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숙
국회사무처 부속한의원 원장
(前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편집자주]
『신미숙의 여의도 책방』은 각 회마다 1개의 키워드에 5권의 도서를 추천하는 형식으로 이어갑니다.
첫눈부터 폭설이더니 지난 주중 내린, 아마도 이번 겨울의 마지막이 분명한 눈까지도 함박눈이다. 셔틀버스 통근자라 눈 따위가 나의 출근에 지장을 줄 리 없다는 안도감 덕분인지 아직 철이 없는 건지 눈만 보면 그저 설렌다. 금세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더렵혀질 것이 뻔해도 목도리 위로 포개어지는 눈을 털어내며 아무도 걷지 않은 눈길을 뽀드득 소리를 내면서 평소 보폭의 반의 반으로 조심스레 걸어보는 일은 어렸을 때의 그것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흰 아주 흰 마음이다.
그래서 그 날도 이른 아침의 눈길을 만끽하고자 국회 내 한옥이 자리한 사랑재 앞뜰을 걸어보려는 생각으로 돌계단을 막 오르려는데, 얇은 살얼음과 한 쪽 부츠의 닳은 굽의 밑창이 만나 미끄덩! 오른쪽 어깨에 걸친 에코백이 주르륵 흘러내리려는 찰라 어깨를 추켜올려 하체를 버티던 힘을 살짝 상체로 옮기는 순간 slip down! 누가 볼새라 흩어진 짐을 정신 없이 챙겨 산책은 포기, 가장 가까이 보이는 코너를 향해 냅다 뛰어 버렸다. 다행히 다친 데 없고 보행은 이상 무. ‘휴우! 낭만 찾다가 무릎 잃는다. 제발 차분차분 쫌!! 이깟 눈이 뭐라고’했다가도 ‘그래도 이쁘쟎아!’ 속으로만 외쳐본다.
한국, 대표적인 수면부족 국가…수면건강 관심↑
주중의 피로를 주말에 몰아서 자는 것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있다. 유독 잠이 많은 사람들은 “너는 겨울잠도 자냐?”는 질문을 받아본 적 있을 것이다. 기온이 떨어져서 먹이를 구하기 힘들고 체온 조절이 힘들기 때문에 움직임을 최대한 줄여서 에너지를 아끼기 위한 생명활동이 동물들의 겨울잠이라고 할 때, 사람의 겨울잠에 가까운 긴 잠은 가족 봉사를 위한 주말 외출을 피하고자 선택한 필사적인 몸부림이 습관으로 굳어진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잠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잠을 좋아한다고 바로 잠들 수 있는 것도 능력이다. 많은 통증 환자들이 증상을 호소하며 자주 하는 대사는 “밤새 한 숨도 못 잤어요. 아파서”이다. 물론 한 숨도 못 잤다는 표현에는 과장이 섞여있겠지만 통증으로 정상적인 숙면이 불가능했다는 의미이다.
치료를 해 가면서 두 번째, 세 번째 방문을 했을 때는 “어제는 좀 더 주무셨어요?” 혹은 “통증으로 잠을 설치지는 않으셨어요?”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환자들로부터 “간만에 푹 잤어요. 진통제 안 먹고 중간에 안 깨고 아침까지 푹 잘 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덕분입니다”라는 반응을 들었을 때가 가장 기쁘다.
낮에는 업무로 인해 통증을 잘 모르고 넘기다가 정작 밤이 되면 몸이 통증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편하게 자야지하고 누웠는데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아프더라는 사람들이 많다. 통증 때문에 잠을 설쳤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숙면을 못 해서 통증을 더 느끼게 되기도 한다. 잘 자야 통증도 개선된다는 뜻이다. 야간통의 개선은 그래서 여러 의미를 지닌다.
수면 시장 보고서(2024년, https://www.giikorea.co.krP)에 따르면 국내 수면장애 환자 수는 2018년 86만명에서부터 2022년 110만명으로 연평균 6.5% 증가하는 추세이고, 이에 따른 수면제 시장 규모 또한 2023년부터 2032년까지 연평균 6.8% 이상의 성장세가 예상된다고 한다.
야근과 과로가 필수인 ‘피로사회’로 정의되는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수면부족 국가이다. 슬립테크(Sleep+Technology)라는 용어는 혁신기술을 바탕으로 수면 문제를 해결하는 분야로 전통적인 매트리스, 베개, 조명을 포함하여 수면상태 모니터링 제품이나 수면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다양한 웰니스 기기가 여기에 해당된다. 지금까지 안 해본 치료가 없다는 환자들은 기존의 의약을 포함하여 이제는 새로운 테크에 기꺼이 몸을 맡길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면이라는 증상이 가지는 묵직한 정의는 크게 변한 게 없다. 최근 하지불안증후군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자주 접한다. 증상의 애매모호한 시작과 아주 미미한 호전 그러다가 이유없는 갑작스런 악화 그리고 그 끝에는 늘 수면장애가 있었다.
