한약으로 많이 옮겨가고 있다. 유방암 항암치료 중 호르몬요법으로 많이 사용되는 타목시펜이 부작용이 많고 다른 암을 유발하는 문제가 있는데 한약을 병용했을 때 부작용을 완화시켜주면서 암 유발률도 낮춰주는 등 한약의 효과가 입증되면서 다양한 병행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것. 이는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한약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으며 일본의 경우에는 암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의 92% 이상이 한약을 처방하고 있을 정도다. 한약을 병용했을 때 암 환자의 삶의 질 개선과 면역력 향상, 항암치료의 부작용 완화, 암 환자의 생존기간 연장 등의 효과는 이미 여러 논문을 통해 입증되면서 세계적으로 한의 암 치료는 완화의료영역 뿐만 아니라 암 치료 전체 줄기에 모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장 회장은 이러한 흐름이 중의약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대한 아쉬움을 나타났다. 이는 태동적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한의약은 중의약이나 일본 캄포의학과 다른점이 있다고 말한다. 보중익기탕이 아무리 NK세포를 회복시켜주고 암 전이를 억제해준다 하더라도 모든 환자에게 동일한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보중익기탕은 저에너지 상태의 음인 경향의 개별생리에 써야 더 유효한 효과를 보이는 처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모든 암환자에게 쓰고 효과가 없으면 다른 것으로 바꾼다는 식으로 접근한다. 한의사 제도가 없어 양의사가 한약을 처방하기 때문에 개별 생리에 따른 맞춤처방에 대한 개념이 없고 고방을 너무 중시하다 보니 처방 개수도 적어 한계가 있는 셈이다. 중국의 경우에는 원방대로 쓰지 않고 가감방을 쓴다. 원방만 가지고 연구해도 어려운 상황인데 다 변화를 주기 때문에 환자가 호전되지 않을 경우 돌아갈 곳이 없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반면 한국 한의약은 환자의 개별 생리에 따라 맞춤 처방이 가능하다. 소화제를 하나 쓰더라도 무조건 향사평위산을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소화기가 이완됐을 때는 사군자탕류를, 소화력이 어느정도 받쳐주는 환자에게는 평위산류를 쓰는 등 개별조건에 따라 다르게 처방하는 것. “중의약과 캄포의학 둘 다 우수하고 논문도 많이 나올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지만 분명히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 한의학은 그러한 한계를 충분히 보완해 줄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장 회장은 현대한의학은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근거 중심의 한의 암 치료를 위한 가이드가 각 학회마다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벗어나려는 일부의 시도가 한의 암 치료 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다. “기초처방에서 어떠한 개별생리의 암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 명확한 가이드를 잡아줘야 한다. 현대의학의 이론기반도 반드시 받아들여야 한다. 한의학에서 사용하는 많은 중세용어들을 현대한의학 입장에서 의미를 해석하고 어떠한 질병에 적용될 수 있는지 온고이지신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소통에 문제가 없어지고 통합의학으로 가기가 수월해져 암 관리에 있어서도 가장 바람직한 한의 치료영역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한의원에서는 암의 완치보다 종합치료라는 큰 틀 내에서 암의 증상을 완화시켜주고 관리해 주는 역할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말하는 장 회장. 암은 염증을 낮추고 면역력을 높여주는 것이 핵심인데 한의학에는 암성 통증, 암으로 인한 여러 염증 환경, 불면증, 우울증, 피로, 부종, 변비, 설사, 다양한 항암치료의 후유증 등을 효과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한약이 많다. 한약을 통해 암 환자의 불편을 완화시켜줘 삶의 질을 높여주면 신체활력 지수가 높아지게 되고 이를 통해 면역력이 높아지면 염증이 없어져 결과적으로 암 치료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표준치료와 병행했을 때 항암효과가 극대화 되고 훨씬 더 효과가 좋다는 것은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한의학은 이제 전통한의학을 넘어서야 한다. 의학과 한의학이 융합돼 통합의학으로 갔을 때 현대한의학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했을 때 한의학이 국민에게 더 가까이 가는 길이 될 것이고 한의학 자체가 일대 혁신을 이뤄 업그레이드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한의학을 좀 더 깊게 세분화해 각 영역별로 클리닉화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한의학이 훨씬 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장 회장은 암 환자들에게 치우침 없는 현명한 선택을 조언했다. “세계적 화두는 통합의학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사들은 이에대한 정보가 부족하기도 하고 이권 때문에 환자가 한의의료기관을 이용하는 것 자체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한방, 양방이 무의미하다. 각 의학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서로를 무시하기보다 장점을 받아들여야 한다. 통합의학으로 치료받을 때 가장 효과적인 암 치료가 가능한 만큼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통합의학을 잘하는 의료기관을 선택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편 장 회장은 현대한의학적 관점에서 기초적인 30개 한약처방과 이를 기반으로 총 150~200개의 처방을 임상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한약을 얼마나 정확하고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는 평이다.
