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의 작은 정성이 후학들의 보금자리가 될 한의대 신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08년 개교 60주년을 맞아 모교 한의대 신축에 보태달라며 지난해 2억원을 약정하고, 1억원을 전달한 김연수 원장은 후학들이 보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교육받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의 한의학 애정은 남다르다. 지금까지 한의대생 장학금 1억1500만원, 기초 한의학육성기금 1억원, 한의대 기초학 교실지원금 1억원을 기탁한데 이어 이번에 2억원을 선뜻 내놓은 것이다. 이같은 한의학과 후학들에 남다른 사랑의 원천은 ‘한의대에 진 빚’ 때문이라고 김 원장을 말한다.
“제가 한의대에서 한의학을 전공하지 못했다면 사정은 달랐을 겁니다. 한의사직으로 번 돈은 당연히 한의학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고, 한의학이 발전하면 국민들도 한의학을 사랑할 수 있는 밑그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스스로의 삶을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말한다.
중학교 재학 당시 6.25가 발발하면서 학도병으로 강집됐던 김 원장이 기초훈련을 받고 치열하던 낙동강 전투에 투입되기 위해 부대와 함께 이동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배가 아파 논둑에서 용변을 보던 중 갑자기 날아든 폭탄에 함께 타고 있던 동료들은 전사하고 자신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기 때문이란다. 그 후 이 사건은 인생의 획을 긋는 소중한 교훈을 남겼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덤으로 주어진 인생’을 떠올리는 버릇이 생겨났던 것이다.
‘먹기 좋은 몸통은 가난한 이웃에게 주고 머리와 꼬리 부분으로 만족하는 삶’을 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생선 한 마리’ 철학은 그의 인생의 단면을 엿보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갑니다. 모은 재산을 물려주기보다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도 틈나는 대로 일러줍니다.”
모교에 장학금이나 기금을 선뜻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사회 환원’이란 그의 삶의 철학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건강한 생명체가 피드백의 원리을 갖고 있듯 선배들이 후학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길이야 말로 한의학을 건강하게 하고 꾸려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기부행위가 혹여 ‘감투나 명예를 위해서’란 오래를 불러 일으키지는 않을까 가장 경계한다.
지금까지 골프채도 한 번 잡아보지 않고 한 눈 팔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하는 그에겐 그리 넉넉하지는 않지만 무엇보다 자식들이 거역하지 않고 훌륭하게 성장해준 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장남 용준이는 중앙의대 거쳐 피부과전문의가 되었고, 막내 성준이는 한의대를 나와 현재 박사 과정에 있으면서 가업을 잇고, 사위는 치과의사로 전문의로 개원하고 있습니다.”
그는 10여년 동안 매년 10명에게 전달했던 장학금을 받은 학생 가운데 판사 등 나라의 훌륭한 인재가 되어 고맙다며 찾아왔을 때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도 오래전 가난으로 무료로 진료해준 환자들이 고마움을 기억하고 찾아와 손을 잡고 흔들 땐 색다른 감동으로 다가온다. 어려웠던 시절을 함께 건너온 탓일까. 그는 지금도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는 가난한 이웃들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웃들이 가난의 사슬을 끊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누군가 해야할 것이라며 미루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은 끊임없이 유통하기 위해 있습니다. 슬픔은 나눌 때 반감되고 기쁨은 나눌 때 배로 된다는 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파서 눈물짓던 사람들이 건강을 회복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 볼 것이라는 그는 ‘노년이 석양에 빛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