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 왕실 주치의로서의 한의사 위상 제고에 힘쓸 것”
[한의신문] 대한한의사협회가 한글날을 맞아 ‘의사’ 용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성명문 발표와 더불어 윤성찬 회장·정유옹 수석부회장이 대한제국 왕실 주치의인 어의·의약동참 재연을 통해 대통령 한의사 주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대한한의사협회가 8일 발표한 성명문에 따르면 현재 흔히 사용되고 있는 ‘의사’ 용어는 대한제국 광무 4년(1900년) 1월17일 관보에 내부령 제27호로 반포된 의사규칙(제1조)에 의거한 것으로, 당시 “의학(醫學)을 관숙(慣熟)해 천지운기(天地運氣)와 맥후진찰(脈候診察)과 내외경(內外景)과 대소방(大小方)과 약품온량(藥品溫涼)과 침구보사(針灸補瀉)를 통달해 대증투제(對症投劑)하는 자를 말한다”고 명시했다. 즉 이는 ‘의학에 통달해 진맥과 침, 뜸, 한약을 처방하는 자’를 ‘의사’로 규정한 것으로, 당시 명시된 ‘의사’는 지금의 ‘한의사’를 지칭하고 있는 것.
이런 가운데 경복궁 자경전에서 열린 ‘제10회 궁중문화축전’에서 대한황실문화원은 ‘자경전, 왕의 효심으로 물들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왕의 문안 및 교지 수여(공연) △도자아트인형전시 ‘조선 600년의 색을 만들다’를 진행했다.
11일부터 13일까지 3일에 걸쳐 진행된 이번 행사는 조선시대 궁중의 일상을 주제로 한 시연과 전시를 통해 어르신에 대한 공경과 효심을 표현하고, 임금이자 아들로서의 고종의 일상을 돌아보고자 마련됐다.
이에 행사 마지막날인 13일 윤성찬 회장·정유옹 수석부회장은 어의·의약동참 역을 맡아 궁중 한의약 재연을 통해 국내외 참관객들에게 왕의 주치의로서의 한의사와 한의약의 역할을 재조명하도록 했다.
노무현 정권인 지난 2003년에 도입된 대통령 한의사 주치의는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 중인 2011년에,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도 당선 첫해 5월에 각각 위촉한 바 있으나, 현 정부에서는 아직까지 한의사 주치의를 위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재연행사의 무대가 된 경복궁 자경전(慈慶殿)은 ‘어머니의 복을 누린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고종4년 때 지어진 전각으로, 고종10년 화재로 불탄 것을 고종25년(1888)년, 고종이 양어머니인 신정왕후를 위해 재건한 건물이다.
신정왕후는 12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고종을 수렴청정하다가 이후 고종이 친정을 하게 되면서 권력의 중심에서 물러난 인물로, 이번 재연행사에선 1888년을 배경으로 장성한 고종이 왕후(훗날 고종황제·명성황후)와 함께 연로한 신정왕후를 찾아가 안위를 살피며 내의원을 통해 이를 진료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날 행사는 자경전 앞마당에서 △왕의 문안 △진료(진맥 및 탕약 처방·복용) △내의원에 교지 수여 △퍼레이드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고종의 마음을 담은 곡 ‘어머니시여’로 막이 오른 행사에서 고종의 문안 인사에 신정왕후(배우 방은희 분)가 병증 및 기력 쇠약을 호소, 이어 내의녀가 등장해 진맥을 실시하고, 어의에게 보고하자 탕약 처방과 함께 이를 어의, 의약동참, 내의녀가 함께 신정왕후에 올리는 의식이 연출됐다.
이어 고종은 신정왕후의 완쾌에 크게 기뻐하며 어의, 의약동참, 내의녀의 품계를 올려주는 교지를 수여할 것을 명하고, 수여식이 진행됐다.
‘교지(敎旨)’는 왕이 신하에게 관직(官職), 관작(官爵), 시호(諡號), 자격(資格), 토지, 노비, 특전 등을 하사하면서 증표로 내려주는 문서다.
끝으로 궁중 정재(呈才) ‘춘앵전’, 소리 ‘고종의 소원’와 함께 출연자들의 경복궁 일대 행차 퍼레이드가 펼쳐져 외국 방문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공연 진행자의 해설에 따르면 조선시대 최고 한의사인 ‘어의(御醫)’는 궁궐 내에서 임금과 왕족의 병을 치료하는 ‘왕실 주치의’다.
또 ‘의약동참(議藥同參)’은 내의원에서 탕약 담당 의관으로, 주로 어의의 명을 받아 약을 만들고, 임금이나 왕비, 세자 등의 진료에 동참하기도 했다.
또한 ‘내의녀(內醫女)’는 조선시대 여성 전문 한의사로, 태종 6년(1406년)에 왕실의 부인과(婦人科) 관련 진맥을 담당하도록 설치, 주로 어의에게 증상을 보고하고, 협진·처방하는 일과 탕약 외에도 음식으로 병을 다스리는 ‘식치(食治)’도 담당했다.
이날 재연행사에 참여한 윤성찬 회장은 “대한제국 당시 ‘의사’는 지금의 ‘한의사’이며, 1898년 설립된 ‘대한의사총합소(大韓醫師總合所)’를 뿌리로 대한한의사협회가 출범하는 등 한의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의료인”이라면서 “외국 여러 나라에서도 대통령 한의사 주치의가 설치돼 빠르고, 탁월한 한의진료기술과 부작용 없는 예방의학으로서 각광받고 있는 반면 정작 한의약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만 한의사 주치의가 차별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윤 회장은 “이번 행사에서 보여준 어의, 의약동참, 내의녀 등의 한의의료진들이 의술을 통해 교지를 받은 내용처럼 빠른 시일 내에 대통령 한의사 주치의를 임명해 그 뛰어난 한의의료기술이 발휘되길 바란다”면서 “앞으로도 대한한의사협회는 다양한 형태의 홍보프로그램을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한의약에 담긴 효(孝)·위민(爲民)·애민(愛民) 정신과 명실공히 왕실 주치의로서의 한의사의 위상을 홍보하는 데 앞장 서겠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유옹 수석부회장도 “그동안 외국에 궁중 한의약 문화를 직접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았는데 이번 공연을 통해 경복궁에 모인 참관객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 기쁘다”면서 “‘의사’라는 용어는 한의사·양의사·치과의사를 총칭하는 중립적인 단어로, 양의사들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며, ‘한의사와 한의학’, ‘양의사와 양의학’으로 정확한 용어 사용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자경전 대청마루에선 ‘조선 600년의 색을 만들다’를 주제로 오주현 작가가 궁중 문화를 재연한 도자인형이 전시됐다. 고종, 신정왕후, 명성황후 등 궁중의 여러 신분을 상징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 대례식, 궁중아악 장면에 이어 궁중 한의사의 모습을 홍보하기 위해 내의원의 어의와 내의녀 도자인형이 새롭게 제작·전시돼 외국인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