-
‘바둑’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나의 길잡이소재경 한의사 가로, 세로 약 45cm 목판 위에서 흑·백의 돌이 자신의 집을 지키고, 새로운 집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네 귀에 위치한 화점을 먼저 차지할 것인가, 아니면 중앙을 차지할 것인가, 초침 소리만 들리는 바둑판 앞이야말로 총성 없는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다. 10년여 만에 총성 없는 전쟁에 투입된 소재경(금천구 남문한의원) 한의사는 바둑돌을 옮기며 오랜만에 열정을 불태웠다. ‘2019 보건·의료전문가 바둑대회’에서 4단부터 1단까지 참가하는 피로회복조 준우승을 차지한 그는 다시 한 번 바둑의 부흥을 이끌어보겠다고 선언했다. Q. 독자들에게 ‘바둑’이 어떤 스포츠인지 간략히 설명해준다면? 바둑은 침착, 냉정, 균형 세 가지 요소가 어우러져 인간이 잘 느끼지 못하는 감각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또한 바둑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승리의 기쁨을 그 자리에서 표하지 않으며, 실력에 따른 어드벤티지가 적용되기도 하고, 인사로 시작해 인사로 끝나는 신사적인 스포츠다. 세월이 흘러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주류는 아니지만 몸과 정신만 허락한다면 백발노인이 돼서도 타인과 선의의 경쟁이 가능한 멋진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Q. 바둑과 관련한 활동을 하고 있는가? 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약 10명의 한의사와 함께 바둑 모임을 갖고 한 달에 한 번씩 활동했었다. 당시 보건사회부장관배 의약인 바둑대회 단체전에도 3회 가량 출전했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는 모임이 사라졌다. 그 시절이 그립다. 약 10년간 바둑을 멀리하다 올해 개최된 ‘2019 보건·의료전문가 바둑대회’에서 혹시나 옛 기우회 멤버들을 만나볼 수 있을까하고 참가했었다. 한의사 바둑 모임을 다시 만들고 싶다. 친선을 도모하고, 함께 대회에도 참가할 수 있는 그런 동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관심 있는 분들은 제게 꼭 연락해주길 바란다. Q. 지난달 보건의료인 바둑대회 피로회복조(4단~1단)에 참가해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뒀다. 전혀 계획에 없었던 일이다. 단지 인생을 함께 즐겼던 옛 기우님들을 뵙고자 대회장을 찾았는데 당일 참가 신청을 받더라.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참가해 볼 것을 권유해 뜻하지 않게 대회를 치르게 됐다. ‘이왕 참가하게 된 거 재미있게 해보자’ 생각하며 경기에 임했다. 마음을 비워서인지 쉽게 예선을 통과했다. 게다가 8강에서는 운 좋게 부전승으로 다음 상대를 맞이하게 됐다. 다른 선수들은 많은 경기를 치러 피곤함을 느꼈던 것이 나에게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결승에 진출하게 됐지만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했던가 모든 운을 다 썼더니 결승전에서는 결국 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즐거웠다. 바둑판에 돌이 올려질 때 나는 소리,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만남 등 모든 것이 완벽했다.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 Q. 바둑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 누구보다 활발했고, 사교적이었다. 누구나 겪었겠지만 어르신들은 이런 모습을 두고 ‘덜렁거린다’고 규정하고, 점잖고 차분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훈육했던 것 같다. 나 역시 아버지께서 덜렁거린다는 이유만으로 바둑을 가르쳐주셨다. 그 때부터 진중한 면이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바둑을 접하기 전보다 침착해졌던 것 같다. 조그마한 바둑판 안에서도 치열한 경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그 때 내 나이는 13살이었다. 천원점(바둑판 한가운데의 점)과 8개의 화점 모든 곳에 흑돌을 놓았는데도 아버지의 백돌이 순식간에 그 자리를 점령했다. 나의 흑돌이 견고하게 집을 세우기까지는 열흘이 걸렸다. 