『잠 못 드는 고통에 관하여』
(Richard Murray Vaughan, 루아크, 2017년 1월)
저자 RM 본(1965년 3월∼2020년 10월)은 작가이자 예술평론가다. 40년간 불면증을 겪으며 불면 환자들이 처한 외롭고 척박한 치료 과정을 기록했다.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비평가로서의 날카로움을 잃지 않은 채 불면의 문화를 파헤친다.
- 의사의 진찰과 온갖 자기 치유 방법을 시도한 지 일 년이 다 되어갈 무렵 나는 아픈 사람들이 찾는 최후의 피난처, 곧 인터넷으로 관심을 돌렸다. 사이트에는 기막히게 상반되는 정보가 가득했다.
-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나 하나만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이 내게는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 불면증은 사람을 들볶는다. 불면증은 부글부글 끓는다. 잠재된 분노가 치솟으며 들썩인다. 불면의 문화에는 화가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 불면증 환자는 진짜 자기애에 빠질 수 없다. 왜냐하면 늘 자신과 싸우기 때문이다.
- 불면의 문화에서 더욱 무서운 측면은 처방의약의 본질적 내성과 자기치료의 남용이다. 이렇게 내성이 생기면 더 강한 새로운 약을 찾거나, 이제는 효력이 떨어진 예전 약을 더 많이 먹어야 한다.
- 광범위한 대중건강 문제를 중독성 있는 약물로 해결하려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해법은 그로 인한 중독을 키우고 산업화한다.
『하버드 불면증 수업』
(Gregg D. Jacobs, 도서출판 예문, 2019년 7월)
저자는 하버드 의대 및 메사추세츠 의대에서 30년 이상 종사한 수면 전문의이다. 불면증을 위한 인지행동 요법의 주요 개발자 중 한 사람이며, 수면제의 부작용과 위험에 관한 권위자이다.
- 불면증은 마음과 몸, 그리고 건강 사이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 현대 의학은 아직 불면증에 대한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했다. 수면제는 만성 불면증 치료에 안전하거나 적합한 방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잠을 잘 수 있다는 장점보다 훨씬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 내가 불면증에 대해 가장 크게 걱정하는 것이 있다. 불면증을 정신질환이라고 간주하면 불면증과 연관된 낙인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고 환자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저해할 뿐이다.
- 의사들은 수면제를 가장 효과적인 불면증 치료법이라고 생각하여 처방을 남발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또한 수면제 처방 건수는 줄었지만 일반의약품으로 분류되는 수면 보조제의 사용은 급격하게 증가했다.
- 5시간 30분의 수면, 즉 일부 수면 연구가들이 코어 수면(core sleep)이라고 부르는 수면만 취하면 주간 기능은 크게 저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단지 부족한 수면 때문에 불안할 뿐이다.
- 수면제는 실제로는 수면을 개선하지 못할 수 있다. 오히려 기억상실 효과를 일으켜서 사람들은 잠에서 깨도 이를 기억하지 못한다. 정기적으로 수면제를 복용한다면, 이는 밝혀지지 않은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불면증을 위한 마음챙김 기반 치료』
(Jason C. Ong, 학지사, 2020년 10월)
저자는 심리학 전공자로 행동수면의학 훈련 프로그램의 책임자로서 마음챙김에 기반한 불면증 치료(Mindfulness-Based Therapy for Insomnia; MBTI)에 대한 효용을 전달한다.
- 침술과 마사지는 불면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용되는 가장 흔한 신체 관련 치료이다. 불면증을 위한 침술 치료에 대한 연구들은 상당한 문제가 있었고 연구의 질이 낮았다. 그러므로 불면증을 위한 침술 치료는 다소 촉망되는 치료 대안이지만 아직 효능성과 안전에 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 불면증을 위해 가장 가능성이 있는 마음-신체 개입은 명상일 것이다. 명상은 불면증과 관련이 깊은 각성 수준을 감소하는 개념적 모델에 적합하다.
- 급성 수면 교란에서 만성 불면증으로 전환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면장애가 어떻게 유발되고 지속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마음챙김은 내담자가 약물에 의존할 필요성을 없애고, 밤에 약을 먹고 잠을 자야 할지 결정해야 할 때 형성된 불안에 매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
(Marina Benjamin, 마시멜로, 2022년 4월)
저자는 논픽션 작가로 이 책은 잠 못 드는 시간에 찾아오는 감정과 생각을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기록한 에세이다.
- 불면증은 여행처럼 자신이 뿌리내렸던 곳과 이별하는 경험이다.
- 불면증에 사로잡히면 나는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 죽음과 잠은 서로에 대한 은유이자 암시일 수 있다.
- 불면증 환자들의 집합은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은 집단이지만 대부분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그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전염병 수준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사람의 신체가 호흡이나 소화, 호르몬 생성과 같이 당연히 수행해야 할 자신의 임무를 망각하고 있는 듯하다.
- 수면제는 눈뜬 채 지새는 시간을 기억에서 지워버려 기억상실증을 유도하고 가짜 수면을 생산한다. 수면제는 불면증을 치료하지 못한다. 다만 증상을 억제할 뿐이다.
