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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대에 안부를 묻다-19김효선 동신대학교 본과 1학년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19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한의과대학·한의학전문대학원학생회연합 소속 한의대 학생들에게 학업 및 대학 생활의 이야기를 듣는 ‘한의대에 안부를 묻다’를 게재한다. 대개 한의대생이라면 동아리에서 공진단이나 경옥고를 만들어 소중한 사람에게 선물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진단은 고등학생 때 다같이 하루루틴처럼 먹었기에 경옥고에 비해 친숙함+1이었으나, 올해 초 공진단을 만들며 ‘피로 개선’이라는, 어디에 갖다 써도 부분점수는 줄 것 같은 효능만 얼버무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래서 ‘한의대생이라 할 수 있나’라는 반성이 잊혀지기 전에 올해 초 만들어본 공진단과 이번 겨울방학에 만들어볼 경옥고에 관해 이번 기고를 계기로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래 내용은 시험문제에 간혹 등장하는 “일반인에게 설명하듯 서술하시오”에 대한 답변하는 생각으로 정리해 봤다. 공진단, 세상에 보약 중 가장 으뜸으로 여겨 공진단(供辰丹, 공신단)은 중국 원나라 위역림의 ‘세의득효방’(世醫得效方)에 최초로 수록된 처방으로, 황제의 보약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의하면 타고난 기운이 약하거나 체질이 허약할 때 섭취하면 원기가 보강되고 오장이 조화로워져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해준다고 한다. 주요 재료로는 사향, 당귀, 인삼, 녹용, 산수유를 사용하는데, 복용 목적에 따라 침향, 목향 등을 가감해 조제하기도 한다. 이때 사향은 사향노루 수컷의 향선낭 분비물로, 공진단의 순환하는 효능의 핵심을 담당한다. 이외에도 녹용은 원기보충, 산수유는 간과 신장의 기능 개선에 좋다. 공진단은 이러한 약재들을 가루로 만들고 꿀 반죽을 한 후 금박을 입히는 방식으로 만드는데 아침 공복에 꼭꼭 씹어서 먹으면 더욱 효과적이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아침 공복에 먹어본 적이 드문 것 같은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 함께 공진단은 기억력 및 인지기능 개선, 항산화 효능이 있으며 면역체계·심혈관계를 강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허혈성 뇌질환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논문도 보고됐으며 갱년기 증상을 해소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라 한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세상 보약을 다 처방해도 효과를 보지 못하면 최후로 공진단을 써야한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향의 경우 자궁의 수축을 일으킬 수 있고 체질에 따라 약재의 약성과 잘 맞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한의사와 상담 후 섭취하기를 권한다. 경옥고,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하는 약으로 인식 경옥고는 생지황, 인삼, 백복령, 벌꿀을 중탕해 만든 고체 형태의 보약이다. 공진단의 사향과 같은 존재가 경옥고의 생지황이라 할 수 있다. 생지황은 혈액순환을 개선하고 신기능을 강화하며 몸의 열을 내리고 갱년기·불안·공황 증상에 효과적이다. 그리고 백복령 역시 중요한 약재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복령의 균핵을 건조해 만든 약재로 이뇨작용, 진정작용을 하며 혈당을 낮추고 건망증을 개선하는데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 의하면 경옥고는 연년익수약(延年益壽藥,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하는 약)이다. 구체적으로는 정기와 골수를 늘려주고 원기를 보하며 항노화 효능이 있고 허손증(허약해서 생기는 질환)을 보하고 오장이 충실해지게 한다고 한다. 아침 공복과 잠들기 1시간 전 등 하루 총 2회를 복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한 숟가락 떠서 복용하거나 따뜻한 물에 녹여 마시는 것이 좋다. 다만 생지황은 찬 성질이라서 과다복용하거나 위장이 약한 경우에는 구토·설사·구역 등의 소화장애를 야기할 수 있고, 인삼에 의해 두드러기 등의 피부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어 섭취시에 주의해야 한다. 더욱이 경옥고의 경우 굉장히 대중적인 보약으로 인식돼 이같은 주의할 부분이 간과될 수 있는 만큼 복용하고자 할 때에는 반드시 전문가인 한의사와의 상담 후 섭취하는 것이 보다 효과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번 겨울방학 경옥고 만들기 체험을 할 때에는 ‘피로 개선(?)’이라는 단어를 내뱉는 우리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친다. -
“여한의사의 따뜻한 마음과 친절한 의술로 의료사각지대 찾아갈 것”<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지난해 9월부터 나는봄서울시립십대여성건강센터(이하 나는봄센터)에서 위기 여성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한의약 진료를 진행하고 있는 여한의사회 김지희 총무이사와 김윤민 의무이사를 만나봤다. Q. ‘나는봄센터’는 어떤 곳인가? 김지희: 나는봄센터는 지난 ‘13년 전국 최초로 설립된 십대 여성 건강센터로, 서울시에서 여성 청소년에게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고 성매매, 임신, 폭력과 같은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 여성 청소년들에게 몸과 마음의 회복을 위해 운영되는 곳이다. 나는봄은 말 그대로 I’m spring, 봄과 생명의 기운이 이미 우리 안에서 피어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활기차고 기운찬 이름이다. 김윤민: 나는봄 마스코트 ‘보미’를 보면 알겠지만, 에너지 넘치는 눈빛에서 느껴지듯 건강하고 당찬 소녀다. 한마디로 십대 여성들이 처해있는 위기상황에서 주체적으로 용감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센터다. Q. 의료지원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김지희: 대한한의사협회 소아청소년위원회 위원도 겸임하고 있는데, 사실 지난해 회의에서부터 나는봄센터에 의료지원을 나가는 여한의사 모집 안건이 나왔었다. 그러던 와중에 여한의사회와 소청위, 나는봄센터가 MOU를 체결한 것이 귀한 인연이 돼 의료지원에 참여하게 됐다. 김윤민: 여한이 나는봄과 MOU를 맺은 후 신청자를 받는 공지가 올라왔었는데, 그 공지를 보고 휴진날인 목요일에 의료지원 신청을 했다. 내심 매주 목요일마다 혼자 의료지원을 나가게 될까봐 걱정됐었는데, 결과적으로 많은 여한의사 회원들이 신청을 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의료지원을 나가고 있다. Q. 한의원에서 진료할 때와 다른 점은? 김지희: 나는봄센터에서의 진료는 더 친밀한 느낌이 있다. 환자층이 주로 가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십대 후반의 여성청소년과 쉼터나 가정에서 이제 막 자립한 20대 초반 여성들이다보니 불면, 우울증, 공황장애 등 신경정신과적 요인을 많이 갖고 있다. 또한 신체화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았는데, 기본적으로 목, 어깨, 허리는 거의 다 굳어있는 경우가 많고, 맥을 짚으면 10에 8, 9는 허약한 편이다. 한의원에서 진료할 때처럼 ‘침으로 한 번에 잘 낫게 해준다’는 생각은 버리고, 처음 침을 맞아본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한의약 치료를 친숙하게 해주고 치료 후에는 일상생활 속에서의 건강관리법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많이 접근하고 있다. Q. 기억에 남는 청소년이 있다면? 김윤민: 친구들이 한의과 진료실로 오게 되는 이유는 다양하다. 처음부터 한의과 진료를 원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친구를 따라 오거나 다른 진료를 보러 왔다가 다른 과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오기도 한다. 처음에 친구들이 오면 거의 백지 상태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처음부터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해주는 친구도 있고 돌아갈 때 츤데레처럼 ‘근데.. 이런 부분이 궁금해요’ 이렇게 얘기하는 친구도 있다. 아직까지 많은 친구들을 본 건 아니기 때문에 이름을 들으면 외모, 말투, 증상, 아픈 곳이 다 생각난다. 저만 그 친구들이 다 생각이 나는 게 아니고 친구들 역시 오랜만에 봐도 다 기억을 해주니 참 고마운 일이다. Q. 한의약 진료가 어떤 도움이 되는지? 김지희: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의 여성들은 아무래도 심리적으로 예민하고, 감정의 기복이 클 때가 많은데 진료하다보면 일반 한의원에 오는 환자들과는 달리 거친 환경 속에서 몸과 마음이 이미 다쳐있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다보니 스트레스로 인해 여러 가지 신체증상이 많은데 불면, 공황장애를 비롯해 설사, 위염, 생리통, 두통이나 식이장애로 인해 폭식증, 거식증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의학의 강점이 몸과 마음을 전인적으로 치료한다는 점인데, 충분한 상담 후에 몸의 상태를 설명해주고, 침·추나 치료와 함께 운동법을 알려준다. 