京畿道의 永遠한 吳世鍾 會長님 영전에

기사입력 2007.06.2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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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會長님의 逝去 소식을 듣고 아뜩한 마음으로 殯所에 드니, 近年에 海外旅行을 하시다 便安하게 웃음 지으신 寫眞을 하얀 菊花로 두르시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離別 인사를 하시는데, 그 影幀 앞에 다가서니 ‘박 원장’하고 부르시는듯하여 마음이 아스러졌습니다.

    會長님! 아직도 우리 後輩들이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 많은데 이리 慌忙히 가시면 어찌해야 할지 當惑스럽기 그지없습니다.
    會長님은 永遠한 京畿道 韓醫師會의 會長님이십니다. 이 고장에서 태어나시어 끊임없이 韓醫學問을 사랑하셨고 韓醫業權을 넓히시다 이제 돌아가신 곳도 이 고장이십니다.

    1980년대는 京畿道韓醫師會가 創立된 以來 가장 어려웠던 시기였는데, 1982년 定期總會에서 代議員 全員 滿場一致로 會長에 當選되신 후 會務를 隨行하시며 韓醫師會를 가장 슬기롭고 가장 탄탄하게 이끌어 주셨습니다.

    京畿道가 道廳을 水原으로 移轉하고 모든 行政을 道廳 所在地 中心으로 치르는데, 15년이 넘도록 資金과 煩雜한 事情 等으로 道會館(事務所)을 水原으로 옮기지 못하고, 定期總會나 理事會 등 各種 會務를 서울에서 執行하여 有關團體나 他 支部의 눈총을 받을 때, 회장님은많은 犧牲을 무릅 쓰고 道會館을 水原으로 移轉하는 등 숱한 難題를 解決하셨습니다.

    當時 道支部는 最大 分會였던 仁川分會가 行政區域 變更으로 分離 獨立하여 나갔고 道內 一部地域도 서울시로 編入되는 등 會勢가 기울고 있을 때였습니다.

    再當選으로 4년간 會務를 맡으시는 동안 道內 各 地域을 訪問하시어 會員들을 糾合하고 不合理한 회무를 是正하여 醫療分野 뿐만 아니라 體育·文化·社會奉仕 등 여러 分野에서 有關團體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하셨고 도지부 회무에 일대 革新을 가져왔습니다.

    지난해 가을 먼저 돌아가신 竹馬故友 金漢鎭 會長님과는 友愛가 敦篤하셨는데, 在任時 反對했지만 强行된 管內 韓藥業士 資格試驗 施行 때 金漢鎭 會長님을 出題委員으로 薦擧하셨고, 김 회장님이 專門書籍과 法酒를 所持하여 며칠 동안 隔離된 試驗 出題場에서 無聊함을 달랬다는 逸話는 지금도 두 분 이야기 속에 훈훈히 녹아 있습니다.

    會長職을 後任者에게 넘겨주시고도 크고 작은 회무에 諮問을 주셨고, 行事에 參席하시어 後輩들에게 愛協心을 率先垂範 보여주셨는데 지금 會長님 떠나가신 그 큰 자리를 어찌해야 좋을지 茫然自失 합니다.

    이제 幽明을 달리하신 會長님의 靈前에서, 裟婆의 生活이 어차피 苦海인데 加被로 日常을 지내시고 사랑으로 모든 이를 안아주셨는데, 會長님의 파란만장하셨던 그 時節의 무거운 짐을 벗으시고 홀가분하게 지내시라 冥福을 빌며 삼가 追慕의 念을 올립니다.

    後輩 朴 淳 煥 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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