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저절로 남지 않아,
누군가 끝까지 기록해야만 겨우 살아남아”

기사입력 2026.06.3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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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1951 피란수도 부산, 한의학의 脈을 잇다’ 성황리에 방영
    제작 자문 김영호 부회장 “이번 다큐는 완성작이라기보다는 예고편”
    넷플릭스, 디즈니+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한의학 드라마 제작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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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다큐멘터리 ‘1951 피란수도 부산, 한의학의 脈을 잇다’가 성황리에 방영돼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부산경남대표방송인 KNN을 통해 전파를 탄 이 다큐멘터리는 부산시한의사회의 기획과 자문아래 이뤄졌다. 이에 본란에서는 ‘경험은 가장 위대한 과학’이며, ‘역사의 실재는 기록에 의한다’는 것을 증명해내는 등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자문 역할에 깊이 관여했던 김영호 부산시한의사회 부회장으로부터 방송 제작의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Q. 다큐멘터리 ‘1951 피란수도 부산, 한의학의 맥을 잇다’를 직접 보고 난 소감은?

     

    :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성취감이 아니라 안도감이었습니다. 우리는 늘 바쁘게 진료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어떤 역사를 가진 직업인지, 얼마나 감사한 직업인지 잊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이번 다큐는 한 편의 방송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라질 뻔한 이야기를 겨우 붙잡아 둔 작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쯤 멈춰 서서 우리의 출발점과 뿌리를 돌아볼 수 있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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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지역 한의사회 차원에서 대형 다큐를 기획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 부산시한의사회 건물 안에는 오래된 서고가 있습니다. 다큐에도 등장하는 공간인데, 그 자료들을 볼 때마다 오래전부터 ‘최소한 백서 형태로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부산한방병원협회 조병제 회장님의 다큐 제작 제안이 더해지면서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됐습니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2026 뉴욕 페스티벌 TV & 필름 어워즈’에서 3관왕 수상 경력을 보유한 전문 제작사인 최작기획을 만나게 됐고, 김영옥 배우님의 나레이션도 큰 힘이 됐습니다. 

     

    특히 김영옥 배우님께서는 부군상을 당하신 지 3일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도 흔쾌히 참여해 주셨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Q. 다큐 제작 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 현실적인 문제는 역시 예산이었습니다. 방송 제작과 공중파 편성에는 상당한 비용이 필요합니다. 제한된 지부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컸습니다. 하지만 더 어려운 것은 공감대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처음부터 모두의 박수를 받으며 시작되는 일은 아닙니다. 공공성을 가진 일은 원래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의 성과보다 미래를 위해 씨앗을 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을 것 같다는 책임감이 오히려 저를 움직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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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역사적 자료를 찾고 고증하는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은?

     

    : 해방 이후와 1950년대 기록이 생각보다 너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습니다. 국회 회의록과 오래된 신문 기사, 사진들을 찾아다니다가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기록하지 않으면 곧 잊히겠구나.’ 역사는 저절로 남지 않습니다. 누군가 집요하게 찾아내고 기록해야 겨우 살아남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번 작업은 다큐 제작이라기보다 역사 구조(救助) 작업에 가까웠습니다. 이 과정의 발판이 된 1950년대 동양의학전문학원 연구를 진행해 주신 동신대 박훈평 교수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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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다큐 후반부에는 미래 한의학의 비전이 제시됐는데, 앞으로 한의사의 역할은 어떻게 정의돼야 하는지?

     

    : 한의사의 역할은 앞으로 더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도 국민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한의사가 선택받았습니다. 미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고령화와 만성질환, 정신적 소진의 시대에 인간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한의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특히 대만처럼 중의약을 만성질환 관리 체계 안으로 적극 편입시키는 사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이제는 기존 역할을 지키는 시대가 아니라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 가야 할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Q. 중앙회 차원의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한의학의 역사는 결국 우리가 직접 보존해야 합니다. 중앙회 차원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과 체계적인 역사 보존 사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번 다큐를 준비하면서 2012년 발간된 900페이지가 넘는 『대한한의사협회사』를 다섯 번 이상 읽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 가지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역사는 저절로 남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집요하게 기록하고 정리해야 겨우 살아남는다는 사실입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과거를 미화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미래 세대가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좌표를 남겨주는 일입니다. 한의학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것은 뿌리를 잃은 나무에게 더 높이 자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한의신문>과 <민족의학신문> 역시 단순한 언론이 아니라 현재의 한의계를 기록하는 살아 있는 역사 아카이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생산되는 기사와 기록의 가치는 우리가 아니라 50년, 100년 뒤의 후대가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협회 차원에서 최소 10년에 한 번씩은 한의계의 역사를 정리한 공식 사료(史料)와 백서를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고민과 도전, 제도와 정책,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남겨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빠짐없이, 그리고 성실하게 기록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한 누군가가 50년 뒤에는 제2의 오인동지회처럼 한의학 역사의 중요한 인물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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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 다큐 제작에 있어 아쉬웠던 점과 앞으로의 계획은?

     

    : 사실 이번 다큐는 완성작이라기보다 예고편에 가깝습니다. 이제 겨우 첫 삽을 떴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한의학 근현대사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통의학 네트워크까지 더 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일본의 대학병원 의사들이 한약을 활용하는 모습, 대만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활용된 중약(中藥) 청관1호, 영국과 중국의 제도가 공존하는 홍콩의 중의약 체계 등을 통해 한국 한의학이 얼마나 뛰어난 시스템과 인재를 보유하고 있는지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또한 동신대 박훈평 교수팀과는 부산시한의사회 서고의 역사 자료를 전수 조사하는 작업도 진행할 예정입니다.

     

    단 한 권의 오래된 규정집이 새로운 논문 <1950년대 부산의 한의사 유관 단체 규약에 대한 연구-박훈평 2026 한국의사학회지>과 역사적 사실을 탄생시켰듯, 아직도 수많은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 제 꿈은 한의학을 널리 알릴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기획해 공중파 골든타임에 전 국민이 함께 시청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그 작품이 국내외 다큐멘터리 어워즈에서 인정받고, 언젠가는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 같습니다. 

     

    20년 동안 한의학 홍보라는 한 길만 걸어온 사람으로서, 그때쯤이면 비로소 ‘한의학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해냈다’고 담담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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