또한 필요한 경우에는 보험 한약도 함께 처방해주고 있다. 나는봄센터에는 산부인과, 치과, 가정의학과 선생님들도 계신데 한의약은 또 다른 부분을 치료해줄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첩약으로 깊은 진료를 해줘야하는 부분들이 많이 보이는데, 여건상 첩약 진료가 어려운 부분은 안타까운 마음이다. Q. 여한의사이기 때문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김윤민: 친구들이 본인을 표현하거나 치료를 받아들이는데 있어 허들이 낮아진다. 치료를 할 때 대면하는 물리적인 측면에선 당연하고 정서적인 면에서의 강점도 크다. 의료지원에 참여하는 여한의사들의 나이대가 다양한데 친구들이 평소에 터놓고 지내는 선생님이랑 비슷한 나이대의 원장님도 있고, 김지희 원장님이나 저처럼 약간 막내이모 같은 나이대 원장님들도 있다. 진료연속성을 위해서 차팅 내용을 공유하는데, 같은 친구가 상담을 했더라도 누가 진료하느냐에 따라 조금 더 어른에게 터놓을 만한 얘기도 있고, 언니에게 물어볼 만한 고민들도 있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는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더 쉽게 얘기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장점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Q. 의료지원 참여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김지희: 사실 나는봄센터에 오는 아이들의 대략적인 상황을 듣고 가출청소년 이미지를 떠올렸다. 저는 어렸을 때 공부만 했던 범생이었고 주변 친구들도 그런 아이들이 많아서, 무서운 청소년들이 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했었다. 처음 한의진료실에 들어와 삐딱하게 앉아서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하며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며 어떤 부분을 도와줄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러나 본인 마음을 점점 열고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고 진심으로 마음을 먼저 열고 다가가면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하는 마음으로 보람차게 진료를 이어나가고 있다. 김윤민: 저 같은 경우에는 처음에는 오히려 편하게 갔다. 공감대 형성도 비교적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더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봉사하는 입장에서도, 진료를 하는 의료인의 입장에서도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공부도 더 많이 하게 되니까 아이들과 함께 더 성숙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Q. 향후 계획은? 김지희: 앞으로도 여한의사회는 전국 각지의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곳에 따뜻한 마음과 친절한 의술로 찾아가려고 한다. 지금까지 이주여성 및 성폭력 트라우마 피해자, 탈북 청소년 쉼터 등에서 봉사를 해왔고 앞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 장애인 봉사도 이어나갈 예정이다. -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가는 우리들의 이야기큰나무한의원 부원장 나지호(가운데) 한국M&L심리치료연구원 주최, M&L심리치료학회(회장 강형원 교수) 주관으로 진행되는 ‘M&L심리치료 프로스킬 트레이닝 코스’는 심리치료 전문가를 대상으로, 임상 현장에서 요구되는 치료자로서의 자세와, 다양한 심리치료 기법들을 습득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M&L은 Mindfulness & Loving beingness를 뜻하는 말로, 내담자 안에 있는 힘을 믿어주는 치료자가 제공하는 안전의 장 속에서, 내담자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고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알아차리도록 돕는 것이 M&L 심리치료입니다. ‘M&L심리치료 프로스킬 트레이닝 코스’는 일본 정신과전문의이자 후쿠오카 유멘탈 클리닉 원장인 유수양 선생님을 마스터 트레이너로,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이자 원광대 한방신경정신과 교수인 강형원 교수님을 트레이너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 부산, 광주 및 Zoom 등에서 10회차에 해당하는 트레이닝 코스를 진행하면서 총 202명의 수료생을 배출하였습니다. 특히 2022년에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2021년과 마찬가지로 Zoom을 활용해 코스를 진행하면서도, 체험을 중시하는 M&L심리치료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코스의 5회차와 10회차 때 각각 1박2일로 오프라인 코스를 진행함으로써, 온라인에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면 실습의 기회를 가졌습니다. 2023년은 한국에 M&L심리치료가 들어온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M&L심리치료가 몸과 마음의 고통 속에 있는 많은 분들을 도울 수 있도록 진일보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작년 4월이었는데 한 달마다 한 번씩 줌으로 만나면서 벌써 해가 바뀌어서 1월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7기 M&L심리치료 프로스킬 트레이닝 베이직코스’ 시작 당일에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허겁지겁 등록하고 시작하게 되었는데, 줌이지만 얼굴과 상반신이 보이도록 대면처럼 소규모 실습을 한다는 것이 특이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강의를 시작하면서 강형원 교수님과 유수양 선생님, 운영진 분들이 저의 그런 긴장된 마음을 알기라도 하셨는지 시종일관 따뜻한 미소와 표정, 어투로 대해주셨습니다.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제 기억에 남을 만큼 평소에 자주 들어보지 않았던 것 같은 말이었습니다. 먼저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강의 지식기반의 강의가 아니어서 그냥 강의하시는 분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가끔 임상케이스가 나올 때면 그분의 상황과 심정에 깊게 공감해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감정표현도 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몸 상태가 안 좋거나 코로나에 걸려서 힘들 때도 자연스럽게 강의에 참여하면서 편안함과 위안을 얻는 시간이 되었던 적도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높아진 긴장감과 불안을 낮출 수 있게 하고, 다음에도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얻었다는 사실 자체가 불확실성의 바다에 헤엄치고 있는 우리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벼운 명상 상태에서 내면아이를 만나고 내면아이에게 대화를 건네는 방법 또한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트라우마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데 도무지 이유를 모르겠지만 평소의 나와 다른 행동과 감정을 표출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 좋은 해답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은 알고 있던 그 내면아이가 원하는 말, 핵심적인 감정을 나에게 잘 전달해주면 이상하게도 뭔가 출렁이던 감정이 평온해지고 맑아져서 깨끗하고 맑고 잡음이 없는 깊은 내면의 나의 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히 그러나 넓게 밀려오면 천천히 나의 행동과 감정에 스며들어서 고통과 불안에 휘감겨있는 나를 알아차리고 다시 한발 크게 내딛게 될 것이라는 믿음도 다시금 생기는 것 같습니다. 1호 환자를 치료하며, 인간 내면의 강인함과 긍정을 실감하다 아무래도 그런 큰 변화를 알아채게 된 것은 저의 1호 심리상담 환자가 생기게 된 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저의 1호 환자는 도무지 음식을 삼킬 수 없는 심한 불안 증세를 가지고 내원하였는데, 처음 왔을 때부터 마음에 큰 고통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되었습니다. 한동안은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한의학적인 치료를 했지만, 그 환자는 한 번의 심한 공황발작이 있고 나서는 침 치료를 거부할 정도로 괴로워했지요. 그 환자에게 할 수 있는 것은 심리 상담 치료밖에 없어서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상담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불안한 눈동자와 초췌해진 표정을 가지고 있는 그 환자는 처음에는 하단전 명상치료와 마음의 방 그리기를 하면서 어리둥절해 했지만, 저를 믿고 잘 따라와 줬습니다. 