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 14

기사입력 2026.03.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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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미자는 탕전하면 유효물질이 충분히 추출되지 않는다
    — 고전 처방에 환산제가 많은 이유

    김호철 교수님(최종).jpg


    김호철 교수

    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 교수

    (주)뉴메드 대표이사


    [편집자주] 

    본란에서는 김호철 교수(경희대 한의대 본초학교실)의 ‘과학으로 보는 한약 이야기’를 통해 임상 현장에서 자주 제기되는 한약의 궁금증과 문제들을 하나씩 짚어가며, 최신 연구 결과와 한의학적 해석을 결합해 쉽게 설명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이 기존의 한약 지식을 새롭게 바라보고, 실제 진료 현장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섯 맛은 한 곳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미자(五味子)는 이름 그대로 다섯 가지 맛을 가진 약재이다. 그런데 그 다섯 맛이 한 곳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과육(果肉)은 달고 시다. 씨앗(種子)은 맵고 짜고 쓰다. 맛의 출처가 다르다는 것은 성분의 출처도 다르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오미자의 약효 핵심은 씨앗에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씨앗의 주성분이 물에 녹지 않는다.


    오미자차를 마셔본 사람이라면 그 선명한 붉은빛과 새콤한 맛을 기억할 것이다. 정성껏 우려낸 오미자차 한 잔을 손에 들고 있을 때, 정작 약이 되는 성분은 그 잔 안에 없을 수 있다. 이것이 오늘 이야기의 출발점이다.


    씨앗의 성분 

    — 리그난은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는가


    오미자의 약리 활성이 집중된 성분은 리그난(lignan) 계열이다. 스키잔드린(schisandrin), 고미신(gomisin), 스키잔드롤(schisandrol) 등이 대표적이며, 이 성분들은 씨앗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리그난의 핵심 작용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간 보호이다. 스키잔드린은 간세포의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보호하고 Nrf2 경로를 활성화하여 세포 내 항산화 방어 시스템을 강화한다. 간 효소(ALT, AST) 수치를 낮추는 효과가 임상에서 반복 확인됐으며, 중국에서는 이미 오미자 리그난 추출물이 만성 간질환 치료 보조제로 활용되고 있다. 


    둘째는 항피로이다. 스키잔드린은 부신피질 반응성을 조절하여 스트레스 호르몬을 안정화하는 어댑토젠(adaptogen) 효과를 나타낸다.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고 피로 회복을 촉진한다. 한의학에서 오미자를 기허(氣虛)·신허(腎虛)에 쓰는 것이 이 기전과 연결된다. 


    셋째는 신경계 보호이다. 고미신(gomisin) 계열 성분은 신경세포를 보호하고 인지 기능 개선, 항우울 효과와 관련된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 한의학의 안신(安神) 효능 — 불면, 심계(心悸), 심신불안(心神不安) — 이 이 기전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 이 리그난 성분들에는 결정적인 특성이 있다. 지용성(脂溶性)이 강하다는 것이다. 물보다 기름이나 알코올에 훨씬 잘 녹는다. 오미자의 수추출물과 에탄올 추출물의 리그난 함량을 비교한 연구들을 보면, 에탄올 추출 시 리그난 함량이 수추출 대비 수 배에서 수십 배까지 높게 나온다. 물로 아무리 오래 끓여도 씨앗 속 리그난은 거의 우러나오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오미자를 물에 우릴 때 실제로 나오는 것은 무엇인가. 과육의 성분들이다. 사과산(malic acid), 구연산(citric acid) 등의 유기산이 물에 잘 녹아 나온다. 오미자차의 그 선명한 신맛이 바로 이 유기산의 맛이다.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anthocyanin)도 수용성이라 차의 색깔에 기여한다. 유기산과 안토시아닌도 항산화, 수렴(收斂) 작용이 있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과육의 작용이지 씨앗의 작용이 아니다. 리그난이 주도하는 간 보호, 신경계 보호, 항피로 작용과는 다른 영역이다.


    다섯 맛 중 달고 신 과육의 성분만 찻잔에 담기고, 맵고 짜고 쓴 씨앗의 성분은 우려낸 건더기와 함께 버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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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아서 끓이면 


    이쯤에서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이 있다. 오미자를 갈아서 물에 끓이면 어떤가. 씨앗을 갈면 세포벽이 파괴되어 리그난이 외부로 노출되고 표면적이 넓어지므로, 통째로 우리는 것보다는 그나마 낫다. 임상에서 알코올 추출 제품이나 환산제를 활용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현실적인 차선책이 될 수 있다. 다만 리그난이 물에 안 나오는 근본 이유는 세포벽 때문이 아니라 지용성이라는 용해도(溶解度) 자체의 문제이다. 갈아서 끓여도 알코올 추출이나 환산제 복용에 비하면 리그난 함량은 여전히 현저히 낮다. 차선은 차선일 뿐이다.


