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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캄보디아 의료봉사를 다녀와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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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9-07-01 16:39 조회1,2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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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6월초 절친한 선배 원장님으로부터 갑작스레 제안받은 해외한방의료봉사. 민족의학지나 한의신문 등을 통해 KOMSTA 해외의료봉사에 대한 이야기를 접해 왔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해외한방의료봉사는 심리적으로나 시간적·물질적으로 여유가 많은 다른 분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부산시한의사회의 주관으로 행해지는 해외의료봉사에 참여를 제안받게 되니 해외의료봉사가 바로 나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개원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은 심적 여유도, 환자에 대한 자신감도 그다지 높지 않은 상태라 1주일여의 시간을 내어 해외한방의료봉사단에 참여한다는게 실은 많은 부담이 되었다. 하지만 이 또한 의술을 행하는 이에게는 좋은 기회이며 의료혜택을 못 받는 이들에게는 또 다른 희망의 씨앗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기분 좋고 뿌듯한 일이라 이런 기회를 준비하고 제안해 주신 여러 선배한의사들께 감사인사를 드리면서 금년 베트남-캄보디아 의료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작년 부산시한의사회 해외의료봉사단의 이름은 ‘라오사랑’이었다. 라오스에서의 의료봉사가 봉사단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고, 힘들었지만 너무도 보람된 시간이었기에 봉사단원 모두가 라오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금년 해외봉사단 이름은 ‘BOMSTA (Busan Oriental Medical Service Team Abroad - 부산한방해외의료봉사단)’로 정하고 의료봉사 지역은 부산시와 경제적 자매결연 한 베트남 호치민시와 오랜 내전으로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캄보디아의 시엔립으로 정했다. 봉사 준비과정에서 베트남 측에 부산시한의사협회에서 의료봉사를 가게 되어 협조를 부탁한다는 공문을 보내자 베트남 당국이 참여하는 한의사의 영문 License와 엑기스제제의 성분을 공문으로 보내라 하여 모두 당혹해 했으나 부산광역시에서 베트남에 대한 모든 행정적 지원을 약속하여 우리는 의료봉사에 대한 준비에 전념하였다. 6월28일 부산시한의사협회 회관에서 발대식을 갖고 7월3일 오전 9시경에 김해공항 국제터미널에 13명의 한의사와 업무지원을 위한 부산시한의사회 사무처 과장님, 7명의 자원봉사 학생들과 2명의 부산시 관계자분, 2명의 방송국 취재단 등 모두 25명이 집결하여 한방의료를 통한 인도주의 실천과 봉사정신을 가슴에 품고 베트남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베트남은 배경은 다르지만 우리와 비슷한 역사적 과정을 거친 것 같다. 중국왕조의 영향권 내에서의 자립과 독립왕조, 프랑스의 식민지화, 프랑스로부터 독립 이후 이념분쟁으로 남북으로 나뉘어져 수십년간의 내전과 대치상태(내전이라고는 하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간의 전쟁으로 미국, 한국, 오스트리아 등의 참전으로 국제전 양상을 띠었다) 등 우리와 많이 유사한 역사의 길을 걸은 베트남. 베트남은 1975년 월맹군의 승리로 공산국가로 통일되어 현재 사회주의체제 하에 1986년부터 시장경제로 전환하여 이를 진행하고 있다. 5시간여의 비행으로 베트남에 도착하니 한국보다 2시간가량 늦은 시차가 적용되는 베트남 시간으로 오후 3시경이었다. 장시간의 비행보다 우리 봉사단을 지치게 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호치민공항에서 우리가 가져온 1만5천여일분의 엑기스제제의 통관을 불허한 것이다. 호치민시에서 나온 국제협력관의 노력도, 봉사단장님과 준비위원장님의 끈질긴 설명과 설득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약을 보내 줄테니 일단을 약을 공항에 두고 가라는 베트남 당국의 말에 단원들 모두 당혹해 할 수밖에 없었다. 세 시간 가량을 공항에서 머물다 다음날 진료를 준비하기 위해 결국 약을 공항에 두고 숙소로 향할 수밖에 없을 때의 안타까움이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베트남 호치민시의 거리풍경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오토바이의 물결이다. 인구 천만의 대도시 호치민에서 대부분이 이동수단으로 오토바이를 이용하다 보니 대기오염이 심하고 매캐한 공기가 숨을 턱턱 막았다. 몇 년전 영화에 등장하던 인력거 시클로는 자동차의 등장으로 급속하게 사라지고 현재 유원지 등에서 간간히 볼 수 있다하니 베트남의 경제성장 속도를 가히 짐작할 만 했다. 베트남에서의 의료봉사 활동은 호치민시의 신흥도시에 위치한 한인학교에 진료소를 하나 마련하여 현지에서 열심히 일하는 교포들을 상대로 진료활동을 펼쳤고, 나머지 인원들은 호치민시 외곽지역에 있는 보건지소를 매일 한군데씩 순회하는 형태로 진료활동에 임했었다. 호치민시 외곽지역은 낮은 경제수준과 의료시설 부재로 많은 주민들이 의료혜택 없이 질병을 방치한채 생활하고 있었다. 특히 폐병환자들이 많아 수년 이상씩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상당수 볼 수 있었다. 호치민 외곽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여성의 농업에 대한 기여도가 높아 많은 여성 환자들이 근골격계 질환을 가지고 방문하였다. 통역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적어 호치민대학교 영문과 학생들의 도움으로 진료가 영어로 진행되어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으나 현지인들의 병세가 많이 호전되고 반응이 좋아 모두 지칠 줄 모르고 진료에 임했었다. 여담이지만 통역에 도움을 주던 학생들이 우리 의료봉사단을 보고 이렇게 친절하게 환자들을 보고 이렇게 꼼꼼하게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고, 이렇게 빠른 속도로 환자들이 호전되는 것을 처음 봤다고 하며 연신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때 한의학에 대한 자부심과 뿌듯함이 새록새록 솟아올랐다. 베트남 학생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네들이 사회주의국가라는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자신의 의견을 솔직히 밝히고 자유분방하다. 하지만 촬영팀이 지역주민 소개로 한 동네를 촬영하자 다음날 공안에서 촬영팀을 안내한 주민과 봉사단의 한국인 가이드를 소환하여 조사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사회주의국가 안에 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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