기억에서 떠올릴만한 긍정적인 리소스가 하나도 없다고 하셨지만, 그분은 명상치료를 시작하자마자 일상에서 자신의 리소스를 만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고통과 불안으로 허덕이면서도 그분은 기꺼이 명상치료를 받아들이고 용기를 내어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분은 아침마다 감사기도를 하고 놀이터에 나가서 햇빛을 받는 리소스를 가진 강인한 눈빛을 가진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눈부시도록 놀라운 변화를 그저 지켜봐주고 들어주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는데, 사람의 내면에는 이토록 강인하고 긍정적인 힘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의 변화를 목격한 저는 이끌리듯 제가 가장 좋아하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구절을 인용하여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하게 되었지요. 바로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였습니다. 저 역시도 가장 상처받고 움츠러들었을 때조차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고, 적절한 환경을 만나면 꽃이 피듯이 모든 게 바뀔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삶은 늘 연속적이고 변곡점이 있는 데 반해,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인식은 단편적이고 선택적인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인식체계 역시 깨어져야 할 하나의 세계일 수 있다는 생각 또한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심리상담 면에서 초보이기에 어쩌면 내가 제대로 치료를 진행하고 있는 것일까,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하는 불안이 항상 있었지만, 저와 함께 하겠다고 마음먹은 환자에게 서로 의지해가며 상담을 이어나갔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그분은 식사를 어느 정도 하게 되었고, 가족이나 주변 친지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분은 새해가 되자 한번 저를 찾아오셨는데, 제가 오신 이유를 묻자,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알려주고 자랑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변화를 보는 저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느낌을 받았고, 삶을 바꾸는 기회에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한 loving beingness를 직접 전하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뿐입니다. 각자의 신화 속에서 고난을 극복하는 영웅이 되다 10회차 부산에서 만났던 마지막 코스에서 우리는 각자가 걸려있는 마법의 주문에 대해서 토론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한 마법의 주문을 이야기하다보니 나의 신화를 완성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최보윤 원장님께서 도움을 주셨지요. 마법의 주문을 생각하다보니 자기 자신과 주변인의 관계와 삶으로 구체적인 포커스가 맞춰지는 기분이었는데, 나의 신화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시야가 확 넓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신화에서는 주인공의 고난과 시련이 매우 많고 그것을 극복하면서 영웅이 되는 구조가 굉장히 많은데, 그러한 영웅적인 면모, 닮고 싶은 멋있는 사람이 되는 것 또한 나에게는 더 이상 먼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자기 자신의 세계를 넘어서, 알에서 깨고 나온 새처럼, 스스로의 영웅이 되는 일까지 상상해볼 수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또한 문화의 밤에서 여러 장기를 보여주셨던 선생님들께서도 그러한 자신의 내면의 변화를 충분히 자신감 있게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의 변화를 나로부터 맞춰가는 아주 기분 좋은 경험과 울림이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해주신 모든 학회 운영진분들과 저희를 이끌어주셨던 강형원 교수님과 유수양 선생님, 그리고 ‘제7기 M&L심리치료 프로스킬 트레이이닝 코스’를 함께해주신 모든 수강생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2023년 한해에도 모두 내면의 성숙과 자신의 신화를 이루어나가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
“한약 복용하면 신장 나빠진다는 건 잘못된 정보…안전성 높다”이병철 교수(경희대 한의대) [편집자 주] AKOM-TV에서는 인플루언서 한의사들을 비롯해 사회 각계각층의 유명인을 대상으로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일곱 번째 초대 손님으로는 경희대 한의대 이병철 교수를 초청, 신장내분비내과에서는 무엇을 연구하는지, 연구 진행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들어봤다. Q. 신장내분비내과는 무엇을 하는 과인가? 신장내분비내과는 주로 콩팥병(신장병), 비뇨기질환, 그리고 요즘 큰 문제로 떠오른 비만, 당뇨병, 갑상선 질환, 대사증후군 등을 치료하는 과다. 신장내분비내과 교수들은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병원실습을 담당하는 게 주 일상이다. 또 대학원 석·박사생들을 위한 논문지도도 진행한다. 대학병원에서의 진료와 연구도 상당히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서 국가에서 지원하는 국책연구사업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Q. ‘한약을 복용하면 콩팥이 나빠진다’는 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약을 먹으면 콩팥 나빠진다는 얘기는 1993년에 벨기에에 있는 체중감량클리닉에서 약 70명의 여성 환자가 체중감량제를 먹고 급성 콩팥손상이 발생한 데서 시작됐다. 당시 벨기에에서는 홍콩을 통해 한약재 방기와 목통을 수입하려고 했다. 해당 약재들은 1975년 브루셀협약에서 체중감량 효과와 안정성을 인증받았다. 하지만 홍콩에서 방기는 광방기, 목통은 관목통으로 약재 바꿔치기를 했다. 해당 약재들은 아리스토로치 애시드라고 하는 발암물질이 포함된 약이다. 결국 이러한 약재를 받아서 사용한 체중감량클리닉에서 대량의 급성 콩팥 손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 사례가 외국 저널들에 ‘차이니즈 허브 네프로피시’(한약 복용과 관련된 신병증)로 소개가 됐다. 이후 실제로는 한약과 관련이 없는 문제인데도 한약을 먹으면 콩팥이 나빠진다고 하는 속설들이 퍼지게 됐다. 물론 해당 사례는 한약이 아닌 불법 약재의 문제였기 때문에 정식 명칭이 차이니즈 허브 네프로피시에서 ‘아리스토로치 애시드 오브 네프로피시’로 바뀌었다. 하지만 한번 잘못 퍼진 정보와 인식이 다시 회복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후 우리나라 식약처에서도 대규모 조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로는 이러한 문제가 발견된 사례가 전혀 없다. 그래서 안심하고 한약을 복용해도 된다. Q. 콩팥병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한약 복용의 사례가 있는가? 구기자가 콩팥병에 좋은지 물어보는 환자들이 많다. 하지만 구기자는 황제내경에 나오는 신주수신주장정 개념에서 봤을 때는 신주수보다는 신주장정에 가까운 한약재다. 그런데 현재 콩팥병과 내분비, 비뇨생식기의 개념들이 혼재돼 있다. 때문에 환자들이 구기자가 신장에 좋다는 사실을 듣고 콩팥병에도 좋을 것이라는 오해를 해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그건 전혀 다른 성격의 약이기 때문에 혼란이 없었으면 한다. 또 콩팥병 자체는 기본적으로 면역 반응에 의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그래서 면역이 저하된 경우보다는 면역이 항진된 환자들한테서 콩팥병이 발생한다. 그러다 보니 양방에서도 이런 콩팥병을 치료할 때는 스테로이드나 면역억제제를 써서 과잉된 면역을 억누르는 약들을 사용한다. 그런데 콩팥병 환자들이 느낄 때는 몸이 피곤하고 무기력하기 때문에 면역 기능이 떨어졌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시중에 파는 면역을 증진하는 약재들, 건강기능 식품을 임의로 구해서 많이 먹는데, 이게 비유하자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서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만약 콩팥병 환자 중에서 한약이나 건강보조식품을 복용할 생각이 있으면 콩팥 질환을 전문으로 하는 한의사들에게 꼭 상담받길 바란다. Q. 2022년 대한한의학회 학술대상 동상을 수상했다. 수상한 연구의 의의를 설명한다면? ‘당뇨병 전 단계 환자의 혈당에 계피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무작위 대조 시험’ 연구는 당뇨병 전 단계 환자를 대상으로 한약재인 계피의 임상적 효능과 안정성을 규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뇨병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미국 하버드의대 조슬린당뇨병센터와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한의약임상시험센터에서 무작위 배정 이중맹검 위약대조 다국가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당시 계피를 가지고 진행한 최초의 임상시험이다. 미국에서는 한의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고, 그나마 진행된 임상시험도 대부분 침 위주였다. 