    전통 의가들은 제형으로 이 문제를 풀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전통 방제에서 오미자가 어떤 제형으로 쓰였는지를 살펴보면, 치료 목적에 따라 제형을 분명하게 달리 선택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미자가 들어가는 대표적 방제인 생맥산(生脈散)은 방약합편(方藥合編)에 가루로 복용하는 것으로 기술되어 있다. 인삼, 맥문동(麥門冬), 오미자를 갈아서 복용하는 것이 원래 복용법이었다. 현대 임상에서 탕제로 달여 쓰는 것이 관행이 되었지만, 원래 제형은 산제였다. 기(氣)와 진액(津液)을 회복시키는 이 방제에서 오미자를 가루로 복용한 것은, 유기산의 수렴(收斂)·생진(生津) 작용뿐 아니라 씨앗의 리그난까지 함께 취하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보신(補腎)과 안신(安神)을 목적으로 하는 방제에서도 오미자는 어김없이 환(丸)이나 산(散)의 형태로 등장한다. 육미지황원(六味地黃元)에 오미자를 더한 도기환(都氣丸)은 신허(腎虛)로 인한 해수와 요슬산연(腰膝酸軟)을 다스리는 환제이다. 


    불면, 심계, 건망(健忘)을 다스리는 천왕보심단(天王補心丹) 역시 환제로 복용하며, 오미자의 신경계 보호 리그난이 핵심적 역할을 한다. 신기(腎氣)를 보하는 팔미지황환(八味地黃丸)에도 오미자가 환제로 배합된다. 이와 같이 보신·안신을 목적으로 하는 방제들은 공통적으로 환제나 산제를 선택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환제와 산제는 약재를 분말로 만들어 그대로 복용한다. 물에 녹이는 과정이 없다. 위장 내에서 소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용성 성분이 담즙(膽汁)과 같은 내인성 유화제의 도움을 받아 흡수된다. 수추출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리그난이 체내로 전달된다. 옛 의가들은 현대 분석화학의 언어는 몰랐다. 그러나 경험을 통해 오미자의 어떤 효능을 원할 때 어떤 제형을 써야 하는지를 이미 체득하고 있었다. 보신과 안신이 목적이면 환산제로 — 이 선택이 현대 약리학의 지용성·수용성 개념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제형이 효능을 결정한다 


    이 전통적 지혜는 현대 연구에서 그대로 확인된다. 오미자 리그난의 알코올 추출물을 이용한 연구들에서 간 보호, 항피로, 인지 기능 개선, 항산화 효과가 일관되게 보고된다. 반면 수추출물을 이용한 연구에서는 같은 수준의 효과를 얻기 위해 현저히 높은 농도가 필요하거나 효과 자체가 관찰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에탄올 농도별 추출 효율 연구에서는 70% 에탄올 전후에서 리그난 추출 효율이 가장 높다는 것이 확인된다. 알코올이 씨앗의 세포벽을 통과하여 지용성 리그난을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때문이다. 물은 이 장벽을 넘지 못한다.


    현대 한의 임상에서 오미자를 처방할 때 습관적으로 탕제에 포함시키는 것이 관행이라면, 한 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간을 보호하고 피로를 회복시키며 신을 보하려는 목적이라면, 탕제의 오미자는 기대하는 효능의 상당 부분을 전달하지 못할 수 있다. 제형의 선택이 곧 효능의 선택이다.


    오미자를 제대로 쓴다는 것


    오미자차를 즐기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다. 과육의 유기산과 안토시아닌은 양생(養生)의 관점에서 충분히 의미 있다. 그러나 오미자를 치료 목적으로 쓰려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씨앗째 갈아 분말로 복용하거나, 알코올 추출 제품을 선택하거나, 환산제 형태로 처방하는 것이 리그난을 체내로 전달하는 현실적 방법이다.


    전통 의가들이 제형을 달리하여 오미자를 썼던 그 경험적 지혜를 과학의 언어로 다시 읽는 것 — 이것이 본초학이 지금도 해야 할 일이다.

    오미자는 과육이 아니라 씨앗이 약이다. 그 씨앗의 성분은 물로는 꺼낼 수 없다. 이 단순한 사실을 알고 쓰는 오미자와 모르고 쓰는 오미자는, 이름은 같지만 약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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