네 귀 모든 화점에 흑돌을 놓고 아버지를 상대로 이겼을 때, 나의 자만심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하지만 그 자만심이 그리 오래 지속되진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데 같은 동네에 동갑내기 친구 하나가 있었다. 내가 바둑을 시작했다고 이야기하니 친구도 바둑에 대해 이전부터 공부했었고, 여러 번 시합을 했다고 하더라. 이내 우리는 바둑판에 앉아 대국을 시작했다. 하늘을 찌르던 나의 자만심은 내리 세 판을 지고 나서 속상함으로 변질됐다. 속상함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복수심이 차올랐던 것 같다. 아니 이기고 싶은 욕구가 솟았다. 그 때부터 청계천 헌 책방을 수시로 드나들며 바둑 공부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바둑에 대한 열정이 이어진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바둑의 요소인 ‘균형’, 그 의미를 이제야 깨닫게 됐다. 승패를 떠나 바둑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지금의 상태가 ‘균형’인 것이다.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줬던 그 친구가 보고 싶고, 찾고 싶다. Q. 8~90년대 바둑의 인기가 정말 대단했었다. 그 당시 웬만한 스포츠보다 바둑의 인기가 더욱 좋았던 것 같다. 남녀노소, 장소불문 누구나 어디서든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장점과 수많은 상황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또한 8~90년대에는 스타 기사들이 많았다. 70년대 말에는 조치훈 프로가 일본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80년대는 응창기 세계대회에서 활약을 펼쳤던 조훈현 프로가, 90년도에는 홀로 고군분투했던 이창호 프로라는 걸출한 스타 기사들이 바둑의 인기몰이에 큰 역할을 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바둑 학원을 많이 선택했다. 최근 이세돌 프로가 알파고와 대국을 펼쳐 세간에 관심을 받았다. 이번 계기를 통해 젊은 세대들이 바둑의 매력을 느끼고, 바둑의 부흥을 이끌어주길 바란다. Q. 원장님의 바둑 스타일이 어떻게 되는가? 사실 저 자신도 잘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집중력이 산만해서 그런지 공격적인 전략을 많이 사용했던 것 같다. 20대에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수 들을 펼쳤던 것 같고, 30대와 40대를 거치면서 인내심과 기다림을 터득하고부터는 조심스럽게 대국을 펼치는 수비적인 전략을 쓰기도 했다. 지금은 공격과 수비 그리고 창의적인 묘수까지 생각해내며 바둑을 즐기고 있다. Q. 바둑기사 중 롤모델이 있다면? 조훈현 기사의 스승인 세고에 켄사쿠 기사를 롤모델로 삼았다. 바둑의 발상지인 중국과 한반도를 경유해 일본에서 꽃을 피웠다고 생각한 세고에 옹은 보답의 의미로 한·중·일 3개국에서 각 1명씩 총 3명의 제자를 두고 바둑기술의 교육보다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예와 도덕을 가르쳤다고 한다. 국적을 초월한 진정한 범세계주의자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한의사로서 예와 도덕의 의미를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 바둑의 기술은 그 다음이라 생각한다. Q. 원장님께 ‘바둑’이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는 좋은 길잡이라고 생각한다. 미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바둑을 통해 느끼고 있다. 바둑을 시작한 이래로 삶이 더욱 윤택해졌으며, 의료인으로서 성장할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지치고 힘들 때, 야외에서 바람을 쐬고 올 때가 있다. 하지만 모든 갈증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 때, 바둑판 앞에 앉으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다. 계속해서 ‘바둑’과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그리고 ‘바둑’과 함께할 수 있음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