한약의 경우엔 복용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식약처 허가가 선행돼야 하고, 임상시험에 대한 안정성도 규정돼야 하는 등 연구 조건이 굉장히 까다롭다.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은 있었지만,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그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 발표했다. 미국 내부에서 해당 연구 결과가 흥미로웠는지 CNN 방송에서도 소개되는 등 매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국내에서도 그 결과를 인정받아서 영광스럽게도 대한한의학회에서 학술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 Q. 한의과대학을 목표로 하는 지원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마다 한의과대학 면접위원으로 참여하면서 학생들에게 꼭 묻는 질문중 하나가 ‘왜 한의대에 지원하게 됐느냐’는 것이다. 그러면 지원자들 상당수가 어렸을 때 침을 맞았는데 좋았다든지, 아니면 할머니가 어디 아프셔서 한약을 복용했는데 감쪽같이 나았다든지와 같은 개인적인 경험을 얘기한다. 물론 그것도 본인으로서는 소중한 경험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본질적인 답변을 해주길 바란다. 한의학이라는 학문은 수천 년 동안 오래 지속되어 왔던 학문이지만 현대에 있어서는 새로운 얼굴,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 있는 단계에 해당한다. 과거의 한의학은 증상 위주의 학문이었다고 한다면, 지금은 증상뿐 아니라 질병에 집중한 치료법도 필요한 시대가 됐다. 콩팥병의 경우에도 증상이 없다보니까 한의학에서는 상대적으로 연구가 덜 되어 있는, 발전이 필요한 학문 분야다. 그래서 만약 한의대에 입학하고 싶은 지원자들이 있다고 한다면 본인이 한의대에 들어와서 하는 연구, 그리고 그 연구결과가 한의학의 역사가 된다고 하는 사명감과 포부를 가지고 한의대에 지원한다면 큰 성취를 얻지 않을까 한다. -
“활자로만 존재하는 연구 아닌 살아 숨쉬는 연구하고 싶다”강병수 한의사(동신대학교 대학원)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미래 한의계를 이끌어갈 인재를 발굴하는 ‘대한한의학회 미래인재상’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강병수 한의사(동신대학교 대학원)를 만나봤다. 강병수 한의사는 원주시보건소 공보의 시절 직접 장애인 가정에 방문진료를 했던 데이터를 토대로 ‘장애인의 미충족 의료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재택 통합 한의학프로그램에 대한 관찰연구’ 논문을 제출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Q. 최우수상을 수상한 소감은? 한국전쟁 중에 창립돼 한의학 연구와 교육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대한한의학회의 창립 70주년 행사에서 젊은 한의계 연구자에게 수여하는 미래인재상 최우수상을 받게 돼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미래인재상은 연구 인프라가 열악한 한의계에서 젊은 연구자의 꾸준한 연구를 응원해주는 상으로, 앞으로도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선정됐다고 생각한다. 최우수상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국외 학회 방문 기회도 잘 이용해서 앞으로의 연구 활동에 방향을 잡는 기회로 삼아보려고 한다. 전문의로서 활자로만 존재하는 연구가 아닌 실제 임상과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되는 살아 숨쉬는 연구를 계속해서 하고 싶다. Q. 이번 연구를 진행하게 된 계기는? 공중보건한의사 1년 차였던 ‘18년 11월 국회토론회가 계기가 됐다. 그 자리는 장애인 건강주치의제 시범사업이 의사만 참가한 상태로 시행돼 한의사를 주치의 자격조건에 넣어달라고 요청하는 자리였다. 하지만 한의사들이 준비한 자료가 논문이 아니라 근거 수준이 비교적 낮은, 이익집단인 한의협의 보고서였다. 그 자리에서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한의계에 우호적인 정책을 펼치고 싶어도 근거가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직접 장애인 관련 연구를 해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때마침 ‘19년에 한의약 장애인 방문건강관리 시범사업이 일부 보건소에서 시행된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시범사업을 하는 근무지로 옮기기 위해 강원도 공보의 도 대표에 출마했다. 선거운동을 할 때 연구계획을 설명해 드렸고, 뽑아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근무지를 옮겨 이번 연구를 시작할 수 있었다. Q. ‘재택 통합 한의학 프로그램’을 소개한다면? ‘19년 전국의 254개의 보건소 중 27개소에서 진행됐던 한의약 장애인 방문건강관리 시범사업으로, 여러 지자체의 한의과 공보의와 공직한의사들이 노력했던 건강증진사업이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매뉴얼을 만들고 이를 지자체의 실정에 맞춰 진행하는 방식이었는데, 원주시의 경우에는 ‘19년 하반기 6개월간 20여 명의 장애인 가정을 총 12회 직접 방문해 진료를 진행했고 최종적으로 20명의 데이터를 후향적으로 정리해 논문이 출판됐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중 뇌병변장애 혹은 지체장애가 있는 환자를 대상자로 직접 선정하고, 표준화된 침·전침, 한약(보중익기탕 연조엑스) 및 방문교육 서비스를 수행했으며, 통증과 삶의 질, 만족도 및 오장변증 설문 등을 직접 평가했다. 더불어 한의 치료에 대한 이상반응을 관찰했고, 활력징후나 혈당 등의 지속적인 측정으로 만성질환 관리도 함께 진행했다. Q. 추후 보건소나 한의원으로 확대하기 용이한 근거는? 대상자 선정을 법정 장애 유형 중 가장 높은 인구 비율을 차지하는 지체장애, 뇌병변장애로 했기 때문에 향후 사업 확대시 대상자 선정이 비교적 쉬울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해당 장애 유형은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는 만큼 한의의료기관의 다빈도 상병에 해당해 한의학 치료의 만족도가 높으며, 이들 장애 유형은 신체장애 유형으로 평소 이동이 어렵다고 판단되고 대상자 전원의 장애 정도는 심한 정도의 장애인이므로 방문진료의 필요성을 확보할 수가 있다. 이밖에도 이번 연구는 정부 산하기관인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서 만든 매뉴얼로 대상자 선정부터 치료, scale 측정까지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 치료 효과와 만족도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했기 때문에, 검증된 매뉴얼로 프로그램을 확대 진행하기 용이하다고 생각된다. Q. 방문진료 후 환자들의 반응은? 방문진료를 통해 통증 관련 scale들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감소했으며 이러한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돼 한의 치료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또한 건강관리를 위한 혈위 자극 교육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생활 습관 교육을 통해 금연에 성공한 대상자도 있었다. 다만 한의 치료 만족도에 비해 2주에 한 번 방문하는 주기가 너무 길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러한 치료 빈도에 대한 만족도는 다른 항목에 비해 낮게 나타나, 향후 정부에 정책 제안시 치료빈도를 확대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도 있을 것 같다. Q. 원주시보건소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는지. 당시 건강증진과 이규숙 과장(추후 보건소장 역임)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보통 보건소에서는 공보의가 4월에 근무지를 이동하므로, 예산을 책정할 때와 예산을 집행할 때의 공보의가 달라 효율적인 보건사업 진행이 힘든 경우가 있다. 시범사업 진행 기간에 보건소가 미리 책정해둔 예산과 예비비를 통해 6개월분의 보중익기탕 연조엑스제나 이동식 전침기 등을 지원받았다. ‘19년 시범사업을 마치고 ‘20년 건강증진사업을 진행할 때는, 제 요청이 받아들여져 방문 진료를 할 때 비교적 고가인 전자뜸도 사용할 수 있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현재 신사 다이트 한방병원에서 좋은 동료들과 함께 비만 진료를 하고 있다. 비만이 만성질환이어서 치료 기간이 길고 한약을 장기간 복용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는 환자를 종종 본다. 하지만 한약 복용으로 오히려 간 기능이 개선되고, 혈당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와 당뇨약을 중단하는 의무 기록을 확인, 이런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한의학 치료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낼 수 있는 후향적 관찰연구를 수행하는 계획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은 한의사가 혈액검사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서 가능한데, 지난해 말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이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앞으로 다양한 진단기기의 활용으로 연구할 양질의 data가 늘어나고 연구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렌다. 앞으로 한의사가 사용할 다양한 진단기기로 한의 치료의 효과를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싶다. Q. 강조하고 싶은 말은? 2022 대한한의학회 미래인재상 연구 분야에서 함께 상을 받은 동신한방병원 전 동료였던 전채헌 전문의나 원광대학교 윤소영·오지은 학부생들도 원광대학교 임정태 교수님의 지도를 받았다. 저 또한 수련받을 때 동신한방병원 교육부장이었던 임 교수님과 이번 연구를 함께 진행했다. 임 교수님과는 코로나백신 이상반응 예방 및 치료 관련 공보의 대상 설문 연구, 자연재생한의원 화상 사례 연구를 비롯해 SCIE 급 저널에 여러 편의 논문 출판을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할 연구들이 예정돼 있다. 그동안 임 교수님께서 연구하고자 하는 젊은 한의사들의 등대 역할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
