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 퇴직금 제도

기사입력 2026.10.2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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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과 사람 사이⑥

    배용원 변호사님.jpg


    배용원 대표변호사

    •법률사무소 동촌(東村) 

    •前 청주지검장

    •대한한의사협회 자문변호사


     

    “오랜 인연의 끝에 남는 것이 다툼과 서운함이 아니라 감사와 존중이기를 바라” 


    “가족처럼 지냈는데…….”

    10년을 함께 일한 실장님과 노동청에서 마주 앉게 되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30평 남짓한 한의원에서 개원 초기의 어려움을 함께 견디고, 환자들의 이름과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던 직원입니다. 명절이면 선물을 챙기고 집안의 대소사 까지 나누며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노동청에서 출석요구서가 날아옵니다. 퇴직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원장님으로서는 당혹감을 넘어 서운함과 배신감마저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직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성실하게 일한 만큼 법에서 정한 퇴직금을 받고 싶을 뿐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마지막에 두 사람이 바라보는 시선은 다를 수 있습니다.


    퇴직금은 시혜가 아닌 법에서 정한 근로자의 권리


    퇴직금 분쟁이 안타까운 이유는 처음부터 한쪽이 나쁜 마음을 먹어서 생기는 케이스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서로 잘못 알고 있거나 막연히 믿고 있었던 것이 뒤늦게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후 300만 원을 맞춰주기로 했는데요.” “명절마다 떡값도 주고, 매일 식대도 따로 챙겨줬습니다.” “환자가 많을 때는 인센티브도 지급했습니다.” “연봉에 퇴직금이 포함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근로계약서는 없지만 서로 말로 합의했습니다.” “몇 년 전에 퇴직금을 미리 정산해 주었는데요.”


    실제 분쟁에서 흔히 듣게 되는 이야기들입니다. 원장님은 나름대로 배려하고 충분히 보상했다고 생각하지만, 법의 판단이 그 생각과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퇴직금을 오랫동안 일한 직원에게 주는 호의나 위로금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퇴직금은 시혜가 아니라 법에서 정한 근로자의 권리입니다.


    쉽게 말하면 1년 근무할 때마다 대략 한 달 치 임금이 쌓이는 셈입니다. 10년을 근무했다면 약 10개월 치 임금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물론 실제 금액은   퇴직 전 평균임금과 근무기간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직원에게는 오랜 근무의 결실이지만, 소규모 한의원을 운영하는 원장님에게는 일시에 마련하기 부담스러운 금액입니다. 역설적으로 오래 함께 일한 직원일수록 이별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것입니다.


    퇴직금 산정도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기본급만 기준으로 삼았다가 수당이나 성과급도 퇴직금에 포함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연봉제에 대한 오해도 많습니다. 연봉에 퇴직금까지 포함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매달 급여에 퇴직금을 조금씩 얹어 지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판례는 그런 지급 방식을 원칙적으로 적법한 퇴직금 지급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직원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퇴직금을 미리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서로 합의했으니 괜찮겠지 생각하지만, 퇴직금 중간정산은 주택 구입이나 장기 요양 등 법에서 정한 사유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선의로 건넨 돈이 나중에 퇴직금으로 인정되지 않는 난처한 상황이 많이 생깁니다.

     

    배용원 변호사2.png
    AI 생성 이미지

     


    급여, 근무 시간 등 근로계약서에 명확히 기재 필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의외로 평범합니다. 처음부터 분명하게 정하고,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기본급은 얼마인지, 식대와 직책 수당은 어떻게 지급하는지, 인센티브는 어떤 기준으로 계산하는지 근로계약서에 명확히 적어두어야 합니다. 급여나 근무  시간이 바뀌었다면 변경된 내용도 문서로 남겨놓은 것이 좋습니다.


    특히 세금을 공제한 뒤 실제로 수령하는 금액을 기준으로 급여를 약속하는 소위 ‘네트(Net)제’보다는 세전 급여를 기준으로 계약하는 편이 분쟁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퇴직연금제도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매년 퇴직급여를 계획적으로 준비하면 직원이 퇴직할 때 갑자기 큰돈을 마련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결국 퇴직금은 직원이 떠날 때 계산할 문제가 아니라, 처음 채용할 때부터 준비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보통 가까운 사이일수록 돈 문제를 꼼꼼히 따지거나 문서로 남겨놓는 것을 야박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사이에 뭘 그런 것까지 따지느냐”는 말도 쉽게 합니다.


    그러나 분쟁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흔들리는 것은 사람의 기억입니다. 같은 약속을 두고도 각자 기억하는 내용이 다릅니다. 말할 때는 분명했던 것이 시간이 흐르면 희미해지고, 믿음으로 남겨둔 빈자리를 서운함과 의심이 채우기도    합니다.


    퇴직금, 아름다운 이별에 담긴 존중


    규모가 작은 한의원일수록 원장님과 직원 사이의 거리는 가깝습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고, 나누는 이야기도 많습니다. 그래서 퇴직금 분쟁이 생기면 돈을 잃는 것보다 사람을 잃었다는 상처가 더 오래 남게 됩니다.


    오랜 세월 함께 일한 직원이 새로운 출발을 할 때, 원장님은 그동안의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하고, 직원은 좋은 기억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퇴직금은 함께한 시간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자, 아름다운 이별에 담긴 존중입니다. 오랜 인연의 끝에 남는 것이 다툼과 서운함이 아니라 감사와 존중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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