- 현대 사회가 불면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수면 제한이다. 불면증 환자에게 잠을 자지 못하게 하다니, 고문이 따로 없다.
『잠이 고장난 사람들』
(Guy Leschziner, 시공사, 2023년 8월)
저자는 수면전문의이자 신경의학자이다. 그가 출연했던 BBC 라디오 시리즈물 <Mysteries of Sleep>을 토대로 탄생한 책이다.
- 잠자다 생기는 일련의 행동은 깬 동안에 나타나는 인간 행동의 스펙트럼을 반영한다.
- 누구나 경험하듯 잠은 생물학적, 사회적, 환경적, 심리적 요인이 모이는 절대적 합류점이다.
- 누군가의 잠을 정확히 평가하기 위해서는 삶 속 요소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 실제로 불면증을 겪는 이 중 절반은 정신질환 진단을 받는다.
- 불면증과 심리적, 정신과적 문제 간의 관계는 엄청나게 복잡하다.
- 우리의 과학은 이 방면에선 아직 유아기 단계다. 즉, 잠과 정신 건강 사이의 복잡한 관계, 그 밑바탕에 깔린 원리를 아직 완벽히 설명하지 못한다.
- 불면증 약물요법에서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수면제, 특히 벤조디아제핀과 그 관련 약물이 훗날 치매를 일으킬 위험을 높인다는 증거가 점점 쌓인가는 것이다.
- 불면증은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아니라 극초기 단계 알츠하이머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 수면인지행동요법은 불면증의 최우선적 치료법으로 추천되며, 약물요법은 단기 혹은 중기로 병행되는 수준이다. 오래 먹은 수면제를 끊을 때도 수면인지행동요법이 유용하다.
12·3 이후 ‘내란성 불면증’이라는 용어가 유행 중이다. 일반적인 알람 문자에도 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싶어서 시간을 가리지 않고 갑자기 잠에서 깨어나 다시 잠들기가 어렵다는 게 공통적인 증상이다. 불면과 불안은 동전의 앞뒤처럼 한몸으로 움직인다. 불면증의 약물치료 부작용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한의학은 많은 선택지 중에 한두 번 시도해 볼만한 정도의 딱 그 정도의 대안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한의학연 “침 치료, 수면장애 완화 원리 밝혀”, 2022.11.23.). 생약 성분이라 안전하다는 각종 수면 유도제 광고를 여기저기에서 자연스럽게 자주 접하게 된다. 한방신경정신과 전문의 그룹임을 강조하는 프랜차이즈 한의원 홈페이지에서 그들이 제시하는 불면에 대한 한의학적 치료 매뉴얼을 읽어본다. 현대의학적 치료 대비 경쟁력과 건강보험 안에서의 보장성은 다소 부족해도 환자들이 느끼는 안락감과 만족도는 높아 보여서 다행이다.
한의약적 수면장애 접근, 환자들의 안락감·만족도 높아
하루 두세갑 담배를 피우시고도 본인은 팔십 평생 감기 한 번 걸린 적 없다고 하시며 당신 건강에 자신감이 대단하신 전직 국회의원이자 현직 모 정당 고문이신 분이 요통으로 가끔 내원하신다. 원래도 짱짱하던 어르신이셨는데 지난 가을부터 댁 근처 공원에 조성된 황톳길에서 하루 삼십여분 맨발걷기를 하시면서 이젠 선잠도 물러가고 대신 숙면을 취하신다는 말씀을 건네신다. 숲길의 진정 효과인지 맨발의 지압 효과인지 황토의 성분 효과인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다 도움이 되었으니 이렇게 잘 자는 것 아니겠냐며, 전국 지자체가 이런 공원 많이 만들어 놓아서 결국에는 병원비를 아껴주는 셈이니 이런 게 진짜 복지라는 말씀도 보태신다.
21년간 폐선이었던 대곡역에서 의정부역(대곡-원릉-일영-장흥-송추-의정부)을 잇는 교외선이 2025년 1월11일 다시 개통되었다. BTS가 『봄날』 뮤비를 촬영한 곳으로 알려진 일영역이 바로 이 노선에 자리한다. 멈췄던 기차가 달리고 얼었던 마음이 훈훈해지는 봄날이 지척이다.
생각해보니 이번 겨울, 내란성 불면과 그로 인한 장기적 불안으로 어깨는 잔뜩 웅크린 채로 심장은 자꾸 먹먹해지는 상태로 힘들게 버텼다. 네 번째 함박눈이 서서히 그쳐가던 지난주부터 얼굴을 때리던 겨울바람도 이내 잦아들고 있다. 잠 못 드는 밤 창 밖에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것은 언제나 낭만적이다. 그 낭만을 다시 맛보려면 일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계절이 바뀌면 대기도 변하고 그에 따라 우리 몸도 변신을 꿈꿀 것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이 길목이 그래서 가장 극적이다. 특히 2025년의 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드라마틱한 장면을 많이 목격하게 될 것 같다. 과연 그 드라마의 장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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