“자폐질환 아이들을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싶다”아이토마토한의원 김문주 원장 “소아질환은 아이들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를 구성하는 성인들이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 중에서도 소아 신경정신질환 환자들에게 질병으로부터 제약받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아이토마토한의원 김문주 원장이 소아 신경정신과질환 전문 한의원 개원을 결심했던 이유다. 김 원장은 연세대학교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공학도의 길을 걷다 가천대학교 한의과대학에 다시 입학해 한의사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공학도의 경험, 한의학 연구에 많은 도움 자폐성장애를 포함한 다양한 발달장애아들의 경우 어릴 때부터 조기에 치료하면 큰 호전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아동들이 한의학적 치료 및 관리를 받을 수 있는 근거와 치료지침은 아직까지 미흡한 실정이다. 이에 김문주 원장은 한의학을 통해 발달장애에 조기 개입할 수 있는 표준치료법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지속적인 연구와 임상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표준치료법을 만드는 데는 생명공학을 수학했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김 원장은 “생명공학을 전공하면서 익혔던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이 한의학을 연구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치료를 논리적으로 입증해야 한다는 사고방식도 결국에는 공학을 전공하면서 습득된 과학적인 태도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약으로 소아 자폐질환 치료 실마리 발견 특히 김 원장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한약을 통한 자폐질환 치료다. 김 원장은 “소아 자폐스펙트럼을 한약으로 치료할 수 있는 연구를 이어 오고 있지만, 그동안 한의학적으로 한약을 이용해 자폐를 치료한다는 연구는커녕 임상보고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실정”이라며 “더욱이 일반인들의 불신이 심한 것도 연구를 진행하는데 있어 커다란 장애물이었다”며 그동안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김 원장은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지난달 4일 국제학술지 ‘프론티어스 인 뉴롤로지’에 한약으로 소아 자폐질환을 치료와 관련된 연구결과를 게재, 불가능하다고 평가받던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 이번 연구는 소아 자폐스펙트럼장애 환자 18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직접 임상연구를 진행하며 얻어낸 성과로, 한국한의학연구원 이보람 박사와 공동으로 수행했다. 이번 연구에서는 Childhood Autism Rating Scale(CARS)과 Autism Behavior Checklist(ABC) 설문 값이 각각 치료 전 평균 34.58점 및 69.28점에서 6개월 치료 후 평균 28.56점 및 39.67점으로 감소했다. 이와 관련 김 원장은 “CARS 기준으로 30점 이상이 넘어가면 자폐성장애 진단이 내려지고, ABC 검사에서는 53점이 넘어가는 경우 자폐성 장애를 진단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대부분 아이들이 장애진단기준을 벗어나는 효과를 보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문주 원장은 한약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즉 오늘날 새롭게 등장하거나 유행하는 질병들이 많은데, 아직까지 치료법이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만큼 양약에 비해 부작용이 낮은 한약을 통해 치료해야 한다는 것. 그는 “현대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질환들의 치료법이 정립되기까지는 무수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이때 한약을 이용한 치료는 큰 위험 없이 효과를 만들 수 있는 우수한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연구의 최종 목표는 ‘발달장애를 치료하는 하나의 지침’을 만드는 것”이라고 밝힌 김 원장은 “한의학은 엄청난 임상정보가 녹아져 있는 의학의 보고(寶庫)”라며 “한의학의 유용성을 과학적으로 잘 규명해 나간다면 현대사회에서 새롭게 대두되는 다양한 질환에 광범위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전성 높은 한약, 현대 질병 치료에 장점 또한 향후 계획과 관련 김 원장은 “지금도 한약만으로 자폐가 호전될 수 있다는 근거를 확보해 나가고 있으며, 앞으로 플로어타임 없이 한약과 식이요법 그리고 몇 가지 영양제요법만으로 치료했을 때의 변화를 관찰하는 전향적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더불어 20개월 미만의 자폐아동을 대상으로 한약과 식이요법만으로도 정상범주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관찰하는 연구까지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김 원장은 이어 “소아 신경정신질환 연구자로서, 또한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인으로서 큰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며 “지금 하고 있는 치료와 연구가 이같은 질병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
“회원 소통 회복 목표… 소단위 만남의 장 구축”수원시한의사회 정진용 회장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수원시한의사회(이하 수원시분회) 정진용 회장으로부터 주요 추진사업과 향후 계획 등을 들어봤다. 수원시분회는 지난해 11월 열린 제41차 정기총회에서 단독으로 회장 선거에 입후보한 정진용 수석부회장을 만장일치로 제32대 신임 회장으로 선출했다. 앞으로 3년간 수원시분회를 이끌어나갈 정진용 회장은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졸업 후 동 대학원 석·박사를 마쳤으며, 경기도 화성시에서 한의계 최초로 공중보건 한의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수원에서 경희화인한의원을 운영하며, 수원시분회에서는 총무이사, 수석부회장을 역임했다. Q. 취임 소감 및 앞으로 회무방향은? 수원시분회는 중앙회에 등록된 회원만 약 470명에 이르며, 한방병의원도 300곳이 넘는 큰 분회로 성장한 만큼 앞으로 3년은 ‘분회원들과의 원활한 소통’에 주안점을 두고 회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고 다음 회장에게 안정적이고 체계가 잘 갖춰진 운영위를 넘겨주는 것이 목표다. 한의계 관련 정책 이슈나 지자체 및 지역사회의 요구에 있어 회원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부분들을 함께 고민할 것이며, 이를 중앙회나 경기지부에 분회원들의 민의를 적극 전달하는 것이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수원에 개원해 20년 이상 받은 감사함을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나눠드리는 내리사랑을 실천할 때가 왔다.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어깨가 무겁지만 훌륭한 선배님들을 보며 우리 회원들과 함께 앞으로 3년이라는 시간을 열정으로 채워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의료 활동 등으로 힘들겠지만 회원 분들께서 회무와 활동에 지속적인 관심과 직접 참여를 통해 분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시길 부탁 드린다. Q. 올해 중점 사업은? 포스트코로나 시대로 접어들며, 회원들과의 소통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회원 수가 많은 분회인 만큼 각 구 회장과 수석반장들, 각 학교 동문회장 등을 통해 회원과의 만남을 진행하려고 한다. 그동안 온라인으로 대체된 학술 세미나는 다시 오프라인으로 활성화해 초음파, 혈액검사, 맥진, 침법, 처방활용 등 특히 젊은 회원들을 위한 실전 임상을 주제로 매월 1회 이상 개최하고 싶다. 그동안 활발히 진행해 온 한의난임치료 사업은 이제 새로운 전환점에 이르렀으며, 예산, 참여대상자 선정 및 관리 등에 대한 전반적인 개편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도록 준비하겠다. 나눔봉사단의 활동으로는 월경통 및 월경곤란 등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의치료 후원을 시작했으며, 지역아동센터 등과 연계해 침구치료와 한약처방 등 재능기부를 통해 직능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는 사업들을 전개해 나가려고 한다. 또, 오는 2024년에는 초고령사회로 진입이 예상됨에 따라 노인건강과 복지를 위해 시에서 개소한 치매안심센터를 통해 치매·경도인지장애 환자들의 진단, 치료 및 관리에 대해 한의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도록 지자체와 논의하고, 이와 더불어 경로당 한의주치의 사업도 준비하려고 한다. Q. 나에게 한의약이란? 나에게 있어 한의약은 ‘운명’이자 ‘소명’으로, 한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재수 당시 어머니께서 자식이 누군가를 돕고 섬기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바람을 담은 간절한 기도였으며, 이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었다고 믿는다. 집을 지을 때 마당의 터를 닦고 그 위에 기초를 파고 기둥을 세워 멋있는 집을 짓듯이 대대로 한의사 가문을 세우고 싶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볼 때마다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살아오며 받아온 외부 환경적 요인과 내부 성정(性情)으로 인해 다양한 병인이 발생하며, 한의사는 이를 탐구해 생리, 병리, 약리가 일치되는 치료해답을 도출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사실이 늘 새롭고 흥미롭다. 한의학은 병인으로 인해 변화된 체내 결과물 뿐만 아니라 그 원인에 대한 탐구도 진행함으로써 다른 의학보다 한 차원 높은 의학이라고 생각한다. 초음파 등 현대 의료기기를 당당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상황을 보며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한의계가 새롭게 도약하고, 환자 중심의 자연친화적인 한의약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될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Q. 한의약 발전을 위한 제도적 보완점은? 보험진료 서비스의 수급 대상인 국민들을 위해 한의진료 중 자보에서 인정받고 있는 약침과 물리치료 등의 수가는 적극 건강보험 대상으로 전환돼야 하며, 대법원 판결로 한의사의 사용이 가능해진 초음파 등 의료진단기기에 한의진료 수가 반영을 위한 후속조치도 필요하다. 한의사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맥진기나 경락진단기기 등의 진단기기 보험수가를 현실화해 보다 많은 한의사들이 동일한 정보를 얻어 환자들에게도 같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더불어 혈액검사 등을 통한 환자 진찰 정보를 다양하게 얻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현재 임상에서 상병명 진단이 한양방 통일된 상태에서 한의사들도 진단을 정확히 하려면 현대 진단의료기기의 활용이 필수적인 요소다. 또, 자연환경의 변화가 한약재 생산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재배 농가의 수도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의 한약재 수요 증가로 우리는 좋은 필수 한약재를 수입하기 어려워진 현실에 직면했다. 이에 발효와 같은 방식으로 적은 양으로 유효한 효과를 얻는 방법이나 약재 생산에 있어 ‘스마트팜’ 시스템의 도입도 고려돼야 한다. Q. 강조하고 싶은 말은? 오늘도 치열한 의료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많은 회원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같은 의료인임에도 불구하고 한의약에 대한 폄훼가 이어지고 있어 치료의학으로서의 강점이 속히 회복돼야 한다. 개원하고 처음 마주한 환자를 대했던 그때처럼 국민들의 아픔과 괴로움에 귀를 기울이고, 따스한 손길로 위로하다보면 분명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긍심이 솟아 날 것이다. 계묘년, 주위의 상황이 아무리 우리를 흔들더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내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의 한의진료 열정을 쏟아낸다면 한의계가 한 단계 도약하는 해가 될 것이다. -
한약처방 본초학적 해설-36주영승 교수 (전 우석대한의대) #편저자 주 : 비만의 약물치료에 활용되는 5개 처방에 대해 본초학적 분석(31∼35회)을 하였는 바, 이번호에서는 이에 대한 1차 정리를 했다. 다음호부터는 痛症 관리를 위한 약물치료처방을 소개함으로써 치료약으로서의 한약의 활용도를 높이고자 한다. 기고내용과 의견을 달리하는 회원들의 고견과 우선 취급을 원하는 한방약물처방이 있으면 jys9875@hanmail.net 로 제안해주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고 있는 비만은 이미 대표적인 사회적 질환으로서 적절한 대처가 필요한 단계에 이르렀다. 하지만 뚜렷한 효과를 보장하는 치료법이 없는 상태에서 다양한 접근과 수많은 해법이 제시되어지고 있다. 이와 같이 혼란스러운 단계에서는 무엇보다도 정통성을 가진 방법에 대한 접근이 우선적으로 필요한데, 이는 그동안 비록 특효는 아니었다고 하지만 수많은 시도를 통한 자연스러운 정리를 거친 방법으로 의료에서 필수적인 안정성을 그나마 확보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랫동안의 임상 실천을 기본으로 하는 한의학적 치료법은 이러한 조항에 부합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동안 한의학의 특성에 맞춰 비만을 病證 단계 및 체질처방으로 나누어 설명했는 바, 이번호에서는 대표처방으로 소개했던 5가지 처방에 대한 1차 정리를 하고자 한다. 향후 여기에서 정리된 5가지 처방에 덧붙여, 소개됐던 많은 문헌 및 임상보고에서의 가감례 및 개인적인 노화우를 대입하면 비만의 치료 효율을 보다 높일 수 있을 것이다. 1. 防風通聖散(초기·實性 비만)(한의신문 2370호 참조) 金나라 劉河間의 降火益陰원리에 따른 宣明論方에 기술된 처방으로, 성미가 辛微溫하여 祛風 解表 鎭痙止痛하는 효능을 가진 防風을 主藥으로 하여 表裏·氣血·三焦를 通治하는 ‘通의 聖藥’이라는 뜻에서 명명됐다. 이 처방에 대해 朱丹溪도 風熱燥를 다스리는 총체적인 처방으로 유사하게 해석하고 있다(丹心). 구성약물을 분류해 정리해 보면 ①解表藥인 防風 麻黃 薄荷 荊芥를 君藥으로 하여 發汗을 도모했고, ②淸熱藥인 石膏 黃芩 桔梗 連翹 梔子와 利水滲濕藥인 滑石, 攻下藥인 大黃 芒硝를 臣藥으로 하여 泄熱利尿通便했으며 ③養血活血藥인 當歸 川芎 赤芍藥과 健脾燥濕藥인 白朮을 佐藥으로 하여 散瀉가 지나침을 견제했고 ④調和諸藥으로서 甘草를 使藥으로 배치한 처방이다. 이를 기준으로 防風通聖散을 본초학적인 기준으로 분석하면, 비만 초기의 實症에 활용돼 질 수 있는 처방으로, 불필요한 물질을 효율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다양한 통로(땀, 소변, 대변)를 활용한 解表·淸熱·攻下通便하는 表裏雙解의 처방이라고 할 수 있다. 즉 濕痰, 宿便으로 대표되는 체내 노폐물을 發汗·利尿·通便을 통해 체외로 배출함으로써 체중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一切風濕暑濕 內外諸邪---表裏三焦俱實’에 이용된다는 立方취지와 일치된다. 하지만 허약한 체질이나 가벼운 병증 등과 같이 表裏가 모두 實하지 않을 경우, 해당약물의 제거에 관한 문헌기록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2.九味半夏湯(濕痰性 비만)(한의신문 2373호 참조) 朴炳昆 선생의 ‘한방임상40년’에 소개된 처방으로, 중년 이후 水腫을 주증상으로 上氣 眩暈 등의 기본증상을 가진 비만환자로, 下劑(예: 防風通聖散)를 사용하지 못할 경우의 水毒을 없애는 처방으로 설명하고 있다. 治痰의 聖藥인 半夏와 더불어 9종류의 한약으로 구성됐다는 의미로 명명되었다고 보여진다. 비정상적인 노폐물의 총칭인 痰飮은 ‘十病九痰’이라 하여 모든 질병의 원인으로 주목해온 개념이다. 특히 노폐물의 형태를 몸으로 바로 인지할 수 있는 비만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이로 인한 2차 질병까지의 전체 총괄개념에서 痰飮을 인지한 처방으로 볼 수 있다. 九味半夏湯을 처방기준으로 재분류하면 배뇨촉진의 四苓散 계통의 약물(澤瀉 豬苓 白茯苓--赤小豆)을 君藥으로 하고, 祛痰 목적의 二陳湯(半夏 陳皮 茯苓 甘草)을 臣藥으로 하며, 약한 發汗의 약물(柴胡 升麻 生薑)을 佐使藥으로 하는 複方으로 설명된다. 이를 기준으로 九味半夏湯을 본초학적인 기준으로 분석하면, 비만 초기의 實症에서 下劑를 통한 적극적인 散瀉法의 사용이 여의치 않은 경우, 利水를 통하여 祛濕痰하는 처방으로 정리된다. 즉 下劑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완만한 편에 속하지만, 구체적으로는 濕痰性 비만에서 근본원인에 해당되는 축적된 노폐물(痰)과 이의 적극적인 배출을 위한 통로로서의 소변배출량 증대(利水)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表裏가 모두 實한 경우에 응용함이 마땅한 滲泄의 처방이라는 점을 유념, 각각의 구성약물에 대해 主藥 혹은 보조약으로 전환을 병증의 변환에 따라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3.瀉脾湯(半虛半實 비만)(한의신문 2378호 참조) 朴炳昆 선생의 ‘한방임상40년’에 소개된 처방으로, 육식을 좋아하고 腹滿 견비통 두통 耳鳴 환자의 경우에 下劑(예: 防風通聖散)를 쓸 수 없을 때 사용하라고 되어 있다. 실제 脾實은 脾에 邪氣가 옹체된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 景岳全書에서도 ‘脾가 實하면 脹滿氣閉하거나 몸이 무거우므로 消導 혹은 運脾시켜야 한다’고 했다. 실제적으로 脾實에 응용된 대부분의 처방들이 이러한 원칙에 충실했고, 여기에 淸熱(예: 瀉黃散) 瀉下(예: 瀉脾除熱飮)의 약물이 첨가되는 형태를 띠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질병의 진전에 따라 점차 祛痰 위주로의 처방 변화와 더불어 虛症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瀉脾湯은 이와 같이 외형에서는 實한 모습이지만 내적으로는 虛한 상태인 虛實兼證 혹은 半虛半實의 상태를 띠고 있는 경우에 응용될 수 있다고 보여진다. 瀉脾湯을 처방기준으로 분석하면 3가지 처방의 내용이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半夏 茯苓 甘草로 조성된 二陳湯去陳皮를 君藥처방으로 했으며, 人蔘 半夏 黃芩 甘草 生薑으로 조성된 小柴胡湯去柴胡의 의미와 桂枝 甘草의 桂枝甘草湯이 臣藥처방으로 조합됐다고 볼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瀉脾湯을 본초학적인 기준으로 분석하면, 초기의 적극적인 대처(예: 下劑와 강력한 發汗-防風通聖散 등)와 중기의 근원적인 대처(예: 祛痰과 이뇨-九味半夏湯 등)에 이어, 이후 점차 虛症에 대한 대처를 했음을 볼 수 있다. 비만 치료에 응용된 瀉脾湯을 본초학적으로 분석하면, 비만에서 적극적인 下劑와 발한의 과정이 어려운 경우와 초기 비만치료에서 적극적인 치료과정을 거쳤지만 치료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虛症에 진입한 경우인 半虛半實의 비만에 응용될 수 있는 처방으로 정리된다. 4.益胃升陽湯(虛性 비만)(한의신문 2382호 참조) 益胃升陽湯은 調理脾胃 升提中氣 치료원칙을 중시해 ‘補土派’라 지칭되는 金나라 李杲의 ‘蘭室祕藏’의 부인문에 소개된 처방이다. 즉 益胃升陽湯은 中焦의 기운을 升擧陽氣시키는 효능을 가진 補中益氣湯에 神麴과 黃芩이 추가된 처방이다. 처방명의 구체적인 의미를 보더라도 두 처방은 모두 脾氣虛에 부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李杲가 중점을 두고 있는 溫補하는 방법으로 脾胃를 잘 조리함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虛症상태에 진입한 비만에 사용된 많은 한방처방을 분석해 보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음식물 섭취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補脾氣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 益胃升陽湯의 의미와 유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각종 虛症비만 관련 처방에서는 表症으로 나타나는 소화상태의 불편함에 대한 消導之劑와 비만의 원인인 濕痰 제거 약물에 대한 배려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기준으로 益胃升陽湯을 본초학적인 기준으로 분석하면, 초기의 實性비만처방(예: 防風通聖散 등)→濕痰비만처방(예: 九味半夏湯 등)→중기의 半虛半實비만처방(예: 瀉脾湯 등)→말기의 虛性비만처방의 단계에 부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종단계의 虛性 처방으로 각종 문헌에서 소개된 처방의 대부분이 脾氣虛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데,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처방이 益胃升陽湯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장기간의 비만치료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화기계통의 손상이 나타났고,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비만은 개선되지 않는 형태로서 생활습관지도를 필수적으로 병행해야 함은 물론이다. 5.太陰調胃湯(太陰人비만)(한의신문 2385호 참조) 太陰調胃湯은 1894년 李濟馬의 ‘東醫壽世保元’에서 表寒證에 응용됐다. 表寒證은 태음인 가운데에서도 寒氣를 잘 타는 사람, 곧 素病寒者에게 쉽게 발생하는 胃脘受寒表寒病의 대표증상이다. 素病寒者는 태음인기본 장부구조인 肝大肺小에 부합하여, 몸이 차고 땀이 없으며 가슴이 두근거리며 호흡이 짧은 잔기침과 食滯 및 痞滿 그리고 소변량이 감소하면서 설사가 있는 것이 주된 증상이다. 즉 胃脘受寒表寒病은 胃脘이 氣液을 上達하고 呼散하는 기능이 약화되어 表局이 寒氣를 이기지 못해 발생하는 表病 逆證인 胃脘寒證에 해당한다. 이는 소화기의 胃脘과 호흡기의 肺에 있어 기능적 위축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병증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상의학적 관점을 떠나 본초학적인 관점으로 구성약물을 살펴봤을 때도, 접근 방법과 사용된 용어에서의 차이를 빼고는 종합적인 면에서의 상호간의 관점이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기본적으로 소화기 및 호흡기 계통의 취약성을 보이는 태음인의 虛寒性 비만에 적극적으로 응용될 수 있는 처방으로 정리된다. 이는 장기간의 비만치료과정에서 나타나는 만성질환과 저항력감퇴 등의 문제를 체질처방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본다. 특히 임상에서 비만치료에 활용되는 개별약물 중에서 사용빈도가 높은 麻黃이 여기에 포함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태음인의 경우 ‘腠理緻密而多鬱滯氣血難以通利’하므로 發汗을 통해 腠理를 개방시켜주는 대표적인 약물로서의 역할로 설명된다. 본초학적으로도 麻黃이 위로는 肺氣를 開宣하여 發汗하고 또한 水道를 通調케 하여 膀胱으로 下輸하여 利水시켜 준다는 점과, 太陰調胃湯의 不眠과 心悸亢進·心煩 및 上氣등의 부작용이 麻黃의 부작용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사용근거를 알 수 있다. -
‘병! 도대체 왜 생길까?’-‘종횡무진 한의사’의 병인 백과손성훈 원장(대전 휴한의원) 병의 원인을 총망라하고 이를 한의학적·지구환경적·사회문화적 관점 등으로 다각화해 분석한 ‘예방적 건강관리 백과’가 새해 첫날 발간됐다. 손성훈 원장(대전 휴한의원)은 도서 ‘병! 도대체 왜 생길까?’를 통해 질병의 각종 원인을 다각적으로 소개하며, 병의 예방과 원천 차단 방안을 서술했다. 손 원장에 따르면 이 책은 병의 생물학적 원인에서부터 지구환경시스템과 현대인들의 문화 및 정신적 요인까지 다룬 실용적 안내서로 △소인 △물리적 원인 △화학적 원인 △생물적 원인 △식이적 원인 △약물적 원인 △의료적 원인 △지구적 원인 △문화적 원인 △습관적 원인 △정신적 원인 △대사적 원인 △조절적 원인 등으로 나눠 정리했으며, △최근의 질병 양상과 보건 실태의 특징 △경각심을 가져야 할 10대 주요 병인 △한의학의 선구적 혜안 △다양한 병인에 굴하지 않는 건강한 삶 등을 제시했다. 현재 신경정신과 특화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손성훈 원장은 고려대 공대 졸업 후 대구한의대에 입학해 심리상담사, 국제뇌파전문가(QEEG-D) 자격증 등을 취득했다. 또, 신학, 역학, 명리학 등에도 관심을 갖고 공부했으며, 음악과 여행 애호가이기도 해 책 표지에 자신을 ‘종횡무진 한의사’라고 소개했다. 손성훈 원장은 “평화로운 세상에서 각자의 행복한 삶을 원 없이 누리는 것이 인류의 궁극적 이상향이며, 이에 가장 필수적인 전제조건은 건강”이라며 “각종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키는 ‘보건’과 내재한 ‘생(生)’의 기운을 기르고 돌보는 ‘양생’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인류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다음은 저자와의 일문일답이다. Q. 이 책은 어떤 책인가? A. 이 책은 한마디로 인간에게 병을 일으키는 각종 원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고찰해 보고 총망라해 정리한 ‘병인 백과’다. 즉, 교양인을 위한 예방적 건강관리 백과로, 질병이나 병증 혹은 부상을 일으키는 원인과 조건을 병인으로 정의해 크게 14개의 범주로 나눠 다뤘다. 분량과 내용이 일반인이 쉽게 볼 수 있을 책은 아니지만, 학구적 교양인이라면 서재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으면서 참고하기 좋은 백서가 될 것이다. Q. 이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A. 의료인으로서 언젠가 건강에 대해 제대로 된 책을 써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러던 중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며, 건강관리가 가장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던 근년의 배경이 이번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지난 1996년 고려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했으나 심한 불면증을 동반한 정신과적 증상에 시달리며 힘든 시기를 보냈다. 그때 건강의 중요성을 절감하며, 이후 새로운 포부로 한의사가 됐다. 건강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을 위해 의료인이자 환우로서의 공부와 경험 등을 밑바탕으로, 구체적인 근거에 기반한 내용을 한의사로서의 관점과 기준에 따라 정리하고, 서술했다. 건강관리에 관한 교양과 상식을 전달하는 보편적인 참고서와 실용적인 안내서가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편찬하게 됐다. Q. 이 책만이 갖는 특징이 있다면? A. 이 책은 기존 병인관을 뛰어넘어 새로운 병인관을 제시하고 있다. 즉, 현대 서양의학적 관점에서의 병인뿐 아니라, 시야를 확대해 한의학적·지구환경적·사회문화적 관점 등에서도 병의 원인을 바라보고 있어 이렇게 두루 아울러 총망라된 책은 기존의 도서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갖고 있다. 특히, 10대 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아 의료인의 길로 들어선 이유도 있는 만큼 환자로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함과 절박함과 더불어 치료자로서 의료적 지식과 경험을 아울러 공유할 수 있는 특수한 위치에서 쓰여졌다는 점도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Q. 한의학에 대한 관점은? A. 한의학은 우리 민족, 나아가 동아시아의 전통의학이자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자연친화적으로 서양의학보다 안전하며, 자생력을 중시하는 양생의학이다. 실제로 서양의학으로는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미병이나 난치병들이 한의술로 치료가 되는 사례가 많다. 이번 책은 전반적으로 현대 서양의학이나 과학적인 분석방법이 많이 반영돼 있지만, 결론부에서는 한의학의 선구적 혜안과 자연의 섭리에 따라 생활하고 순리에 맞게 처신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삶을 사는 것이 무병장수의 길이라고 서술했다. 이와 함께 건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를 많이 아는 것 보다 얼마나 옳게 잘 실천해 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며 마무리했다. 다만, 한의학은 과거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노력 또한 필요하다. Q. 진료활동에서 특히 기억나는 환자는? A. 중등도의 뚜렛 증후군으로 내원했던 초등학교 저학년 여학생으로, 모범생에 마음씨도 고운 아이였다. 1년 간 할머니와 함께 내원하며 정말 성실히 치료에 임해 다행히 완쾌됐다. 명절 때와 치료가 끝났을 때 손수 만든 선물과 직접 쓴 손편지를 전해주곤 해서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감동을 주고 감동을 받은 사례로, 의료인 입장에서 가장 가슴 뭉클한 때로 늘 기억하고 있다. 필자가 한의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 가장 옳은 판단이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Q. 강조하고 싶은 말은? A. 작년 말,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사실상 허용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한의계의 숙원이 이뤄진 것이며, 한의학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으로서 현대 한의학의 새 장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기기들에 대한 후속 판결도 긍정적으로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우수한 전통의학을 계승하며, 새 시대의 요구에도 부응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수천 년의 값진 임상경험이 축적된 전통 한의학에 첨단 현대기기의 날개를 단다면 이 땅에서 뿐 아니라 한의학의 의료 한류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돼 두루 호재가 될 것이다. 이에 함께 현대 한의학의 발전을 위해 힘과 지혜를 모으고, 한의사로서의 자부심으로, 진료와 연구 등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으면 한다. 전국의 한의사 회원님들께 모두 계묘년 새해를 맞아 건강과 행복을 기원드린다. -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죄책감 갖지 마세요”김은혜 경희대학교 산단 연구원 (전 강동경희대한방병원 임상교수) <선생님, 이제 그만 저 좀 포기해 주세요> 저자 한의학 웰빙 & 웰다잉 8 [편집자 주] 본란에서는 한의사로서의 직분 수행과 더불어 한의약의 선한 영향력을 넓히고자 꾸준히 저술 활동을 하고 있는 김은혜 경희대 산단 연구원의 글을 소개한다. 맞벌이 부부들이 종종 말하는 고민이 있다. 아이가 커가면서 당연히 한 번씩은 잔병치레를 겪고 크고 작은 사고들을 일으키기 마련임에도 혹시 그런 일들이 ‘우리가 일하느라 그 시간 동안 아이에게 신경 써주지 못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라는 죄책감이 든다는 것이다. 육아에 있어 함께 하는 시간의 길이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사회에 많이 스며들었음에도 그러한 죄책감이 십분 이해는 된다. 비단 육아뿐만 아니라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좀 더 궁극적으로는 잘 살기 위해서 짊어져야만 하고, 또 동시에 포기해야하는 역할들은 여러 가지이다. “인생은 무겁고 무서운 선택의 연속” 사회는 부모로서의 책임감도, 회사의 일원으로서 전체의 발전을 도모해내는 직장인으로도, 효심이 지극한 자식이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도,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친절한 사람으로도, 한 사람에게 이러한 여러 가지의 역할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필요로 할 때가 많은 것 같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 육각형 이상으로 구성된 다양한 항목의 점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인 이 사회에서 감당해내야 할 부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극적이게도 우리는 그와 동시에 각 역할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는 순간을 종종 겪고 이때 선택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몇몇 역할을 차순위로 밀어냈다는 이유만으로 기저에 있던 죄책감이 더욱 가중되곤 한다. 인생은 이렇듯 무겁고 무서운 선택의 연속인 것 같다. 그리고 특히 암 환자에게 인생의 선택이란, 그것이 죽음과도 연관이 있을 때가 많아 옆에서 지켜보는 나조차도 느껴지는 잔인하도록 무거운 무게를 가진 경우가 적지 않았다. 담도암으로 투병하던 어르신이 있었다.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부터 항암치료가 중단된 상태로 6개월을 선고받고 오신 분이었다. 어느 날 응급실을 통해 예정보다 일찍 나를 찾으신 환자는 배를 부여잡고 떼굴떼굴 구르고 있었다. 응급 처치만으로는 통증을 해결하는 것에 한계가 있어 ‘입원해서 의과 교수님께 차근차근 보여드리자’고 권유해 드렸으나 무조건 ‘입원은 안 된다’라는 말만 반복해서 돌아와 몇 분간 실랑이가 오갔다. 그러다 문득 옆에서 조용히 있는 아들을 쳐다보았더니 꾹 닫힌 입술과 다르게 얼굴은 끔찍이 일그러져 있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인지하고 아들만 모시고 밖으로 나와 상황을 물었다. 그러자 몇 달 전 아내가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초등학생 자녀 둘을 환자인 할머니가 오롯이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생활비를 벌 수 있는 사람은 본인밖에 없을뿐더러 아직 여러 면에서 정리가 안 되어서, 그리고 본인의 마음조차도 추스르지 못한 상황이라 할머니의 부재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다며 덧붙였다. “저도 지금 경황이 너무 없는데... 꼭 오늘 당장 입원하셔야 하는 걸까요? 최대한 빨리 자리 잡아서 어머니 다시 모시고 오면 안 될까요?” “선택으로 인해 따라온 죄책감 못 벗어내” 아들은 ‘혼자 남은 아버지로서의 책임감’과 ‘하나뿐인 아들로서의 책임감’간에 갈등을 하고 있는 듯 했다. 남은 이로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선택의 기로 앞에 있는 것이었다. 그 상황에서 의학적인 내용만 강요할 수 있는 의료인이 몇이나 될지 모르겠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되던 그 누구도 비판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염려 중 다행으로 환자가 응급실에서의 치료로 어느 정도 다시 걸어서 갈 수 있게 되었기에 임종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눈 뒤 댁으로 보내드렸다. 그러고서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앰뷸런스를 타고 실려 오셨고 며칠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직전에 반복하셨던 말씀은, ‘애들 엄마도 애들 보는 앞에서 쓰러져서 그렇게 갔는데 나도 똑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 불쌍한 아이들의 상처를 후벼 판 것 같아 다시 얼굴 보여주러 돌아가고 싶다’였다. 사실만 보자면 이미 어르신의 임종은 6개월 전부터 예견되어 있었고, 남은 이로서 겪게 될 일들을 오롯이 혼자 버텨내어야 될 가장 측은한 사람은 아들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나와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까지 선택으로 인해 따라온 죄책감을 벗어내지 못했다. ‘응급실에서의 일로 모친이 돌아가신 것이 아니다’라고도 말해보았지만 그의 마음에는 닿지 못했던 것 같다. 일상에서는 크고 작은 선택 끊임없이 반복 일상에서는 크고 작은 선택이 끊임없이 반복되곤 한다. 그것이 자의이건 타의이건 선택으로 인해 책임감과 죄책감이 가중되는 기분을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내가 환자들의 보호자에게 종종 했던 말이 있다.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 죄책감 갖지 마세요.”라고. 가끔 내가 내뱉음에도 도리어 나에게 위로의 말로 돌아왔던 것을 생각하면, 이 문장이 비단 투병하는 가족들에게만 다가가는 말은 아니지 싶다. 우리가 모두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응원과 위로를 담아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